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어두운 방 안 커다란 모니터 여러 대만이 방을 밝게 비추었다. 그 속에서 키보드 소리와 달칵이는 마우스 소리, 땅이 꺼질 듯한 한숨 소리가 울렸다.
“아아악, 이 미친 새끼!”
짧은 단발머리를 손으로 움켜쥐며 소리 지른 그는 옆에 둔 고함량 카페인이 포함되어 있는 음료수를 마구 들이켰다.
이 공간에서는 무엇을 하든 배가 고프지 않고, 목이 마르지도 않으며, 자지 않아도 피로를 느끼지 않지만 정신건강을 위하여 카페인을 섭취했다.
그의 옆에는 다 먹고 구겨놓은 캔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방 안에 깔린 수많은 모니터 중 메인 모니터에는 소라한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작게 ‘시말서’라는 제목의 창이 떠 있었다.
그는 시말서와 소라한을 죽일 듯 노려보다가 키보드 위를 쾅쾅 쳤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시말서 하나로 넘어갔지만 소라한이 다시 기행을 벌여 아이템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었다.
그는 이를 악 물며 파손돼 먼지처럼 키보드 대신 익숙하게 새로운 키보드를 허공에서 꺼내었다.
아주 가끔, 아주아주 가끔 저런 미친 새끼가 나온다고 전설처럼 선배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말이 있었지만 그게 왜 하필 저란 말인가. 부글부글 끓는 화를 키보드 하나로 가라앉힌 그는 태연하게 책을 읽고 있는 소라한의 화면을 멀리 치워버린 그는 다른 화면을 끌어왔다.
화면엔 끊임 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쓰러졌다 부활하며 반복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패턴을 바꾸며 쏟아지는 칼의 비, 뿜어지는 불길, 굴러오는 사람만한 돌 등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느낌표가 떠 있었다. 그는 그 중 한 사람의 머리 위에 느낌표를 눌렀다.
권지운
방어 : 83회사망 : 283회149일 되었습니다.좀 아쉬웠다. 61일만에 83번의 방어에 성공한 것은 칭찬해 줄만 하나 사망 횟수가 너무 많아 등급이 떨어질 것이다. 이런 사람은 그냥 냅두면 100번을 채워 나가게 된다. 그는 다시 다른 사람들의 느낌표를 눌러 뛰어난 사람들 위로 별표시를 남겼다. 별표를 남기면 후에 알아서 선배들이 심사 후 분류할 것이다. 그의 임무는 겨우 첫 번째 관문에서 사람을 고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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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한은 사다리를 통해 손에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이 있는 책을 읽어나갔다. 예상과는 다르게 위쪽에 놓인 책들은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정보의 중요도와 정확도가 올라간 느낌이랄까, 손이 충분히 닿을 위치에 놓인 책들은 인터넷에서 긁어모은 듯한 느낌이 강했는데 위쪽으로 갈수록 공공기관에서 취급하는 문서들도 흔히 보였다.
종종 숨어 있던 퀴즈 또한 난이도가 확실하게 올라갔다. 책에 그려진 5X5 큐브의 도면을 보고 완성하려면 최소한 몇 번의 움직임이 필요한가, 같은 질문이었다. 세계 7대 수학 난제도 있었는데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시간만 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곧 어렵게 얻어낸 사다리를 통해 위쪽에 있는 책들에 대한 흥미는 점점 떨어져갔다. 국가 기밀 문서라든가 점점 풀기 어려운 문제에 관해서만 잔뜩 나오니 처음엔 흥미롭게 보다가도 질려갔다.
소라한은 결국 포기하고 아래에 있는 책들에 다시 손을 댔다. 읽을 것이 필요했던 거지 문제만 주야장천 풀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 소라한은 사다리를 책장에 대각선으로 걸쳐놓고 위에 걸터앉아 책을 폈다.
“사람이다!”
이내 바로 닫아야 했지만.
조마조마한 걸음걸이로 소라한에게 다가온 사람은 바가지를 쓰고 자른 것 같은 머리에 한참을 울었는지 퉁퉁 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저 좀 여기서 나가게 해 주세요! 아무리 돌아다녀도 출구가 없어요!”
“개같네.” “네?” “이게 아닌가? 강아지 같다고 너.” “그런 소리 많이 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출구가 어딘지 아세요?” “아마도?”소라한은 제 대답에 펄쩍 뛰며 알려달라는 듯 사다리를 잡고 흔드는 행위에 시골 강아지를 떠올렸다. 덩치만 봤을 땐 강아지 보단 개에 가까웠지만.
소라한은 언젠가 읽었던 책 내용대로 손바닥을 내밀며 씁, 안 돼,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위험하게 흔들어대는 행위를 멈추고 소라한을 울먹이는 눈으로 올려다보는 얼굴 위로 장화를 신고 있다는 고양이의 얼굴이 투명도 30%로 겹쳐 보였다.
개가 아니라 고양이었나?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낸 소라한은 이내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여기 책들은 얼마나 읽어봤어?”
“어… 저는 책 싫어해서 처음 왔을 때 조금 보고 안 봤어요.”소라한이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귀를 탈탈 털어냈다.
“책을 얼마나 읽었다고?”
“한, 한 권?” “얼마나 읽었다고?” “두… 권인가?”이 곳이 어딘 지 정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나가려면 문제를 풀고 포인트를 쌓아 출구와 교환을 해야 됐다. 소라한은 이런 멍청한 놈이 이 곳에 있어도 되는 건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책 조차 펼쳐보지도 않는 놈인데, 이 곳에 온 지 얼마가 됐든 평생을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온 지 얼마나 됐는데?”
“몰라요. 낮밤이 없잖아요. 아마도 엄청 오래?”보기보다 그렇게 멍청한 놈이 아닐 수도 있겠다. 깨달음 조차 없었거나, 깨닫자마자 자살해버리는 사람들 중에선 선빵 친 거다.
소라한은 고민했다.
책을 읽어보라고 해 줘도 문제를 풀 머리가 될까, 라는 궁극적인 문제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데리고 다니기에는 산만한 덩치와 행동이 책을 읽는 데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묘안이 떠올랐다. 소라한은 당장 상대방의 어깨를 꽉 잡았다.
“나가고 싶지?”
“네!” “그럼 내가 죽여 줄게.” “네?”여태 만났던 사람들이 죽어 먼지가 되어 사라진 게, 정말 죽는 게 아니었다면 현실로 나간게 아닐까? 결론은, 일단 죽이고 보자였다.
센터의 전기가 다 나갔는지 계단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라 가는 길이 꽤 멀었다. 중간에 건물이 한 번 더 크게 흔들리는 일이 발생했지만 누구 하나 크게 다치는 불상사가 벌어지는 일이 없어 다행이었다.소라한은 이 곳까지 이동하면서도 계속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는 둘째 치더라도, 사람 몸에서 불꽃이, 번개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강우주에게서 들은 내용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이니 그러려니 했다. 소라한 스스로 겪은 일들도 가상에 공간이지 않았는가.하지만 현실에서도 능력을 쓸 수 있는 거라면?강우주는 현실에서도 온갖 무기로 괴물과 싸울 수 있는 것인가?그렇다면 소라한 본인은 도대체 무슨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어째서 이 곳에 오게 된 것인가?“너 아까…” “어? 뭐라고?” “아니야, 아무것도.”조현진은 정신이 없어보였다. 아마 아까 하려던 말도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것 같았다. 소라한은 어제부터 계속되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책을 많이 읽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머리가 좀 좋은 거? 그건 이 곳에 있는 연구원들도 그럴 것이다. 괜히 연구원이겠나.“조현진.” “아까부터 왜 자꾸 부르고 난리야?” “뜨거운 커피를 빨리 마시기 위해 같은 온도 같은 양의 우유를 넣는 것이 금 조각을 넣는 것보다 효과적인 이유는 뭐 때문이라고 생각해?” “뭔 소리야?” “끝까지 들어봐.” “1번 에너지. 2번 비열. 3번 열량. 4번 일.” “2, 2번 비열?” “멍청이는 아닌데…” “야! 너 뭐라 했냐?”언젠가 책에서 봤던 문제를 낸 소라한이 갑작스럽게 낸 문제에도 정답을 말한 조현진을 의외라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머리가 좋다는 전제는 이렇게 제외되었다.한참을 걸어 드디어 지하 벙커에 도착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행히 지하에는 예비 전력이 돌고 있었는지 불이 들어와 있었다.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빠르게 안으로 들어섰다.“어느 정도 인원이
소라한은 눈을 번쩍 떴다. 피곤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책에서 읽어본 적 있었다. 마치 아침에 지각을 했을 때 느낀다는 그 개운함이었다. 밖에서 참새들이 짹짹 울어대는 것 같았다.“야, 소라한 아직도 자냐? 넌 어떻게 된 게 맨날 늦잠… 이 아니고 일어났네?”문이 벌컥 열리며 아침부터 소란스럽게 조현진이 나타났다. 조현진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아침을 먹으러 가자고 밖을 가리켰다.식당을 가는 길에 있는 샤워실에서 간단하게 세수만 마친 소라한이 축축하게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앞머리를 조현진을 향해 탈탈 터는 장난을 반복하며 걸었다. 조현진은 팔짝 뛰며 소라한을 피해 달아났다. 그들을 지나쳐가는 사람들은 이제 익숙하다는 듯 부딪히지 않게 피해갈 뿐이었다.여느 때와 같은 평화로운 하루의 시작이었다.“긴급 상황 발생. 코드 레드. 코드 레드. 모든 인원은 지하 벙커로 대피하십시오. 다시 한 번 안내 드립니다. 긴급 상황 발생. 코드 레드. 코드 레드. 모든 인원은 지하 벙커로 대피하십시오.”그런 줄 알았다.밝은 햇살이 들어오던 창문에 방범창이 서서히 내려앉으며 빛을 가렸다. 사람들이 일제히 한 곳을 향해 다급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소라한과 조현진은 복도 한 가운데에서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조현진은 이 곳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원이라 상황을 몰랐고, 소라한은 그냥 아무것도 몰랐다.“뭐, 뭐야? 뭔데? 지금 무슨 일인데!”다들 대피하느라 바빠 조현진의 물음에 대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일단 우리도 가야 되는 거 아니야?” “어? 어. 그러자.”소라한의 말에 조현진이 몸을 돌려 사람들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근데 넌 왜 아무것도 몰라?” “뭐가?” “코드 레드가 뭔데?” “...”교육 때 차마 졸았다고 죽어도 말하지 못 할 조현진은 그냥 소라한을 무시하기로 했다. 소라한은 조현진이 저를 무시한 줄 모르고 몇 번을 물어보다 포기했다.그때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사람들이 넘어지며 여기저기서
눈을 뜬 이후로 교육실이란 곳에 처음 들어온 소라한은 휙휙 소리가 날 것처럼 고개를 돌리며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책상과 의자밖에 없는 삭막한 곳에서 뭘 그리 구경하겠다고 눈까지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건지 강우주는 소라한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소라한의 방에 다녀오면서 소라한이 이곳에 지내며 거의 갇혀 지냈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강우주는 산책 나온 개처럼 휘젓고 다니는 소라한을 풀어놓고 익숙하게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구경을 마친 소라한이 강우주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조현지가 자리에 앉은 소라한까지 확인한 후 둘에게 태블릿처럼 생긴 기기를 나누어 주었다.“소라한 씨는 처음이니 사용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조현지가 소라한의 앞에 서서 기기를 들어보였다.“옆에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켜집니다. 이걸 누르면 카메라가 켜지는데 여기에 맞춰 책의 페이지를 찍으면 됩니다.”혼자 설명을 마친 조현지는 그대로 쌩 뒤돌아 맞은편 자리로 가 앉았다.“파트너와의 호흡 3쪽을 펼쳐 페이지를 찍으십시오.”소라한과 강우주가 조현지의 지시를 따랐다.“오…”기기의 화면에 영상으로 나오는 줄 알았는데 화면 위 360도 입체적인 화면으로 송출되었다. 엄청난 신문물에 놀란 소라한이 감탄사를 내뱉었다.재생되고 있는 화면에는 폐허가 있었다. 그 곳에 두 명이 서로의 몸을 지지대삼아 넘어가기도 하고 등을 맞대고 뒤를 맡기기도 하며 격정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허공에 대고.일부러 지운 건가? 소라한이 생각했다. 주먹에 무언가 맞은 것 같은 타격감이 드는데 반대편엔 아무것도 없었다. 소라한은 힐끔 강우주를 쳐다봤다가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우주는 익숙해보였다.“근접전은 본인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어입니다.”조현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상이 멈췄다. “특히 혼자가 아닌 둘이 있을 때,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가 있을 때 효과는 배가 되죠.” “질문!” “네, 소라한 씨.” “누구랑 싸우는데?” “적입니다.” “적이 누군데?” “
강우주는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조현지의 조언을 떠올리며 꾹 참아냈다. 처음 또라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였다. 긴 세월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은 종종 있는 일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점수를 많이 얻었던 것도 천재들이 나타나면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했다고 했다.하지만 사다리를 요구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책 미로라는 곳에서는 인터넷에 제공되어 있는 수많은 문서들이 저장되어 있는데, 위로 갈수록 중요도가 올라간다고 했다. 당연히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기에 안일하게 배치한 결과 소라한이 얻어낸 사다리로 국가 기밀들을 보게 되었다는데, 소라한은 이를 되게 흥미 없게 여겼다고 한다.이때부터 조현진은 소라한을 부를 때마다 또라이라는 수식어를 꼭 붙이고 다녔으며 이제는 그게 이름처럼 붙어버리게 된 것이다.그리고 강우주는 조현진의 마음을 이해했다. 잠깐의 대화로 깨달은 것이다.“젓가락질은 저와 교육 파트너가 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래, 하자.” “…” “이제 알려 줄래?” “…잡고 있는 건 정석으로 잘 잡고 있어요.”조현진은 앞의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왜인지 소라한과 다른 과의 또라이가 하나 더 나타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하긴, 이런 이런 곳에서 빠르게 통과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이 없긴 했다.-“말 잘 듣고,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어디 또 도망가지 말고. 어? 내 말 듣고 있어?” “응, 빨리 가. 잘 가. 안녕.” “얘 감시 좀 잘 해 줘. 틈만 나면 도망가는 게 특기니까.” “그래.”조현진은 이제 강우주의 교육파트가 된 소라한을 조현지에게 맡기며 관리실로 돌아가려 했다. 방과 밥만 있던 루트에 교육이라는 새로운 것이 들어와 들뜬 소라한의 귀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게 조현진의 눈에도 보여 불안했다.조현진은 몇 번이고 조현지에게 부탁 후 어렵사리 발을 떼었다. 소라한이 붕붕 뛰며 조현진에게 팔을 크게 휘두르며 인사했다. 퍽 어린애같은 행동이었다.“이제 뭐 할까
소라한은 조현진에게 끌려 식당에 도착했다. 이 곳에 온 뒤로 정말 재미 없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나눠 받은 책을 보기는 커녕 밥 방 밥 방 도망치기 잡히기 밥 방 밥 방이 다였다. 소라한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조현진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렸다.사람이 몰려 있는 자리로 가다 또 잡힌 소라한은 다시 조현진을 따라 구석에 사람이 없는 텅 빈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나름 익숙해진 젓가락질로 멸치 반찬을 집을 때였다.“안녕하세요.”소라한의 옆자리에 누군가 다가와 앉았다.“엥?”소라한은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멍청한 소리를 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들 소라한을 피하기 바빴는데 스스로 다가온 사람은 처음이었다.“소라한 씨 맞으시죠?” “아는데 왜 말을 걸었지?” “강우주입니다.”소라한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강우주는 자기소개를 마쳤다.“다름이 아니라 교육 파트너를 찾고 있는데, 소라한 씨는 교육 파트너를 정하셨나요?” “무슨 파트너?” “교육 파트너요.” “그게 뭔데?”소라한과 강우주의 고개가 동시에 조현진에게 돌아갔다. 조현진은 숟가락을 든 상태로 굳어 있었다. 만화처럼 식은땀이 뿅뿅 솟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둘은 동시에 생각했다.까먹었구나.조현진은 숟가락은 테이블 위에 소리가 나게 탁 올려 놓더니 변명을 시작했다.“아니! 까먹은 게 아니라!” “아무도 뭐라고 안 했는데.” “너, 너는 기억이 없잖아!” “기억이 없어요?” “그… 그… 그래가지고 찾을 때까지 기다려 준 거야!” “말이 안 되는 거 알고 있지?”조현진은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입을 붕어처럼 몇 번 뻐끔거리더니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인정해야 했다. 까먹은 거 맞다. 결국 소라한은 방과 밥밖에 없었던 일상에 교육이라는 일을 하나 쟁취해 낼 수 있었다.“그럼 다시 얘기해 볼까? 교육 파트너가 뭔데?” “기억 없다는 것부터 얘기하고 싶은데요.” “쉽게 안 넘어오네.”소라한은 다시 멸치를 집는 것에 집중했다. 기억에 관해서는 할 얘기가
강우주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도, 괴물의 울음도, 그 무엇 하나 들리지 않았다. 깊게 잠들어 있는 색색거리는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강우주는 깨달았다.탈출했다. 그 지옥에서 빠져나왔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의 감정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주먹을 꽉 쥔 탓에 링거를 따라 피가 역류되어갔다. “힘 푸세요.”그때 강우주의 옆에 누군가 나타나 링거를 조절하며 말을 걸었다.“19시 24분. 강우주 기상.”사무적인 목소리로 종이에 넣어 넣더니 강우주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줄 꼬이지 않게 따라오세요.”강우주는 수많은 질문을 삼키고 발을 내딛었다. 발 밑에는 자로 잰 듯 딱 맞는 슬리퍼가 놓여 있었다. -“이번 기수 얘기 들었어?” “어, 또라이랑 엘리트?” “그리고 담당자들.” “아… 조현진이랑 조현지?” “받침 하나 차이인데 어떻게 성격이 그렇게 다르냐.” “야야, 쉿 조현지 지나간다.”긴 머리를 깔끔하게 한 데로 묶은 조현지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뒤로 강우주가 따라가고 있었다.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를 쥐어뜯는 습관이 있어 여기저기 머리가 뻗어 있는 조현진과는 전혀 다른 행색이었다. 또한 조현지는 조현진과 같이 들어왔지만 능력을 인정 받아 관리실에서 빠르게 나온 타입이었다. 조현진과 조현지가 맡은 소라한과 강우주 또한 그들의 특성과 비슷해 담당자와 잘 만났다 얘기가 돌았다.책을 더 읽고 싶다며 출구가 아닌 사다리와 교환해 시말서를 쓰게 한 소라한의 일화는 너무 유명해져 센터의 지나가는 개미조차 다 알 정도였다. 강우주는 소라한처럼 특이한 건 없었지만 소라한이 이상한 거였지 능력으로 따지자면 엘리트 축에 속하는 건 맞았다.둘이 복도를 지나쳐가자 어색할 정도로 입을 다물고 있던 무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잘생겼네.” “또라이 걔도 잘생기지 않았냐?” “걔는 잘생긴 것보다 좀… 더…” “백설공주?”동시에 무리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야, 그래도 그렇지 사내 새끼한테 백설공주가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아니, 잠깐 졸다 깼을 때 여전히 같은 자세로 책을 펼치고 있는 소라한의 모습을 본 박민환만의 감정이었다. 박민환은 흘끔 소라한을 흘끔 쳐다보다 이내 옆에 내팽겨친 책을 집어들었다.-도착하셨나요?네, 주변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부르심이 여기까지 들립니다. 뚫고 들어가보겠습니다.정말 부러워요. 저도 그분을 영접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들어왔습니다. 저 멀리 그분의 성체가 보입니다.아아, 어서 저희에게 축복을 내려 주셨으면 좋겠어요.저희의 신은 어떤 분이신가요?분명 자애로운 분이시겠죠
결심했다는 듯 서서히 다가오는 소라한을 피해 뒷걸음질 치던 그가 팔로 티자를 만들며 타임을 외쳤다.“나가고 싶다고 했지 죽고 싶다고는 안 했어요!”“나가려면 죽어야 돼. 아마도?”확신 없이 뒤에 작게 붙인 말에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턱 막힌 그는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소라한을 진정 시키려 애썼다.“그냥 여기 있을게요.”“왜? 나가고 싶다며.”“괜찮아요, 안 나가도.”“책 읽기 싫다면서.”“제 꿈이 다독왕인데 모르셨어요?”되도 않는 짧은 만담 타임을 거친 둘은 서로 다른 생각에 잠겼다. 미친 싸이코패스에게서 벗어나
인간은 그것들을 괴물, 외계인, 신 등으로 불렀다. 그 중 ‘신’이라는 지칭에 웃음이 나왔다. 신이라니. 그런 흉측한 괴물 따위를 믿고 숭배한다는 것인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나타나 사람이고 동물이고 할 것 없이 찢어발기고 먹어치우고 보란듯이 전시하는 존재들. 과연 신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신은 우릴 버린 것인가?나타난 그것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으며 울부짖는 사람들의 입이 찢어지고 몸이 세로로 가로로 갈라지고 머리가 분리되고 입안에 굴러다니다 가차없이 내뱉어지는 뼛조각이 수습되지도 못한 채 밟혀 가루가 된다. 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옆에 누워 자고 있는 낯선 인물에 당황했던 수현은 이곳에 들어온 이후 처음 보는 사람에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아빠 안 잔다.”미동도 없이 누워 있던 사람의 말에 몸을 움찔 떤 수현은 여전히 눈을 감고 고르게 숨을 쉬고 있는 사람에 헛것을 들었나 싶었다. 장시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누적된 피로 때문에 환청이 들린 줄 알았다. “아빠 아직 안 잔다고.”다시 들린 소리에 결국 손을 떼고 몸을 멀직이 움직였다. 막다른 곳에 앉아 있던 탓인지 얼마 못 가 등 뒤에 닿는 책장의 감촉이 느껴졌다. 경계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