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못다 핀 사랑을 다시 피우리라 : Chapter 151 - Chapter 160

169 Chapters

151. 형의 마지막 길

북방 마을은 백윤과 함께 온 군사들과의 싸움으로 어지럽혀진 마을을 수습하느라 분주했다.부서진 물건을 치우는 사람들, 다친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마을 한쪽에는 항복한 군사들이 밧줄에 묶인 채 모여 있었다.그리고 그들 사이에 백윤도 있었다.하지만 다른 군사들과 달리 백윤에게는 밧줄이 묶여 있지 않았다.그는 그저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한곳만 바라보고 있었다.조금 전 자신이 내려놓았던 검도 보이지 않았다.수양대군의 명령도,자신을 감시하던 사내도,이제는 곁에 없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백윤의 시선이 천천히 마을 한쪽으로 향했다.그곳에는 흰 천으로 덮인 백현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형님.”그때 백윤의 앞에 누군가 천천히 다가왔다.백윤은 인기척을 느끼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흠…….”머리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리 수양대군의 명만 따르더니…… 결국 자네도 이 꼴이 되었군.”“…….”백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한명회가 뒷짐을 진 채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백윤의 표정이 처연하게 굳었다.“비웃으러 오셨습니까?”“비웃다니.”한명회가 피식 웃었다.“내가 자네를 비웃을 처지가 되겠나?”“…….”한명회는 백윤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나도 별반 다르지 않네.”멀리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그토록 수양대군을 위해 머리를 굴렸건만…… 필요 없어진 순간 밀쳐져 이 신세가 되었으니.”백윤이 한명회를 바라보았다.“그러고 보니…….”한명회가 백윤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자네와 내가 생각보다 닮은 구석이 있군.”“수양대군 밑에 있을 때는 나도 내가 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인 줄 알았네.”“…….”“그런데 아니더군.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내가 가진 재주였어.”한명회가 백윤을 바라보았다.“자네도 마찬가지였겠지. 수양대군에게 필요했던 것은 백윤이라는 사람이 아니라……자네가 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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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왕좌를 바라보는 자

수양대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종서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그는 피 묻은 검을 움켜쥐고 단숨에 수양대군에게 달려들었다.카앙―!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김종서의 검을 자신의 검으로 막아낸 수양대군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오히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김종서를 바라보았다.“제법 빠른 검이십니다.”“…….”“허나 저도 대군이라는 이름만 달고 살아온 것은 아니라서 말입니다.”말을 마친 수양대군이 검에 힘을 실었다.끼기긱―!맞물린 두 검이 서로를 밀어내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김종서의 팔에 힘줄이 불거졌다.수양대군 역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그리고 순간,“흡!”수양대군이 힘껏 검을 밀어냈다.카앙―!김종서의 검이 크게 튕겨 나가며 그의 몸이 두어 걸음 뒤로 밀려났다.수양대군이 미소를 지었다.“김 대감.”“…….”“아무리 뛰어난 칼이라도…… 지치면 무뎌지는 법입니다.”김종서는 거칠어진 숨을 한번 고르고 다시 검을 세웠다.“걱정 마시오.”수양대군을 노려보는 그의 눈빛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그대를 베어낼 힘 정도는 아직 남아 있으니.”동시에 김종서의 검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다.카앙―!수양대군이 검을 세워 막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쳤다.“역시 김 대감이십니다.”“싸움 중에도 말이 많으시군.”김종서가 손목을 비틀었다.맞물려 있던 검이 미끄러지는 순간, 그의 발이 수양대군의 다리를 향해 들어왔다.수양대군이 재빨리 몸을 뒤로 빼며 피했다.그 순간 김종서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카앙―! 챙―!한 번.두 번.세 번.두 사람의 검이 쉴 새 없이 부딪쳤다.주변에서 싸우던 군사들조차 쉽게 끼어들지 못했다.수양대군의 검은 빠르고 거칠었다.힘으로 상대의 검을 밀어낸 뒤 생긴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반대로 김종서의 검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공격을 흘리고,반걸음 물러났다가,상대가 깊이 들어오는 순간 다시 검을 내밀었다.수많은 전장을 거치며 몸에 밴 움직임이었다.카앙―!또다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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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돌아서는 길

백현의 장례가 시작되었다.단종의 명을 받고 급히 찾아온 몇몇 스님들이 백현의 시신 앞에 자리 잡고 앉아 나지막이염불을 외기 시작했다.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마을 안에 잔잔하게 퍼져나갔다.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인 채 백현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았다.그 가운데 백윤도 있었다.그는 이제 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듯 핏기 없는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눈앞에서 스님들이 염불을 외고 있었지만, 정작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멍한 표정이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우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백윤, 괜찮을까요?”단종이 지우를 바라보았다.“걱정되시오?”지우는 희미하게 웃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예. 아니라고는 못하겠네요.”“…….”지우의 시선이 다시 백윤에게 향했다.“저 표정…… 저도 지어본 적이 있거든요.”단종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중전도?”“아버지 상을 치를 때요.”지우가 애써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너무 많이 울고 나면 오히려 눈물도 안 나더라고요.”“…….”“그냥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정말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만 들었어요.”단종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백윤을 바라보던 시선이 어느새 지우에게 향해 있었다.“중전도…… 많이 힘들었겠구려.”지우가 잠시 눈을 깜빡였다.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예. 그때는요.”단종은 더 묻지 않았다.대신 지우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조용히 포갰다.지우도 그 손을 밀어내지 않았다.“전하. 이제 백현 의원의 장례도 거의 끝나가는데…… 백윤과 붙잡아둔 군사들은 어찌하시겠습니까?”금성대군이 조용히 다가와 묻자 단종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의 시선이 천천히 백윤에게 향했다.백윤은 여전히 백현의 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단종이 입을 열었다.“붙잡은 군사들은 당분간 이곳에 가두어두시오.”“예.”“궁을 되찾는 대로 모두 의금부로 압송하여 각자가 저지른 일을 조사하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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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감춰둔 패

-경복궁 궁문 앞-카앙―!두 사람의 검이 허공 한가운데서 거칠게 맞부딪쳤다.이번에는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았다.김종서는 이를 악문 채 검을 밀어붙였고, 수양대군 역시 온몸의 힘을 실어 맞섰다.끼기긱―!맞물린 검날이 서로를 긁었다.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김 대감.”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수양대군의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이 남아 있었다.“후회하지 마십시오.”“무엇을 말이오?”“내가 드린 마지막 기회를 걷어찬 것을 말입니다.”김종서가 피식 웃었다.“그건 기회가 아니오.”“…….”“그대에게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라는 협박이지.”순간 김종서가 검을 비틀었다.챙―!맞물렸던 두 검이 떨어졌다.동시에 김종서가 수양대군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수양대군이 상체를 뒤로 젖혔다.검날이 턱밑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그러나 김종서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한 걸음.다시 한 걸음.카앙―! 챙―!수양대군이 연달아 검을 막아냈다.처음으로 그의 발이 뒤로 밀려났다.“대군!”수양대군의 군사 하나가 다급히 소리쳤다.그러나 수양대군은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끼어들지 마라!”카앙―!김종서의 검을 막아낸 수양대군이 이를 악물었다.“이자는…… 내가 상대한다.”김종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그 말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다시 검이 움직였다.카앙―!이번에는 수양대군이 먼저 공격했다.김종서가 막았다.곧이어 두 번째 검격이 옆구리를 향했다.챙―!또다시 막았다.세 번째.카앙―!김종서의 팔이 크게 흔들렸다.상처 입은 팔에서 다시 피가 흘러내렸다.수양대군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그의 검이 더욱 거세졌다.한 번.두 번.세 번.김종서는 계속 검을 받아냈지만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마침내―카앙―!“큭!”김종서의 손에서 검이 튕겨 나갔다.검이 바닥을 구르며 멀리 떨어졌다.챙그랑―!주변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수양대군의 검끝이 곧장 김종서의 목 앞에 멈췄다.“…….”“…….”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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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왕의 귀환

백현의 장례가 끝나고 묘까지 쓰고 난 뒤, 단종과 지우, 금성대군은 마을에 남아 있던북방 청년들과 훈련대장을 데리고 궁으로 향할 채비를 했다.포로가 된 수양대군의 군사들과 백윤 역시 함께였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금성대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단종에게 다가갔다.“전하. 조금 더 기다렸다가 김종서 대감에게서 궁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는 소식이 온 뒤움직이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단종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아니오, 금성대군.”“전하.”“이제 와 다시 숨어 결과만 기다린다면…… 결국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오.”단종의 시선이 멀리 한양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김 대감과 족장은 지금 내 궁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소.”“…….”“그런데 정작 그 궁의 주인인 내가 안전한 곳에 숨어 있을 수는 없지 않겠소.”금성대군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옆에 있던 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전하의 생각이 맞다고 봐요.”“중전마마까지…….”“지금쯤 김종서 대감과 족장이 수양대군의 군사들과 싸우고 있을 거예요.”지우가 단종을 한번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그런데 저희만 안전한 곳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건…… 아닌 것 같아요.”금성대군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잠시 말이 없던 그가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두 분께서 이럴 때만큼은 참으로 닮으셨습니다.”“예?”“말려도 들으실 생각이 없다는 점 말입니다.”지우가 슬쩍 단종을 바라보았다.단종 역시 지우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입가에 거의 동시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금성대군은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 가시지요.”그러다 금성대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다만 한 가지는 약속해주십시오.”“말씀하시오.”“궁에 도착하더라도 전하께서 직접 싸움 한가운데로 뛰어들어서는 아니 됩니다.”단종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전하?”“그건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소.”“전하.”“금성대군, 이제 출발합시다.”“전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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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왕좌 너머의 것

수양대군은 웃으며 대답하는 단종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검을 쥔 손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그러나 그는 이내 감정을 눌러 삼키듯 짧게 숨을 내쉬었다.“아무래도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무슨 일이 있어도 저는 이 궁을 내드릴 생각이 없으니까요.”단종의 표정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틀렸소, 숙부.”수양대군의 눈빛이 가늘어졌다.“무엇이 말입니까?”“내가 중전과 함께 잠시 궁을 떠났다고 해서…….”단종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피로 얼룩진 궁문과 그 앞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그것이 어찌 숙부의 궁이 된다는 말이오?”“…….”“그리고 이 궁은 나와 중전만의 것도 아니오.”수양대군의 표정이 굳었다.“이곳에서 살아가는 궁인들과, 이 나라를 위해 일하는 신하들. 그들 모두가 살아가는 곳이오.”“……그래서 전하는 안 된다는 겁니다.”수양대군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아 있던 웃음이 사라졌다.스릉―.그의 검끝이 천천히 단종을 향했다.“그런 알량한 마음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단종은 자신을 향한 검끝을 바라보았다.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수양대군이 차갑게 말을 이었다.“궁은 마음으로 지키는 곳이 아닙니다.”“…….”“힘으로 지키는 곳이지요.”“그래서 숙부는 아직도 모르시는 것이오.”“무엇을 말입니까?”“나는 힘이 필요 없다고 한 적이 없소.”수양대군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다만 그 힘을 누구를 위해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했을 뿐이오.”단종의 말에 수양대군이 아무 말 없이 바라보자, 단종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그 힘이 백성과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마땅히 필요하겠지.”“…….”“하지만 사람을 짓밟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힘이라면…….”단종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그런 힘은 있으나 마나 한 것 아니오?”순간 수양대군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갔다.그리고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스릉―.검끝이 단종을 향했다.“전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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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지키라고 남긴 힘

한양 곳곳에는 다시금 수양대군에 관한 벽보가 나붙었다.그러나 이번 벽보를 바라보는 백성들의 반응은 지난번과는 전혀 달랐다.“수양대군이…… 죄인이 되었다고?”“궁을 군사로 장악했다잖나.”“설마. 그 수양대군이?”벽보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 놀란 얼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권세를 쥐고 흔들던 수양대군이었다.그런 그가 왕명을 거스르고 군사를 일으켜 궁을 장악한 죄로 붙잡혀, 이제는 의금부의 처분을 기다리는 죄인의 신분이 되었다는 사실은 백성들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그럼 정말 전하께서 다시 궁으로 돌아오신 게야?”“그렇다더군. 중전마마께서도 함께 돌아오셨다던데.”“허…… 며칠 사이 한양이 뒤집혔다가 다시 뒤집혔구먼.”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벽보로 향했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구 하나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했던 이름.수양대군.그러나 이제 그 이름 앞에는 새로운 두 글자가 따라붙고 있었다.죄인.금성대군은 벽보 앞에 모여 웅성거리는 백성들을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다 의금부로 향했다.마지막으로 자신의 형이었던 수양대군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물론 지금 만나러 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수양대군이 저지른 죄가 사라지는 것도,다시 예전의 형제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그저…….아우로서 남아 있는 마지막 정만큼은 털어내고 가야 할 것 같았다.그렇게 금성대군은 의금부로 발걸음을 옮겼다.-의금부-옥에 가만히 앉아 처분을 기다리고 있던 수양대군은 금성대군의 모습에 담담한 얼굴로입을 열었다.“……네가 올 줄은 몰랐구나.”“저도 제가 올 줄은 몰랐습니다.”수양대군의 말에 금성대군이 나지막이 대답했다.그러고는 품 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 수양대군에게 내밀었다.“사실 선왕께서 형님께 남기신 편지가 따로 있었습니다.”수양대군의 시선이 편지로 향했다.“……형님께?”“예.”금성대군은 편지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이게 그 편지입니다.”수양대군은 뜻밖이라는 듯 편지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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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두 개의 운명

-강녕전 집무실-집무실에는 단종이 굳은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의 앞에는 군사 한 명이 서 있었고, 탁자 위에는 묵직한 돈주머니 하나가 놓여 있었다.얼마 전 수양대군과 관련된 자들을 조사하던 중 발견된 물건이었다.잠시 후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전하, 무당이 당도하였사옵니다.”“들라 하라.”문이 열리고 무당이 안으로 들어왔다.무당은 예전과 다름없는 담담한 얼굴로 단종 앞에 예를 갖추었다.“부르셨사옵니까, 전하.”단종은 대답하지 않았다.잠시 무당을 바라보던 그의 손이 탁자 위 돈주머니로 향했다.“내 하나만 묻겠네.”“하문하시옵소서.”“그때 자네 뒤에…… 수양대군이 있었는가?”무당의 시선이 돈주머니로 향했다.잠시 침묵하던 무당이 고개를 숙였다.“솔직히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사옵니다.”단종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역시 그랬군.”“허나 전하.”“…….”“제가 전하께 말씀드렸던 모든 것이 수양대군의 뜻이었던 것은 아니옵니다.”단종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무슨 뜻이지?”“수양대군께서 제게 시킨 것은 한 가지뿐이었사옵니다.”“…….”“중전마마의 사주가 전하께 이롭지 않다고 고하라는 것이었사옵니다.”“그뿐이었다?”“그러하옵니다.”단종이 잠시 무당을 바라보았다.“이상하군.”“…….”“내가 기억하기로 자네는 그것보다 훨씬 강한 말을 했어.”단종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중전 때문에 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까지 했지 않았는가.”무당의 표정이 처음으로 미세하게 달라졌다.“……그러하옵니다.”“그것도 수양대군이 시킨 말이 아니었다는 것이냐?”“아니옵니다.”“그럼 어째서 그런 말을 했지?”무당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한동안 단종을 바라보던 무당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보였기 때문이옵니다.”“……무엇이?”“처음에는 저 역시 수양대군께서 시킨 말만 전하고 물러날 생각이었사옵니다.”무당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헌데 중전마마를 직접 뵙는 순간…….”“…….”“제 눈에 보이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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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정해지지 않은 미래

“제가 어디서 왔는지 보입니까?”“소인도 모릅니다.”“…….”“마마께서 어디에서 오셨는지, 어찌하여 이곳에 오셨는지도 알지 못합니다.”무당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다만 보이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마마의 혼이…… 이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것.”그말에 지우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더욱 무당옆으로 다가가 입을열었다.“그럼 전하는요?”“…….”“전하가 죽는 것도 봤어요?”중전의 말에 희미하게 웃은 무당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보아하니 전하와 중전마마께서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상대의 안위를 더 걱정하시는 군요”“예?”“아닙니다. 질문에 답하자면 예전에는 보였습니다.”지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예전에는?”“예.”“그게 무슨 뜻이에요?”무당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처음 마마를 보았을 때는 두 갈래가 보였습니다.”“두 갈래요?”“마마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길과…… 모든 것을 바꾸려 하는 길.”“…….”“하지만 이제는 어느 쪽도 보이지 않습니다.”지우의 손끝이 떨렸다.“그럼…… 우리가 역사를 바꿨다는 거예요?”무당은 대답하지 않았다.한참 뒤 조용히 말했다.“이제부터는 정해진 길이 없다는 뜻이겠지요.”“그럼 처음에 왜 제가 전하를 위험하게 만들 거라고 했어요?”무당이 잠시 침묵했다.“마마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보였기 때문입니다.”“…….”“전하께서 칼을 들고, 궁에 피가 흐르고, 수많은 사람의 운명이 뒤바뀌는 것이 보였습니다.”지우의 표정이 굳었다.“그러니까 제가 위험을 가져온 게 맞잖아요.”“아닙니다.”무당이 고개를 저었다.“위험을 가져온 것과, 이미 다가오던 위험에 맞선 것은 다른 일입니다.”“그럼......”중전의 불안한 모습에 무당은 아무 말 없이 지우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중전마마.”“네?”“이제 소인에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묻지 마십시오.”지우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무당은 희미하게 웃었다.“소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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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사라진 문서

-수양대군의 사저-한때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던 수양대군의 사저는 평소와 달리 무거운적막에 잠겨 있었다.굳게 닫혀 있던 대문 앞에는 의금부 군사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뒤로 관리들이 하나둘모습을 드러냈다.“문을 열어라.”명이 떨어지자 군사 두 명이 앞으로 나섰다.끼이익―.묵직한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관리들과 군사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집 안에 남아 있던 하인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구 하나 함부로 드나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곳이었다.그러나 이제 이곳의 주인은 의금부 옥에 갇힌 죄인이 되어 있었다.가장 앞에 서 있던 관리가 품 안에서 교지를 꺼내 펼쳤다.“전하의 명이시다.”웅성거리던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수양대군이 사사로이 군사를 모으고 궁을 장악하는 데 관여한 자들과 그 과정에서 오간 서찰 및 장부를 조사할 것이다.”관리의 시선이 사저 안을 천천히 훑었다.“어떠한 물건도 함부로 옮기거나 감추어서는 아니 된다.”“…….”“하나라도 숨긴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 또한 엄히 문책할 것이다.”하인들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명심하겠습니다.”관리가 군사들을 돌아보았다.“수색을 시작하라.”“예!”군사들이 일제히 흩어졌다.사랑채의 서랍이 열리고,창고의 궤짝들이 하나씩 밖으로 옮겨졌다.수양대군에게 보내진 서찰과 장부들도 빠짐없이 탁자 위에 쌓이기 시작했다.그중 몇몇 문서에는 조정 대신들의 이름까지 적혀 있었다.관리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이것들은 따로 챙겨라.”“예.”그렇게 수색이 한창 이어지던 중이었다.한 군사가 수양대군이 사용하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책상 위를 살피고 서랍을 하나씩 열어보던 군사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가장 아래쪽 서랍 한편에 다른 곳과 달리 먼지가 거의 쌓이지 않은 자리가 있었다.무언가가 얼마 전까지 놓여 있었던 흔적이었다.군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나리.”밖에서 문서를 살피던 관리가 고개를 들었다.“무슨 일이냐.”“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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