“당신은 늘 스스로 서 있는 사람이었어요.”“누구의 뒤에 서 있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앞에 세워야 하는 존재도 아니에요.”“그날 내가 ‘아내’라고 말한 건, 내가 당신 옆에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서였지, 당신이 누군가의 소유처럼 보이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어요.”유리는 그 말을 오래 곱씹다 작게 웃었다.“…그 말, 조금은 듣고 싶었던 말이에요.”“내가 혼자만 내 자리를 다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근데, 그 자리를 같이 지켜줄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위로가 될 줄 몰랐어요.”그날 밤, 유리는 오랜만에 노트를 펴고 레시피를 적었다.예전 가게에서 혼자 써두었던 요리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그 위에, 처음으로 이렇게 썼다.“조유리. 누군가의 아내이기 전에 요리하는 사람, 살아가는 사람.”그리고 그 아래, 이현이 조용히 덧붙였다.“…그리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유리는 그 글을 보고 눈을 감았다.가족이라는 이름도, 연인이라는 이름도결국 ‘나’라는 사람 안에서 진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조용한 오후, 유리는 근처 커뮤니티 센터에서 열리는 작은 팝업 행사 공지를 바라보았다.“로컬 마켓 x 음식 클래스 콜라보 참여자 모집”손가락이 문구 위를 천천히 지나갔다.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 이름을 적었다.조유리.그날 저녁, 식탁 맞은편에서 이현이 물었다.“뭐 하나 결심한 표정인데요?”유리는 밥을 한 숟갈 뜨며 무심한 듯 말했다.“…작은 클래스 하나 해보려고요. 근처 센터에서 하는 로컬 행사인데, 그냥 하루짜리 체험 강사 같은 거예요.”“큰일은 아니고, 그냥 내 이름으로 한 번 다시 밥상 차려보는 일.”이현은 그 말에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럼, 이름은 크게 쓰는 게 어울리겠네요.”유리는 웃었다.“아직은 작게 쓰고 싶어요. 조금만 보여줄게요.처음엔 나도, 내 요리와 삶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조심스럽거든요.”“천천히 하면 돼요.”이현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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