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도진의 본가, 성북동 저택의 오후는 기묘할 정도로 정적에 잠겨 있었다. 거실 한쪽에서 난을 손질하던 강수한 회장과 소파에서 오침을 즐기던 김미자 사모님. 각자의 방식으로 평온한 주말을 보내던 두 사람의 적막을 깬 것은 집사의 조심스러운 보고였다.
“회장님, 사모님. 한수진이라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감고 있던 김미자의 눈이 번쩍 뜨이며 날카롭게 강수한을 쏘아봤다.
“한수진은 또 누구예요? 얼마 전에 유진인가 하는 여자가 다녀간 지 며칠이나 됐다고!” “한수진? 난 모르는 이름이야. 내 이름을 판 사기꾼이겠지.”
강수한의 단호한 부정에도 김미자의 눈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두 사람 사이의
정지상이 산산조각 난 태블릿 파편을 조용히 주워 담아 나간 뒤, 싸늘한 정적이 감도는 집무실에서 강도진은 핏발 선 눈으로 모니터 화면 속 자산 현황표를 멍하니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남미 에메랄드 광산 측에서 요구한 추가 자금을 보내기 위해 그룹 재무팀과 개인 자산 관리인에게 명의로 된 모든 계좌와 유휴 자산을 끌어모으라 지시한 결과가 스크린 위에 띄워지고 있었다.숫자를 하나씩 확인해 내려갈 때마다 도진의 안색에서는 핏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 푸르스름한 흙빛으로 변해갔다."……이게 끝이라고? 내 개인 자산과 부모님 명의의 채권까지 다 합친 게 겨우 이것뿐이야?!"도진은 목을 죄어오는 듯한 답답함에 거친 손길로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단추가 튕겨 나갔지만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남미 에메랄드 광산 지분을 매입하고 현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들어간 비용도 천문학적이었지만,
찰스가 병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한 회개 영상과, 그와 동시에 인터넷 전역에 터져 나온 강도진과의 최후 통화 음성 녹음 파일은 전국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첫 번째 공개되었던 파일이 도진도 찰스의 표절을 사전에 알고 방조했다는 증거였다면, 이번에 공개된 파일은 찰스를 사지로 몰아넣은 도진의 가혹한 꼬리 자르기가 그대로 담긴 결정타였다. "죽으려면 혼자 죽어. 네가 다 뒤집어쓰고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라고!" 스피커 너머로 울려 퍼지는 강도진의 잔혹한 목소리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와 메인 뉴스 헤드라인을 순식간에 도배했고, 중립을 지키며 관망하던 대중의 민심은 완벽하게 뒤흔들렸다. [단독] '구치소 자살 시도' 찰스 CP, 병실 바닥 무릎 꿇고 사죄… "모든 죄는 내게, 하지만 강도진을 용서 못 해" [사회] 찰스 2차 통화 폭로… "죽으려면 혼자 죽어, 네가 다 뒤집어써" 강도진 폭언 정황
CB 그룹이 전 세계 언론에 사내 조사 결과와 함께 공개한 남미 광산의 1차 채굴 결과서는 시장을 크게 흔들었다. 영롱한 초록빛 원석 수십 킬로그램의 사진과 지질팀의 서명은 자극적이었다. 대중의 시선은 순식간에 찰스의 피투성이 이송 소동에서 희귀 에메랄드 노다지로 쏠렸고, 자사주 매입과 맞물려 주가는 10만 원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고지전을 이어갔다.그러나 사내 조사 보고서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 패션 및 디자인계 내부의 분위기는 서늘하기만 했다. 수십 년간 수많은 명품 라인을 배출했던 총괄 디자이너가 구치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고, 그 뒤에 대표의 표절 방조 음성이 얽혀 있다는 사실은 디자이너 커뮤니티와 명품업계 내부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CB가 발표한 '찰스 개인의 일탈'이라는 사내 조사 보고서를 보며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어쩜 이런 깜찍한 생각을 했을까."지수의 사무실 맞은편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진우는 차분하게 커피를 마시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지수는 CB의 에메랄드 컬렉션 [Imperial Emerald: 왕좌의 빛] 정식 사전 예약 개시일에 맞춰, 법원에서 완전히
A국 중앙지방법원에서 직접 판결문을 확인하고 돌아온 제이아우라 대표실에는 정적과 함께 승자의 서늘한 여유가 감돌고 있었다.이지수는 앤티크 프레임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판결문 원본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법정에서 강도진의 핏기 없는 얼굴과 이를 악물던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지만, 지수의 표정에는 격정적인 환희 대신 당연한 이치를 확인했을 때의 담담함만이 서려 있었다."당연한 결과입니다."지수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소파 건너편에 앉아 있던 박성재 변호사와 법무팀 팀원들이 감격 어린 얼굴로 지수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이 당연한 결과를 법정에서 깔끔하게 입증해 주신 건 박성재 변호사님과 법무팀 여러분이죠. 그동안 CB의 치졸한 법적 공작을 막아내느라 다들 정말 애쓰셨습니다."지수는 책상 위 서류함에서 사전에 준비해 둔 봉투들을 꺼내 법무팀원들에게 일일이 건넸다. 그 안에는 당초 약속했던 성과금보다 훨씬 넉넉한 액수의 수표가 들어 있었다.
대학병원 특실 병동.손목에 겹겹이 흰 압박붕대를 감은 찰스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담당 의료진과 신입 변호인은 기자들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한 채, 법원에 제출할 정신감정 진단서를 서둘러 작성하고 있었다. 극단적 선택 시도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과 정신적 공황,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재판 기일을 최대한 연기하기 위한 수순이었다.같은 시각, 강도진의 지시를 받은 CB 그룹 법무팀은 대대적인 보도자료를 내고 찰스를 향해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기업 업무방해 혐의'로 강력한 형사 고발을 감행했다. 찰스의 자살 소동을 '범죄 처벌을 피하기 위한 심신미약 자작극'으로 프레임 씌우며 언론전을 펼쳤지만,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은 CB 그룹을 향한 여론의 시선은 서늘하기만 했다.— '자살 시도한 사람한테 바로 맞고소 때리는 클래스 보소. 강도진 진짜 피도 눈물도 없네.'— '심신미약 자작극이라고 덮으려고 애쓰는데, 녹음 파일 속 강도진 목소리가 너무 빼박이라 안 속음 ㅋㅋㅋ'
A국 인터컨티넨탈 호텔 펜트하우스 접견실.대형 TV 화면 상단에는 '찰스 CP 구치소 극단적 선택 시도'와 '강도진 대표 표절 묵인·방조 음성 폭로'라는 자극적인 특보가 붉은 자막으로 쉴 새 없이 타전되고 있었다. 뉴스 화면 하단에는 찰스가 피투성이가 된 채 응급대원들에게 둘러싸여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는 충격적인 생중계 영상이 끊임없이 재생되었고, 앵커들은 흥분된 목소리로 연신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대중과 언론의 여론은 한순간에 핏빛 광풍으로 휩싸여 들끓었다.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찰스와 강도진, CB 그룹의 이름으로 완전 도배되었고, 증권가 커뮤니티와 메인 뉴스 댓글창은 수만 개의 격앙된 댓글로 연신 폭발했다.— '와, 피투성이로 이송되는 거 보소…… 강도진이 사람 하나 진짜 제대로 사지로 몰았네.' — '표절 알면서도 묵인하고 사냥개처럼 부려 먹은 녹음 파일 음성 진짜 소름 돋는다. 강도진 도덕성 완전 파탄 수준임.' — '광산 800억 대박이고 나발이고 전량 매도한다. 대표가 저 모양인데 회사 꼴이 잘도 돌아가겠다.' — '아니지, 광산 채굴 정식 시작되면 주가 미
지수는 사무실 문 앞에서도 도진과 수진의 적나라한 대화를 듣고 있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수진은 기다렸다는 듯 도진의 목에 팔을 감으며 지수를 반히 쳐다봤다. 도진은 그런 수진을 보며 한 번 씩 웃고는, 손으로 수진의 허리를 쓸며 차갑게 지수를 쳐다봤다" 왜 왔어? 여기가 니가 오고 싶으면 오는 놀이터야?"지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진이 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지수는 도진의 물음에 대답대신 들고 온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툭 던져두고 차갑게 돌아서려했다. 그런 지수
A국에 도착한 슬비는 K국과 다른 차갑고 축축한 공기를 마시며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박진우씨 맞으신가요? 저는 GS그룹의 박슬비라고 합니다. 제안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런데 만날수 있을까요?"갑작스러운 전화에 진우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 GS? 내가 아는 그 GS 맞아? 그 큰 회사에서 나를 왜?'라는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피싱 아닌가요? 요즘도 이런 사기에 걸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하며 거칠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슬비는 황당한 표정으로 끊어진 전화를 한참 보다가 진우에게 메세지와 자신의 명함을 전송
이지현은 비서 슬비가 가져온 서류를 검토하다거 결국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서류 봉토 안에는 동생 지수의 처절한 결혼 생활과 강도진의 외도 증거들이 빠곡히 담겨 있었다. "하, 이지수,, 이딴 남자 때문에 그렇게 속상해하고 있었던 거야?" 지현은 화가나고 속상한듯 서류를 구기며 슬비를 봤다."박비서님은 지수의 친구이기도 하니 당분간 A국에서 가서 지수 옆에 있어 주실수 있다요? 이건 상사로서 명령이라기 보다는 지수 오빠로서의 부탁입니다. 아 그리고 지수가 부탁한 사람은 이 이사람이 좋겠군요""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날 시어머니에게 수모를 당하고 돌아온 지수는 K국에 있는 오빠 이지현에게 연락을 했다. " 오빠~ 잘 지내? 너무 오랫만에 연락했지? 실은 나 부탁하고 싶은게 있어서 ...." 지금 K국은 아침 6시였다. 지현은 시차도 잊은 채 걸려온 동생의 목소리에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다정한 웃음을 지었다."우리 공주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 줘야지. 무슨 일인데. 말만해. 오빠가 다 처리해 줄께."여전히 자신을 아껴주는 오빠의 음성이 지수는 목이 메었지만, 간신히 감정을 억눌렀다. " 오빠 나 아이가 생기면 혼자서 회사를 운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