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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작가: 손발 땀쟁이
“어제 벌써 그 쓰레기한테 이혼하자고 했어? 한진후는 뭐래?”

“내가 괜히 또 심술 부리는 줄 알더라.”

주예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느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일 선물 때문에 이러는 거냐고도 물었어.”

“와, 진짜 어이없다!”

성아는 열이 뻗쳐서 액셀을 끝까지 밟아 버릴 뻔했다.

“아내랑 상간녀도 구분 못 해? 결혼한 남자한테 첫사랑이 아무리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아도 그건 결국, 상.간.녀라고!”

주예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입술만 살짝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아는 생각할수록 더 화가 치밀었다. 목소리도 자꾸 높아졌다.

“네가 결혼하고 얼마 안 됐을 때 너희 아버지가 암 진단받았잖아. 낮에는 학교 다니고 밤에는 병원 뛰어다니던 네가, 한진후 어머니랑 할머니 뒤치다꺼리까지 다 해냈는데!”

“성아야...”

“한진후 욕 안 하면 내가 답답해서 죽겠어.”

성아는 앞만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상간녀도 기가 막히지. 세상 어느 때인데 남의 남편을 뺏어? 강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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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195화

    정재는 자연스럽게 한 걸음 더 다가와서, 주예를 차가운 대리석 세면대와 자신의 몸 사이에 가두듯 세웠다.“주예야.”낮게 부르는 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었다.정재는 눈앞의 주예를 한참 바라보다, 얼굴을 목덜미 가까이에 묻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며칠 동안 쌓였던 피로가 그제야 가라앉는 듯했다. 오늘 밤의 주예는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다.“나 오늘 밤 P국으로 가. 한 달 정도 있어야 해.” 정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떠나기 전에 눈앞의 주예를 충분히 보고 싶었다.주예도 정재를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연회장에서 정재의 정략결혼 이야기를 들었던 게 떠오르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막 정재를 밀어내려던 때, 가까이 붙은 정재에게서 특유의 서늘한 향과 함께 아주 희미한 피 냄새가 느껴졌다.주예의 표정이 굳었다. “당신 다쳤어?”정재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주예가 알아차린 게 놀라웠지만 대충 넘기려고 했다. “안 다쳤어. 네가 괜히 예민한 거야. 왜, 내가 걱정돼?” 정재는 장난스럽게 말을 돌려 주예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하지만 주예는 그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정재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어디 다쳤는데? 나한테 보여줘.”마음이 약해진 정재가 막 사실대로 말하려고 하는데, 복도 모퉁이에 드리운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몰래 엿듣는 사람이 있었다.정재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주예가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짧게 눈짓을 보낸 뒤 일부러 선을 그었다. “임주예, 내가 다쳤든 말든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오늘은 선을 넘었어. 다음부턴 이러지 마.”주예는 정재의 눈짓을 이해했다. 일부러 연기한다는 걸 알면서도 정략결혼 이야기가 떠오르자 마음 한구석이 시큰하면서 아팠다. 만약 이게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었다면 많이 아팠겠지만, 그렇다고 매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런 생각이 들자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 그래도 주예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넘겼다. “걱정 마. 난 오늘 연회 주최자니까 손님 상태를 확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194화

    그렇다. 규나는 이제 강빈까지 미워하게 됐다.규나는 주예의 팔을 놓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이내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주예를 보며 말했다. “가족을 찾은 건 아직 축하도 못 했네. 축하해.”‘뭐야, 진짜.’주예는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규나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몰라도 지금 모습은 정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게다가 자신이 고씨 집안의 손녀가 아니라고 의심한다 해도 두려울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은 고홍근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때 진후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규나가 주예에게 달려든 걸 보자 억눌러 두었던 분노가 터졌다. 멀리서 전 여자친구에게 붙잡혀 있던 강빈이 진후에게 눈짓으로 규나부터 잡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또 놓치면 곤란했다.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소란을 만들 수는 없었다. 진후는 규나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힘이었다.“아, 아파!”규나는 가련한 표정으로 신음했지만, 진후는 더 이상 그런 모습에 흔들리지 않았다. 주예에게서 떼어 내듯 규나를 확 잡아당겼다. 규나가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해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진후는 주예를 돌아봤다. 거칠던 눈빛이 금세 누그러졌다. “괜찮아?”말을 마치자 머리 위로 다시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동시에 아랫배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열기가 치솟았다.‘둘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주예는 차갑게 바라봤다. 역시 둘은 천생연분이었다. 나란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문득 진후가 규나는 자신이 오랫동안 찾던 그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지금 모습을 보면 둘 사이는 이미 금이 간 모양이었다.‘꼴좋네.’규나가 진후의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리자 진후는 놓칠까 봐 주예에게 설명했다. “나중에 다시 올게. 일단 규나부터 데리고 나가서 강빈 형님의 사람들에게 넘길 거야. 여기 있어.” 주예가 오해할까 봐 자신의 행선지를 설명하다니, 진후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주예는 애초에 진후가 어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193화

    “심정재, 하... 너도 왔네. 제법이야.”서장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정재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이 무슨 뜻으로 말을 주고받는지 알 수 없었지만, 서장엽이 거리낌 없이 정재의 이름을 부른다는 사실에 놀랐다.당장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어 보이자, 고홍근은 손님들에게 다시 연회를 즐기라고 말했다. 정재는 진석을 불러서 서장엽의 움직임을 한시도 놓치지 말라고 조용히 지시했다.하늘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정재에게 매달릴 수도 없어서 그대로 서 있었다. 곧 친한 여자들이 모여들면서 부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 언니, 심 회장님이 언니 지켜 주려고 온 거 맞죠? 곧 좋은 소식이 있는 거 아니에요?” 하늘은 수줍은 척 고개를 숙였지만 눈에는 우쭐한 기색이 감추지 못했다.조금 전 서장엽에게서 각자 기회를 보자는 말을 들은 규나는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미리 연회장 직원 한 명을 돈으로 매수해 놓고서 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그런데 고홍근이 되찾았다는 외손녀가 주예라는 걸 알게 되자, 질투가 이성을 집어삼켰다. 규나는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잔뜩 힘이 들어갔다. 주예의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어딘가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는 얼굴이었다. ‘왜 좋은 건... 전부 임주예 차지야?’‘한진후도, 고씨 집안도, 저 비싼 맞춤 드레스까지!!’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규나의 머릿속으로 여러 장면이 스쳤다. 강씨 집안에서 지내던 동안 규나는 원하는 건 뭐든 다 손에 넣고 살았다. 귀하게 떠받들어지던 딸이었기에, 남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늘 다른 사람들이 규나를 부러워했다. 살면서 이 정도로 누군가를 질투한 건 딱 두 번이었다. 한 번은 지금, 또 한 번은 20년 전 교통사고 현장이었다.그때 강씨 집안의 어린 여자아이 얼굴과 눈앞의 주예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규나의 눈동자가 확 굳어졌다. 주예의 허리 부근에 나비 모양의 모반이 살짝 드러나 있었다. 20년 전 비가 내리던 밤, 규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192화

    ‘뭐라고?’ 진후는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굳은 채 주예의 뒷모습만 노려봤다. 어느새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제수씨가 고씨 집안 사람이었구나.” 강빈이 감탄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후를 힐끗 보니, 전처를 되찾으려는 길이 더 험난해질 것 같았다. 조금 전 주예를 보며 느꼈던 묘한 익숙함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고씨 집안과 강씨 집안은 예전부터 왕래가 거의 없었으니, 그 느낌은 착각이었을 거라고 여겼다.그 뒤로 고홍근이 무슨 말을 더 했는지 진후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시선에는 사람들 한가운데 서 있는 주예만 담겼고, 가슴 한쪽이 설명하기 어렵게 쓰렸다.진후는 옆에서 직원이 건넨 술잔조차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잔 안에는 로제 샴페인이 들어 있었다. 멍한 상태로 잔을 받아 든 진후는 단숨에 한 잔을 비웠다.고홍근의 소개가 끝나자 손님들은 다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여러 사람이 고홍근에게 다가가 축하 인사를 건넸고, 자연스럽게 주예 주변으로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주예의 차림이 초라하다며 눈살을 찌푸리던 사모님들까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다가왔다.그때 연회장 문이 다시 열리고 남녀 두 사람이 들어섰다. 남자는 짙고 뚜렷한 이목구비 때문에 언뜻 혼혈처럼 보였고, 눈매에는 위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경울시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얼굴이었지만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바로 서장엽이었다. 서장엽이 데리고 온 여자는 흰 드레스를 입고 여린 인상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고홍근이 막 되찾았다고 소개한 손녀와 이목구비가 묘하게 닮아 있었다.고홍근도 그쪽을 보자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다.“서장엽, 내가 너한테 초대장을 보낸 기억은 없는데?”“참 서운하게 말씀하시네요. 예전엔 저를 조카라고 불러 주셨잖아요. 외손녀를 찾으셨다기에 옛날 생각도 나서 한번 와 봤어요.”서장엽은 뻔뻔한 얼굴로 거리낌 없이 웃었다.“흥. 우리 집안은 너 같은 귀한 손님까지 모실 형편은 안 돼.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191화

    연회장에 들어선 강빈은 두 사람을 보자 또다시 묘한 익숙함을 느꼈다.먼저 주예에게 시선이 갔다. 서늘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눈길을 붙잡았고, 이목구비에서도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났다. 진후는 아예 넋을 잃고 바라봤다. 자신이 알던 주예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기억 속 주예는 작고 여린 데다 순한 인상이었지만, 눈앞의 주예는 달랐다. 차갑고 맑은 분위기에 고급 맞춤 드레스까지 더해지자,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사람처럼 보였다.강빈은 자연스럽게 주예 옆에 있는 성아를 바라보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비볐다. 분명 처음 보는 여자였다. 그런데 왜 성아까지 낯이 익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미치겠네.’강빈은 정말 신경과나 안과에라도 가 봐야 하나 싶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디선가 본 것처럼 느껴지는 게 영 이상했다.주예는 진후를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주예에게 이혼한 전남편은 이제 남이나 다름없었다. 진후는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빠르게 다가왔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 있어?” 속으로는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강빈에게 조금 고맙기까지 했다.주예는 진후를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정말 몰라?”기가 막혔다. 주예의 어머니는 고경란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남편이었던 진후까지 그 이름을 모른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나 싶었다. 고홍근이 보낸 초대장에는 오래전 잃어버린 외손녀가 고경란의 딸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도 진후는 고경란이라는 이름조차 낯설어했다.주예는 ‘한진후’라는 사람을 이제 다 알았다고 생각할 때마다, 번번이 새로운 벽을 보게 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진후는 잠시 굳었다. 주예의 말에 다른 뜻이 담겨 있다는 걸 눈치채고 머리를 굴렸다. “설마 고홍근 회장님이 당신한테도 초대장을 보낸 거야?”진후는 이제야 앞뒤가 맞는다고 생각했다. 주예가 주변에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니, 고홍근도 여전히 주예를 한 대표의 아내로 알고 초대장을 보낸 모양이었다. 최근 주예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190화

    연회장 위층은 호텔 객실이었다.주예는 미리 예약해 둔 방으로 성아를 데려가서 준비해 둔 드레스 한 벌을 건넸다.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뭐? 또 사람 마음 헷갈리게 해 놓고 다른 여자랑 결혼하는 남자야? 나는 그 오빠는 좀 다른 줄 알았는데. 남자는 결국 다 비슷하다니까.”성아가 화를 냈다.‘또’라는 말이 가리키는 이전 남자는 당연히 진후였다.“심정재는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한 적도 없어. 우리 사이가 어떤지 정한 적도 없고.”주예는 담담하게 말했다.그 말이 더 깊이 빠지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하는 경고인지, 정재는 애초에 자신을 속인 사람이 아니라고 성아를 설득하려는 건지 주예 자신도 분명히 알지 못했다.정재가 자신을 챙겨 준 건 진심이었다.‘우리가 계속 남매 같은 사이로만 지냈다면 오히려 편했을까.’여자친구는 바뀔 수 있어도 여동생처럼 아끼는 사람의 자리는 하나뿐일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주예의 생각은 저도 모르게 계속 뻗어나갔다.그 표정을 본 성아는 주예가 정재를 꽤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마음이 약해진 성아가 목소리를 낮췄다.“나는 네가 또 다칠까 봐 그러는 거야. 겨우 한 번 큰일 겪고 빠져나왔는데, 또 비슷한 데로 들어가면 안 되잖아.”“응.”주예는 성아를 바라보며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커다랗고 맑은 눈, 부드럽게 이어지는 허리선과 허리 옆에 보이는 나비 모양의 옅은 모반까지 더해지니 여자 친구인 성아가 봐도 눈길이 갔다.성아는 이런 주예를 보며 걱정이 더 커졌다.‘이렇게 사람을 쉽게 믿는 얼굴이니까 전에 한진후한테도 속은 거 아니야?’성아는 갑자기 연애 상담가라도 된 듯 진지하게 가르치기 시작했다.“다음에 심정재 만나면 다른 말 하지 말고 바로 물어. ‘우리 무슨 사이야?’라고.”성아는 손가락까지 펴 가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심정재가 ‘나한테 계획이 있어’,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 설명 못 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다 너를 위해서야’, ‘나만 믿고 밖에서 하는 말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2화

    빈소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진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흘렀다.규나는 목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가에 눈물만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억울함이 가득 밴 모습이었다.결국 국화 한 송이를 집어 든 진후는 앞으로 나가 임필수의 영정 앞에 내려놓았다.영정 앞에 선 진후의 등은 곧게 펴져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데도 가슴 한쪽이 묘하게 조여 들었다.주예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후를 다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1화

    장례식장은 온기가 완전히 걷힌 듯 차가웠다.빈소에는 정적만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고, 영정 사진 앞에는 하얀 국화들만 가득 놓여 있었다.임주예는 아버지의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무릎은 이미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손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손바닥 안을 파고들 정도로 손가락을 세게 쥐고 있었다.'지금 손을 놓아 버리면, 나까지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아.'옆에서는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한 대표는 어디 갔대? 아직도 안 왔어?""아직도 몰라? 공항에 마중 나갔다더라. 기사도 떴잖아.""공항?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6화

    진후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마치 어디까지나 주예를 배려하는 사람처럼 들렸다.하지만 주예는 진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말들은 결국 진후 자신이 품고 있는 보잘것없는 죄책감을 덜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 진후는 주예가 늘 그랬듯 알아서 사양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그래.” 주예가 받아들였다.“응? 뭐라고 했어?” 진후가 멈칫했다. 뜻밖이라는 기색이 스쳤다.“좋다고. 이제 몸도 거의 다 나았고, 당신 친구들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주예는 가볍게 웃었다.‘어차피 앞으로는 만날 일도 없을 테니까.’...다음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5화

    “사모님?”여주댁이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아직 안 주무셨어요?”“응...”주예는 대답하려 했지만 목이 잔뜩 잠겨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겨우 숨 섞인 소리만 흘러나왔다.여주댁은 급히 안으로 들어와 주예의 이마에 손을 대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어머, 이게 무슨 일이에요? 열이 너무 심하잖아요.”“비를 좀 맞아서 그런가 봐요.”주예는 힘겹게 웃어 보였다.“약은 먹었어요.”“이렇게 있으면 안 되죠.”여주댁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이대로 열이 더 오르면 큰일 나요.”여주댁은 곧장 핸드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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