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만 했는데 인류의 희망이 되었다의 모든 챕터: 챕터 1 - 챕터 10

18 챕터

1화

먹이사슬 가장 위에 있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당신이 지금 떠올린 모든 것들은,다 틀렸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눈 앞에 벌어지며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정확하게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개체인가를 깨달았다.-참사가 일어난 후 피로 쓰인 규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최우선시 되는 일이다. 비인도적인 조항에 반대하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게 지금의 세상인데 남의 목숨까지 챙기며 살아가기엔 삭막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까지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시위 단체가 있는데, ’아이들의 집’ 모임이다. 이들이 내거는 조건은 단 하나다. 이름 그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이들을 지키자는 간단한 조건인데, 이들의 목소리가 가장 커지는 날이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또는 만 7세 나이의 아이들에게 진행되는 시험이 진행되는 날이었다.참사 발생 이후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능력이 생기고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우왕좌왕 하던 분위기에서 체계가 잡히고 그것이 곧 국가적 힘이 되며 정치판에 이용 당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체계가 어느정도 잡힌 후 연구가 시작되고서는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일들의 반복이었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잡아다 생살을 가르고 꼬매고 자르고 붙이고 극한의 상황까지 낱낱이 파해지며 오랜 연구가 진행되던 중, 가까스로 연구실을 탈출한 한 사람의 고발로 이 일이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그 연구로 인해 많은 성과를 내었지만 역겨울 정도로 세세하게 쓰여진 과정 때문에 국민들의 뭇매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일이 일단락되는 줄 알았지만, 이후 전국적으로 유아 납치 사건과 유기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유아기 때부터 아이가 능력자인지 아닌지를 밝혀낼 수 있다는 연구결과 때문이었다. 결국 정부는 국민의 분노에 붕괴되기 직전까지 갔지만, 길드의 탄생과 함께 개정된 법안으로 상층부가 물갈이 되는 형식으로 존재를 지킬 수 있었다.‘모든 국민은 만 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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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다시 눈을 떴을 땐 옆에 누워 자고 있는 낯선 인물에 당황했던 수현은 이곳에 들어온 이후 처음 보는 사람에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아빠 안 잔다.”미동도 없이 누워 있던 사람의 말에 몸을 움찔 떤 수현은 여전히 눈을 감고 고르게 숨을 쉬고 있는 사람에 헛것을 들었나 싶었다. 장시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누적된 피로 때문에 환청이 들린 줄 알았다. “아빠 아직 안 잔다고.”다시 들린 소리에 결국 손을 떼고 몸을 멀직이 움직였다. 막다른 곳에 앉아 있던 탓인지 얼마 못 가 등 뒤에 닿는 책장의 감촉이 느껴졌다. 경계심을 갖고 한참을 바라보았지만 아까 그 자세 그대로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어 잠이 든 건지, 아까처럼 눈만 감고 있는 건지 구분되지 않았다. 수현 혼자만 긴장되는 대치가 한참 이어지다가 끝이 난 건 낯선 사람이 눈을 뜨고 수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너무 잘생겨서 시선을 못 떼겠어?”잔뜩 굳어 있던 몸에 긴장이 풀린 건 한순간이었다. 아까 했던 말도 그렇고, 아무래도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았다. 수현은 잠시 고민했다. 이 미로에서 혼자 다니는 것과 정신 이상자와 함께 다니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이득인지.“누구세요?” “네 아빠다.”고민은 짧았다. 몸을 일으킨 수현은 그대로 누워 있는 사람을 지나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려 했다. 이 상황에 아빠 타령하는 사람보다는 그냥 혼자 고립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 걸음 걷자 바로 뒤로 따라붙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수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또 몇 걸음을 떼자 따라오는 소리에 손바닥을 내밀며 저지했다.“따라오지, 아니, 미친!”수현은 제가 내민 손바닥에 본인의 손바닥을 겹치는 행위에 소름이 돋아 손을 뿌리치며 바지에 벅벅 닦았다. 오랜 시간 혼자 돌아다녔던 이 정신 나갈 것 같은 미로보다, 현재 마주친 사람과의 짧은 시간에 정신력이 더 빨리 마모되고 있는 것 같았다.“나가는 길 찾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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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인간은 그것들을 괴물, 외계인, 신 등으로 불렀다. 그 중 ‘신’이라는 지칭에 웃음이 나왔다. 신이라니. 그런 흉측한 괴물 따위를 믿고 숭배한다는 것인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나타나 사람이고 동물이고 할 것 없이 찢어발기고 먹어치우고 보란듯이 전시하는 존재들. 과연 신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신은 우릴 버린 것인가?나타난 그것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으며 울부짖는 사람들의 입이 찢어지고 몸이 세로로 가로로 갈라지고 머리가 분리되고 입안에 굴러다니다 가차없이 내뱉어지는 뼛조각이 수습되지도 못한 채 밟혀 가루가 된다. 이 글은 읽는 당신들에게 다시 묻는다. 신은 우릴 버린 것인가?- 소라한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은 후 만족의 한숨을 쉬며 책을 꼭 껴안았다. 너무 좋아 견딜 수 없는 것을 참지 못 하고 끌어안는 듯한 행위였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 소라한의 지론이었다. 범재는 천재를,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했던가. 소라한은 그 중 즐기는 자에 속했다. 포옹으로 짧은 작별을 건낸 후 책장에 책을 꽂아넣고 바로 옆에 있던 책을 꺼내들었다. 배가 고프지도, 졸리지도 않은 이 공간은 마치 소라한을 위한 선물 같은 공간이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땐 이곳 저곳 돌아다녀봤지만 이내 다시 처음 들어왔던 곳으로 돌아가 차례대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글이란 글은 다 쓰여 있는 듯 했다. 소설이나 시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혼자 써내려 간 일기나 댓글, 신문, 잡지글 등등…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글은 인터넷에 등록된 것들만 기록된 것 같다는 점이다. 책의 순서에 연도도 상관 없는 것 같았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 쓰여 있던 ‘즐’이나 ‘뷁’이라는 단어를 보고 한참 웃었던 적도 있었다. 행복해! 텅 빈 공간에 소라한의 목소리만이 쩌렁쩌렁 울렸다.-소라한은 또 다시 한참을 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종종 사람을 마주치긴 했지만 나름 농담이라고 한 말에 화를 내고 질문 몇 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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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어두운 방 안 커다란 모니터 여러 대만이 방을 밝게 비추었다. 그 속에서 키보드 소리와 달칵이는 마우스 소리, 땅이 꺼질 듯한 한숨 소리가 울렸다. “아아악, 이 미친 새끼!”짧은 단발머리를 손으로 움켜쥐며 소리 지른 그는 옆에 둔 고함량 카페인이 포함되어 있는 음료수를 마구 들이켰다. 이 공간에서는 무엇을 하든 배가 고프지 않고, 목이 마르지도 않으며, 자지 않아도 피로를 느끼지 않지만 정신건강을 위하여 카페인을 섭취했다. 그의 옆에는 다 먹고 구겨놓은 캔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방 안에 깔린 수많은 모니터 중 메인 모니터에는 소라한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작게 ‘시말서’라는 제목의 창이 떠 있었다.그는 시말서와 소라한을 죽일 듯 노려보다가 키보드 위를 쾅쾅 쳤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시말서 하나로 넘어갔지만 소라한이 다시 기행을 벌여 아이템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었다. 그는 이를 악 물며 파손돼 먼지처럼 키보드 대신 익숙하게 새로운 키보드를 허공에서 꺼내었다.아주 가끔, 아주아주 가끔 저런 미친 새끼가 나온다고 전설처럼 선배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말이 있었지만 그게 왜 하필 저란 말인가. 부글부글 끓는 화를 키보드 하나로 가라앉힌 그는 태연하게 책을 읽고 있는 소라한의 화면을 멀리 치워버린 그는 다른 화면을 끌어왔다.화면엔 끊임 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쓰러졌다 부활하며 반복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패턴을 바꾸며 쏟아지는 칼의 비, 뿜어지는 불길, 굴러오는 사람만한 돌 등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느낌표가 떠 있었다. 그는 그 중 한 사람의 머리 위에 느낌표를 눌렀다.권지운방어 : 83회사망 : 283회149일 되었습니다.좀 아쉬웠다. 61일만에 83번의 방어에 성공한 것은 칭찬해 줄만 하나 사망 횟수가 너무 많아 등급이 떨어질 것이다. 이런 사람은 그냥 냅두면 100번을 채워 나가게 된다. 그는 다시 다른 사람들의 느낌표를 눌러 뛰어난 사람들 위로 별표시를 남겼다. 별표를 남기면 후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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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결심했다는 듯 서서히 다가오는 소라한을 피해 뒷걸음질 치던 그가 팔로 티자를 만들며 타임을 외쳤다.“나가고 싶다고 했지 죽고 싶다고는 안 했어요!”“나가려면 죽어야 돼. 아마도?”확신 없이 뒤에 작게 붙인 말에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턱 막힌 그는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소라한을 진정 시키려 애썼다.“그냥 여기 있을게요.”“왜? 나가고 싶다며.”“괜찮아요, 안 나가도.”“책 읽기 싫다면서.”“제 꿈이 다독왕인데 모르셨어요?”되도 않는 짧은 만담 타임을 거친 둘은 서로 다른 생각에 잠겼다. 미친 싸이코패스에게서 벗어나는 방법과 아프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찰나의 시간이 흐른 뒤 소라한은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진짜 죽어서 나 감옥 가면 안 되니까 다른 방법을 알려 줄게.”살벌한 멘트에 그는 과장되게 팔을 쓸어내리더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소라한에게 손을 내밀었다.“저는 박민환이에요.”“소라한.”소라한은 악수하자고 내민 손에 본인이 읽던 책을 올려놓으며 자기소개를 마쳤다.“엥?”“일단 읽어.”“나가는 방법은요?”“이게 그거야. 책 읽기.”박민환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떨떠름하게 책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내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펼치고 있는 소라한에게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죽는 것보다 책 읽는 게 나았다.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더러운 인간들에게 벌을 내려 주시려 직접 강림하셨다! 뉴스를 보고 한참을 울었다. 옆집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벽을 쾅쾅 쳤는데, 저 좆같은 인간도 곧 사라질 것이다. 신이 단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간활하며 욕심이 많고 주제를 모른다. 그런 인간들로 가득 찬 이 세상도 썩어가고 있다. 하지만 곧 정화될 것이다. 치유될 것이다. 더러운 죄를 진 인간들은 곧 신께서 벌을 주실 거니까. 이럴 시간이 없다. 나도 이 글을 마지막으로 신을 영접하러 갈 것이다. 발끝에 입을 맞추고 경배할 것이다.-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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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아니, 잠깐 졸다 깼을 때 여전히 같은 자세로 책을 펼치고 있는 소라한의 모습을 본 박민환만의 감정이었다. 박민환은 흘끔 소라한을 흘끔 쳐다보다 이내 옆에 내팽겨친 책을 집어들었다.-도착하셨나요?네, 주변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부르심이 여기까지 들립니다. 뚫고 들어가보겠습니다.정말 부러워요. 저도 그분을 영접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들어왔습니다. 저 멀리 그분의 성체가 보입니다.아아, 어서 저희에게 축복을 내려 주셨으면 좋겠어요.저희의 신은 어떤 분이신가요?분명 자애로운 분이시겠죠. 이 더러워진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 직접 강림까지 하셨으니…영접하셨나요?무슨 일 있으신가요?도마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박민환은 책을 턱 덮었다. 댓글 형식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정말 기분이 나빴다. 기껏해야 강아지똥 같은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던 박민환은 이딴 걸 추천해 준 소라한이 원망스러워졌다.“정말 흥미로운 내용이지?”아까의 일은 다 잊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반말로 돌아온 소라한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여상스레 물었다.“기분 나빠요.”“왜?”문장을 따라 움직이던 눈동자가 박민환을 향했다. 소라한은 읽던 책을 내려놓고 박민환을 향해 몸을 돌렸다. 드디어 그렇게 원하던 토론의 서막이 열리는 듯 했다.“그냥, 몰라요. 사이비를 혐오하는 사람이 쓴 소설인가? 속이 울렁거려요.”“소설? 아니야, 그건 기록이야.”“무슨 말이에요?”“말 그대로 ‘기록’이라고.”소라한은 어느 영화의 장면을 따라하는 것처럼 검지와 중지를 접어 강조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박민환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저으며 눈만 여러 번 깜빡일 뿐이었다. 토론의 장이 열리는 줄 알았더니 설명회였다. 소라한은 김이 빠져 반듯하게 고쳐앉은 자세를 삐딱하게 무너뜨렸다.“수준이 영 안 맞네.”박민환은 소라한의 삐딱한 말투에 순간 발끈했지만 자신이 이 곳에서는 소라한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라는 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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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소라한은 먼지처럼 사라진 박민환의 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책을 주워들었다. 흥건하던 핏자국은 사라졌지만 찌그러진 책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표정하게 책을 원래 자리에 꽂아넣은 소라한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를 옮길 준비를 했다. 기껏해야 사다리와 읽던 책 챙기기가 끝이었지만 사람이 죽은 장소에서 태연하게 책을 읽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죽은 장소?”사다리를 들고 몇 발자국을 내딛은 소라한이 멈칫했다. 죽음이 아니다. 그는 자유로이 해방된 것이었다. 소라한은 박민환이 죽었던 장소를 뒤돌아보았다.“축하해.”-칼이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왔다. 방향은 알 수 없었다.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칼이 강우주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따끔한 감각은 잠깐이었다. 곧 간지러운 느낌과 함께 상처가 아물었다. 강우주는 이를 악물고 바닥에 떨어졌던 칼을 주워 날아오는 칼들을 튕겨내기 시작했다. 잠을 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다. 다만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정신적인 피로가 머리 끝까지 쌓여 있는 느낌이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다. 칼에 맞아 쓰려졌던 사람들은 잠시의 시간을 거쳐 상처가 재생되고 깨어났다. 그들은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하며 죽고 살아나기만을 반복할 뿐이었다.“정신차려!”정우주는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종종 먼지처럼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어디가 됐든 이 지옥보다 나은 곳일 것이다. 정우주는 그 조건을 알아내려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잠시의 생각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반복되는 공격은 머리를 텅 비우게 만들었다. 무수히 쏟아지는 칼을 튕겨내던 정우주는 어느 순간부터 자기가 허공을 가르고 있다는 것들 깨달았다. 손에 있던 칼도 사라진 상태였다. 드디어 공격이 끝난 것이었다. 5분 정도 되는 잠깐의 쉬는 시간 뒤에 다시 공격이 쏟아지겠지만, 정우주는 이 순간만을 간절하게 바랐다.다음은 또 무슨 공격일까? 공격이 날아드는 패턴은 무작위였지만 수단은 한정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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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텅 빈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제각각의 형태로 앉아 있거나 서서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건 A4용지 한 장 정도 크기의 천이었다. 천에는 기하학적인 도형이 그려져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도형을 따라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선을 벗어나거나 간격이 일정하지 않으면 그림이 사라지며 다른 모양으로 리셋되었다. 특이하게도 바늘을 손으로 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바늘과 실은 허공에 둥둥 떠서 그들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바느질이 되고 있었다. 정말 기이한 광경이었다. 그 중 한 명이 손을 번쩍 올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 중 처음으로 성공한 사람이 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져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가 바느질 했던 천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다시 새로운 천이 생겨났다. 이불만한 크기의 천이 그의 위에 내려앉았다. “아… 어… 아아…”모두 믿지 못할 광경에 입을 떡 벌렸다. 이게 끝이 아니었단 말인가? 부정의 힘은 정말 강해서 점점 그들 사이로 손 쓸 틈 없이 퍼져나갔다.-거친 파도가 바다를 타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 위에 사람들이 떠 있었다. 빠져 있는 건 아니었다. 어느 성경의 한 구절처럼 사람들이 바다 위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풍덩 소리가 나며 낙오자가 발생했다. 바다에 빠진 낙오자는 순식간에 거대한 파도가 안고 떠나가버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무시하고 전진할 뿐이었다.멀리 작은 섬이 보였다. 순간 사람들의 눈 앞에 번쩍이며 작은 창이 하나 떴다선착순 50명! 탈락자는 심연 속으로 끌려가버릴지도! \>.\장난스러운 문체와는 달리 섬뜩한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문장을 읽자마자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사람들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레이스에 익숙해진 이들 중에서는 바다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짓에 파도가, 그에 맞선 이안류가, 또는 회오리가 탄생해 서로 부딪히며 작고 큰 재난을 만들어냈다. 그에 휩쓸린 사람들도 어느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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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소라한은 눈을 떴다. 본 적 없는 새하얀 천장이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귓불이 화끈거려 손을 가져다대자 매끈했던 귀에 무언가 박혀 있었다. 그 아래로 짧게 달린 무언가가 느껴졌다. 소라한은 오래 잠들어있던 것처럼 멍한 정신을 일깨우려 노력했다. 눈을 굴리자 손등에 박혀 있는 링거, 들어올린 팔을 감싼 옷, 소독약 냄새까지 모든 것이 병원임을 가르켰다. 천천히 일어난 소라한은 몇 번 더 멍하게 눈을 깜박거리다 제 옆에 길게 늘어선 침대들을 보았다. 소라한과 같은 복장을 하고 누워 있는 사람들은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미동 하나 없었다. 오로지 위아래로 움직이는 폐의 움직임만이 살아 있음을 알렸다. 둔한 움직임으로 바닥을 딛은 소라한이 갓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다리를 벌벌 떨며 링거 거치대를 지지대 삼아 걸어갔다. 문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 걷다가 결국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꽂혀 있던 링거가 그대로 빠지며 옷과 바닥에 붉은 흔적을 남겼다.“…아파.”소라한이 제 소매로 바닥을 쓱쓱 닦아내며 멍하니 말했다. 목소리가 잔뜩 잠겨 있었다. 넘어질 때 부딪힌 무릎이고 손바닥이고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소라한은 그 상태로 기어코 문까지 기어갔다. 문을 열자 긴 복도가 소라한을 반겼다. 복도에 길게 펼쳐진 똑같이 생긴 문들은 공간에 대한 기이한 감각을 주었다. 소라한은 문고리를 지지대 삼아 다시 일어났다. 그 사이 저 멀리서 다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울렸다. 소라한은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의사같은 흰 가운을 펄럭이며 달려오고 있었다.“아악, 깜짝이야!”소라한의 앞에서 멈춘 사람이 헉헉거리다 고개를 올렸을 때 소라한의 행색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질렀다. 여기저기 튄 핏방울과 기어오느라 더러워진 무릎 등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소라한은 생각보다 큰 미간을 찌푸렸다. 모든 감각이 둔했지만 청각 만큼은 잘 살아 있는 듯 했다.“의사 선생님인가요?” “뭐?” “저 아파요…”소라한은 손을 뻗어 의사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욱신거리는 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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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소라한은 거지꼴 그대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몸에는 선이 연결되어 있는 기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링거를 꽂았던 손등에 연결을 할 땐 일부러 아야야 하며 꾀병을 부렸지만 연구원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오래 있던 것치고는 정신 오염도는 낮은데?” “또라이니까요.” “위쪽에 있는 책은 어떻게 꺼낸 거지?” “또라이니까요.” “한 번만 더 그 소리 꺼내면 너를 집어넣는 수가 있어.”소라한과 처음 마주쳤던 연구원이 입을 꾹 다물었다.“조현진, 너가 책임지고 맡아.” “네?”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와 그래프를 보고 있던 연구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조현진이라 불렸던, 또라이 타령을 하던 연구원이 짧은 단발을 잡아 뜯었다. 뭐라 대꾸하고 싶었지만 스스로 지은 죄가 있어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싫어?” “…제가 맡을게요.” “그래야지.”조현진은 과장되게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소라한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원망이 가득 차 있었다. 이 일은 만든 원인. 시말서를 쓰게 만든 장본인. 또라이 새끼!소라한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관리자실에서 불려나왔다. 이제 저 핏덩이같은 놈을 맡으라는 소리에 조현진은 이를 박박 갈았다. 보모 일을 하려고 어렵사리 이 시설에 들어온 게 아니었다. “결과는 따로 보내 줄 테니까 확인하고, 입학 전까지 사람 만들어둬라.”직급이 높아 보이는 연구원이 소라한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인상을 찌푸렸다.“우선 좀 씻기고. 애 꼴이 저게 뭐냐?” “…”조현진은 소라한의 행색을 보며 난리가 난 방을 떠올렸다. 깨어났다는 호출에 허겁지겁 달려와 정리하는 걸 잊었다. 점점 추가되는 일에 혼절하고 싶었다.-소라한은 조현진에게 이끌려 샤워실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어디를 다녀온다며 꼼짝 말고 있으라는 신신당부에 소라한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소라한은 어색하게 손잡이를 들어올렸다. 그곳에 얼마나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 하지만 일상 생활에 어색함이 느껴졌다. 머리에서부터 느껴지는 따뜻함에 한참을 멍하니 아래 서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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