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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금식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5 09:30:57

4월 10일. 금식 첫날.

카일은 아침 여섯 시에 6층에 올라왔다. 문 앞 의자 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빵도 달걀도 사과도.

일곱 시 아침 기도가 없었다. 성녀는 거처에서 기도한다고 비서 사제가 전했다. 여덟 시 식사가 없었다. 에마가 물 한 주전자를 들고 올라갔다. 빈 주전자를 들고 내려왔다.

“물만이래요. 물만. 회색 아저씨, 사람이 물만 먹고 사흘 살 수 있어요?”

“산다.”

“아저씨도 해 봤어요?”

“기사 훈련에 있다.”

“그럼 성녀님은 기사예요?”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에마가 계단에 주저앉았다. 흰 두건이 비뚤어졌다.

“성녀님이 어제 밤에 저한테 그러셨어요. 페터 할아버지 천 갈아 주러 가라고. 저 혼자요. 하수 계단으로. 저 무서워서 못 갔어요.”

에마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 아이 목소리가 작아지는 걸 카일은 처음 들었다.

“천 갈아야 하는데. 사흘 동안 매일.”

카일은 문을 봤다. 문 안은 조용했다. 맨발 소리도 없었다. 누워 있거나, 창가에 앉아 있거나.

“…오늘 밤 내가 간다.”

에마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회색 아저씨가요? 감시하는 사람이 성녀님 심부름을 해요?”

“감시 대상이 거처를 못 나가니까. 대상이 하던 일을 확인하러 간다.”

에마가 카일을 한참 봤다. 그러더니 일어나서 두건을 고쳐 썼다.

“그거 이상한 말이에요. 근데 좋아요. 끓였다 식힌 물이랑 깨끗한 천이요. 천은 제가 줄게요. 성녀님이 어제 다 찢어 놨어요. 성녀님 침대보로.”

†

밤 열 시. 잿골.

카일은 처음으로 정문으로 잿골에 내려갔다. 신전 뒷담 개구멍이 아니라 언덕 아래 큰길로. 회색 망토 대신 갈색 외투. 기사단에서 사복 순찰 때 입는 것. 손에 천 꾸러미와 물병.

페터 영감 집은 우물가에 있었다. 한나에게 물어서 찾았다. 한나는 카일을 보자 대장간 망치를 든 채로 문 앞을 막아섰다.

“누구슈.”

“페터 영감 다리 천 갈러 왔습니다.”

“누가 보냈수.”

카일은 잠깐 생각했다.

“…들꽃골 아가씨.”

한나가 망치를 내렸다. 카일을 아래위로 훑었다. 갈색 외투, 군화, 허리의 칼집 자국.

“당신 그 회색 망토 기사지. 어제 투구로 물 퍼 온.”

“…예.”

“아가씨는?”

“금식입니다. 사흘.”

한나 얼굴이 굳었다. 망치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제 페터 영감 고쳤다고?”

“예.”

한나가 대장간 벽에 망치를 기대 놓았다.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따라와요. 영감 집은 내가 알아.”

페터 영감은 짚 요 위에 누워 있었다. 다리에 감긴 하얀 천. 성녀 소매. 피가 조금 배어 있었다. 고름은 없었다.

카일은 무릎을 꿇었다. 천을 풀었다. 어제 성녀가 하던 순서를 떠올리며. 천천히. 상처 둘레가 아직 빨갰다. 그런데 어제보다 덜 부어 있었다.

물로 씻었다. 끓였다 식힌 물. 새 천으로 감았다. 성녀 침대보. 손이 서툴렀다. 망토는 잘 기워도 사람 다리는 처음이었다. 천이 비뚤게 감겼다.

페터 영감이 그걸 내려다보고 웃었다.

“기사 양반, 우리 아가씨보다 못하네.”

“…압니다.”

“아가씨는 굶고 있다고?”

“사흘입니다.”

영감이 웃음을 거두었다. 다리를 내려다봤다. 비뚤게 감긴 하얀 천. 그리고 베개 밑에서 무엇을 꺼냈다. 쇳조각. 어제 다리에서 나온. 깨끗이 닦여 있었다.

“이거 아가씨한테 전해 줘요. 아니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을게. 대신 이거.”

영감이 베개 옆 바구니에서 감자 두 알을 꺼냈다. 삶은. 식은.

“굶는 사람한테 감자 주면 혼나려나.”

카일은 감자를 받았다.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돌아가는 길에 한나가 골목 끝까지 따라 나왔다. 대장간 앞에서 멈췄다.

“기사 양반. 아가씨한테 전해요. 바울 열 안 났다고. 오늘 낮에 밥 두 그릇 먹었다고. 아가씨가 굶는 동안 우리 애가 두 그릇 먹었다고 하면 아가씨 웃을 거야.”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

한나가 카일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쇠 두드리는 손가락. 아팠다.

“감시인지 뭔지 하러 왔다며. 우리 아가씨 굶기는 놈들 감시나 잘해.”

카일은 대답하지 못했다. 한나가 돌아서서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화로에 불이 다시 붙는 소리가 났다.

†

4월 11일. 금식 둘째 날.

문 안이 너무 조용했다.

카일은 아침부터 문 앞에 서 있었다. 오전 내내 소리가 없었다. 정오쯤 아주 작게 물 마시는 소리. 오후에 또 없었다. 카일은 귀를 기울이다가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들었다. 내렸다. 감시하는 사람이 감시 대상 문을 두드릴 이유가 없었다.

저녁 무렵 노래가 들렸다. 남부 가락.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한 소절 부르다 멈췄다. 다시 한 소절. 그리고 멈췄다.

카일은 문 옆 벽에 등을 대고 섰다. 망토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페터 영감 감자 두 알. 어제부터 넣고 다녔다. 꺼내지 못했다. 금식은 대주교 명이었다. 호위 기사가 대주교 명을 어기게 할 수는 없었다.

‘어기게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어기는 거다.’

그 생각이 처음 들었을 때 카일은 스스로 놀랐다. 손을 주머니에서 뺐다.

밤 아홉 시. 에마가 물 주전자를 들고 올라왔다. 들어갔다가 금방 나왔다. 얼굴이 하얬다.

“회색 아저씨. 성녀님이 침대에 누워서 안 일어나요. 물 드시라니까 고개만 끄덕이시고. 입술이 다 갈라졌어요. 손이 차요.”

카일은 문을 봤다.

“내일 하루 남았다.”

“내일까지 버티실까요?”

“…버틴다.”

카일은 그렇게 말하고, 그 말이 얼마나 쉬운 말인지 알았다. 어머니가 줄 사흘째에 했던 말. 「버틴다, 카일. 엄마 버틸 수 있어.」

에마가 내려갔다. 카일은 문 앞에 섰다. 밤새.

†

4월 12일 새벽 네 시. 금식 셋째 날.

카일은 기사단 식당에 있었다. 아직 아무도 없었다. 부엌 아궁이에 불씨만. 어제 저녁 굽고 남은 빵 바구니. 치즈 덩어리. 꿀 단지.

카일은 빵 두 덩이를 집었다. 치즈를 칼로 크게 잘랐다. 꿀을 작은 병에 덜었다. 그리고 우유. 데울 시간이 없었다. 차가운 우유를 가죽 물병에.

망토 안에 다 넣었다. 회색 망토. 재봉사에게서 어제 돌려받은. 찢긴 자리가 반듯하게 기워져 있었다. 망토 안주머니가 불룩해졌다. 왼쪽에 빵, 오른쪽에 치즈와 꿀, 허리에 우유. 그리고 감자 두 알.

부엌 문을 나서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대장님?”

루카스였다. 새벽 순찰 가는 길. 잠옷 위에 망토를 걸치고, 하품을 하다 멈춘.

루카스가 카일 망토를 봤다. 불룩한 망토. 치즈 냄새.

“…대장님 그거 다 드시게요?”

“어.”

“아침을 망토에 넣어서요?”

“가는 길에 먹는다.”

루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아 그거 성녀님 거죠? 성녀님 금식이라던데. 소문 다 났어요. 페터 영감 다리 고치고 혼나서 사흘 굶는다고. 잿골 사람들이 화났대요.”

“루카스.”

“예.”

“순찰.”

“예! 근데 대장님, 꿀은 아카시아 꿀이 더 맛있어요. 그거 밤나무 꿀이에요. 쓴 거.”

루카스가 찬장을 열고 다른 꿀 병을 꺼내 카일 손에 쥐여 줬다. 그리고 순찰을 나갔다. 휘파람을 불며.

†

새벽 다섯 시. 백탑 6층.

카일은 교대 기사를 아래층에서 돌려보냈다. 「오늘은 내가 일찍 선다.」 교대 기사가 고맙다며 내려갔다.

6층 복도. 문 앞. 카일은 문을 봤다. 오래.

그리고 두드렸다. 두 번. 한 번 쉬고 한 번 더. 한나 집 문 앞에서 성녀가 하던 대로.

안에서 소리가 났다. 맨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 느렸다. 한 걸음, 쉬고, 한 걸음. 문고리가 돌아갔다. 문이 손바닥만큼 열렸다.

성녀 얼굴이 문틈에 보였다. 입술이 갈라져 있었다. 눈 밑이 파랬다. 머리를 풀어 헤쳤다. 갈색 잠옷. 문틀을 짚은 손이 하얬다.

성녀가 카일을 봤다. 두드린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고, 조금 놀란 얼굴. 그 얼굴을 카일은 처음 봤다.

카일은 망토를 열었다.

빵 두 덩이. 치즈. 꿀 두 병. 우유 물병. 감자 두 알.

성녀가 그걸 내려다봤다. 한참.

“…금식이에요.”

“압니다.”

“대주교님 명이에요.”

“압니다.”

“기사님이 혼나요.”

“제가 혼납니다.”

카일은 빵을 꺼내 성녀 손에 쥐여 줬다. 성녀 손이 빵을 받았다. 손가락이 차가웠다.

“감자는 페터 영감이 보냈습니다. 다리는 어제 제가 천을 갈았습니다. 비뚤게 감겼다고 합니다. 아가씨보다 못하다고.”

성녀 눈이 커졌다.

“…기사님이 갔어요? 잿골에?”

“감시 대상이 거처를 못 나가니까. 대상이 하던 일을 확인하러.”

성녀가 카일을 봤다. 빵을 쥔 채로. 갈라진 입술이 움직였다. 말을 하려다 못 하고.

그리고 웃었다.

아주 조금. 입가가 올라가고, 눈 끝이 조금 접혔다. 갈라진 입술이 아팠는지 금방 찡그렸다. 그래도 웃음이었다. 카일이 본 성녀의 첫 웃음.

카일은 그 웃음을 봤다. 문틈으로. 새벽 다섯 시. 복도 끝 창에서 첫 햇빛이 들어왔다.

“…드세요. 천천히. 사흘 굶으면 한꺼번에 먹으면 탈 납니다.”

“알아요. 제가 약초꾼 딸이에요.”

성녀가 문을 조금 더 열었다. 카일 망토에서 치즈와 꿀과 우유를 받아 갔다. 하나씩. 감자도. 그리고 문 안 탁자 위에 놓았다.

성녀가 빵을 반으로 뜯었다. 반을 먹었다. 천천히 씹었다. 나머지 반을 탁자 위에 놓았다. 치즈도 반을 잘라 옆에 놓았다. 감자 한 알도.

카일이 그걸 봤다.

“…다 드세요.”

“잿골 몫이에요.”

“사흘 굶었습니다.”

“바울도 사흘 굶었어요. 열 날 때. 한나 언니가 그랬어요.”

성녀가 우유를 마셨다. 반만. 우유가 입가에 하얗게 묻었다. 성녀가 손등으로 닦았다. 갈라진 입술에 우유가 스몄는지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물병 마개를 닫았다.

카일은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복도 끝 창으로 새벽 종소리가 들어왔다.

성녀가 문틀에 기대 서서 카일을 올려다봤다.

“기사님, 치즈 냄새 나요. 망토에서.”

“…압니다.”

문이 닫혔다. 안에서 아주 작게 소리가 났다. 웃음소리. 그리고 기침. 그리고 다시 웃음.

카일은 벽에 등을 댔다. 망토에서 치즈 냄새가 났다. 하루 종일 그 냄새가 따라다닐 터였다.

여섯 시. 에마가 세숫대야를 들고 올라왔다. 카일 옆을 지나가다 멈췄다. 코를 킁킁거렸다.

“회색 아저씨 망토에서 치즈 냄새 나요.”

“…세숫물.”

“아저씨 이거 비밀이에요? 비밀이죠? 저 입 무거워요. 진짜로요. 우리 수련원에서 제일 무거워요. 아니 둘째로요.”

“성녀님 방에서도 치즈 냄새 나요!”

에마가 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문 안에서 에마의 「성녀님!」 하는 소리, 그리고 둘이 낮게 웃는 소리가 났다.

카일은 그날 보고서를 쓰면서 처음으로 펜이 빨리 움직였다. 이미 정해져 있었다. 무엇을 빼야 할지.

『감시 보고서 — 4월 12일

대상: 금식 사흘째. 거처에서 기도.

특이 사항: 없음.』

(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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