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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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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아의 작품

여우가 신부를 삼키는 법

여우가 신부를 삼키는 법

죽은 사람에게 시집가는 혼례가 치러지는 밤, 한이연은 잃어버린 얼굴을 되찾기 위해 여우와 입을 맞춘다. 그 대가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기묘한 마을과,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을 신부라 부르고 있던 남자였다. “도망쳐도 좋습니다. 다시 데려오는 재미가 생길 테니.” 다정한 얼굴로 이연을 망가뜨리는 여우, 여휘. 그는 그녀의 두려움도 반항도 즐기며 조금씩 제 곁에 길들인다. 먼저 손을 잡으면 지는 내기. 끝나지 않는 혼례. 그리고 신부를 절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는 여우. 이연은 과연 이 기묘한 마을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끝내, 여우의 신부가 되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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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화. 여우의 심장
“나를 죽일 수 있다고 하던가요?”여휘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았다.한이연은 월하재로 돌아가는 동안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여휘는 앞서 걷지도, 곁에 서지도 않았다.그러나 짙은 꽃향기가 줄곧 따라왔다.보이지 않을 뿐 가까이에 있었다.이연은 월하재의 대문을 넘기 전 멈췄다.산길에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붉은 등불만 나뭇가지마다 걸려 있었다.불꽃은 이연이 움직일 때마다 같은 방향으로 기울었다.그녀를 지켜보는 눈처럼 느껴졌다.월하재 안에도 아무도 없었다.마당에는 찢어 버린 혼례복 대신 붉은 꽃잎만 흩어져 있었다.꽃잎 가운데에는 작은 금빛 장식 하나가 놓여 있었다.비녀였다.끝부분에 여우 두 마리가 서로 꼬리를 맞댄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이연이 가까이 다가가자 손목에 남은 붉은 실 자국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죽은 신부들이 남긴 물건일지도 몰랐다.이연은 몸을 숙여 비녀를 집었다.금속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손가락이 닿는 순간 머릿속에서 혼례곡이 울리기 시작했다.산길에서 들은 것과 같은 곡이었다.피리와 북이 느린 장단을 만들고, 이름 모를 여자들이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첫 소절은 알고 있었다.두 번째도.이연은 배운 적 없는 곡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었다.입술이 저절로 움직이려 하자 혀를 깨물어 소리를 삼켰다.노래가 멎었다.대신 여자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달이 가장 높이 오르면 동쪽 문을 열어.― 그이의 그림자가 먼저 들어가게 해.― 노래를 끝까지 부른 다음 심장을 찔러.목소리는 비녀를 쥔 손을 타고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면 우리도 나갈 수 있어.이연은 비녀를 손수건으로 감싸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그 순간 등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느리고 여유로운 소리였다.짝.짝.이연은 놀라지 않으려고 숨을 가다듬은 뒤 몸을 돌렸다.여휘가 대청마루에 앉아 있었다.한쪽 무릎을 세운 편안한 자세였다.조금 전까지 아무도 없던 자리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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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화. 열세 번째 혼례
산 아래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이 없었다.평상에서 나물을 다듬던 여자도, 밭에서 일하던 노인도, 자전거를 타던 아이도 흰옷을 입고 있었다.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산길에 늘어섰다.손에 든 붉은 등불이 동시에 흔들렸다.바람은 불지 않았다.이연은 여휘가 건넨 혼례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붉은 천이 흙 위로 펼쳐졌다.금실로 수놓인 여우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빛을 받아 일렁였다.“입지 않을 거예요.”이연이 말했다.여휘는 발치에 떨어진 옷을 내려다보았다.“마음에 들지 않습니까?”“그게 문제인 것 같아요?”“당신을 위해 새로 지은 옷입니다.”“저 옷장에 있던 것 중 하나잖아요.”“그 옷들은 당신에게 맞지 않습니다.”“전 주인이 있었으니까요?”여휘의 시선이 혼례복 목깃에 머물렀다.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검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열두 벌 중 가장 안쪽에 걸려 있던 옷과 같은 흔적이었다.“그렇게 보입니까?”그가 물었다.이연이 다시 내려다보자 얼룩은 사라져 있었다.새로 지은 옷처럼 깨끗한 붉은 비단만 보였다.여휘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그는 이연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될 때마다 즐거워했다.이제는 숨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내가 아무것도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게 그렇게 재미있어요?”“네.”처음부터 기다렸다는 듯 빠른 대답이었다.“당신은 곤란해질수록 숨을 천천히 쉬려고 합니다. 화가 나면 오른쪽 입술을 먼저 깨물고, 무서울 때는 내 얼굴을 더 오래 보더군요.”여휘는 이연을 찬찬히 살폈다.“다음에는 어떻게 할지 궁금해집니다.”“그래서 이전 여자들도 죽을 때까지 가지고 놀았어요?”산길을 오르던 사람들의 발이 일제히 멈췄다.수십 개의 붉은 등불도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고요해진 산에서 여휘만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대답해요.”“죽을 때까지는 아닙니다.”그가 부드럽게 말했다.“죽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것이 있었으니까.”멀리서 방울이 울렸다.산길에 선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움직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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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화. 바깥도 그의 안이었다
이연은 문을 열지 않았다.아침을 알리던 여휘의 목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방 안에 머물렀다.복도에 아무런 기척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여행 가방을 침대 위로 올렸다.옷을 갈아입고 흩어진 물건을 가방에 넣었다.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분명한 것은 이곳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동영상은 삭제하지 않았다.영상 속 자신의 행동은 기억과 전혀 달랐지만, 그것 역시 기록이었다.여휘가 영상을 조작한 것인지, 자신이 실제로 혼자 움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무엇이 진짜인지 판단할 수 없을 때는 어느 쪽도 버리지 않는 편이 나았다.이연은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었다.― 월하재에 온 것은 어제다.― 여휘를 처음 만난 곳은 산으로 올라오는 돌계단이다.― 그는 내 이름을 미리 알고 있었다.― 혼례복은 열두 벌이었다.― 이전의 신부들 중 몇은 여휘가 죽였다.문장을 하나씩 적으며 소리 내어 읽었다.마지막 줄을 입력할 때 손이 잠시 멈췄다.여휘가 정말 죽였다고 말했던가.몇은, 이라고 대답한 것은 분명했다.그러나 그보다 앞서 자신이 어떤 질문을 했는지는 흐릿했다.기억 속 대화는 끝부분이 잘린 실처럼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했다.이연은 문장을 지우지 않았다.대신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기억이 흐려져도 기록을 먼저 의심하지 말 것.메모를 저장한 뒤 화면을 캡처했다.혹시 기록이 사라질 것을 대비해 같은 내용을 종이에도 적으려 했지만 방 안에는 필기구가 없었다.이연은 여행 가방 손잡이를 잡았다.그 순간 방문 밖에서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누군가 바로 앞에 상을 내려놓는 듯했다.“식기 전에 나오시지요.”여휘였다.이연은 대답하지 않았다.“떠나려면 배를 채우는 편이 좋을 텐데.”그가 가방을 싸는 모습을 본 것처럼 말했다.이연은 잠금장치에서 손을 떼고 방문을 바라보았다.“훔쳐보고 있어요?”“보지 않아도 압니다.”“내가 뭘 하는지 어떻게 아는데요?”“당신은 내가 말하는 것마다 질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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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화. 어느 쪽도 믿지 마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어디에서 울리는지 알 수 없는 소리였다.깊고 낮은 울림이 월하재의 기둥과 바닥을 타고 번졌다.한 번.두 번.종이 울릴 때마다 방 안의 촛불이 하나씩 밝혀졌다.조금 전까지 없었던 촛불이었다.벽을 따라 놓인 붉은 초에 푸른 불꽃이 붙으면서 방 안의 모습도 달라졌다.흰 이불은 붉은 비단 이불로 변해 있었다.천장에서는 혼례 때 사용하는 청사초롱이 흔들렸고, 창문에는 붉은색과 푸른색 천이 길게 늘어졌다.이연이 휴대전화로 보았던 모습과 똑같았다.다만 화면 속에서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여휘는 옷장 안에 앉아 있었다.문밖에서도 여휘의 목소리가 들렸다.“이연.”둘의 목소리는 완전히 같았다.높낮이도, 말끝에 밴 미세한 웃음도 구별할 수 없었다.옷장 안의 여휘가 턱을 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시간이 많지 않습니다.”“왜요?”“밤은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그가 가볍게 눈짓하자 방문 손잡이가 다시 돌아갔다.철컥.철컥.밖에 있는 것이 잠금장치를 확인하듯 천천히 손잡이를 흔들고 있었다.“열어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요?”이연이 물었다.옷장 속 여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들어가지 못하겠지.”두 여휘가 서로의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이연은 문에서 멀어졌다.“둘이 같은 편이에요?”“아닙니다.”이번에는 두 목소리가 동시에 대답했다.같은 소리가 겹쳐지자 방 안의 공기가 낮게 떨렸다.이연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어느 쪽이 진짜인지 고르려고 해서는 안 됐다.둘 다 여휘가 아닐 수도 있었다. 한쪽을 믿는 순간 그것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될 가능성이 컸다.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주웠다.동영상 촬영은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그러나 화면 속에는 아무도 없었다.옷장은 닫혀 있었고 방문 앞도 비어 있었다.붉은 혼례방 한가운데에 이연 혼자 서 있었다.그런데 화면 속 이연은 현실의 그녀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실제 이연은 옷장을 향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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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화. 이름을 부르는 것
옷장 안에서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이연은 움직이지 않았다.잘못 들은게 아니었다.누군가 입을 막고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그것도 한 번이 아니었다.옷장의 나무문 너머에서 가느다란 숨소리가 이어졌다.이연은 발치에 떨어진 사진을 내려다보았다.월하재 앞에 서 있는 자신과 여휘, 그리고 현재보다 정확히 일 년 앞선 촬영 일자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사진 속 자신은 붉은 혼례복을 입고 있었다.얼굴은 빗물에 번진 것처럼 흐릿했지만, 왼손에 낀 은색 반지는 선명했다.이연은 제 왼손을 내려다보았다.같은 반지가 중지에 끼워져 있었다.몇 년 전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산 것이었다. 흔한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도 아니었다.사진 속 여자가 자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그런데 사진 뒤에는 분명 자신의 필체가 남아 있었다.― 이번에도 그를 믿었다.문장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글씨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획의 끝이 번지고, 글자 사이의 간격이 좁아졌다.이연은 사진을 뒤집어 바닥에 내려놓았다.확인해야 했다.두려움 때문에 옷장을 열지 않는다면 밤새 안에서 나는 소리에 시달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는 편이 나았다.그녀는 화장대 앞에 놓인 나무 의자를 들었다.한 손으로 의자를 세워 든 채 다른 손으로 옷장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쇠붙이가 손바닥에 닿았다.안쪽의 숨소리가 멎었다.“누구 있어요?”대답은 없었다.이연은 손잡이를 힘껏 잡아당겼다.옷장 문이 열리며 짙은 향 냄새가 밀려 나왔다.안에는 아무도 없었다.사람이 몸을 숨길 공간조차 없었다.옷장 안을 가득 채운 것은 여러 벌의 옷이었다.흰 저고리와 붉은 치마, 금빛 자수가 놓인 겉옷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비슷해 보이지만 모양과 색이 조금씩 달랐다.어느 것은 오래되어 소매 끝이 누렇게 변했고, 어느 것은 며칠 전에 지은 것처럼 천의 광택이 선명했다.모두 혼례복이었다.이연은 들고 있던 의자를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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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화. 월하재
이연은 자신이 언제부터 돌계단을 오르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한 걸음 앞에서는 여휘가 걷고 있었다.붉은 등불 아래를 지날 때마다 그의 검은색 옷자락에 옅은 금빛이 번졌다가 사라졌다.여휘는 그녀의 손을 잡지 않았다.따라오라고 재촉하지도 않았고, 뒤를 돌아보며 제대로 오고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그녀가 도망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여유로운 걸음이었다.그 태도가 오히려 불안했다.이연은 몇 계단을 더 오른 뒤 멈춰 섰다.“저는 따라가겠다고 한 적 없어요.”여휘도 걸음을 멈추었다.“그렇습니까?”그가 천천히 돌아보았다.이연이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분명 그의 손을 잡지는 않았다. 그런데 따라가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아니, 했던가.기억을 더듬을수록 머릿속에 안개가 차올랐다.“돌아갈게요.”“그러십시오.”여휘는 선뜻 길을 비켜 주었다.그의 반응에는 아쉬움이 없었다.예상과 달리 붙잡지 않자 이연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돌아가도 된다는 말을 들으니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부터 막막해졌다.그래도 이 남자와 함께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이연은 몸을 돌렸다.조금 전까지 길게 이어져 있던 돌계단이 사라져 있었다.그녀의 발뒤꿈치 바로 아래로 검은 물이 출렁였다.산 아래에 있어야 할 강도, 계곡도 아니었다.끝을 가늠할 수 없는 짙은 물이 계단이 있던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비가 떨어질 때마다 동그란 파문이 번졌는데, 물결 사이로 붉고 흰 옷자락이 수없이 떠다녔다.물속에 잠긴 여자들이었다.긴 머리카락이 수초처럼 흔들렸다.모두 얼굴을 아래로 향하고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다만 물 위로 떠오른 손가락마다 붉은 실이 묶여 있었다.이연이 숨을 들이켠 순간 여휘의 목소리가 들렸다.“왜 그러십니까?”“저 아래에…….”그녀가 다시 눈을 깜빡였을 때 물은 사라지고 없었다.내려가는 돌계단이 멀쩡히 이어져 있었다.붉은 등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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