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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مؤلف: 크레용 소원

제1화

مؤلف: 크레용 소원
“뭐? 지금 나더러 당신 내연녀 뒷바라지를 하라는 거야?”

채소를 썰던 서희주의 손이 멈칫했다.

그녀는 식칼을 도마 위에 살며시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차도윤을 바라보았다.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살기 어린 시선에 차도윤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스쳤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는 서희주의 앞치마에 붙은 생선 비늘 조각을 내려다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설아는 내연녀가 아니야.”

서희주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사생아까지 만들어 놓고, 지금 그게 할 소리니?”

그 말에 차도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이내 목소리마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내 아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이제 막 귀국해서 갈 데도 없는 사람이야. 나밖에 믿을 친구가 없어서 찾아온 거라고.”

“출산한 지 이제 하루 지났는데 조리원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잖아. 너 요리 잘하니까 보양식 좀 챙겨달라는 게 뭐 그리 어려운 부탁이야? 그냥 하루 세끼 가져다주면 돼. 어차피 집에서 놀아서 한가하지 않아? 내가 할 일 만들어 주면 너도 보람차고 좋지.”

서희주는 눈앞의 잘생긴 남자를 바라보았다. 실망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짝사랑하고, 대학교 1학년 때 먼저 고백해서 졸업하자마자 결혼에 골인한 남편.

그녀는 차도윤을 위해 커리어도 꿈도 다 포기한 채 살림에만 전념했다.

둘이 알고 지낸 지도 어느덧 10년이다.

서희주는 그저 남편이 불우한 가정환경과 지독한 가난 속에서 자라 성격이 차갑고 무뚝뚝해진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스스로 작은 태양이 되어 온 힘을 다해 그를 비추고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어떻게든 차갑고 외로운 세상 밖으로 끌어내고 싶어서.

하지만 그를 변화시키기는커녕 자신이 가진 빛만 모두 꺼져버렸다.

차라리 원래부터 정이라곤 모르는 냉혈한이었다면 포기하기 쉬웠을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비극은 원래 무뚝뚝한 사람이 아니라 그 온기를 전해줄 대상이 그녀가 아니었을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서희주 역시 며칠 전에야 알게 되었다. 차도윤의 마음속에 10년 동안 품어온 ‘첫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당신 눈엔 내가 매일 집에서 놀고먹는 것처럼 보여? 내 시간, 내 노력이 그렇게 가치 없고 우스워?”

짜증 섞인 차도윤의 얼굴에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희주야, 제발 억지 좀 부리지 마. 그냥 밥 몇 끼 해달라는 거잖아. 어차피 매일 요리하지 않아? 장 볼 때 재료 좀 더 사서 하면 되는 건데 뭘 그렇게 유세를 떨어. 우리 집에서 조리원까지 고작 5분 거리야. 잠깐 갔다 오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시간 얼마나 잡아먹는다고 이래?”

“내가 평소에 너한테 뭐 어려운 걸 시키기나 했어? 직장 나가서 돈 벌어오라는 것도 아니고, 카드도 마음대로 쓰게 해주잖아. 남들 부러워하는 사모님 소리 들으면서 호의호식하면 됐지,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고작 이까짓 일, 그냥 좀 도와줄 수 있잖아. 꼭 내가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야겠어?”

서희주의 마음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이런 말다툼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지난 세월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얻어보겠다고 끊임없이 헌신해 온 시간이 마치 스스로를 가둔 집착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 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

서희주는 화를 내는 대신 다시 도마 위의 식칼을 들고 감자를 채 썰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 바빠. 그 여자한테 밥 해다 바칠 일없으니까 알아서 해.”

“전업주부가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 밥하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또 있어?”

차도윤은 무의식중으로 이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튀어나온 순간, 자신도 아차 싶은 표정이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후줄근한 잠옷과 슬리퍼 차림. 허리에는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는 식칼을 든 채 생선 비린내까지 풍기고 있는 서희주를 보고 있자니, 일주일 전 자신을 찾아왔던 윤설아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예고도 없이 사무실 문 앞에 나타난 그녀는 완벽한 메이크업에 화사한 의상과 더불어 10cm 킬힐을 신고 있었다.

만삭의 임산부였음에도 뼛속까지 우아하고 청초한 느낌은 지금 눈앞의 여자와 사뭇 달랐다.

그 생각이 들자, 아주 잠깐 스쳤던 죄책감마저 깨끗이 사라졌다.

이때, 서희주가 들고 있던 식칼을 도마 위에 거칠게 내리찍었다.

예상치 못한 기세에 차도윤은 내심 움찔했다.

서희주는 성큼성큼 다가와 그의 앞에서 멈춰 섰다.

“전업주부? 당신 눈엔 내가 줄곧 집에서 노는 여자로만 보여? 잊었나 본데, 나 졸업하자마자 국가 포토닉 칩 프로젝트에 합격한 사람이야. 그때 당신이 뭐라고 했어? 사업 시작하겠다면서 도와달라고 애원했잖아. 그래서 내 앞날 다 포기하고 투자금이나 끌어오고, 일 하나라도 더 따오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온갖 무시당했던 거 벌써 잊었어?”

“그렇게 회사가 겨우 자리 잡으니까 이번엔 또 뭐라 그랬어? 힘들다면서, 시어머니랑 아가씨가 시골에서 올라오면 집안일 돌봐줄 사람 필요하다고 나보고 들어앉으라며. 현장보다 든든한 뒷바라지가 더 중요한 법이라고, 세상에서 믿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밥 차리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전업주부로 취급해? 매일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먹는 팔자 좋은 사모님이라고? 차도윤, 잊지 마. 당신 만나기 전에도 난 부족함 없이 살았어. 누군가한테 매달려야만 살 수 있을 정도로 무능하지도 않았어. 설도 테크의 핵심 기술, 그거 원래 내가...”

“그만해! 대체 그놈의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는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야?”

차도윤은 치부를 들킨 듯 되레 화를 버럭 냈다.

“네가 서씨 가문 귀한 딸이라는 거 나도 알아. 3대째 내려오는 재벌가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랐잖아. 하지만 지금은 내 아내고, 우리 차씨 가문 사람이야.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안 그래? 난 그 못된 공주병 받아줄 생각 추호도 없어. 어디서 집안 배경 내세워서 남편을 찍어누르려고 들어? 내가 고작 권력 앞에서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릴 것 같아?”

“창업 초기에 조금 거들어준 거 부정 안 해. 하지만 네가 회사 떠난 지도 벌써 2년이야. 지금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나 해? 기술은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데, 언제까지 옛날 공 운운하며 유세 떨 생각이야? 본인이 생각해도 좀 우습지 않아?”

“우리 회사 곧 상장 앞두고 있어. 내가 몸값 수조 원대 유니콘 기업 의장 자리에 앉으면 네 체면도 같이 서는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은 군소리 말고 분수 지키면서 괜히 폐나 끼치지 마. 알겠어?”

고개를 떨구고 있는 서희주를 보며 차도윤은 더욱 강압적으로 몰아붙였다.

“설아 보양식, 저녁 6시까지 조리원 888호로 보내.”

이내 몸을 돌리며 싸늘하게 덧붙였다.

“싫으면 그땐 이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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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30화

    “차도윤 씨, 집은 오늘 오후 4시에 이미 팔렸습니다. 새 집주인은 사흘 뒤에 들어올 예정이니 빨리 새로 살 곳을 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차도윤의 얼굴이 확 굳었다.믿을 수 없다는 듯 그가 물었다.“무슨 소리예요? 서희주가 멋대로 집을 팔았다고요?”중개사는 서두르지도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서희주 씨 말씀으로는, 이 집은 결혼 전에 어머니가 혼수로 주신 집이라 본인 명의의 혼전 재산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처분하든 본인 자유라고요.”순간 주변 사람들도 크게 술렁였다.“뭐야, 차씨 가문의 단독 주택이 팔렸다고?”“원래 이 집 며느리 혼전 재산이었대. 그것도 친정엄마가 혼수로 준 집이라니, 단독 주택을 혼수로 해 줄 정도면 집안이 보통은 아니었겠네.”“무슨 며느리야. 이미 이혼한 거 아니었어?”“그럼 차 대표님이 처가 덕 본 사람이었다는 거네. 젊은 나이에 저렇게 빨리 성공한 것도 분명 장인어른 쪽 힘이 있었겠지.”순식간에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혔고,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평소 장혜란과 사이가 좋지 않던 몇몇 할머니들은 이때다 싶어 더 신이 나서 빈정거렸다.“언니, 그 옥팔찌도 설마 전 며느리 혼수품이었던 거 아니야? 그래서 지금 도로 가져간 건가?”“그 팔찌는 보기만 해도 값이 엄청나 보이던데. 혼전 재산이면 당연히 챙겨 가야지.”장혜란은 단번에 아픈 곳을 찔린 듯, 부끄러움과 분노에 얼굴이 벌게졌다.그녀는 몇 걸음에 달려와 소리쳤다.“무슨 혼전 재산이니 뭐니, 나는 그런 건 몰라. 내가 아는 건 딱 하나야. 걔가 우리 집안에 시집왔으면 살아도 우리 집안 사람이고 죽어도 우리 집안 귀신이라는 거지. 사람도 우리 집안 사람인데 집이랑 장신구가 당연히 다 우리 집 거지, 그게 뭐가 이상해?”장혜란은 일부러 저렇게 말한 게 아니었다. 속으로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말은 주변 사람들을 또 한 번 얼어붙게 만들었다.“남의 집은 딸을 시집보내는 거지 파는 게 아닌데, 시어머니가 저러니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9화

    그때 차씨 가문 집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빼곡하게 몰려 있었다.건물 사람들 거의 전부가 구경하러 나온 탓에, 복도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였다.차도윤이 돌아온 걸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길을 비켜 줬다.차도윤은 자기 집 앞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걸 보자, 눈빛에 대놓고 불쾌한 기색이 스쳤다.“아들아, 이제야 왔구나. 너 더 늦었으면 우리 집 다 털릴 뻔했어.”차도윤은 울고불고하는 장혜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바로 경비들에게 그 건장한 남자들을 막으라고 했다.“당신들 대체 누구야? 누가 당신들한테 이런 짓을 하라고 했지?”오는 길에 이미 차도윤은 이 일이 서희주와 관련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그래서 경찰에는 신고하지 않았다.집안 망신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맨 앞에 선 책임자는 바로 부동산 중개사였다.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저희는 서희주 씨의 의뢰를 받고, 서희주 씨 물건을 전부 옮기러 왔습니다.”역시 서희주였다.요즘 그녀가 벌이는 일은 정말 점점 선을 넘고 있었다.“누가 서희주한테 이 물건들을 옮겨 가도 된다고 했지? 당신들 지금 주거침입이야. 내가 경찰에 신고만 하면 당신들 전부 유치장 신세 지게 될 줄 알아. 내가 명령하는데, 10분 안에 모든 물건 제자리로 돌려놔. 안 그러면 그 뒤 일은 당신들이 책임져야 할 거야.”그런데 중개사는 전혀 겁먹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차도윤 씨, 저희 의뢰인은 서희주 씨입니다. 무슨 일이든 서희주 씨와 먼저 상의하셔야죠. 물론 경찰을 부르셔도 됩니다. 저희가 하는 모든 일은 합법적이고 정당하니까요. 경찰이 오면 오히려 잘됐죠. 여기서 괜히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요.”차도윤은 속으로 분노를 꾹 눌러 삼켰다.그는 당연히 경찰이 오는 걸 원하지 않았다.이 집이 서희주의 혼전 재산이라는 걸, 그리고 집 안의 가전과 가구들까지 전부 서희주 소유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법적으로도 서희주는 이 집과 그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8화

    다들 갑자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이 단지에는 돈 많은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김씨 댁 아들처럼 고연봉 월급쟁이일 뿐이었다. 한번 중년에 실직하면 집안 전체가 그대로 무너졌다.그래서 그들은 더더욱 장혜란에게 잘 보여야 했다. 정말 실직이라도 하게 되면, 연줄을 타고 차도윤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허씨 댁이 장혜란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래도 혜란 씨가 복은 많네. 아들이 큰 회사 차렸으니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맞아요. 앞으로 우리도 언니한테 많이 기대야겠어요.”장혜란은 칭찬 소리 속에 흠뻑 젖어 우쭐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윤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엄마, 빨리 와요. 집에 이상한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우리 집 물건까지 막 가져가고 있어요.”오늘은 금요일이라 차윤지는 야간 자율학습이 없었다. 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덩치 큰 남자 몇 명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차윤지도 그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장혜란은 그 말을 듣자 얼굴이 새까매졌다. 대낮에, 그것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집 안에 들어와 강도질을 하다니.게다가 차윤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겁이 났다.그녀는 얼른 주변의 할머니들에게 손짓했다.“아이고, 아직 해도 안 졌는데 누가 우리 집에 들어와 물건을 훔치고 있다네. 얼른 나랑 같이 좀 가 봐.”다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로열 더 팰리스는 고급 단지였고, 보안이 철저하기로도 유명했다.그런 도둑들이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장씨 댁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먼저 가 봐요. 나는 경비 부르고, 이웃들도 더 불러서 같이 올라갈게요. 대낮부터 집 안에 들어올 정도면 보통 간 큰 놈들이 아닐 거예요.”장혜란은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우리 윤지,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사람들은 우르르 몰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는 금방 꼭대기 층에 멈췄다.문이 열리자, 현관 앞에서 차윤지가 소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7화

    “손님, 160억짜리 집을 정말 120억에 파시려고요?”서희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돈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최대한 빨리 파는 거예요.”“이건 완전히 손해 보고 급매로 내놓는 거라, 오늘 오후 안으로도 팔 수 있어요.”부동산 중개사가 어딘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이 집이 손님 소유 맞으세요?”“등기권리증도 여기 있고, 집 살 때 받은 각종 서류랑 영수증도 다 보관하고 있어요.”중개사가 확인해 보니 아무 문제도 없었다.“실례지만 왜 이렇게 급하게 집을 파시려는 건가요? 외국으로 나가실 예정이세요?”서희주는 담담하게 말했다.“이 집은 결혼 전에 엄마가 저한테 사 준 거예요. 그런데 제가 전남편이랑 이혼했는데도, 지금 그 집 식구들이 이 집을 차지한 채 안 나가고 있어요. 집이 팔리면 그 사람들 내보낼 방법은 있겠죠?”중개사는 그 말을 듣자 바로 울분이 치밀어 오른 듯했다.눈앞의 여자는 기품이 남달랐고, 말투도 세련됐다. 누가 봐도 잘사는 집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였다. 그런데도 전남편 쪽이 혼수로 받은 집을 눌러앉아 차지하고 있다니 말이다.“서희주 씨,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회사는 법원 경매 매물도 자주 맡고, 기존 거주자가 안 나가 버티는 경우도 많이 겪어요. 저희한테는 전문 정리팀이 있어서 그런 건 어렵지 않아요. 전부 퇴역 군인이나 은퇴한 격투선수들로 꾸려져 있거든요. 그때 가면 나가야 하고, 안 나가면 바로 밖으로 내보내면 됩니다.”서희주는 만족한 듯 그 자리에서 중개사에게 두둑한 봉투 하나를 건넸다.“그럼 잘 부탁드릴게요.”역시 두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서희주의 로열 더 팰리스 주택은 팔려 버렸다.새 집주인은 얼마 전에 귀국한 교포였다.게다가 가능한 한 빨리 입주하고 싶다는 조건까지 내걸었다.그래서 부동산 쪽에서는 그날 오후 바로 사람을 정리할 생각이었다.한편, 저녁 무렵.로열 더 팰리스에서는 장혜란이 저녁을 먹고 단지 아래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마침 같은 단지에 사는 할머니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6화

    지금 와서 곱씹어 보면, 차도윤은 ‘사랑해’라는 세 글자조차 좀처럼 입 밖에 내지 않았다.그 오랜 시간 동안 늘 그녀만 그의 뒤를 쫓아다닌 것 같았다. 그가 뭘 원하는지 말로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두 손에 가득 받쳐 그의 앞에 갖다 바쳤고,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굴었다.하지만 그녀는 끝내 자기가 바라는 걸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다.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시큰거렸다.바로 그때, 서희주의 휴대폰이 울렸다.서희주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자 표시를 보는 순간, 서희주와 윤승하는 거의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화면에는 ‘남편’이라고 떠 있었다.서희주는 휴대폰을 들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간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서희주의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차도윤의 말투는 그보다 더 싸늘했다.“서희주, 너 언제부터 외박까지 하게 됐어?”서희주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정말 웃긴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결국 웃음까지 터지고 말았다.“차도윤, 우리 이미 이혼한 거 알지?”“또 이혼으로 나를 협박하려는 거야? 서희주, 너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유치하게 굴 건데?”서희주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차도윤은 멋대로 말을 이어 갔다.“너랑 쓸데없는 말장난할 시간 없어. 본론만 말할게. 엄마 혈당약 떨어졌어. 네가 사서 갖다드려. 그리고 차 키는 현관 신발장 위에 올려놔. 나 내일 은행 가서 얘기할 일이 있는데, 설마 네 모닝 끌고 가라는 건 아니겠지.”“...”“됐고, 나 이제 회의 들어가야 하니까 너 얼른 집에 들어와. 오늘 저녁에는 내가 들어가서 너랑 밥 먹어 줄게.”말을 마치자마자 차도윤은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서희주는 그저 기가 막혔다.그녀도 알 수 있었다.차도윤의 그 전화는 사실상 자기 딴에는 그녀에게 체면치레할 구실 하나 던져 준 거였다.어쩌면 장혜란의 몸 상태 때문에 그녀의 손이 다시 필요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녀의 롤스로이스를 돌려받고 싶었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 앞에서 높은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5화

    윤승하는 눈꼬리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어딘가 사람을 약 올리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그 안에는 명문가 자제 특유의 여유와 품격이 배어 있었다.“여보, 말해. 잘 듣고 있을게.”서희주는 ‘여보’라는 호칭에 순간 기가 막혔지만 이상하게 듣기 싫지는 않았다.서희주가 입을 열었다.“우리 결혼한 건 일단 공개하지 말자. 나 어제 막 이혼했잖아. 적응할 시간은 좀 필요해.”윤승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좋아.”“둘째, 나는 윤테 그룹 연구개발부에 들어갈 거야. 인턴 신분으로 들어가도 상관없어. 대신 때가 무르익어서 내가 내 연구팀을 꾸리고 싶어질 때는 회사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줘야 해. 급여나 처우는 내가 직접 인사팀이랑 얘기할 거고, 너는 간섭하지 마.”윤승하는 고개를 끄덕였다.“합리적이네.”“셋째, 우리 혼인신고는 했고 나도 너랑 감정을 쌓아 보겠다고 하긴 했지만, 그 감정이 생기기 전까지는 서로 존중해야 해. 강요하면 안 돼.”윤승하는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했다.“뭘 강요하면 안 되는데?”서희주는 뺨이 살짝 붉어졌지, 그래도 당당하게 말했다.“나한테 너랑 자라고 강요하면 안 돼. 우리가 한 번 관계를 가진 건 맞지만, 그렇다고 내가 두 번째도 원한다는 뜻은 아니야.”지금 와서 떠올려 보니, 서희주는 어젯밤 일이 아무래도 조금은 짜인 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니면 왜 전다은이 글을 올리자마자 윤승하가 댓글을 달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다은은 급히 불려 나가고, 그 직후 윤승하가 갑자기 나타났겠는가.윤승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나는 네 의견을 충분히 존중할 거고, 절대 조금도 강요하지 않을게.”그러다 잠시 말을 멈추더니 갑자기 웃었다.“그래도 하나는 분명히 해 둘게. 네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 나한테 강제로 들이대도 돼. 나는 존중 안 받아도 전혀 상관없어.”서희주는 그를 매섭게 노려봤다.그제야 윤승하는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바뀌었다.“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어젯밤 일이 내가 일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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