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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제3조 개정

Author: Jino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10-15 08:39:37

제3조. 스킨십은 손잡기까지만. 그것도 필요할 때만.

(네 조항 중 끝까지 개정되지 않은 조항. 설 연휴 첫날 밤까지는.)

설 연휴 첫날 아침 여덟 시. 이현의 차가 서윤의 오피스텔 앞에 섰다.

서윤은 조수석 문을 열다 멈췄다. 뒷좌석에 선물 상자 세 개가 쌓여 있었다. 배, 한과, 막걸리. 추석과 똑같았다.

그리고 상자 옆에,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손주며느리 왔나."

"……할머니?"

"어제 올라왔다. 이놈 집에서 잤어. 집이 너무 반듯해서 잠이 안 오더라."

할머니 무릎 위에는 보자기가 하나 놓여 있었다. 분홍색. 안에서 떡 냄새가 났다.

"떡국 떡이다. 두 되."

서윤은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컵홀더에는 컵이 하나 꽂혀 있었다. 아이스 바닐라라떼. 뚜껑 옆에 반듯한 글씨. '시럽 1/2, 얼음 조금'.

서윤은 가방에서 종이컵 하나를 꺼냈다. 오는 길에 산 뜨거운 아메리카노. 옆면에 검정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조금 삐뚤게.

'뜨거운 거, 식혀서'.

이현이 그 컵을 받아 들고 한참 봤다.

"……이거 직접 쓰신 거예요?"

"카페 사장님이 바빠 보여서요."

뒷좌석에서 할머니가 혀를 찼다. "둘이 뭐 하는 거냐. 커피에 편지를 쓰냐."

고속도로는 추석보다 덜 막혔다. 할머니는 가는 내내 퀴즈를 냈다. 이현이 몇 살에 걸음마를 뗐는지, 처음 한 말이 뭐였는지, 초등학교 때 반장 선거에서 몇 표를 받았는지. 서윤은 하나도 맞히지 못했다. 이현은 운전하며 귀가 계속 빨갰다.

"두 표." 할머니가 말했다. "지 표랑, 짝꿍 표. 짝꿍이 여자애였다."

"할머니."

"그 짝꿍 이름이 뭐였더라."

"할머니, 그만."

서윤은 창밖을 보며 웃었다. 빨대를 물었다. 씹지 않았다.

솔뫼리 대문 앞에는 이모 셋이 서 있었다. 나란히. 팔짱을 끼고. 면접관처럼.

차가 서자 할머니가 제일 먼저 내렸다. 그리고 이모들 쪽으로 걸어가, 이모 셋 옆에 나란히 섰다. 팔짱을 꼈다.

면접관이 넷이 됐다.

"……할머니, 왜 그쪽에 서세요." 이현이 말했다.

"나도 물어볼 게 많다." 할머니가 말했다. 큰이모가 할머니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둘째 이모가 할머니 키를 가늠했다. 막내 이모는 할머니의 분홍 보자기를 보고 물었다. "혹시 콩송편 빚으시는……"

"그렇다."

"저도 콩송편 좋아해요."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손을 잡았다. 동맹이었다.

복실이가 마당에서 튀어나왔다. 이현 앞에서 벌러덩 누워 배를 보였다. 그리고 할머니 앞으로 가서, 또 누웠다.

"이 개는 우리 집안 사람을 알아보네." 할머니가 흡족하게 말했다.

엄마와 할머니의 사돈 인사는 마루에서 이루어졌다. 엄마가 절을 하려 하자 할머니가 손을 저었다. 할머니가 절을 하려 하자 엄마가 팔을 붙잡았다. 둘은 결국 서로의 팔을 붙잡은 채 한참 웃었다. 아빠는 옆에서 막걸리 병을 들고 기다렸다.

"사돈 어른, 막걸리 한 잔."

"한 잔만 해라. 나 많이 먹으면 화투 친다."

"화투 좋지요."

"우리 손주는 화투에서 계산하는 놈이다. 조심해라."

"압니다. 추석에 봤습니다." 아빠가 드물게 길게 말했다. "그래도 잘 져 줍디다."

점심 준비를 하는 동안 엄마가 서윤을 부엌 구석으로 끌고 갔다. 전 부칠 반죽 그릇을 안긴 채였다.

"야."

"왜."

"너 요즘 전화할 때 '그 차 씨가 또' 안 하더라."

"……안 했나."

"석 달째 안 했어. 그 대신 '이현이가' 해." 엄마가 반죽을 휘저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내려갔어. 가을에 전화로 말했지."

"응."

"지금은 더 내려갔어."

서윤은 반죽 그릇을 내려다봤다. 달걀 노른자가 천천히 풀리고 있었다.

"엄마, 그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좋은 거지." 엄마가 서윤의 등을 두드렸다. "너네 아빠가 나한테 처음 막걸리 사 온 날, 나도 목소리가 그랬대. 외할머니가 그러더라."

마루 쪽에서 이현이 동그랑땡 뒤집개를 들고 서 있었다. 추석 때처럼 거실에 앉아 있으라는 말을 벌써 두 번 들은 얼굴이었다.

점심상에서 큰이모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추석 때와 같은 자세였다.

"자, 이번엔 서윤이한테 묻는다. 이현이 제일 싫어하는 음식?"

모두의 시선이 서윤에게 꽂혔다. 이현도 봤다. 할머니도 봤다.

"콩송편이랑 쑥갓이요." 서윤이 말했다. "먹긴 먹는데, 먹을 때 표정이 일자가 돼요. 원래도 일자인데, 더 반듯한 일자요."

할머니가 무릎을 쳤다. "맞다! 그 얼굴이다!"

"생일은?" 둘째 이모가 물었다.

"11월이요. 회사 워크숍 첫날."

"커피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요. 여름에도. 김 나는 걸 그냥 마셔요. 식도에 안 좋은데."

"언제부터 좋아했어?" 막내 이모가 물었다. 이번엔 서윤에게.

서윤은 잠깐 생각했다. 거짓말을 지어낼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대답이 늦었다.

"……기준표 만들 때쯤이요. 가을에."

"기준표?"

"그런 게 있어요."

막내 이모가 한참 서윤을 보다가 팔짱을 풀었다.

"인정." 막내 이모가 말했다. "완전 인정. 치과 원장도 간호사랑 잘 사귄다더라. 다 잘 됐다."

식탁 밑에서 이현의 손이 서윤의 손을 찾았다. 서윤은 기다렸다는 듯 잡았다. 깍지가 한 번에 맞았다. 이번엔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더 오래 잡고 있었다.

윷놀이는 할머니의 압승이었다. 이현은 계산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윷을 던질 때마다 모가 나왔다.

밤이 되자 서윤은 마당 평상에 나와 앉았다. 하늘에 달이 없었다. 그믐이었다. 추석에 그렇게 크던 보름달이 한 바퀴를 돌아 완전히 비워지는 날. 내일이면 다시 가느다랗게 차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대신 오늘은 별이 많았다.

이현이 담요를 들고 나왔다.

"어머님이 갖다 드리래요."

"추석에도 그 말 했어요."

"추석에도 어머님이 그러셨어요."

그는 담요를 서윤 무릎에 덮어 주고 옆에 앉았다. 맞은편이 아니라, 옆에. 그리고 셔츠 주머니에서 노란 포스트잇 하나를 꺼냈다.

"개정안 올립니다."

서윤은 포스트잇을 받아 휴대폰 불빛에 비췄다. 반듯한 글씨.

제3조(개정). 스킨십은 손잡기부터. 그것도 필요할 때마다.

서윤은 두 번 읽었다. 그리고 웃음이 터졌다.

"'까지만'을 '부터'로요?"

"두 글자 바꿨어요."

"'필요할 때만'은 '필요할 때마다'."

"그건 한 글자요."

"필요할 때마다면, 얼마나 자주예요?"

"공수 계산해 봤는데요." 이현이 별을 올려다봤다. "꽤 자주요."

서윤은 지갑을 꺼냈다. 카드칸에서 냅킨을 꺼내 무릎 위 담요에 펼쳤다. 파기된 계약서. 노란 포스트잇이 붙은 제2조. 그리고 밑줄을 두 번 그은, 냅킨이 살짝 찢어진 제3조.

그녀는 개정안 포스트잇을 제3조 위에 붙였다. 밑줄 두 번이 노란 종이 밑으로 사라졌다.

"검토 의견은요?" 이현이 물었다.

"없어요. 승인."

"서명은요?"

"나중에요."

"왜요."

"지금 필요한 게 있어서요."

이현이 서윤을 봤다. 별빛이 어두워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알 수 있었다. 5년 동안 맞은편에서 봐 왔으니까.

"……지금 필요해요?" 그가 물었다. 목소리가 반 톤 낮았다. 카페에서 손가락이 첫 마디에 걸려 망설이던 그날처럼.

"필요해요."

이현이 고개를 숙였다. 아주 천천히. 반박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서윤은 반박하지 않았다.

짧았다. 담요 위의 냅킨이 바람에 한 번 들썩일 만큼. 끝나고 나서 둘 다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당 한쪽에서 복실이가 꼬리로 흙바닥을 탁탁 쳤다.

"……이건 개정된 제3조 적용인 거죠." 서윤이 먼저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왔다.

"네. 손잡기 '부터'니까요. 그 다음은 조항상 허용 범위예요."

"그런 해석 누가 정했어요."

"방금 생겼어요."

다음 날 아침은 세배였다.

큰이모네 손주 셋이 마루에 나란히 서서 절을 했다. 서윤은 지갑을 열어 세뱃돈을 꺼냈다. 만 원짜리 세 장. 그런데 지폐를 빼는 순간, 카드칸에 접혀 있던 무언가가 같이 딸려 나왔다.

냅킨이 마루 바닥으로 팔랑 떨어졌다.

서윤이 손을 뻗기 전에, 복실이가 먼저 물었다.

"복실아! 안 돼!"

복실이는 신이 났다. 꼬리를 흔들며 마루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부엌 앞에서 떡국 떡을 썰고 있던 이모 셋과 할머니 앞에 냅킨을 툭 떨어뜨렸다. 칭찬을 기다리는 얼굴로.

큰이모가 냅킨을 집어 들었다. 노란 포스트잇 두 장이 붙은, 천처럼 부드러운 냅킨.

"이게 뭐냐."

서윤과 이현이 동시에 일어났다. 너무 늦었다.

큰이모가 돋보기를 코에 걸쳤다. 그리고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퀴즈를 낼 때의 목소리로.

"제1조. 본 계약의 기간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자정까지로 한다……?"

부엌이 조용해졌다. 둘째 이모의 칼이 떡 위에서 멈췄다. 막내 이모가 할머니의 팔을 붙잡았다. 엄마가 행주를 떨어뜨렸다.

큰이모가 한 줄씩 내려 읽었다. 제2조. 포스트잇. 제3조. 또 포스트잇. 그리고 네 번째 줄에서, 돋보기 너머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4조. 서로에게 진짜로 빠지면, 즉시 계약 파기."

큰이모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모 셋과 할머니와 엄마가, 동시에 마루 쪽을 돌아봤다.

"……서윤아."

"네, 이모."

"이 계약, 추석 때부터였냐?"

서윤은 이현을 봤다. 이현은 서윤을 봤다. 식탁 밑이 아니라서, 둘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서로의 손을 찾았다.

설 연휴는 아직 이틀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큰이모의 퀴즈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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