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결심했다는 듯 서서히 다가오는 소라한을 피해 뒷걸음질 치던 그가 팔로 티자를 만들며 타임을 외쳤다.
“나가고 싶다고 했지 죽고 싶다고는 안 했어요!”
“나가려면 죽어야 돼. 아마도?”확신 없이 뒤에 작게 붙인 말에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턱 막힌 그는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소라한을 진정 시키려 애썼다.
“그냥 여기 있을게요.”
“왜? 나가고 싶다며.” “괜찮아요, 안 나가도.” “책 읽기 싫다면서.” “제 꿈이 다독왕인데 모르셨어요?”되도 않는 짧은 만담 타임을 거친 둘은 서로 다른 생각에 잠겼다. 미친 싸이코패스에게서 벗어나는 방법과 아프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찰나의 시간이 흐른 뒤 소라한은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진짜 죽어서 나 감옥 가면 안 되니까 다른 방법을 알려 줄게.”
살벌한 멘트에 그는 과장되게 팔을 쓸어내리더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소라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는 박민환이에요.”
“소라한.”소라한은 악수하자고 내민 손에 본인이 읽던 책을 올려놓으며 자기소개를 마쳤다.
“엥?”
“일단 읽어.” “나가는 방법은요?” “이게 그거야. 책 읽기.”박민환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떨떠름하게 책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내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펼치고 있는 소라한에게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죽는 것보다 책 읽는 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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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더러운 인간들에게 벌을 내려 주시려 직접 강림하셨다! 뉴스를 보고 한참을 울었다. 옆집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벽을 쾅쾅 쳤는데, 저 좆같은 인간도 곧 사라질 것이다. 신이 단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간활하며 욕심이 많고 주제를 모른다. 그런 인간들로 가득 찬 이 세상도 썩어가고 있다. 하지만 곧 정화될 것이다. 치유될 것이다. 더러운 죄를 진 인간들은 곧 신께서 벌을 주실 거니까. 이럴 시간이 없다. 나도 이 글을 마지막으로 신을 영접하러 갈 것이다. 발끝에 입을 맞추고 경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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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한에게서 받은 책을 읽던 박민환은 울렁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며 책을 덮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이 인터넷에 쓴 일기같은 소설이었다.
사람을 혐오하는 작가가 쓴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모든 단어와 문장들이 이렇게까지 더럽게 끈적거릴 수가 없었다. 박민환은 제 정신까지 오염되는 기분에 책을 멀찍이 떨어트려두고 벌러덩 뒤로 누웠다. 그리고 시선만 돌려 소라한을 힐끔 훔쳐보았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작을 제외하곤 몸이 마비라도 됐는지 한 치의 움직임도 없었다.
박민환은 이 틈에 소라한은 천천히 관찰했다. 외적으로 봤을 땐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외모는 정상을 넘어서 잘생겼다. 눈썹을 덮은 단정한 머리 때문인지, 크고 살짝 내려간 눈꼬리 때문인지, 믿음직한 인상도 주었다. 길지 않게 잘 정돈된 손톱과 어디 하나 튀지 않고 바른 손가락 마디와 굳은살 하나 없는 손 또한 도련님같은 인상을 주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저렇게 책만 보면 거북목이 될 수도 있는데 곧게 뻗은 목 또한 사슴을 연상시키는…
“변태.”
하지만 이내 소라한이 두 손을 교차해 몸을 가리며 박민환을 흘겨보았다. 박민환은 벌떡 일어나며 당황한 듯 두 손을 휘휘 저었다. 그냥 쳐다본 것 뿐인데, 아니 좀 변태 같았나 싶기도 하고. 박민환은 제 시선이 어땠는지 생각해 보다가 머리를 박박 긁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미안해요.”
“뭐야, 진짜야?”소라한이 슬쩍 떨어지며 제 몸을 더욱 감쌌다. 장난이었다는 걸 깨달은 박민환은 변태처럼 쳐다봤다는 걸 인정한 꼴이 되어버린 자신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뻐끔거리기만 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런 의미는 아닌데.”
“박민환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위험한 사람이었네.” “진짜 아닌데…” “말 걸지 마세요.”반말을 찍찍 내뱉던 소라한이 선 긋는 투로 책을 펼치자 박민환은 뭐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 하며 말을 걸려다 포기하고 다시 몸을 눕혔다. 그야말로 변태와 싸이코패스의 만담이 따로 없었다.
안녕하세요.작가 결설입니다.요즘 연재 주기가 예전같지 않죠.현생에 이리저리 치여서 그렇습니다.조만간 다 정리될 것 같네요.18일에 돌아오겠습니다.감사합니다.
안내에 따라 도착한 강당에서 미묘했던 공기가 더욱 어색해졌다. 귀걸이 색상에 따라 줄을 서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정우주가 저도 모르게 소라한의 옷자락을 잡았다가 소라한의 시선에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그 때문에 오히려 정우주에게 시선이 몰렸다. 그리고 모두 알고 있었다. 정우주의 귀걸이 색상이 붉은색이라는 것을. 정우주를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의 색상은 검은색이었다.“정우주.”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쪼글쪼글해진 옷자락을 본 소라한이 씩 웃으며 정우주를 불렀다.“아닌데요. 그런 거 아닌데요.” “새끼, 이거 쫄았네.” “아니라니까요.” “혼자 떨어질 생각에 막 외롭고 그랬어?”귀끝이 새빨개진 정우주가 소라한의 옷을 탁탁 털며 펴놓았다.“그냥 이상한 벌레가 앉아 있어서 잡아 준 건데요?”소라한이 제 옷자락 팍팍 터느라 고개를 숙인 정우주의 목에 팔을 걸어 헤드록을 걸으며 머리를 마구잡이로 쓰다듬었다. 그 사이에 이승준이 몰래 뒤로 가 정우주의 등을 북처럼 두드린 후 모른 척 다시 앞으로 가 섰다.“아악! 잠, 잠깐!” “으응? 왜?” “누가 때린 것 같…” “외로움 타는 니가 불쌍해서 같이 따라갈 귀신이 등에 착 붙었나?” “…”정우주는 그냥 입을 다물기를 택했다.“다녀와.”정우주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떼었다.“대답도 없이 가네 싸가지 없는 놈.” “그거 너한테 배운 거야.”정광연의 화해하자는 뜻을 담은 농담에 소라한이 알았다는 뜻을 담아 중지 손가락을 펴 보여 주었다.이 행위를 보던 김나현은 모든 행위를 한마디로 일축했다.“존나 꼴값. 정우주가 어디 죽으러 가냐?”강당에 점점 사람이 많아지고 소라한이 지루하다며 자리에 눕기 직전까지 가려는 걸 막으려던 찰나 드디어 단상 위로 누군가 올라왔다.“줄대로 이동하겠습니다. 한 색상의 주니어가 다 빠져나가면 그 다음 색상의 주니어가, 그리고 그 색상의 주니어가 다 빠져나가면 다음 색상이. 아시겠습니까. 잘 따라주시길 바랍니다.”문에서 가까운 붉은색의 주니어가
“검사가 끝난 주니어들은 제 2 강당으로 이동해 주세요.”그때 검사를 마치고 나온 주니어들 사이를 직원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외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일행은 벽에 부착되어 있는 ‘2 강당 가는 길’ 화살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근데 이거 무슨 검사야?”이상한 설정만 듣느라 아무것도 듣지 못한 소라한이 물었다. 하지만 다들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몰랐기 때문이다.“저도 잘… 그냥 이름 물어보고, 기계에 한참 있다가 내려 왔어요.”정우주의 말에 이승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았다는 뜻이었다. 소라한은 겨우 기계 따위로 뭘 할 수 있는지 고민하다 문득 너무 익숙해져 생각도 하지 않았던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귀걸이는 뭐지?” “네?” “귀걸이. 색깔도 다르고, 이거 의미가 뭐야?”소라한의 말에 각자 뒤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다들 너무 익숙해져서 생각을 못 하고 있었지, 색상만 다른 같은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소라한의 일행 뿐만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주니어들은 다 착용하고 있었다.“니가 그랬지. 이거 위치추적기가 있다고.”소라한이 정광연을 보며 귀걸이를 툭툭 건드렸다.“음? 내가 그랬나?”정광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소라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걸음을 멈추고 정광연을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너 뭔가 알고 있지? 똑바로 얘기해.” “뭔 소리야? 나도 너랑 같은 주니어인데 내가 뭘 알아?”갑작스러운 둘의 대치에 당황한 세 사람도 걸음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보았다.“위치추적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그거 나도 처음 듣는 소리야!” “아닐걸.” “환장하겠네.” “그러고보니, 너 능력이 순간이동이라 그랬나?” “…그런데 왜?” “여기에서 운동장으로 이동해봐.” “야, 소라한 잠깐만. 너 왜 그러는데. 우리도 이유나 좀 알자.”김나현이 소라한과 정광연 사이에 끼어들었다. 누가 봐도 소라한이 먼저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라 소라한을 먼저 추궁할 수밖에 없었다.“‘그거 그냥 두는 게
그렇게 다른 직원이 도착한 후 둘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바꿨다. 원래 있던 직원인 척 자리를 잡고 다시 이름을 물었다.“이름이?”“…”“소라한? 알겠습니다.”소라한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지만 혼자 알아서 척척 작성해 넣는 직원을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보았다.“어느 방에서 눈을 뜨셨죠?”“…”“책 미로. 그렇군요.”이제는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보자는 심보로 소라한이 입을 다물었다. 그때부터 저도 모르는 정보들이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부모님은 두 분 다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친척의 손에서 자라셨군요. 예, 주소지는 대전.”소라한은 직원이 중간중간 말하는 것이 제 뒷조사를 해 나온 정보를 읊어 주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말하면 안 됩니다. 가만히 서서 정면을 바라보세요, 기계가 작동합니다.”소라한은 멍한 기분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정보가 사실인지에 대한 여부부터 묻고 싶었다.“참고로 지금 대전은 몬스터의 습격으로 갈 수 없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죠.”직원의 말에 소라한은 눈동자만 굴려 직원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부모도 없고 고향도 사라졌다는 걸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싶었다.“제가 지금까지 했던 말들 다 외우셨나요.”“…”“아… 외웠으면 눈 한번 깜빡.”소라한이 직원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눈을 한번 길게 감았다 떴다.“좋아요. 이제 그게 소라한 씨의 살아온 과거입니다.”직원이 말한 정보는 소라한의 뒷조사를 해 나온 진짜 과거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누가 지은 건지 기구하기 짝이 없는 과거사였다. 누군가 물어본다면 앗, 미안, 하고 분위기가 한순간에 싸해질 법한 내용이었다.마침 기계가 모든 스캔을 마치고 종료음이 났다.“혹시 뒷조사 해서 알아낸 거야?”“아뇨.”“설정? 누가 지어낸 거야?”“…”꼬박꼬박 대답을 잘 해 주던 직원이 입을 닫았다. 소라한은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소행인지를 깨달았다. 유현준 그 자식임이 분명하다.“왜, 아주 날 키워 준 친척이 본인이었다고 하지?”“그런 설정이 들어가 있었으나 직전
한참을 달려 도착한 도시는 그들의 기억과 많이 달랐다. 말 그대로 정말 달랐다.“저게 뭐냐?”높게 솟은 탑 때문이었다. 모두 하늘 높게 솟아오른 탑을 구경하려고 창문에 바짝 붙어 쳐다보았다.“피사의 사탑 뭐 그런 건가?” “너는… 됐다.”정광연의 말에 김나현이 대답해 주려 하다가 한숨을 내뱉곤 말을 말았다. 그저 정광연을 안쓰럽다는 눈으로만 바라볼 뿐이었다.“뭐지? 이 더러운 기분은?” “열심히 구경이나 계속 해.”정광연이 무언가를 느끼고 두리번거리자 소라한이 고개를 돌려놨다. 그리고 소라한도 정광연의 뒤통수를 안쓰럽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더러운 기분의 정체였다.버스가 차례대로 학교 운동장에 들어섰다. 주니어들은 딱히 짐이라고 할 것도 없어서 빈손으로 내려 강당으로 이동했다. 책을 들고 온 소라한이 오히려 특이한 경우였다.“근데 그 책들 조현진 연구원 거 아니야?” “줬으면 이제 내 거지.”소라한이 누가 빼앗기라도 할까 책을 꼭 안았다. 어이가 없어진 정광연이 가장 앞에 있는 책 제목을 보았다.‘호두와 뇌, 그리고 브로콜리’“…”아마도 조현진 연구원은 소라한에게 저 책을 버린 것임이 분명하다. 정광연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리고 소라한을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았다.“잠깐, 나 방금 기분이 되게 더러웠어.” “착각이야. 계속 이동하자.”그리고 모든 것을 지켜보던 정우주와 이승준은 계속 눈빛을 교환해가며 서로를 다독였다. 사고뭉치 삼인방을 앞으로 커버할 저들에게 날리는 위로였다.강당에 들어서자 마치 몸수색을 하는 것처럼 생긴 커다란 기계가 일정한 간격으로 펼쳐져 있었다.“비어 있는 곳으로 가서 안내 받은 후 검사 받으면 됩니다.”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이 영혼 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소라한이 몸을 돌려 제 주변에 선 이들을 바라보았다.“검사 받고, 이따 봐.”내심 불안했던 그들의 마음이 소라한의 한마디에 가라앉았다. 센터 내에서 계속 붙어다녀서 그런지 넓은 도시로 나와 흩어질 생각에 계속 한구석이 불편했던 그들이었다.“이
하룻밤 사이에 전세계 모든 도심 한가운데 커다란 탑이 나타났다.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았다. 모든 카메라에는 오류가 떠 있었다. 목격자들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슬슬 시스템과 몬스터에 익숙해진 사회에 다시 새로운 혼란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모든 헌터들은 알았다. 저 탑을 올라야 한다는 것을. 당신은 -층을 올랐습니다. 어느새 시스템 창을 열면 가장 위에 뜨는 문구였다. 헌터들은 먼저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줄 제물을 기다리며 눈치를 볼 뿐이었다. - “이거 참 다음엔 뭐가 나올지 흥미진진하네.” 유현준이 통창 앞에 서서 밖에 비치는 높은 탑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에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노인이 담배 연기를 훅 뱉으며 말했다. “내가 죽기 전까지는 종말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 전에 암으로 먼저 가실 것 같은데.” 유현준이 담배를 지적하자 노인이 끌끌 웃으며 담배를 길게 빨아 마신 후 유현준이 대접한 커피잔에 꽁초를 퐁당 빠트렸다. 그에 유현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노인네 고약한 심보 하고는.” “시비는 니가 먼저 걸었어.” 한숨을 푹 쉰 유현준이 비서를 불러 꼴보기 싫은 커피잔을 치우게 한 후 노인의 맞은편에 앉았다. 노인이 다리를 척 꼬며 물었다. “탑에 들어가냐?” “뭐, 그렇게 됐어요.” “네놈이 제일 원하던 일 같은데 뭐가 문제야.” “데리고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한 명 있는데…” “누군데.” “주니어요.” “뭐?” “주니어.” “이름이 주니어냐?” “아뇨.” “별명이냐?” “아뇨.” “드디어 니가 미쳤구나.” 노인이 담배를 하나 더 빼어물었다. 눈 앞에 미친놈을 상대하려면 니코틴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인은 그나마 희망을 가지고 마지막 질문을 날렸다. “몇 학년이냐?” “아직 입학도 안 했는데요? 센터에 있어요.” 노인은 담배에 불을 붙인 후 테이블 위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네.’ “술 가져와.” ‘네?’ “종류는 뭐든
먹이사슬 가장 위에 있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당신이 지금 떠올린 모든 것들은,다 틀렸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눈 앞에 벌어지며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정확하게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개체인가를 깨달았다.-참사가 일어난 후 피로 쓰인 규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최우선시 되는 일이다. 비인도적인 조항에 반대하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게 지금의 세상인데 남의 목숨까지 챙기며 살아가기엔 삭막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까지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시위 단체가 있는데
소라한은 먼지처럼 사라진 박민환의 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책을 주워들었다. 흥건하던 핏자국은 사라졌지만 찌그러진 책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표정하게 책을 원래 자리에 꽂아넣은 소라한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를 옮길 준비를 했다. 기껏해야 사다리와 읽던 책 챙기기가 끝이었지만 사람이 죽은 장소에서 태연하게 책을 읽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죽은 장소?”사다리를 들고 몇 발자국을 내딛은 소라한이 멈칫했다. 죽음이 아니다. 그는 자유로이 해방된 것이었다. 소라한은 박민환이 죽었던 장소를 뒤돌아보았다.“축하해.”-칼이 여기저기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아니, 잠깐 졸다 깼을 때 여전히 같은 자세로 책을 펼치고 있는 소라한의 모습을 본 박민환만의 감정이었다. 박민환은 흘끔 소라한을 흘끔 쳐다보다 이내 옆에 내팽겨친 책을 집어들었다.-도착하셨나요?네, 주변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부르심이 여기까지 들립니다. 뚫고 들어가보겠습니다.정말 부러워요. 저도 그분을 영접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들어왔습니다. 저 멀리 그분의 성체가 보입니다.아아, 어서 저희에게 축복을 내려 주셨으면 좋겠어요.저희의 신은 어떤 분이신가요?분명 자애로운 분이시겠죠
어두운 방 안 커다란 모니터 여러 대만이 방을 밝게 비추었다. 그 속에서 키보드 소리와 달칵이는 마우스 소리, 땅이 꺼질 듯한 한숨 소리가 울렸다. “아아악, 이 미친 새끼!”짧은 단발머리를 손으로 움켜쥐며 소리 지른 그는 옆에 둔 고함량 카페인이 포함되어 있는 음료수를 마구 들이켰다. 이 공간에서는 무엇을 하든 배가 고프지 않고, 목이 마르지도 않으며, 자지 않아도 피로를 느끼지 않지만 정신건강을 위하여 카페인을 섭취했다. 그의 옆에는 다 먹고 구겨놓은 캔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방 안에 깔린 수많은 모니터 중 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