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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Author: 결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18 12:08:35

어두운 방 안 커다란 모니터 여러 대만이 방을 밝게 비추었다. 그 속에서 키보드 소리와 달칵이는 마우스 소리, 땅이 꺼질 듯한 한숨 소리가 울렸다. 

“아아악, 이 미친 새끼!”

짧은 단발머리를 손으로 움켜쥐며 소리 지른 그는 옆에 둔 고함량 카페인이 포함되어 있는 음료수를 마구 들이켰다. 

이 공간에서는 무엇을 하든 배가 고프지 않고, 목이 마르지도 않으며, 자지 않아도 피로를 느끼지 않지만 정신건강을 위하여 카페인을 섭취했다. 

그의 옆에는 다 먹고 구겨놓은 캔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방 안에 깔린 수많은 모니터 중 메인 모니터에는 소라한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작게 ‘시말서’라는 제목의 창이 떠 있었다.

그는 시말서와 소라한을 죽일 듯 노려보다가 키보드 위를 쾅쾅 쳤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시말서 하나로 넘어갔지만 소라한이 다시 기행을 벌여 아이템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었다. 

그는 이를 악 물며 파손돼 먼지처럼 키보드 대신 익숙하게 새로운 키보드를 허공에서 꺼내었다.

아주 가끔, 아주아주 가끔 저런 미친 새끼가 나온다고 전설처럼 선배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말이 있었지만 그게 왜 하필 저란 말인가. 부글부글 끓는 화를 키보드 하나로 가라앉힌 그는 태연하게 책을 읽고 있는 소라한의 화면을 멀리 치워버린 그는 다른 화면을 끌어왔다.

화면엔 끊임 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쓰러졌다 부활하며 반복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패턴을 바꾸며 쏟아지는 칼의 비, 뿜어지는 불길, 굴러오는 사람만한 돌 등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느낌표가 떠 있었다. 그는 그 중 한 사람의 머리 위에 느낌표를 눌렀다.

권지운

방어 : 83회

사망 : 283회

149일 되었습니다.

좀 아쉬웠다. 61일만에 83번의 방어에 성공한 것은 칭찬해 줄만 하나 사망 횟수가 너무 많아 등급이 떨어질 것이다. 이런 사람은 그냥 냅두면 100번을 채워 나가게 된다. 그는 다시 다른 사람들의 느낌표를 눌러 뛰어난 사람들 위로 별표시를 남겼다. 별표를 남기면 후에 알아서 선배들이 심사 후 분류할 것이다. 그의 임무는 겨우 첫 번째 관문에서 사람을 고르는 일이었다.

-

소라한은 사다리를 통해 손에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이 있는 책을 읽어나갔다. 예상과는 다르게 위쪽에 놓인 책들은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정보의 중요도와 정확도가 올라간 느낌이랄까, 손이 충분히 닿을 위치에 놓인 책들은 인터넷에서 긁어모은 듯한 느낌이 강했는데 위쪽으로 갈수록 공공기관에서 취급하는 문서들도 흔히 보였다. 

종종 숨어 있던 퀴즈 또한 난이도가 확실하게 올라갔다. 책에 그려진 5X5 큐브의 도면을 보고 완성하려면 최소한 몇 번의 움직임이 필요한가, 같은 질문이었다. 세계 7대 수학 난제도 있었는데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시간만 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곧 어렵게 얻어낸 사다리를 통해 위쪽에 있는 책들에 대한 흥미는 점점 떨어져갔다. 국가 기밀 문서라든가 점점 풀기 어려운 문제에 관해서만 잔뜩 나오니 처음엔 흥미롭게 보다가도 질려갔다. 

소라한은 결국 포기하고 아래에 있는 책들에 다시 손을 댔다. 읽을 것이 필요했던 거지 문제만 주야장천 풀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 소라한은 사다리를 책장에 대각선으로 걸쳐놓고 위에 걸터앉아 책을 폈다. 

“사람이다!”

이내 바로 닫아야 했지만.

조마조마한 걸음걸이로 소라한에게 다가온 사람은 바가지를 쓰고 자른 것 같은 머리에 한참을 울었는지 퉁퉁 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저 좀 여기서 나가게 해 주세요! 아무리 돌아다녀도 출구가 없어요!”

“개같네.”

“네?”

“이게 아닌가? 강아지 같다고 너.”

“그런 소리 많이 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출구가 어딘지 아세요?”

“아마도?”

소라한은 제 대답에 펄쩍 뛰며 알려달라는 듯 사다리를 잡고 흔드는 행위에 시골 강아지를 떠올렸다. 덩치만 봤을 땐 강아지 보단 개에 가까웠지만. 

소라한은 언젠가 읽었던 책 내용대로 손바닥을 내밀며 씁, 안 돼,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위험하게 흔들어대는 행위를 멈추고 소라한을 울먹이는 눈으로 올려다보는 얼굴 위로 장화를 신고 있다는 고양이의 얼굴이 투명도 30%로 겹쳐 보였다. 

개가 아니라 고양이었나?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낸 소라한은 이내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여기 책들은 얼마나 읽어봤어?”

“어… 저는 책 싫어해서 처음 왔을 때 조금 보고 안 봤어요.”

소라한이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귀를 탈탈 털어냈다.

“책을 얼마나 읽었다고?”

“한, 한 권?”

“얼마나 읽었다고?”

“두… 권인가?”

이 곳이 어딘 지 정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나가려면 문제를 풀고 포인트를 쌓아 출구와 교환을 해야 됐다. 소라한은 이런 멍청한 놈이 이 곳에 있어도 되는 건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책 조차 펼쳐보지도 않는 놈인데, 이 곳에 온 지 얼마가 됐든 평생을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온 지 얼마나 됐는데?”

“몰라요. 낮밤이 없잖아요. 아마도 엄청 오래?”

보기보다 그렇게 멍청한 놈이 아닐 수도 있겠다. 깨달음 조차 없었거나, 깨닫자마자 자살해버리는 사람들 중에선 선빵 친 거다. 

소라한은 고민했다. 

책을 읽어보라고 해 줘도 문제를 풀 머리가 될까, 라는 궁극적인 문제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데리고 다니기에는 산만한 덩치와 행동이 책을 읽는 데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묘안이 떠올랐다. 소라한은 당장 상대방의 어깨를 꽉 잡았다.

“나가고 싶지?”

“네!”

“그럼 내가 죽여 줄게.”

“네?”

여태 만났던 사람들이 죽어 먼지가 되어 사라진 게, 정말 죽는 게 아니었다면 현실로 나간게 아닐까? 결론은, 일단 죽이고 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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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X만 했는데 인류의 희망이 되었다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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