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위된 황후가 새 황제를 고른다의 모든 챕터: 챕터 41 - 챕터 50

138 챕터

제41화. 들어오는 값

간판에는 서련이 쓰지 않은 서련의 이름이 있었다.'백연전 수선방 궁녀 모집. 전 황후 서씨 친히 가르침. 보증금 은 두 냥.'글씨는 단정했고 먹은 새것이었다. 서련은 간판을 든 사내에게 손을 내밀었다.“주십시오.”“이건 소인 것입니다만.”“이름은 제 것입니다.”사내는 간판을 내주지 않았다. 대신 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붉은 인장이 찍힌 추천장의 사본이었다. 명선공주가 백연전 수선방의 궁녀 교육을 추천한다는 글이 단정하게 적혀 있었다.“공주마마의 도장입니다. 소인은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요.”서련은 종이를 등불에 비추었다. 인장의 테두리가 한쪽만 굵었다. 명선의 도장은 선제가 내린 것이라 스무 해를 눌렀고, 오른쪽 아래가 닳아 얇았다. 이 도장은 새것이었다.“단비야. 공주께 이 종이를 보여 드리고 와.”“제가요? 공주마마께서 화내시면…”“화내실 거야. 그래서 가는 거야.”단비가 달려갔다. 서련은 줄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의 손을 잡은 어머니가 열은 넘었다. 맨 앞의 여자가 다시 물었다.“보증금은… 어디에 냅니까?”“어디에도 내지 마십시오. 이미 내신 분 계십니까?”손 몇 개가 올라왔다. 하나, 둘, 넷. 그저께 냈다는 사람도 있었고 오늘 낮에 냈다는 사람도 있었다.“두 냥이요. 딸애 몫으로 빌려서… 달에 서 푼씩 갚기로 하고요.”“누가 이 사람에게 내라 했습니까?”“간판이요. 전 황후 마님 이름이 있으니 틀림없다고, 다들 그랬습니다.”서련은 그 말을 받았다. 제 이름이 남의 돈을 걷는 데 쓰였다. 종이 위의 이름은 주인이 없어도 일을 했다.사내가 먼저 말했다.“그 돈은 위에 올렸습니다. 소인 손에는 없어요.”“위가 누굽니까.”“장 거간이라고… 궁 안 상궁과 통하는 분이지요.”서련의 눈이 사내의 허리로 내려갔다. 전대가 두툼했다.“허리에 찬 것은 무엇입니까.”“…오늘 받은 것입니다. 아직 못 올렸소.”“제 이름으로 돈을 걷으셨으면 제 이름으로 돌려주셔야지요. 오늘, 여기서.”사내가 뒷걸음질을 쳤다. 그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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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열다섯 개의 자리

수습 궁녀 방에는 자리가 열다섯 개뿐이었다.이불 열다섯 채가 벽을 따라 개켜 있고, 못에 걸린 저고리도 열다섯 벌이었다. 서련은 문턱에 서서 세었다. 두 번 세었다. 명주가 그 뒤에서 방 안을 훑었다. 딸의 옷을 찾는 눈이었다. 없었다.방에서는 풀 먹인 무명 냄새와 아이들 냄새가 났다. 열다섯 명분이었다.“보셨으면 나가시지요. 수습 방은 구경하는 데가 아닙니다.”봉 상궁이 말했다. 쉰 가까운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문 앞에서 이미 한 번 실랑이가 있었다. 명선의 위임장을 보이자 그녀는 종이를 두 번 읽고 돌려주었다. 공주마마의 위임은 객사 일이지 선발 일이 아니지요. 서련은 대답 대신 위임장의 마지막 줄을 짚었다. '선발 장부에 오른 아홉의 행방을 확인한다.' 봉 상궁은 그제야 문을 열었다.“아홉이 어디로 갔는지 여쭈러 왔습니다.”“교육을 갔습니다. 장원에서요.”“어느 밤에요?”봉 상궁이 대답하기 전에 방 안에서 목소리가 났다.“그믐 전날 밤이요.”열세 살쯤 된 아이였다. 앞머리를 눈썹 위로 바싹 자른, 눈이 큰 아이가 이불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소명아. 입 다물어라.”“물으셨잖아요.”아이는 서련을 똑바로 보았다.“쪽문으로요. 수레가 왔어요. 봉 상궁마마가 교육 가는 거라고 하셨고요. 아홉이 다 타니까 바퀴가 도랑에 빠져서 제가 밀었어요. 저기 앉은 애랑 둘이서요.”“수레는 몇 대였니?”“하나요. 포장 없는 거요. 애들이 추워서 서로 붙어 앉았어요.”“누가 교육 갈 아홉을 골랐니?”“몰라요. 그런데 다 보증금 낸 애들이었어요. 저는 안 냈어요. 정식으로 뽑혔으니까요.”“아홉인 건 어떻게 아니?”“셌어요. 스물넷이 자다가 열다섯이 됐으니까요. 스물넷에서 열다섯을 빼면 아홉이에요.”봉 상궁의 손이 소명의 어깨에 얹혔다. 누르는 손이었다.“아이가 밤에 본 것을 다 믿으시렵니까.”“밤에 본 것이라 믿습니다. 낮이면 못 봤을 테니까요.”서련은 쪽문으로 갔다. 명주가 따라왔고 단비가 그 옆에 붙었다. 쪽문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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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쪽문에 남은 신발

도망쳤다는 아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쪽문 문지기는 그믐 전날 밤에 수레 한 대가 나갔다고만 했다. 수습 방의 아이들은 하린이 도망갈 아이가 아니라고 했다. 봉 상궁은 도망이라고만 했다. 본 사람은 없고 말하는 사람만 있었다.밤에 강무가 왔다.이현이 보낸 것인지 제 발로 온 것인지 그는 말하지 않았다. 마루에 앉지도 않았다. 서 있는 채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수레꾼입니다.”“찾으셨습니까?”“바퀴가 도랑에 빠졌다 하셨지요. 그날 밤 바퀴를 고친 대장간이 강나루에 하나뿐입니다. 대장간에서 주막까지는 스무 걸음이고요.”서련은 종이를 읽었다. 강무의 글씨는 작고 곧았다. 수레꾼의 말이 그대로 적혀 있고 끝에 손도장이 찍혀 있었다.강무의 소매에서 쇠 냄새가 났다. 대장간 화덕 앞에 오래 서 있었던 냄새였다. 단비가 차를 내밀었다. 강무는 받지 않고 고개만 한 번 숙였다.아이 아홉을 태웠다. 넷은 강나루 위쪽 염색터에 내렸다. 다섯은 갈림길에서 포장 친 수레 둘로 나뉘어 갈아탔다. 하나는 뽕밭 쪽 길로, 하나는 강 아래 창고 쪽으로. 삯은 봉 상궁이 줬다.“도망은 없었습니까?”“없었습니다. 수레꾼 말로는 아이 하나가 신을 떨어뜨리고 세워 달라 했는데, 세우면 늦는다 해서 안 세웠답니다.”단비가 입을 막았다.“손도장은 왜 받으셨습니까?”“말은 바뀌니까요.”서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무는 더 말하지 않고 갔다. 온 줄도 간 줄도 모르게 오가는 사람이었다.서진이 방에서 나와 종이를 들여다보았다.“누나. 이 수레꾼, 봉 상궁한테 삯을 받았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네요.”“그래.”“그럼 봉 상궁은 이제 뭐라고 할까요.”“내일 오면 알겠지.”“올까요?”“오지. 안 오면 자기가 도망이 되니까.”아침에 봉 상궁이 백연전에 왔다. 제 발로 온 것은 처음이었다. 보자기에 종이 아홉 장을 싸 왔다.그녀는 마루에 오르지 않았다. 신을 벗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서련이 탁자를 마루 끝으로 옮겨 놓았다.“어제 하신 말씀을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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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허락하지 않은 약정

아홉 장의 손도장은 아홉 개의 다른 거짓말로 찍혔다.서련은 어머니들을 한 사람씩 만났다. 백연전 행랑에 앉히고, 들은 말을 그대로 적었다. 명주는 교육비 면제와 밥이라 했다.뽕밭에 갔다는 아이의 어머니는 한 해 뒤 정식 궁녀라 했다.“한 해만 참으면 정식이 된다기에요. 궁에서 한 해 배우고 나면요.”“궁에서 배운다고요.”“예. 궁 안에서요.”서련은 그 말을 적었다. 궁 안에서, 라는 말을 그대로.옷감 창고에 갔다는 아이의 아버지는 글을 가르친다는 말에 찍었다고 했다.“글이요. 저는 못 읽으니까, 딸은 읽게 하고 싶어서.”“따님이 지금 글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사내는 대답하지 못했다. 손이 거칠었고 손톱 밑이 검었다. 숯을 만지는 손이었다.서련은 적은 것을 다시 읽어 주었다. 한 줄씩.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면 그 아래 손도장을 받았다.“또 찍습니까?”“이번에는 읽어 드리고 찍습니다. 다음에 누가 무엇을 들으셨느냐 물으면 이 종이를 보이십시오.”“이 종이가 힘이 됩니까?”“종이는 힘이 없습니다. 읽는 사람이 있으면 생깁니다.”여섯이 왔고 셋은 오지 못했다. 세탁터 밤일을 빠지면 자리를 잃는다고 했다. 단비가 저녁에 세탁터로 가서 나머지를 받아 오겠다고 했다.낮에 궁에서 내관이 왔다. 얇은 종이를 건네고 물러서지 않았다. 답을 받아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아이들 일은 짐이 처리하마. 너는 나서지 마라.'“처리라 하시면, 폐하께서는 무엇을 하실 겁니까?”“봉 상궁을 잡아들이신답니다.”“봉 상궁을 잡아들이면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옥에 갇힙니다. 아이들을 먼저 찾고 나서 벌하시라고 전해 주십시오.”“나서지 마시라는 말씀은…”“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제 이름이 걸린 자리에 서 있는 겁니다. 그대로 전하십시오.”“폐하께서는 서련 님을 걱정하시는 겁니다.”“걱정은 받겠습니다. 명령은 돌려보냅니다. 한 종이에 있어서 나누기 어려우시겠지만요.”“폐하께서 노하실 겁니다.”“노하시면 봉 상궁을 잡으실 테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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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새 줄을 세우지 마라

줄의 맨 앞에는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서 있었다.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있었다. 아이는 줄이 무엇인지 몰랐다. 줄 끝에 무엇이 있는지 어머니도 몰랐다. 아는 것은 간판을 세운 사람뿐이었다.동쪽 장터의 간판은 지난 것보다 컸다. '공주 객사 별원. 궁녀 교육. 보증금 두 냥. 식사 제공.' 그 옆에 장부를 든 사내가 앉아 있었다. 얼굴이 넓적하고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장 거간이었다.장터에는 생선 비린내와 숯 냄새가 섞여 있었다. 사내의 옷만 깨끗했다.서련은 줄 옆으로 걸어 맨 앞에 섰다. 강무가 두 걸음 뒤에 섰고, 단비와 명선의 시종이 그 옆에 섰다. 시종은 명선의 진짜 도장이 찍힌 종이를 들고 있었다.맨 앞의 아이가 서련을 올려다보았다.“궁녀 마님이에요?”“아니. 옷 짓는 사람이다.”“그럼 왜 왔어요?”“읽으러.”서련은 장가에게 돌아섰다.“계약서를 보여 주십시오.”장가가 서련을 위아래로 보았다. 알아보는 눈이었다.“서련 님이시군요. 소문대로 부지런하십니다.”“계약서요.”“보증금 내시는 분께만 드립니다. 그것도 글을 아셔야지요. 여기 어머님들은 글을 모르셔서 제가 대신 설명해 드렸습니다.”“무엇이라 설명하셨습니까.”“교육, 식사, 한 해 뒤 정식 선발. 그게 답니다.”서련은 손을 내밀었다. 장가는 종이를 주지 않았다. 강무가 한 걸음 나왔다. 장가가 종이를 주었다.서련은 읽었다. 앞장은 장가의 말과 같았다. 뒷장 끝에, 글씨가 작아지는 자리가 있었다.“글을 못 읽으신다고요? 그럼 제가 읽어 드리지요. 큰 소리로.”서련은 시장 한복판에서 종이를 들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다만 또박또박 끊어 읽었다. 시장이 조용해지는 데는 한 줄이면 충분했다.“'교육 중 퇴소하는 경우 교육비 스무 냥을 낸다. 내지 못하면 교육 기간을 연장한다.'”줄이 흔들렸다. 맨 앞의 아이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도로 잡았다.“스무 냥이요?”“두 냥을 내고 들어가면 나올 때 스무 냥입니다. 못 내면 못 나옵니다. 그것을 교육이라 부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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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물든 소매 네 벌

아이들의 손은 팔꿈치까지 파랬다.염료 통 앞에 넷이 서 있었다. 키가 통보다 조금 컸다. 긴 막대를 두 손으로 잡고 통을 저었다. 저을 때마다 파란 물이 튀어 소매 끝이 젖었다. 소매는 이미 파랬다. 손도, 손목도, 팔꿈치까지.마당에는 쪽 삶는 냄새가 매웠다. 숨을 쉴 때마다 코끝이 시렸다. 단비가 소매로 코를 막았다가 아이들을 보고 도로 내렸다.“교육은 어디서 합니까?”서련이 물었다. 관리인은 장부를 옆구리에 끼고 웃었다. 윤태선 밑의 사람들은 다 웃는 법부터 배우는 모양이었다.“지금 하고 있잖소. 물감 내는 법을.”“글은요?”“글로 물감이 나오오?”“밥은요?”“하루 두 끼. 궁보다 낫지.”“잠은요?”“통 옆에서. 따뜻하오, 물을 데우니까.”단비가 아이들 쪽으로 갔다. 서련은 말리지 않았다. 단비는 통 옆에 쪼그리고 앉아 제일 작은 아이의 소매를 걷었다. 팔뚝 안쪽에 살이 벗겨진 자리가 있었다. 잿물이 튄 자국이었다. 아이는 소매를 걷는 동안 막대를 놓지 않았다.“이름이 뭐니?”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옆의 아이가 대신 말했다.“얘는 말 안 해요. 여기 와서부터요.”단비가 서련을 돌아보았다.서련이 다가갔다.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명주의 얼굴이 있었다. 눈매가 같았다.“하린이니?”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은 열지 않았다.“어머니가 신을 갖고 계셔. 붉은 실 넣은 거.”아이의 손이 막대 위에서 떨렸다. 그것뿐이었다. 울지도 않았다. 서련은 더 묻지 않았다.서련의 손이 아이의 소매 끝에 닿았다. 젖은 천이 얼음처럼 찼다. 넉 달을 이 천을 입고 통을 저은 것이었다.“데려가겠습니다. 넷 다.”관리인이 장부를 폈다.“도구값과 밥값을 내면 데려가시오. 넉 달치요. 막대 하나, 앞치마 하나, 하루 두 끼. 한 아이에 넉 냥씩, 열여섯 냥.”“밥값을 내라고요? 아이들이 젓던 통 값을 제가 먼저 청구하지요. 하루 몇 통입니까?”“…열두 통이오.”“성인 인부가 하루 몇 통 젓습니까.”관리인이 대답하지 않았다.“열두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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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문을 열어 놓으시오

앞문 앞에서 두 시진을 서 있었다.관리인은 빗장을 열지 않았고 서련은 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문 옆 담 밑에 앉아 있었다. 빗장의 그림자가 마당을 건너 아이들 발 앞까지 왔다. 서련은 그 그림자로 시간을 셌다.단비가 소매에서 떡을 꺼내 넷으로 나누었다. 아침에 부엌 할멈이 싸 준 것이었다. 아이들은 떡을 받고도 먹지 않았다. 단비가 먼저 한 입 베어 물자 그제야 먹었다.관리인이 밥상을 내왔다. 잡곡밥과 소금국이었다. 서련은 받지 않았다.“손님은 공짜라 하지 않았소.”“먹으면 손님이 됩니다. 저는 손님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그럼 뭐로 오셨소.”“이 아이들 어머니 대신으로요.”밥상은 도로 들어갔다.“해가 지면 이 산엔 늑대가 내려옵니다.”관리인이 마루에서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문 안이 안전하지요. 아이들도 그렇고, 서련 님도 그렇고.”“늑대는 문을 두드리지 않습니다. 두드리는 것은 사람이지요.”“그 말이 맞소. 사람이 더 무섭지.”서련은 그 말을 받지 않았다. 대신 문에 등을 기대고 섰다. 하린이 담 밑에서 일어나 서련 옆으로 왔다. 말없이 옆에 섰다. 서련이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이는 피하지 않았다.“춥니?”고개를 저었다. 손은 파랗고 입술도 파랬다. 서련은 겉옷을 벗어 아이에게 둘렀다. 소매가 땅에 닿았다.“그러다 서련 님이 얼어요.”“두 시진 서 있었는데 안 얼었어.”“그건 화가 나셔서 그래요.”단비의 말에 서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말굽 소리가 났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다. 관리인이 마루에서 내려왔다. 문 밖에서 강무의 목소리가 들렸다.“열어 주시오. 관아에서 왔소.”관리인이 빗장에 손을 대고 멈췄다.“관아가 왜?”“문을 열면 아실 거요.”빗장이 올라갔다. 문이 열렸다. 저녁 빛이 마당으로 쏟아졌다. 이현이 말에서 내리고 있었고, 그 뒤에 관복을 입은 늙수그레한 사내가 말에서 내리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강무가 그를 받쳐 내렸다.이현은 마당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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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돌아갈 곳을 묻기 전에

아이들은 밥을 앞에 두고 먹지 못했다.부엌 할멈이 국을 넷 놓고 밥을 넷 놓았다. 김이 올랐다. 아이들은 숟가락을 잡고 서련을 보았다. 먹어도 되느냐고 묻는 눈이 아니었다. 이것이 얼마냐고 묻는 눈이었다.“식기 전에 먹어. 식으면 내가 서운해.”부엌 할멈이 그렇게 말하고 부엌으로 돌아갔다. 된장 냄새가 마루까지 왔다.“여기 밥값은 제가 냅니다. 오늘은요.”“내일은요?”제일 큰 아이가 물었다.“내일은 내일 말하자. 오늘 밥이 식는다.”셋이 숟가락을 들었다. 하린은 들지 않았다. 명주가 옆에 앉아 숟가락을 쥐어 주었다. 아이의 손이 어머니 손 안에서 가만히 있었다. 명주는 딸을 안지 않았다. 안으면 자기가 무너질 것을 아는 사람의 손이었다. 대신 숟가락을 쥔 딸의 손을 밥으로 가져갔다.“말하고 싶을 때 말해도 돼. 지금은 먹자.”서련이 말했다. 하린이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씹었다. 삼켰다. 명주가 고개를 돌려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정온이 밥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약을 꺼냈다. 하린의 팔뚝을 걷었다. 잿물 자국에 약을 바르는데 아이가 움찔했다.“아프면 아프다고 해도 된다. 안 해도 약은 바른다.”아이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정온이 그것을 보고 손을 늦췄다.정온은 그렇게 말하고 발랐다. 서진이 옆에서 등불을 들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정온이 보지 않고 말했다.“등불 흔들리면 제가 잘못 바릅니다.”“누이가 시켰습니다.”“그럼 누이께 흔들리는 등을 드리십시오.”서진이 등을 고쳐 잡았다. 흔들리지 않았다. 정온이 약을 다 바르고 나서야 말했다.“괜찮아졌습니다. 등이요.”서진이 대답을 못 하고 등만 들고 있었다. 단비가 그 옆을 지나며 작게 헛기침을 했다.서진의 귀가 붉어졌다. 등불 때문은 아니었다.명주는 밤일에 나갔다. 빠지면 자리를 잃는다고 했다. 서련은 붙잡지 않았다. 딸이 잠들 때까지 옆에 앉아 있다가 갔다. 문을 닫을 때 소리를 내지 않았다.이현은 마루에 남았다.강무는 뽕밭으로 갔다.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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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뽕잎 아래의 약속

뽕밭에서는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가 마른 가지를 쳤다. 아래에서 어머니가 광주리를 받았다.가지를 광주리에 담아 내리면 어머니가 받아 옆에 쌓았다. 아이가 셋, 어머니가 하나. 순이 어미는 새벽에 백연전에서 돌아와 바로 밭에 나온 모양이었다. 발에 흙이 그대로였다.마른 가지 꺾이는 소리가 밭에 드문드문 났다. 잎이 없는 나무라 아이들이 다 보였다. 숨을 데가 없는 밭이었다.서련이 밭 어귀에 섰다. 이현과 담당자와 강무가 뒤에 있었다. 담당자는 어제보다 덜 떨었다. 한 번 온 길이었다. 순이 어미가 먼저 보았다. 광주리를 내려놓지 않고 허리만 숙였다.“순이야, 내려와라.”나무 위의 아이가 내려다보았다. 열한 살쯤이었다. 얼굴이 어머니와 닮았고 눈은 더 사나웠다.“싫어요. 어머니가 가세요. 제가 남을게요.”“네가 가야지.”“어머니가 남으면 저 혼자 집에 가서 뭐 해요.”“밥해 놓고 기다려.”“누구 밥이요.”어머니가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가 가지 하나를 더 쳤다. 서련이 나무 아래로 갔다.“둘 다 나갑니다.”“둘 다요?”순이가 물었다.“둘 다. 그러니 내려와서 어머니 손을 잡아라. 나무 위에서는 못 잡는다.”아이가 잠깐 서련을 보다가 내려왔다. 어머니 손을 잡지는 않았다. 옆에 서서 소매만 잡았다. 다른 두 아이도 내려왔다. 셋이 나란히 서자 키가 계단 같았다.“마님, 저는 종이를 찍었는데요.”순이 어미가 낮게 말했다.“그 종이가 무엇인지 오늘 담당께서 읽으실 겁니다. 소리 내어서요.”관리인이 밭 안쪽에서 왔다. 염색터 관리인보다 젊고 마른 사람이었다. 웃지는 않았다. 대신 종이를 여러 장 들고 있었다.“나리들 오셨소. 아이들 인계 말씀이시겠지요. 그 전에 이걸 보시오.”종이를 담당자에게 내밀었다. 담당자가 읽고, 서련에게 넘겼다.궁중 납품 계약서였다. 이 밭의 실을 궁의 침방에 댄다. 인원이 줄어 납품이 늦으면 위약금을 문다. 그리고 그 아래, 밭 일꾼은 사유 없이 밭을 떠나지 못하며, 떠나면 남은 일꾼이 배상한다.“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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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대신 묶일 사람은 없다

어머니는 붓을 꺾었다.관리인이 마지막으로 내민 것은 새 종이였다. 순이 어미가 어젯밤 찍은 것과 같은 글에 끝나는 날과 값이 더해져 있었다. 삼 년. 서른 냥. 그리고 담당자 앞에서 다시 찍으라 했다. 그러면 약정이 된다고.“노비 문서가 아니라는 걸 보여 드리는 거요. 날짜도 값도 있잖소.”“삼 년에 서른 냥이면 한 해에 열 냥입니다. 밭 일꾼 품삯이 그렇습니까?”“먹이고 재우는 값을 뺐소.”“그럼 아이들 것도 그렇게 빼셨겠군요. 아이들은 얼마를 받았습니까?”관리인은 그 물음에 답하지 않고 붓을 순이 어미에게 내밀었다.순이 어미는 붓을 받았다. 서련은 말리지 않았다. 여자의 손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그리고 붓을 두 손으로 잡고 무릎에 대고 꺾었다. 마른 소리가 났다.아이 셋이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순이는 어머니의 손만 보고 있었다.“제 딸 대신 남겠다고 한 건 제가 미련해서입니다.”“어미가 미련한 게 죄요?”“죄는 아니지요. 그런데 이 마님이 그러셨습니다. 대신 묶일 사람은 없다고요. 어젯밤 종이는 제가 잘못 찍은 겁니다. 오늘 종이는 안 찍습니다.”“그럼 딸이 남소.”“딸은 계약을 쓴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순이 어미가 서련을 보았다. 서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꺾인 붓을 관리인 발치에 놓았다. 던지지 않고 놓았다.관리인이 담당자를 보았다. 담당자는 이현의 이름이 적힌 계약서를 들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오래 보았고, 보는 동안 얼굴이 정리되었다.“인계합니다. 아이 셋, 그리고 이 여인. 넷 다 오늘.”“위약금은 누가 물 거요?”관리인이 물었다. 서련에게 물었다.“계약을 쓴 사람이요. 아이들은 계약을 쓴 적이 없습니다.”“그 어미는 썼소.”“읽지 못하는 사람 앞에 놓인 종이는 쓴 것이 아니라 놓인 것입니다. 오늘 담당께서 그렇게 보셨습니다.”담당자가 헛기침을 했다. 그렇게 본 것이었다.이현은 한마디도 보태지 않았다. 계약서에 적힌 제 이름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수레는 강무가 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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