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Chapter 171 - Chapter 180

235 Chapters

171화. 우리 집

주연이 따뜻한 차를 몇 모금 마시는 사이, 재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는 작은 카드와 몇 개의 열쇠가 들려 있었다. 재혁이 그것들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주연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이건 뭐예요?” “집 비밀번호는 당신 휴대전화에 보내놨어.” “네?” “그리고 이건 필요한 열쇠들.” 주연이 눈을 깜빡였다. 재혁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제 나 없을 때도 언제든 들어와.” 주연은 재혁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열쇠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 작은 열쇠 하나가 이상할 만큼 마음을 울렸다. 이제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곳. 재혁이 없어도 들어올 수 있는 곳. 자신의 물건을 두고— 자신의 옷을 걸어두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 우리 집. 주연은 천천히 거실을 둘러봤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그런데 할 일이 정말 많겠네요.” “뭐가?” “이 집이요.” “왜?” “너무 삭막해요.” 재혁도 덩달아 거실을 둘러봤다. “뭐가 부족한데?” “많이요.” 주연은 손가락으로 하나씩 가리키기 시작했다. “일단 쿠션도 좀 놓고, 거실에 화분도 두고…….” 벌써 머릿속으로 집을 바꾸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여기 작은 테이블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조명도 좀 따뜻한 걸로 바꾸고.” 재혁은 그런 주연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봤다. “또?” “주방도요.” “주방?” “냉장고에 물밖에 없잖아요.” 재혁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지갑을 꺼냈다. 잠시 후 블랙 카드 한 장이 주연 앞으로 내밀어졌다. 주연이 당황한 표정으로 카드를 바라봤다. “이건 또 뭐예요?” “집 꾸미는 비용.” “재혁 씨.” “사람 사는 집처럼 만들어준다며.” 재혁은 카드를 주연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 집 좀 사람 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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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화. 당신에게 무릎 꿇게 할 거야

“그리고 그 사람은…….”주연은 잠시 말을 멈췄다.입 밖으로 꺼내려니 2년 전의 기억이 생각보다 선명하게 되살아났다.백화점에서 최진태를 보는 순간 굳어버렸던 몸.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끝이 차가워졌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재혁은 재촉하지 않았다.그저 주연의 맞은편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한참 후 주연이 입을 열었다.“2년 전에…… “재혁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주연은 천천히 2년 전 이야기를 시작했다.최진태와 얽히게 된 일.그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큰 충격과 수치심을 느꼈는지.그리고 그 일을 빌미로 최진태와 결혼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던 것을.주연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재혁의 얼굴에서 조금씩 표정이 사라졌다.그는 단 한 번도 말을 끊지 않았다.하지만 소파 위에 놓인 손에는 어느새 힘이 들어가 있었다.손등의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였다.2년 전 이창수 회장이 내밀었던 결혼 조건.3년의 계약.재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창수 화장은 딸을 그 망나니와 결혼 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었다.주연의 이야기를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경청하던 재혁의 손이 꽉 쥐어졌다. 하얗게 질린 너클 뼈 위로 핏줄이 곤두섰고, 그의 눈동자 속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렸다.그의 아내, 세상 누구보다 아껴주고 보호해야 할 여자가 세상의 차가운 폭력 앞에 방치되었던 그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만약 그 최진태라는 놈이 지금 당장 눈앞에 나타났더라면, 재혁은 이성 따위는 집어치우고 목이라도 조를 수 있을 것 같았다.주연이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순간 단단하게 굳어 있던 재혁의 손가락이 조금 움직였다.재혁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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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화.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깊은 진심과 묵직한 다짐을 나누었던 거실의 공기를 뒤로하고, 재혁은 주연을 태운 차를 몰아 지혜의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차 안은 아까 전의 긴장감 대신, 서로를 향한 단단한 신뢰와 애정이 빚어낸 은은한 온기로 가득했다. 운전대를 잡은 재혁의 한쪽 손은 여전히 주연의 손등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있었다.잠시 후, 차는 지혜의 아파트 앞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조수석 문을 열고 내려 주연의 손을 잡은 재혁은, 그녀를 그냥 올려보내지 않고 아파트 현관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스쳤지만, 주연을 바라보는 재혁의 눈빛만큼은 봄날처럼 따스했다."…… 왠지 오늘 밤은 발걸음이 잘 안 떨어지네."주연이 도어록에 비밀번호를 누르려는데 재혁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주연아.”주연이 돌아봤다.재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그리고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잘 자.”“재혁 씨도요.”“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알았어요.”재혁은 그녀의 뺨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다정하게 웃었다."오늘은 편히 쉬어. 내일 아침 출근길에 데리러 올게." 주연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주연이 비밀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에 있던 지혜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주연을 맞이했다."어? 주연아? 너… 오늘부터 재혁 씨 집에서 같이 지내는거 아니었어?”“왜 다시 이쪽으로 와? ““혹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지혜가 정말 걱정하는 얼굴을 하자 주연이 웃음을 터뜨렸다.“아무 문제 없어.”“정말?”“응.”“그런데 왜?”주연은 지혜를 바라봤다.“너 때문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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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화. 사랑하는 방식

이른 아침, 채 밝지 않은 여명의 빛이 창가를 두드릴 때쯤 재혁은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잠시 천장을 바라보던 재혁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눈을 뜨자마자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어젯밤 아쉽게 헤어져야만 했던 주연의 얼굴이었다. 하루라도 떨어져 있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그녀가 그리웠고, 당장이라도 품에 안고 싶었다. 재혁은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회사로 곧장 향하지 않았다. 주연이 머무는 아파트로 향하기 전, 그는 유명 베이커리와 죽을 살 수 있는곳을 들렀다. 주연이 아침으로 가볍게 먹을 샌드위치와 향긋한 커피, 그리고 아직 완전히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한 지혜를 위한 부드러운 전복죽까지 정성스럽게 포장했다. 바로 그때, 핸드폰 화면에 주연으로부터의 메시지가 반짝였다. ‘재혁 씨, 오늘 아침은 제가 지혜랑 같이 있으려고요. 보육원 원장님도 지혜 잘 챙겨주라고 연락이 와서요. 오늘은 보육원에 나가지 않고 지혜 옆에 있어 줘야 할 것 같아요. 미안해요.’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아침이 이른 시간이었다. 재혁은 차에서 내려 주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뒤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재혁의 입가가 저절로 올라갔다. “잤어?” “재혁 씨?” 그제야 잠이 조금 깬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봐.” “네?” “문 앞이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뭐라고요?” 재혁이 웃었다. “현관 앞이라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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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화. 아팠다고?

아침부터 지혜는 출근 준비를 했다. 주연은 식탁에 앉아 죽을 먹고 있는 지혜를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봤다. “너 진짜 출근하려고?” “응.” “어제 내가 뭐라고 했어?” “다 들었어.” “그런데?” 지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죽을 한 숟가락 더 떠먹었다. “이 정도면 괜찮아.” 주연은 지혜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래도 오늘 하루만 더 쉬지.” “싫어.” “김지혜.” “이주연.” 지혜가 웃었다. “나 진짜 괜찮아.” “힘들면 바로 조퇴할게. 약속.” 주연은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결국 한숨을 쉬었다. “진짜 힘들면 바로 와.” “알았어.” 집에 가만히 누워있어 봤자 복잡한 머릿속만 더 어지러워질 뿐이었다. 지혜는 주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복지센터로 출근을 강행했다. 차라리 복지센터에 나가 바쁘게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몸이 피곤하면 적어도 마음이 아픈 것은 조금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민성은 며칠째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 서류를 펼쳐놓아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집중하는가 싶으면— 또 그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레스토랑.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쳤던 지혜.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녀의 얼굴이었다. 왜 그렇게 말랐지? 얼굴도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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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화. 놓치고 싶지 않아

재혁의 집무실을 뛰쳐나온 민성은 곧장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몰았다.가슴속에서 치솟는 불안감은 차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지혜 씨가 많이 아팠어.병원에도 갔었고.재혁이 무심코 던진 말이 민성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얼마 전 레스토랑에서 마주쳤던 지혜의 모습이 떠올랐다.창백했던 얼굴.전보다 눈에 띄게 야윈 모습.그때는 자신이 박지민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그런 줄 알았다.그런데 아니었다.아팠던 거였다.그것도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왜 그렇게 아픈데…….”민성은 운전대를 꽉 움켜쥐었다.차는 어느새 지혜가 사는 임대 아파트 단지 앞에 멈춰 섰다.민성은 핸들을 잡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휴대전화를 들었다.지혜의 번호를 띄웠다.그러나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민성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이번에는 메시지를 썼다.지혜 씨, 잠깐 볼 수 있어요?한참 바라보다 지웠다.다시 썼다.아팠다는 얘기 들었어요. 괜찮아요?그것도 지웠다.“미치겠네…….”민성은 휴대전화를 조수석에 던졌다.여자에게 전화 한 통 하는 게 이렇게 어려웠던 적이 있었던가.다른 남자를 사랑한다고 했는데도 포기가 되지 않았다.오히려 이제는—정말 다른 남자가 있다고 해도 그 남자에게서 지혜를 빼앗아오고 싶은 심정이었다.이기적이라는 걸 안다.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안다.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그때였다.민성의 시선이 차창 밖 한곳에서 멈췄다.저 멀리 익숙한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지혜 씨.”민성의 몸이 굳었다.복지센터에서 퇴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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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화. 다시 한 번, 내 옆에

“정말…… 미안합니다.”민성은 처음으로 아무런 핑계도 대지 않았다.“내가 잘못했어요.”“민성 씨…….”지혜의 목소리가 떨렸다.“내가 살아온 방식이 원래 그랬다는 말도 안 할게요.”민성의 목소리도 조금씩 흔들렸다.“몰랐다는 말도 안 할 거고.”민성은 지혜를 올려다봤다.“당신한테 상처 준 건 나니까.”지혜의 눈가가 서서히 붉어졌다.“내가 잘못한 거니까.”“…….”“한 번만 용서해줘요.”지혜가 급히 그의 손을 잡았다.“이러지 마요.”“지혜 씨.”“제발 일어나요.”지혜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이렇게까지 하지 마요…….”민성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지혜가 잡아끄는 손을 붙잡고 천천히 일어섰다.그런데—손은 놓지 않았다.지혜가 손을 빼려는 순간 민성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민성 씨……!”“잠깐만.”“놔요.”“잠깐만 이러고 있을게요.”지혜의 몸이 굳었다.민성은 그녀가 정말 밀어내면 놓을 생각이었다.하지만 지금만큼은—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보고 싶었어요.”지혜의 눈이 감겼다.“미치도록 보고 싶었어.”“…….”“전화하고 싶었고.”민성의 목소리가 갈라졌다.“찾아가고 싶었어요.”지혜의 두 손이 그의 가슴 앞에 멈춰 있었다.밀어내야 했다.그런데—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자신 역시 보고 싶었으니까.너무 보고 싶어서 아팠으니까.민성은 조금 떨어져 지혜의 얼굴을 바라봤다.가까이서 보니 더욱 마음이 무너졌다.그동안 얼마나 아팠던 건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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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화. 우리 집의 첫 저녁

주연은 몇 번째인지 모를 만큼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했다. 도착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지혜에게서 전화 한 통 없자, 주연의 마음은 점차 불안으로 물들어갔다. 복지센터에서 출발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연락 불통인 채 집에도 들어오지 않으니 혹여 지난번처럼 몸이 아파 어디 쓰러지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주연은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만 이어졌다. 결국 주연은 가디건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입구까지 내려온 주연은 연신 주변을 살폈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왔지만 지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익숙한 차 한 대가 아파트 앞으로 들어왔다. 주연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재혁이었다. 재혁 역시 입구에 서 있는 주연을 발견하고 곧장 다가왔다. “여기서 뭐 해?” “재혁 씨.” 재혁은 반가워하다가 금세 주연의 표정을 살폈다. “무슨 일 있어?” "아, 재혁 씨…… 지혜가 퇴근한다고 연락은 왔는데, 전화도 안 받고 아직도 집에 안 들어와서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지 걱정돼서 나와 봤어요." 주연의 굳은 표정을 본 재혁은 차에서 내려 그녀의 차가운 손을 감싸 쥐며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아까 사무실에서 민성이가 지혜 씨가 아팠다는 소릴 듣고는 갑자기 눈이 뒤집혀서 튀어나갔거든. 아마 지금쯤 그 녀석이 지혜 씨 곁에 있을 거야." 주연이 눈을 크게 떴다. “민성 씨요?” "그래.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다시 전화 해 봐." 재혁의 말에 안심이 된 주연이 다시 지혜에게 전화를 걸자, 신호음이 몇 번 가더니 이내 지혜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연아, 미안. 전화 소릴 못 들었어. 걱정하지 마, 나 지금 잘 들어가고 있으니까 곧 도착해.’ "정말이지? 다행이다…… 조심해서 와, 지혜야." 전화를 끊은 주연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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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화. 친구니까 이 정도는

민성의 변화는 바로 다음 날부터 시작됐다.말로만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아침부터 그는 꽤 분주했다.유명 레스토랑의 셰프에게 인맥을 통해 직접 전화를 걸어 메뉴를 주문했다.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몸이 회복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음식들로 부탁했다.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민성이 대형 쇼핑백들을 양손에 주렁주렁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는 평소의 오만하고 차가운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센터 직원들에게 먼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갔다."안녕하세요, 고생들이 많으십니다! 우리 지혜 씨가 요즘 몸이 좀 축나서…… 동료분들 힘내시라고 제가 유명 제과점에서 마카롱이랑 생과일주스 좀 넉넉하게 사 왔습니다. 우리 지혜 씨 앞으로도 잘 좀 부탁드려요!"지혜의 눈이 커졌다.“민성 씨?”민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었다.“안녕하세요.”“여긴 왜…….”그런데 지혜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동료 직원들이 먼저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어머, 누구세요?”민성은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김지혜 선생님 친구입니다.”능청스럽고 친근하게 센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민성의 모습에 다들 어리둥절해하면서도 화기애애하게 환호했다.정작 당사자인 지혜는 얼굴이 화끈거려 죽을 지경이었다. 민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쪽에 들고 온 상자를 직원들에게 내밀었다.“이건 선생님들 드시라고 가져왔습니다.”“이게 뭐예요?”“마카롱이랑 주스요.”“어머, 이렇게 많이요?”민성이 능청스럽게 웃었다.“우리 지혜 씨가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일 너무 많이 시키지 마시고 잘 좀 부탁드립니다.”“민성 씨!”지혜가 결국 그를 불렀다.직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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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화. 내가 모르는 이민성

민성의 능청스러운 보살핌과 정성 덕분이었을까. 지혜의 컨디션은 하루가 다르게 눈에 띄게 회복되어 갔다. 차가웠던 마음의 벽도 민성의 무대포 직진 앞에 서서히 녹아내리며,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하고도 달달한 기류가 싹트기 시작했다.창백했던 얼굴에도 조금씩 혈색이 돌아왔다.무엇보다 식사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물론 그 과정에 민성의 지분이 상당했다.유명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음식이 복지센터로 배달되는가 하면—퇴근 시간이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나타나 밥을 먹이고 집 앞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지혜가 부담스럽다며 화를 내면 민성은 늘 같은 말을 했다.“연애하자는 거 아니잖아요.”“그럼 이게 뭔데요?”“친구의 건강 회복 프로젝트?”“누가 친구예요?”“사과 받아줬으니까 친구.”말로는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다.그렇다고 예전처럼 무작정 자기 뜻대로 밀어붙이지도 않았다.지혜가 정말 싫다고 하는 것은 하지 않았다.집 앞까지 데려다줘도 올라오겠다고 하지 않았고,밥을 먹이고 나면 더 붙잡지도 않았다.그저,“약 먹고 자요.”“내일 아침 꼭 먹고.”그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그런 민성의 모습이 오히려 지혜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몸이 한결 가벼워진 지혜는 가장 먼저 주연을 불렀다."주연아, 너 나 때문에 언제까지 여기 붙잡혀 있을 거야? 나 이제 멀쩡해. 기운도 팔팔하고 혼자서도 잘 지내니까, 이번 주말에는 무조건 재혁 씨 집으로 돌아가. 알았지?"지혜는 친구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제 좀 부담스러워.”주연이 눈을 크게 떴다.“뭐?”“남의 남편한테 원망받는 거.”“재혁 씨가 언제 너를 원망했다고 그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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