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레나타는 입을 멍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미닉 싱클레어가 제공한 이 새 아파트는 가히 엄청난 규모였기 때문이다. 가늠해 보건대, 그녀가 살던 다 쓰러져 가던 원룸보다 족히 열 배는 넓어 보였다.천장은 높았고, 벽면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으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얀 대리석 바닥 위로 부드러운 울림이 퍼졌다. 고급 인테리어 잡지에서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모든 것이 모던하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레나타는 어깨에서 작은 가방을 내려놓고, 회색 소파와 유리 상판의 티 테이블, 그리고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탁 트인 도시 전경을 둘러보며 거실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기묘하고 생소하게 느껴졌다.“어때? 마음에 드나?”레나타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 모든 광경에 감탄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그 감탄도 잠시,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결실이 아니라는 쓰라린 현실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화려함은 결국 자신의 자존심을 대가로 치른 것이었다.도미닉은 주변을 잠시 둘러보더니 레나타를 바라보았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당신이 이 아파트에서 지내도록 해. 시간이 날 때마다 들르지.”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파트 비밀번호는 3132야.”레나타는 침을 꼴깍 삼켰다. “네, 교수님.”도미닉이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난 이만 가지.”“잠시만요, 교수님!” 레나타가 황급히 그를 불렀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 나왔다. “그… 돈 문제는—”도미닉이 걸음을 멈추고 한쪽 눈썹을 올린 채 돌아보았다. “아, 맞다. 미안하군,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어.” 그는 몇 걸음 다가와, 레나타가 그의 강렬한 향수 내음을 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섰다. “얼마나 필요한가?”레나타는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꼭 쥐었다. “우선은… 2천만 루피아 정도면 될 것 같아요, 교수님. 동생이 이
Last Updated : 2026-08-0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