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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선배

作者: 케사르
last update 公開日: 2026-10-16 06:05:00

버스 정류장 지붕 아래로 들어서자 빗소리가 한 겹 물러났다.

정류장에는 젖은 우산을 든 직장인 둘, 교복 차림 학생 하나가 서 있었다. 지오는 비닐우산을 접었다. 빗물이 우산 끝을 타고 바닥으로 흘렀다.

해솔은 지오 쪽을 보지 않았다. 지붕 끝에 서서 차도만 보고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빗줄기를 하얗게 긋고 지나갔다. 빈 택시는 오지 않았다. 해솔의 안경알에 빗방울이 몇 개 맺혀 있었다. 젖은 머리칼이 뺨에 붙어 있었다.

지오는 그 옆얼굴을 봤다.

어제 회의실에서 막혔던 말이 목 안에 아직 걸려 있었다. 오늘도 삼키면, 또 하루가 지나갈 것이다.

“해솔아.”

해솔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제… 엄마 일은.”

그 순간 해솔이 고개를 돌렸다.

“설명 안 해도 돼요.”

차가운 목소리였다.

“7년 전에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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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L]그땐 장난이었어   47화. 대답하지 마요

    “…네.”지오는 그렇게밖에 대답하지 못했다.어젯밤 지오는 해솔만 보고 있었다. 길 건너 카페 안에서 누가 자기를 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해솔이 이쪽을 보기 전에 먼저 걸음을 옮긴 것도, 해솔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그런 거였다. 채린에게 들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머신 소리가 멎었다. 채린이 컵에 뚜껑을 닫고, 홀더를 끼워 계산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제야 돌아서서 지오가 쥐고 있던 카드를 받아 갔다. 단말기에 꽂고, 빼고, 영수증 없이 돌려줬다.“끝났다는 얘기는 들었죠?”“…어제 들었어요.”“빠르네.”채린이 웃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사무실에 커피를 들고 올 때마다 복도 끝까지 들리던 웃음이었는데, 지금은 입꼬리만 조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지오는 컵을 집어 들지 못했다. 할 말을 찾았다. 미안하다고 할 수도 없었고, 괜찮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둘 다 이 사람에게 지오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채린이 계산대 너머에서 지오를 봤다.“끝났다면서 어젯밤에도 찾아왔더라고요.”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채린의 눈이 지오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무언가를 오래 참고 있는 사람처럼, 채린의 입술이 한 번 다물렸다가 열렸다.“7년 전에도 저랬어요?”지오의 손끝이 계산대 모서리에 닿았다.저랬냐는 게 무슨 뜻인지, 지오는 바로 알았다.어젯밤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 있던 해솔. 두드리지도, 부르지도 않고, 그냥 서 있다가 한참 만에 돌아서던 해솔.7년 전 학교 뒤편 벤치에서도 해솔은 그랬다. 아니, 그때는 더했다. 해솔은 울면서 매달렸다. 가지 말라고. 지오는 장난이었다고 말하고 일어섰다. 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에서 해솔이 그 자리에 남아 있다는 걸

  • [GL]그땐 장난이었어   46화. 여긴 왜 왔어요?

    해솔과 지오가 사라지고 나서도 채린은 한참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해솔은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갔고, 회사 앞에 서 있던 지오도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유리문 너머에는 가로등 아래 빈 보도만 남았다.채린은 영수증 정산을 끝냈다. 숫자는 여전히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손은 늘 하던 대로 움직였다. 머신을 끄고, 우유 통을 비우고, 쓰레기봉투를 묶었다.마지막으로 계산대 아래 서랍을 열었다.맨 안쪽에 하얀 봉투 하나가 있었다. 열흘 전쯤 등기로 온 것이었다. 받은 날 한 번 읽고, 그대로 다시 접어 넣어 둔 재계약 통지서.채린은 봉투를 꺼내 다시 펼쳤다.내용은 그날과 달라진 게 없었다.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재계약 조건이 바뀐다는 것. 바뀐 조건은 지금 매출로는 빠듯했다. 맨 아래에 다음 달 말까지 재계약 여부를 알려 달라는 문장이 있었다.이걸 처음 받았을 때 채린은 해솔에게 말할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이 고민해 달라고, 숫자 계산 좀 같이 해 달라고. 2년 동안 그런 얘기는 늘 해솔의 집 식탁에서 했었다.그런데 그 무렵 해솔은 아무 일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채린도 자기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채린은 통지서를 다시 접어 봉투에 넣었다. 서랍 맨 안쪽에 밀어 넣고 닫았다.*집에 와서 씻고 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채린은 휴대폰으로 상가 매물 사이트를 열었다. 가게 자리를 구하던 시절 매일 밤 들여다보던 사이트였다. 다시 열어 볼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다른 동네에 나와 있는 카페 자리들이 줄줄이 떴다. 대학가 골목의 열 평짜리 가게, 주택가 1층의 통유리 가게, 역 앞 상가 2층. 사진 속 가게들은 다 낯설었다. 낯선 창문, 낯선 골목, 낯선 길 건너.채린은 화면을 넘기다 멈췄다.다른

  • [GL]그땐 장난이었어   45화. 끝났어요

    오후 내내 해솔은 일만 했다.한결 납품 일정을 확인하고, 소하 쪽에서 온 메일에 회신하고, 유진이 올린 레퍼런스에 코멘트를 달았다. 지오에게도 필요한 말만 했다. 지오도 그랬다. 메신저로 파일이 오가고, 확인했어요, 네, 같은 말만 남았다. 팀원들은 아무것도 몰랐다.주차장에서 한 말이 계속 걸렸다. 나한테도 말해 주지 그랬어요. 입 밖에 내고 나서야 해솔은 자기가 그만큼 서운했다는 걸 알았다.여섯 시가 가까워지자 머릿속은 다시 어젯밤으로 돌아갔다.준비한 이야기는 끝내 하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받아 주지 않았고, 그다음 말은 꺼내 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해솔이 무언가 말하려 한다는 걸, 채린은 해솔이 아니라 지오에게서 먼저 들었다.채린에게 남긴 건 거짓말과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해솔은 이렇게 끝내는 게 싫었다.자기가 다 말한다고 채린이 덜 아파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이건 채린을 위한 게 아니었다. 해솔이 말하고 싶은 거였다. 언제부터였는지, 왜 숨겼는지, 한 번이라도 제대로 채린 앞에서 자기 입으로 말하고 싶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비겁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그 말 하면 좀 편해져?’어젯밤 채린이 물었다. 채린이 맞았다. 그래도 하고 싶었다.*여섯 시 반, 해솔은 팀장실에서 나왔다.“먼저 갈게요.”“들어가세요, 팀장님!”유진이 손을 흔들었다. 지오는 모니터에서 고개를 들었다가, 해솔과 눈이 마주치기 전에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화면에는 한결 일정표가 떠 있었다. 오늘 안에 정리하라고 한 건 해솔이었다.엘리베이터 안에서 해솔은 휴대폰을 꺼냈다. 채린과의 대화창 맨 아래에 어제 오후에 온 메시지가 그대로 있었다. 가게로 와.[문해솔] 잠깐 볼 수 있어?전

  • [GL]그땐 장난이었어   44화. 헤어지자

    헤어지자.그 말이 테이블 위에 떨어지고 나서도 해솔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끝났다는 게 잘 와닿지 않았다. 2년이었다. 이 가게 창가 자리에서, 해솔의 집 식탁에서, 현관에서 나 왔어, 하던 목소리로 이어지던 2년이 방금 한 마디로 끝났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그런데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다른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정작 해야 할 얘기는 하나도 하지 못했다는 것. 언제부터였는지, 왜 숨겼는지, 화요일 밤에 왜 집 가는 길이라고 했는지. 오후 내내 골랐던 말들이 목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해솔은 그런 자기가 싫었다.“…어떻게 알았어?”입에서 나온 건 그거였다. 미안하다는 말 다음에 나온 게 고작 그 질문이었다. 해솔도 이게 지금 할 수 있는 말 중에 제일 비겁하다는 걸 알았다. 어떻게 알았는지를 묻는 건, 어디서 들켰는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채린이 해솔을 봤다. 화난 얼굴은 아니었는데, 해솔은 그 얼굴을 오래 볼 수가 없었다.“나 바보 아니야, 해솔아.”그게 다였다. 채린은 그 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알았는지도, 어디서 알았는지도.해솔의 머릿속에 어제 오후가 떠올랐다. 카페 앞 바깥 의자에 마주 앉아 있던 두 사람. 지오는 차 안에서 맞다고 했다고만 했다. 화요일에 같이 있던 사람이 자기라고.채린은 오늘 해솔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눈치챈 것 같았다. 그래서 해솔이 말하기 전에 헤어지자고 했을 것이다.“짐은….”채린이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얹었다. 해솔 쪽은 보지 않았다.“나중에 갈게.”해솔의 집에 남은 채린의 물건이 떠올랐다. 냉장고 맨 앞 칸, 채린이 덜어 둔 쪽파 통이 아직 그대로였다.해솔은 대답하지 못하고 일어섰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

  • [GL]그땐 장난이었어   43화. 네가 말하기 전에

    해솔은 회사 건물 앞에 선 채 움직이지 못했다.채린이 들어간 카페 유리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바깥 의자 앞에 지오 혼자 서 있었다. 손에는 아직 그 커피가 들려 있었다.지오가 길을 건너왔다. 해솔 앞에 와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바닥에 놓인 박스를 한 팔로 안아 들고 해솔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해솔은 그 등을 따라가지도, 불러 세우지도 못했다.*짐 정리가 끝난 건 네 시가 넘어서였다. 한 대리가 월요일에 보자며 손을 흔들었고, 팀원들은 각자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 쪽으로 흩어졌다.지오는 해솔의 차 조수석에 탔다. 지오의 집은 해솔이 돌아가는 길 중간쯤이었다. 그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차가 출발하자 지오가 손에 들고 있던 컵을 컵홀더에 꽂았다. 컵이 홀더 바닥에 닿는 소리가 묵직했다. 뚜껑 한 번 열지 않아 처음 받았을 때 그대로 꽉 차 있었다.해솔은 그 컵을 보다가 앞을 봤다. 신호가 두 번 바뀌는 동안 참았다.“채린이가 뭐래요?”지오는 창밖을 보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화요일에 너랑 있던 사람, 나냐고 물었어.”핸들을 쥔 해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뭐라고 했어요?”“맞다고 했어.”해솔은 대답하지 못했다. 앞차 브레이크등이 켜졌다 꺼졌다.채린이 화요일을 알고 있었다. 해솔이 집 가는 길이라고 했던 그 밤, 채린은 해솔이 누구와 있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그 말을 들은 순간, 해솔은 아주 잠깐 숨이 편해졌다.적어도 채린이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내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앞에 앉아서 첫마디부터 꺼내지 않아도 될지 몰랐다. 채린이 이미 알고 있다면, 해솔은 그걸 인정하기만 하면 됐다. 생각이 거기까지 먼저 갔다.

  • [GL]그땐 장난이었어   42화. 커피 식겠어요

    지오는 컵을 받아 든 채 잠깐 서 있었다.잠깐 얘기할 수 있느냐는 말은 질문의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지오가 고를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박스는 트렁크 옆 바닥에 그대로 두었다. 채린이 먼저 길을 건넜고, 지오는 컵을 두 손으로 든 채 그 뒤를 따라갔다.카페 유리문 너머로 창가에 앉은 대학생 둘이 보였다. 채린은 문을 열지 않았다. 가게 앞에 내놓은 바깥 의자 하나를 빼서 앉더니, 맞은편 의자를 턱으로 가리켰다.“여기 앉아요. 안은 좀 시끄러워서.”유리문 너머 카페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지오는 아무 말 없이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길 건너 회사 건물 유리문이 정면으로 보였다. 조금 전 해솔이 박스를 안고 들어간 문이었다.“워크숍 다녀오셨다면서요.”채린이 다리를 꼬며 웃었다. 커피 캐리어를 들고 사무실 문을 열던 날과 똑같은 목소리였다.“해솔이 원래 그런 데 가면 고기만 굽잖아요. 이번에도 그랬어요?”“…네. 거의 그랬어요.”“PT도 잘됐다던데요. 유진 씨가 엄청 자랑했겠다.”지오는 대답 대신 컵 뚜껑만 만졌다. 홀더 너머로 커피의 온기가 손바닥에 스몄다. 입에 대지는 못했다. 이 사람이 건넨 걸 지오는 한 번도 편하게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처음 사무실에서 받은 커피도, 이 가게 창가에서 받은 흑당 라떼도, 가방에 넣어 두고 끝내 하나도 먹지 못한 쿠키도 그랬다.채린이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화요일에 해솔이랑 같이 있던 사람, 지오 씨 맞죠?”컵을 쥔 손가락이 굳었다.화요일. 회사 뒤 남해집 앞 골목. 해솔의 휴대폰에 채린의 이름이 떴고, 해솔은 지오에게 등을 돌린 채 집에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그 골목에 채린이 있었다.어디쯤 서 있었는지, 무엇까지 봤는지 지오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 밤 해솔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그 골목 어딘가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그날 지오는 해솔 바로 뒤에 서 있으면서 없는 사람이 됐다. 그게 견딜 수 없이 아파서 먼저 돌아섰고, 돌아보지 않으려고 정류장까지 걸었다.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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