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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새 계약서, 조항은 하나

ผู้เขียน: Jino
last update วันที่เผยแพร่: 2026-10-15 08:39:25

제1조. 정서윤과 차이현은 서로에게 계속 빠진다.

(기획서 양식, A4 한 장. 조항은 이것 하나. 이번엔 밑줄이 두 번이다.)

월요일 오전 열 시, 까치 오픈 전 마지막 점검 회의.

"오픈 공지 문구에 '까치가 당신의 마음을 전합니다'는 좀 과해요." 이현이 노트북을 반쯤 덮었다.

"과한 게 이벤트예요."

"과하면 유저가 부끄러워해요."

"부끄러운 게 설렘이에요."

"설렘이랑 부끄러움은 다르죠."

"결과는 같죠."

회의실의 여섯 명이 동시에 커피를 마셨다. 3주 만이었다. 개발팀 막내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눈을 감았다. 뭔가에 감사하는 얼굴이었다.

팀장이 두 손을 들었다. "자, 자. 문구는 중간으로. '까치가 편지를 전합니다'. 됐지?"

"네."

"네."

동시였다. 둘은 동시에 서로를 노려봤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조금,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건 5년 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민지가 테이블 밑에서 휴대폰을 두드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회의가 끝나고 씨름 방 공지가 바뀌었다.

[휴전 종료. 씨름 재개. 방장은 기쁘다.]

[추가: 차 선임 파란등대 거절 메일 오늘 아침 9시 2분 발송 확인. 주말 내내 썼다고 함. 출처는 비밀.]

"출처가 팀장님이잖아." 서윤이 민지의 휴대폰 화면을 보며 말했다.

"선배, 그건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방장 보호 원칙."

오후에 팀장이 이현을 불렀다. 문이 닫힌 회의실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나올 때 팀장은 코를 한 번 훌쩍였고, 이현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씨름 방에는 그 장면이 '방장 눈물 목격담'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왔다가 삼 분 만에 삭제됐다.

점심때 민지가 국숫집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 친구분은요? 그 약속 저주 걸린 친구분."

서윤은 젓가락을 멈췄다. 그리고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은 다음에 말했다.

"잘 됐어."

"진짜요?"

"약속을 깼대. 먼저."

"오." 민지가 눈을 크게 떴다. "상대방은요?"

"상대방은 처음부터 깨고 있었대. 몰래."

민지는 한참 서윤을 보다가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커피 쿠폰이었다. 투표로 딴 스물여섯 장 중 한 장.

"이거 친구분 드리세요. 축하 선물이요."

"……고마워. 전해 줄게."

"그리고 선배." 민지가 쿠폰을 서윤 손에 쥐여 주며 속삭였다. "친구분한테, 저 처음부터 알았다고도 전해 주세요. 보자기 때부터."

퇴근 무렵 메신저가 울렸다.

[차이현: 오늘 저녁, 저희 집 괜찮아요? 새 계약서 초안 나왔습니다.]

[차이현: 김치찌개도 있어요. 솔뫼리 김치.]

[정서윤: 제 몫 김치요?]

[차이현: 포스트잇 아직 붙어 있습니다.]

이현의 집은 회사에서 세 정거장이었다. 자취 9년 차의 집은 반듯했다. 책장의 책이 키 순서대로 꽂혀 있었다. 신발장의 신발 앞코가 전부 같은 방향이었다. 부엌 선반에는 컵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크리스마스에 서윤이 준 남색 텀블러였고, 다른 하나는 새 머그컵이었다.

머그컵 옆면에 반듯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컵 전용 매직으로. '시럽 1/2, 얼음 조금'.

"……머그컵에 얼음 조금은 뭐예요."

"여름에 쓰시라고요. 미리요."

김치찌개는 맛있었다. 두부가 전부 같은 크기였다. 서윤은 두부 한 조각을 숟가락에 올려 들여다봤다.

"자로 재요?"

"눈대중이에요. 9년 하면 돼요."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더 반듯해요."

"사진은 제가 못 찍어서 그래요. 할머니가 그러셨잖아요."

"거절 메일, 진짜 보냈어요?"

"보여 드려요?"

"……네."

이현이 휴대폰을 건넸다. 비밀번호는 여전히 0302였다. 보낸 편지함 맨 위. 제목은 '제안 거절의 건'. 본문은 짧았다.

'좋은 제안 감사드립니다. 현재 자리에서 끝까지 맡아야 할 일이 남아 있어 정중히 거절드립니다.'

"끝까지 맡아야 할 일이 뭔데요."

"까치 2차 업데이트요. 색 추가."

"……그거 제가 우긴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손대면 깨진다고."

"네. 깨지면 안 되니까요."

서윤은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벽에 걸린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2월. 설 연휴 첫날 칸에 반듯한 글씨로 작게 무언가 적혀 있었다. 동그라미까지 쳐서.

'제3조'.

이현이 서윤의 시선을 따라가더니, 일어나서 달력을 한 장 넘겼다. 3월이 나왔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방금 뭐 숨겼어요?"

"일정이요. 아직 공개 전이라서."

설거지는 서윤이 하겠다고 했다. 이현은 안 된다고 했다. 둘은 싱크대 앞에서 오 분 동안 싸웠다. 결국 이현이 씻고 서윤이 헹구기로 합의했다. 합의안은 서윤이 냈고, 이현이 공수를 따졌고, 팀장은 없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이현이 식탁 위에 A4 한 장을 놓았다.

서윤은 그 종이를 보자마자 알아봤다. 회사 기획서 양식이었다. 그녀가 5년 동안 쓴, 그리고 이현이 3년 동안 반려해 온 바로 그 양식. 상단에 문서 번호 칸이 있고, 오른쪽 위에 결재란이 세 칸 있는.

"……이거 제 양식이잖아요."

"사내 공용 양식이에요."

"제가 만든 거예요. 3년 차 때."

"그래서 골랐어요. 이번엔 서윤 씨 양식으로 하고 싶어서."

서윤은 종이를 읽었다.

문서명: 연애 기획서 v1.0

작성: 차이현 / 검토: 정서윤

배경: 2021년 3월 2일 입사 연수. 강당 맨 뒷줄. "이건 제 의견이 아니라, 유저가 이렇게 느낄 거라는 얘기예요."

목표: 맞은편 말고, 옆자리.

기간: 정하지 않음. (자정 같은 거 없음)

조항: 1개.

제1조. 갑과 을은 서로에게 진짜로 빠진 상태를 유지한다.

서윤은 빨간 볼펜을 달라고 했다. 이현은 이미 식탁 위에 빨간 볼펜을 올려 두었다. 이 사람은 그녀가 기획서를 받으면 뭘 할지 알고 있었다.

"검토 의견 드릴게요."

"네."

"첫째. '갑과 을'. 빼요."

"왜요."

"이번엔 갑을 없애요. 이름으로 써요.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 따지는 거 이제 안 해도 되잖아요."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윤이 '갑과 을'에 줄을 긋고 위에 적었다. '정서윤과 차이현'.

"둘째. '빠진 상태를 유지한다'. 너무 수동적이에요. 유지는 현상 유지잖아요. 서버 유지보수 같아요."

"그럼요."

"'계속 빠진다'. 진행형으로."

"그건 공수가 계속 드는 건데요."

"들여요. 계속."

이현이 웃었다. 소리 내서. 이 집에서 처음 들어 보는 소리였다.

"셋째." 서윤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진짜로, 는 빼요. 이번엔 가짜가 없으니까 '진짜'라고 쓸 필요가 없어요."

"……그건 좋네요."

수정된 조항은 이렇게 됐다.

제1조. 정서윤과 차이현은 서로에게 계속 빠진다.

"밑줄은요?" 이현이 물었다.

"그을게요. 두 번."

서윤은 냅킨에서 제3조에만 긋던 밑줄을, 이번엔 이 조항 하나에 그었다. 두 번. 종이는 찢어지지 않았다. A4는 냅킨보다 튼튼했다.

"위반 시 조항은요?" 이현이 물었다. "부칙 같은 거."

"위반하면요?"

"빠지지 않으면요."

서윤은 그를 봤다. 5년 동안 맞은편에서, 넉 달 동안 옆에서 본 얼굴.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이현이 잠깐 말을 잃었다. 첫날 밤 파라솔 아래에서 그가 한 말이었다. 이번엔 서윤이 돌려줬다. 이 사람이 늘 그랬듯이, 꼭 이럴 때.

"……그럼 부칙은 없는 걸로."

서명란은 맨 아래에 두 칸이었다. 서윤은 가방에서 매직을 꺼냈다. 크리스마스에 받은 네 자루 중 검정. 한 번도 컵 말고 다른 데 써 본 적이 없었다.

'정서윤'.

매직이라 글씨가 굵었다. 조금 삐뚤었다. 그래도 번지지 않았다.

이현은 셔츠 주머니의 볼펜으로 옆에 썼다. '차이현'. 여전히 반듯했다.

"원본은 누가 보관해요?" 서윤이 물었다.

"서윤 씨가요. 저는 사본으로."

이현이 휴대폰을 꺼내 A4를 찍었다. 찰칵. 플래시가 터졌다. 첫날 밤과 똑같았다.

"사진첩 맨 위에 둘 거죠."

"냅킨 사진 위에요."

서윤은 A4를 반으로 접어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지갑을 열었다. 카드칸에는 여전히 그 냅킨이 있었다.

"그건 이제 파기된 거잖아요." 이현이 말했다.

"기록이니까요. 기획자는 이전 버전 안 지워요. v1이 있어야 v2가 왜 나왔는지 알죠."

"……맞는 말이네요."

"그리고 제3조 말인데요."

이현이 서윤을 봤다.

"새 계약서엔 스킨십 조항이 없잖아요." 서윤이 지갑을 닫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톤 낮았다. 그녀도 알았다. "그건 어떻게 해요?"

이현이 잠깐 천장을 봤다. 그리고 대답했다. 스펙 문서를 읽는 목소리였는데, 귀가 빨갰다.

"그건 다음 버전에서요. 개정안 올리겠습니다."

"언제요?"

"설에요."

"왜 하필 설이에요."

"추석에 시작했으니까요. 설에 고치는 게 맞죠. 제1조가 그랬던 것처럼."

현관에서 서윤이 신발을 신는 동안 휴대폰 두 대가 동시에 울렸다. 둘은 서로를 보고, 동시에 화면을 봤다.

[할머니: 설에 솔뫼리 간다]

[할머니: 사돈댁 인사]

서윤은 신발 한 짝을 신은 채로 굳었다. 그 사이 가족 단톡방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엄마: 이현이 할머님이 오신다고???????]

[큰이모: 사돈 어른 오시면 윷놀이 판 하나 더 사야겠다]

[둘째 이모: 할머님 한복 치수도 여쭤봐라]

[막내 이모: 그 할머님이 콩송편 빚으시는 분이냐]

[아빠: 막걸리 세 병]

설 연휴 첫날, 솔뫼리 대문 앞에는 이모 셋과 할머니 한 분이 나란히 서 있을 예정이었다.

팔짱을 끼고. 면접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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