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위된 황후가 새 황제를 고른다의 모든 챕터: 챕터 51 - 챕터 60

138 챕터

제51화. 빌린 이름의 방

명부의 '천수'는 두 사람이었다.창고 관리가 내민 성인 인부 명부에는 같은 이름이 두 줄로 적혀 있었다. 한 줄은 굵고 한 줄은 가늘었다. 품삯 난은 둘 다 비어 있었다.“같은 이름이 둘입니다.”“흔한 이름이오. 천수가 이 고을에 하나둘이겠소?”“그럼 두 분 다 불러 주십시오.”관리는 명부를 도로 끌어갔다. 얼굴이 넓고 눈이 작은 사내였다. 웃을 때 눈이 없어졌다.“인부는 일하는 중이오. 창고는 외인이 들어올 데가 아니고, 뒷천막은 진눈깨비가 오면 걷을 거요. 간밤엔 안 왔으니 오늘도 모르지.”온다던 진눈깨비는 북쪽으로 비켜 갔다. 하늘은 여전히 무거웠다. 이현은 새벽에 군영으로 불려 갔다. 대문에서 그가 말했다.“밤에 돌아오겠소.”“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무가 있으니까요.”“강무는 내가 보낸 사람이오. 나는 내가 오는 거고.”무슨 뜻인지 묻기 전에 말이 떠났다. 단비가 뒤에서 작게 아이고, 했다.천수는 담 밖 짐 부리는 자리에서 찾았다. 강무가 말없이 데려왔다. 마흔쯤 된 사내였고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짐을 오래 진 사람의 어깨였다.“천수라 하십니까.”“…예.”“명부에 이름이 둘입니다. 하나는 어르신이고, 다른 하나는 누굽니까.”사내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둘 다 접니다.”“한 사람이 두 줄에 있을 수는 없지요.”“…아이들이 씁니다. 둘이서 한 이름을요.”단비가 숨을 들이켰다. 서련은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몇 살입니까.”“열둘, 열하나요.”“어디서 잡니까.”“뒷천막이오. 궤짝 사이에 거적을 깔고. 밥은… 제 밥을 나눕니다.”“어르신 밥 하나를요.”“…셋이 한 그릇이오.”“언제부터입니까.”“보름쯤 됐습니다. 관리가 데려와서, 창고엔 성인 명부밖에 없다고. 제 이름을 빌려주면 제 일감은 그대로 두겠다고요.”“빌려주지 않으면요.”“…겨울에 일감을 잃습니다.”서련은 담 너머를 보았다. 창고 지붕 뒤로 낡은 천막 꼭대기가 삐죽 나와 있었다.“어르신 사정은 알겠습니다. 이제 책임을 말씀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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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소명의 마지막 수업

소명은 자기가 왜 그만두는지 숫자로 설명했다.“보증금을 낸 어머니가 스물넷이었어요. 한 사람에 은 두 냥이니까 마흔여덟 냥이에요. 그런데 봉 상궁마마 장부에는 열다섯만 적혀 있어요.”“네가 어떻게 봤어.”“장부 심부름을 시키셨어요. 글 아는 아이가 저밖에 없다고.”부엌 할멈이 데운 국을 아이 앞에 놓았다. 소명은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열다섯은 서른 냥이에요. 열여덟 냥이 없어요. 제가 그걸 보는 걸 상궁마마가 보셨어요.”“그래서 무서웠구나.”“무서운 건 괜찮아요. 무서운 건 어머니가 아니라 저니까요.”아이가 처음으로 국그릇을 보았다.“그런데 상궁마마가 그러셨어요. 셈 잘하는 아이는 궁에서 오래 산다고. 그게 더 무서웠어요.”서련은 아이 옆에 앉았다.“소명아. 아홉 아이 일과 네 일은 다르다. 그 아이들은 나가고 싶다고 말할 수 없어서 내가 대신 가는 거야. 너는 지금 말했지. 그럼 나는 네 말을 받는다.”“받는다는 게 뭐예요?”“네 뜻을 종이에 적고, 네가 이름을 쓰고, 그 종이가 너를 지킨다는 뜻이야.”소명은 국을 한 숟갈 먹었다. 그리고 붓을 달라고 했다.그날 밤 소명은 하린 옆에 누웠다. 하린은 벽을 보고 있었다. 소명이 천장을 보며 말했다.“나는 소명이야. 열셋. 너는 하린이지. 열둘. 우리 방에 네 자리가 있었어. 창가 셋째.”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명은 개의치 않았다.“내가 네 자리 이불을 개켜 뒀어. 아무도 안 쓰게.”파란 손이 이불 밖으로 조금 나왔다. 그것뿐이었다. 소명은 그것을 보고 눈을 감았다.봉 상궁은 이튿날 아침에 왔다. 수습 하나가 무단으로 나갔으니 데려가겠다는 것이었다. 뒤에 힘 좋은 궁인 둘을 세웠다.“수습이 밤길을 혼자 나가면 궁의 문단속이 물어지는 겁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오늘 돌려보내야지요.”“아이는 어젯밤 제 뜻을 적었습니다. 그만두겠다고요.”“열세 살 뜻이 무슨 뜻입니까.”“열세 살 손도장으로 아홉을 옮기셨지요. 그때는 뜻이 있었고요.”봉 상궁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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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보호자의 가격

사람의 값이 은 다섯 냥이라고 적힌 종이가 탁자에 놓였다.하린. 열두 살. 연고 인수. 은 다섯 냥. 봉 상궁 입회. 그 밑에 손도장 하나. 명주의 것이라고 장가는 말했다.“판 적 없습니다.”명주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떨리는 것은 하린의 손을 잡은 손이었다.“손도장이 있잖소.”“교육비 면제라고 했습니다. 상궁이 그렇게 말했고 저는 그 종이에 찍었습니다. 이 종이가 아닙니다.”“종이는 다 같은 종이요, 아주머니.”서련이 종이를 들었다. 먹빛이 손도장보다 새것이었다.“손도장을 먼저 받고 글을 나중에 쓰셨군요.”“무슨 소리요.”“먹이 손도장 위에 올라 있습니다. 여기, 이 획이요. 도장을 찍은 뒤에 쓴 겁니다.”단비가 목을 빼고 들여다보았다. 정말 그랬다.장가는 종이를 보지 않았다. 그는 웃었다.“서련 님. 궁 밖은 궁 안과 다르오. 여기선 종이가 사람보다 세오.”“그래서 종이를 제가 씁니다.”“글이 먼저든 손이 먼저든 값은 값이오. 내가 은 다섯 냥을 냈고, 그 돈이 봉 상궁에게 갔고, 그 아이가 염색터에 갔소. 아이를 데려가시려면 다섯 냥을 내시오. 이자는 안 받겠소.”“다섯 냥으로 무엇을 사셨습니까.”“연고요. 저 아이를 돌볼 권리.”“돌보셨습니까.”장가의 웃음이 잠깐 멈췄다.“거간이 아이를 업고 다니오? 나는 값을 냈고, 값을 낸 사람은 값을 받소.”“염색터에서 잿물 통을 젓게 하셨지요. 팔뚝에 화상이 있습니다. 그것을 돌봄이라 부르신다면, 관아에서 같은 말을 하시면 됩니다.”“관아라.”장가는 품에서 다른 종이를 꺼냈다. 붉은 인주가 선명했다. 연화전의 인장이었다.“이건 뭔지 아시오? 귀비마마께서 궁녀 교육 사업을 후원하신다는 후원장이오. 이 사업이 귀비마마 이름으로 돌아가고 있소. 관아에 가시겠소? 가시오. 귀비마마 이름이 관아 문서에 오르는 걸 보시게.”방 안이 조용해졌다. 단비가 서련을 보았다. 명주는 후원장을 읽지 못했지만 인장은 알았다.서련은 후원장을 받아 끝까지 읽었다. 두 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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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은혜라는 청구서

은혜는 늘 청구서와 함께 왔다.서련은 여섯 해 동안 그것을 보았다. 하사품에는 감사 인사가 따랐고, 감사 인사에는 다음 하사품이 따랐고, 그 끝에는 늘 갚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남았다.“아이들을 세우지 않습니다.”“귀비마마의 은혜를 거절하시는 겁니까?”매향은 아직 문턱에 있었다. 돌아가지 않고 답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빚을 갚아 주신다고 하셨지요. 어느 빚입니까.”“아이들 빚이지요. 장가가 낸 값이니 뭐니 하는.”“장가가 낸 값은 연고 값입니다. 그 값을 마마께서 갚아 주시면, 마마께서 연고 거래를 인정하시는 것이 됩니다. 관아 문서에 그렇게 오릅니다. 귀비께서 아이 연고를 사고파는 값을 대신 내셨다고요.”매향의 웃음이 얼굴에 그대로 굳었다.“말장난이시군요. 서련 님은 늘 이러십니다. 남의 호의를 문서로 만드시지요. 그래서 폐하께서도…”매향이 말을 끊었다. 끊은 자리가 더 컸다.“그래서 폐하께서도, 무엇입니까.”“아닙니다.”“말장난이 아니라 문서입니다. 상궁께서 가져오신 종이에 '빚'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빚이라 적으시면 빚을 인정하시는 겁니다.”“그럼 어찌하라는 겁니까.”“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마마께서 연고 거래를 후원하신 적 없다고 적으시든지. 아니면 그 돈을 빚이 아니라 아이들의 보호 비용으로 보내시든지. 밥값, 약값, 이불값. 영수증은 제가 씁니다. 감사 인사는 영수증에 없습니다.”매향은 한참 서련을 보았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마마께서는 아이들을 뜰에 세우고 싶으신 겁니다. 돈이 아니라.”“압니다. 그래서 세우지 않습니다.”매향은 그날 두 번 더 왔다 갔다. 두 번째에는 종이를 가져왔다. 연화전 인장 아래, 짧은 글이 있었다. 귀비는 궁녀 교육을 후원했을 뿐 연고 거래를 허락한 적이 없다. 장가가 후원장을 사사로이 쓴 것은 귀비와 무관하다.“마마께서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이제 되셨습니까.”서련은 종이를 두 번 읽었다. 이 한 장으로 장가의 후원장은 종이가 되었다. 붉은 인장이 찍힌 종이.“되었습니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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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하린이 고른 문

하린이 말했다. 한 글자였지만 방 안의 모두가 들었다.명주가 아이를 안았다. 소리를 내지 않고 울었다. 하린은 어머니 등을 파란 손으로 두드렸다. 어른을 달래는 아이의 손이었다.“집에 가고 싶니?”서련이 물었다.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어머니랑요.”“그럼 그렇게 하자. 네가 골랐으니 네 이름으로 적을게.”“네 이름, 쓸 줄 알아?”하린이 고개를 저었다.“그럼 내가 쓸게. 보고 따라 그려.”서련은 종이에 아이의 이름을 쓰고 그 옆에 '귀가'라고 썼다. 아이가 붓을 받아 그 옆에 제 이름을 그렸다. 획이 삐뚤었다. 그래도 하린이었다.오후에는 다른 어머니들이 왔다. 뽕밭 아이의 어머니가 먼저였다. 그녀는 붓을 꺾은 손을 무릎에 얹고 있었다.“저는 이제 어디에도 이름을 안 씁니다. 딸 이름도요.”“이름은 쓰셔야 합니다. 이번엔 데려간다고요.”어머니가 붓을 받았다. 손이 떨렸는데 글씨는 반듯했다.옷감 창고 아이 하나의 아버지가 왔고, 염색터 아이 둘의 어머니가 함께 왔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아이 머리에 손을 얹었다 떼었다 했다. 서련은 그 손을 보고 물을 것을 줄였다. 다른 집에는 한 집씩 물었다. 밥은 되는지, 잘 곳은 있는지, 아이를 다시 어디로 보낼 생각은 없는지.“왜 이런 걸 물으십니까.”염색터 아이 어머니가 물었다.“아이가 돌아가는 곳이 다시 떠날 곳이면 안 되니까요.”“…떠날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보냈고요.”“지금은요.”어머니가 아이 손을 잡았다.“지금은 안 보냅니다.”그녀는 아이 손을 뒤집어 보았다. 손바닥까지 파랬다.“이거, 씻으면 빠집니까.”“정온이 봄이 지나면 옅어진댔습니다.”“봄이요.”어머니는 아이 손을 제 소매로 감쌌다. 지금 씻을 수 없는 것을 감싸는 손이었다.다섯이었다. 하린과 넷. 나머지 넷은 어머니가 오지 않았거나, 왔지만 데려가지 못한다고 했다. 발을 다친 아이의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아이는 그것을 묻지 않았다. 서련도 묻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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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궁녀가 아니어도

소명은 궁녀가 되기를 그만두는 데에도 조건을 달았다.“첫째, 제 어머니가 낸 보증금 두 냥은 돌려받아야 해요. 둘째, 수습 기록에 '도망'이라고 쓰면 안 돼요. '스스로 그만둠'이라고요. 셋째, 뒤채에서 글이랑 셈을 배우는 대신 저도 뭔가 해야 해요. 공짜는 싫어요.”“공짜가 왜 싫어.”“공짜는 나중에 값을 받으니까요.”서련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정온이 약을 빻다가 고개를 들었다.“저 아이, 서련 님 말투를 벌써 배웠습니다.”“배운 게 아니라 원래 그랬어요.”소명이 대꾸했다.“그럼 셋째는 이렇게 하자. 뒤채 아이들 밥값 장부를 네가 적어. 틀리면 내가 고치고, 맞으면 네 이름이 남아.”“틀리면요?”“고친다니까.”“맞으면 이름이 남고요?”“그래.”소명은 그 자리에서 세 조항을 종이에 적었다. 글씨가 고르지 않았지만 숫자는 반듯했다.“그런데 서련 님. 저 궁녀 안 돼도 괜찮아요?”“왜 물어.”“다들 궁녀가 되면 사람이 된다고 했어요. 안 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서련은 아이의 종이를 들어 보았다. 세 조항, 하나의 이름.“이 종이를 누가 썼지?”“저요.”“그럼 됐어. 궁녀가 아니어도 너는 너야.”소명이 잠깐 서련을 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이고, 제 말로 고쳐 말했다.“궁녀가 아니어도 저는 저예요.”“그 말은 네가 적어라. 넷째 조항으로.”소명이 적었다. 이번에는 글씨도 반듯했다.아홉의 자리도 정해졌다. 귀가 다섯. 뒤채 보호 셋. 다음 정식 선발을 기다리는 하나.기다리겠다는 아이는 열한 살이었다. 서련이 물었다.“궁에서 그런 일을 겪고도 궁녀가 되고 싶어?”“궁이 나쁜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나빴어요. 제대로 뽑히면 제대로 살 수 있대요. 소명 언니가요.”소명이 딴 데를 보았다.“그렇게 말했지만 가라고 한 건 아니에요.”“알아. 고른 건 쟤야.”아이가 서련을 보았다.“다음 선발은 누가 뽑아요?”“봉 상궁은 아니야.”“그럼 갈래요.” 서련은 이름마다 행선지를 적고 아이가 제 이름을 그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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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고개를 들고 나갈 것

심리장에 아이들은 없었다. 대신 어른들이 앉았다.명선이 상석에 앉았고, 그 옆에 문서를 적는 시종이 앉았다. 왼쪽에 명주, 뽕밭 아이의 어머니, 천수. 오른쪽에 봉 상궁과 장가. 수레꾼은 가운데 혼자 앉았다. 뒤쪽 기둥 옆에 태후전 상궁이 서 있었다. 앉지 않았다.“아이들은 어디 있습니까.”봉 상궁이 먼저 물었다.“백연전에 있습니다.”“통지를 못 받으셨습니까. 아이들이 직접 말해야…”“아이들은 데려간 사람 앞에 서지 않습니다. 데려간 사람이 아이들 앞에 서는 겁니다. 오늘은 그 자리입니다.”명선이 손을 들었다.“서련의 말이 맞소. 아이들을 부르는 것은 심리가 아니라 구경이오. 시작하겠소.”수레꾼이 먼저 불렸다. 그는 앉은 채로 말했다. 눈이 바닥에 있었다.“그날 밤, 아이들은 스스로 수레에 탔습니다. 내리는 데도 스스로 내렸고요. 저는 그냥 몰았습니다.”“염색터에 넷을 내렸다고 하셨지요.”“…기억이 없습니다.”서련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강무의 글씨였다. 그 밑에 손도장.“이건 어르신 손도장입니다. 닷새 전 강무 앞에서 찍으셨지요. 넷은 염색터, 셋은 뽕밭 수레로 갈아탔고, 둘은 창고. 봉 상궁이 삯을 줬다. 여기 그렇게 있습니다.”“…그날은 겁이 나서.”“오늘은 안 나십니까.”수레꾼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서련은 목소리를 낮췄다.“그저께 저녁에 댁 앞에 가마가 섰지요. 연화전 가마였습니다. 그 뒤로 술값이 생기셨고요. 그 이야기를 지금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하겠습니까.”방이 조용해졌다. 뒤쪽 기둥 옆에서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태후전 상궁이 몸을 조금 돌렸다.수레꾼의 어깨가 내려앉았다.“…넷을 염색터에 내렸습니다. 아이들이 울었습니다. 봉 상궁이 삯을 줬고, 입 다물라 했습니다. 그저께 온 사람은… 술값을 주고 갔습니다. 누군지는 말 안 했습니다.”“됐습니다. 그것으로 됐습니다.”명선이 명주를 보았다.“그대는 무엇을 듣고 손도장을 찍었소.”“교육비 면제요. 장원이라는 말은 없었습니다.”“천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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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아홉 갈래의 길

금비녀는 생각보다 싸게 팔렸다.금은 무게로 팔렸고 사연은 값이 없었다. 시장의 금방 주인은 비녀를 저울에 올리고 손톱으로 긁어 보고, 서련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어디서 난 물건입니까.”“어머니 것입니다.”“그럼 값을 조금 더…”“무게대로 주십시오.”주인이 저울을 한 번 더 보았다. 값은 그대로였다. 그것이 서련에게는 나았다.“열두 냥입니다.”“됐습니다.”돌아오는 길에 단비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문 앞에서야 물었다.“어디에 쓰실 거예요?”“뒤채 아이들 이불, 옷, 글 가르칠 사람 삯. 공주께서 방과 밥은 대신다 했으니 나머지는 내가 대야지. 그리고 돌아가는 다섯 집에 보증금을 먼저 채워 줘야 해. 한 달 뒤에 올 돈을 기다리며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으니까.”“전하께 말씀드리면…”“전하 돈이 아니야.”단비는 입을 다물었다. 그 입이 반나절을 못 갔다.아침에 아이들이 떠났다. 하린이 먼저였다. 명주가 보퉁이를 지고 하린이 어머니 손을 잡았다. 파란 손이 어머니의 거친 손 안에 들어갔다. 채운이 밤새 줄인 옷이 아이 몸에 맞았다. 채운은 오지 않았다. 침방 낮 일이 있었다. 대신 안감 솔기에 둥근 매듭 셋을 남겼다. 대문 앞에서 하린이 돌아보았다.“서련 님.”“응.”“…고맙습니다.”“네가 골랐어. 나는 문만 열었고.”명주가 허리를 숙였다.“열흘 뒤에 품삯을 받으면…”“받으시면 하린이 신발부터 사 주세요. 저한테는 아무것도요.”하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나갔다.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는 것이 서련은 좋았다.뽕밭 아이의 어머니는 서련에게 붓을 하나 내밀었다. 꺾인 붓이었다.“이걸 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시는 안 쓸 거라서요.”“쓰실 일이 있을 겁니다. 좋은 일로요.”어머니는 붓을 도로 넣었다. 딸의 손을 잡고 갔다.염색터 아이 둘이 갔다. 창고 아이 하나가 아버지 손을 잡고 갔다. 발 다친 아이는 마루에 앉아 그 등을 오래 보았다. 다섯이었다. 뒤채에 넷이 남았다. 셋은 보호, 하나는 다음 선발까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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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장원에서 오지 않은 돈

다음 급료 날까지 열하루, 남은 돈은 여드레치였다.서련은 함 바닥의 은자를 세고 뚜껑을 덮었다. 두 번 세지 않았다. 두 번 센다고 늘어나는 돈이 아니었다.“장원에 가겠습니다.”단비가 빗자루를 든 채 멈췄다.“손님 자격으로만 오라고 했잖아요.”“그러니 손님으로 갑니다. 주인이 못 가는 땅이면 손님이라도 가서 봐야지요.”서진이 문턱에서 그 말을 들었다. 지팡이 없이 선 지 사흘째였다.“나도 갑니다.”“앉으세요.”정온이 뒤에서 말했다. 서진은 앉지 않았다.“누나 혼자 보내고 나는 여기서 죽이나 먹으라고요.”“죽은 내일까지입니다. 모레부터 밥입니다.”“그러니까 갑니다.”“수레에서 반나절을 흔들리면 모레도 죽입니다.”정온은 그 말만 하고 약탕기를 들여다보았다. 서진이 누이를 보았다. 서련은 동생 앞에 오 서방이 보내온 장부 묶음을 밀어 놓았다. 석 달치였다. 볼 시간이 없어 끈도 풀지 않은 것이었다.“그럼 이건 누가 봅니까.”서진이 묶음을 내려다보았다. 잠깐 말이 없었다.“…장부는 제가 봅니다.”“숫자가 안 맞으면 표만 해 두세요. 맞추지는 말고요.”“왜요?”“맞추는 건 저쪽이 잘합니다.”“누나는 가서 뭘 하려고요.”“손님 노릇.”“누나가 손님 노릇을 한다고요.”“그건 저도 궁금합니다.”정온이 약탕기를 보며 말했다. 서진이 처음으로 웃었다. 정온이 약탕기 뚜껑을 닫는 소리가 조금 컸다.새벽 대문 밖에 말 두 필이 서 있었다. 하나는 강무가 잡고 있었고 하나에는 이현이 타고 있었다. 사흘 만이었다. 금비녀 이야기 뒤로 두 사람은 서로 눈을 오래 두지 않았다.“강무를 데려가시오.”“호위는 필요 없습니다.”“호위가 아니라 길 안내요.”“길은 제가 압니다.”“그럼 강무가 배울 것이오.”이현은 그 말만 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서련은 그의 등이 모퉁이를 돌 때까지 보다가 수레에 올랐다. 단비가 옆에서 작게 말했다.“화가 덜 풀리셨나 봐요.”“누가.”“…두 분 다요.”강무는 정말로 길을 몰랐다. 갈림길마다 서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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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주인은 창고에서 먹는다

서련은 만찬상을 물리고 창고로 갔다.상석의 사내는 젓가락을 놓지 않았다. 서련이 마루를 내려설 때 그가 국을 한 술 떴다. 단비가 뒤를 따르며 소리 죽여 말했다.“저 사람 밥값은 누가 냅니까.”“곧 알게 되겠지.”창고 옆 헛간에 일꾼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보리밥에 시래기 국이었다. 국은 멀겠다. 건더기보다 김이 많았다. 서련이 들어서자 숟가락 소리가 일제히 멎었다. 늙은 일꾼 하나가 엉거주춤 일어서다 말았다.“앉으십시오. 저도 앉겠습니다.”“마님, 여긴 흙바닥인뎁쇼.”“흙은 제 땅 흙입니다.”부엌 아낙이 밥 두 그릇을 더 가져왔다. 단비가 네 푼을 냈다. 아낙이 그 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단비가 국을 한 술 뜨고 눈을 찡그렸다. 서련은 찡그리지 않았다. 다 먹었다. 그것을 헛간의 스무 사람이 보았다.서련은 밥을 다 먹고 나서야 물었다.“품삯은 언제 받으십니까.”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늙은 일꾼이 숟가락을 놓았다. 덕보라 했다.“받긴 받습니다요. 장부에는요.”“손에는요.”“…손에는 안 옵니다요.”덕보의 설명은 길지 않았다. 가을에 거둔 것은 전부 윤가에서 미리 준 돈, 선납금 값으로 실려 나간다. 품삯은 다음 선납금에서 떼어 준다. 그런데 다음 선납금이 오면 그건 또 다음 가을 것이라 창고 채우는 데 들어간다. 그러니 품삯은 늘 종이 위에만 있다.“창고에 있는 건 무엇입니까.”“쌀하고 무하고 장작입니다요. 가을 것 그대로요.”“그게 다 선납금 값이고요.”“예. 저희가 거둔 걸 저희가 못 먹습니다요.”“세 해째입니다요.”“세 해 동안 은자를 한 번도.”“봤습니다요. 만져 본 적이 없을 뿐입지요.”서련은 국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이 보였다.“이 국은 얼마짜리입니까.”“…두 푼입지요.”“두 푼에 김만 있군요.”덕보가 처음으로 웃었다. 이가 몇 개 없었다.젊은 일꾼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낮에 폐후라 했던 목소리였다.“그래도 밥은 줍니다. 밥 주는 데는 여기뿐이에요.”“밥값은 품삯에서 뗍니까.”“…예.”“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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