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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 십칠 년의 약속

Author: 신도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2 17:00:18

초인종이 울렸다. 초저녁 즈음이었다.

우진이 택배를 받아 들어왔다.

“….”

내용물을 확인한 우진의 손이 멈췄다.

상자 안에는 낡은 공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모서리가 닳아 해지고, 군데군데 얼룩까지 진 오래된 공책이었다.

우진은 한참이나 망설였다. 꺼내지 못했다. 기억, 또는 기망이 떠올랐다.

자신에 대한 책망이 가득한 그것을 잊을 리가 없었다.

열네 살의 자신이 매일 밤 끌어안고 살았던 일기장이었다.

“뭔데 그래요?”

뒤따라 나온 도희의 목소리에 우진이 황급히 상자를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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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원자   제 7장. 십칠 년의 약속

    초인종이 울렸다. 초저녁 즈음이었다.우진이 택배를 받아 들어왔다.“….”내용물을 확인한 우진의 손이 멈췄다.상자 안에는 낡은 공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모서리가 닳아 해지고, 군데군데 얼룩까지 진 오래된 공책이었다.우진은 한참이나 망설였다. 꺼내지 못했다. 기억, 또는 기망이 떠올랐다.자신에 대한 책망이 가득한 그것을 잊을 리가 없었다.열네 살의 자신이 매일 밤 끌어안고 살았던 일기장이었다.“뭔데 그래요?”뒤따라 나온 도희의 목소리에 우진이 황급히 상자를 닫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아무것도 아닌 사람 표정이 아닌데.”우진은 대답을 흘려버린 채 상자 옆면에 붙은 송장을 확인했다.발신인은 없었다. 없어도 알 것 같았다. 그것을 여태 보관하고 지금 이 시점에 보낼 사람. 단 한 명이었다.강인구.우진은 도희의 눈치를 살피며 상자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도희는 별다른 의심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4월 12일도희가 꽃을 주웠다.운동장에 핀 조그마한 꽃이었다.예쁘냐고 물어봐서 예쁘다고 했다.

  • 구원자   제 6장. 기억하지 말아요

    알 수 없는 기억에 놀라 손을 빼려던 찰나, 우진에 의해 당겨진 도희는 침대에 넘어지고 말았다. 손목을 잡힌 채 중심을 잃은 도희의 몸이 침대 위로 쓰러졌다.“이, 이봐요…! 지금 뭐 하는….”말을 끝내기도 전에 우진이 몸을 일으켰다.어느새 도희의 양손은 머리맡에 붙들려 있었다. 숨이 저절로 삼켜졌다.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우진의 얼굴은 지금까지 보았던 것과 전혀 달랐다.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듯 초점이 없는 눈. 그런데도 자신을 붙든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내가 가라고 했지.”도희는 당황했다. 벗어나려 양팔에 힘을 주었지만, 성인 남자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진의 시선이 점점 또렷해졌다.한동안 도희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도희야?”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도희는 자신을 짓누르는 힘보다 순간적으로 그 목소리에 더 놀랐다.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아주 오래전에도 누군가가 자신을 그렇게 불렀던 것 같았다.‘도희야.’희미한 목소리가 겹쳤다.하지만 기억을 붙잡기도 전에 손목의 통증이 도희를 현실로 끌어당겼다.지금 자신을 붙잡고 있는 사람은 어린 시절의 누군가가 아니었다.자신을 결혼식장에서 납치한 강우진이었다.도희가 숨을 멈췄다.‘도희 씨’가 아니었다. 분명 ‘도희’라고 했다.“손….”도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것 좀 놔줘요.”그제야 우진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는 듯했다. 도희의 손목을 붙들고 있던 손에서 순식간에 힘이 빠졌다.“아….”우진이 황급하게 몸을 일으켰다.자유로워진 도희는 곧바로 침대 끝까지 몸을 피했다. 붙잡혔던 손목이 욱신거렸다. 도희는 손목을 감싸 쥔 채 우진을 경계했다.“미안해요.”우진이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직 식지 않은 땀이 이마와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꿈을 좀 꿔서….”“무슨 꿈이요?”“….”우진의 눈빛이 도희에게 닿았다가 금세 떨어졌다.“별거 아니에요, 도희 씨.”도로 ‘도희 씨’였다.조금

  • 구원자   제 5장. 잊힌 선율

    우진은 급하게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도희는 우진의 표정을 살폈다. 우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도희 씨….”우진이 낮게 도희를 불렀다.“우리, 나갈래요?”-우진의 차가 도로 위를 달렸다.도희는 창밖만 내다봤다.며칠 만에 보는 바깥이었다.지나가는 사람들,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 길가에 늘어선 가게들.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낯설었다.“어디 가는 거예요?”“그냥요.”“그냥 어디를 가요.”도희가 그를 힐끗 바라봤다.아까부터 이상했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강우진 씨.”“….”“나 어디 데려가는 거예요?”신호가 붉게 바뀌었다. 차가 천천히 멈췄다.우진의 시선은 정면에 고정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됐다. 도희를 내려주고 돌아가면 된다. 그럼 끝이었다.우진이 옆을 슬쩍 바라봤다. 도희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저렇게 내려서면 다시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지도 몰랐다. 아니, 돌아보지 않는 편이 맞았다. 자신

  • 구원자   제 4장. 지켜보는 자

    다음 날 아침.도희가 방문을 열었을 때 우진은 거실에 없었다.식탁 위에는 간단한 아침 식사만 놓여 있었다.어젯밤의 일이 떠올라 손을 댈 생각은 들지 않았다.잠을 설친 탓인지 머리가 무거웠다. 밤새 몇 번이나 문밖의 인기척에 귀를 기울였지만, 우진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가 누구를 죽여달라고 했는지, 자신은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생각할수록 모르는 것만 늘어났다.도희는 의자를 빼려다 말고 식탁 끝을 짚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차려진 아침을 보고 있자니, 어젯밤 자신이 느꼈던 공포마저 별일 아닌 것으로 취급받는 기분이었다.도희가 식탁 앞에 서 있던 순간 현관문이 열렸다.우진이었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먼저 눈을 피한 건 우진이었다.“일어났어요?”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평소의 목소리였다.그게 도희의 신경을 더 긁었다.도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우진이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동안에도 그를 지켜봤다. 어젯밤에는 그렇게 다급하게 문 앞까지 찾아왔으면서, 지금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얼굴이었다.“어젯밤에 누구랑 통화한 거예요?”우진의 걸음이 멈췄다.“선생님이라는 사람이 누구인데요?”“….”“죽여달라는 건 또 누구고요?”“도희 씨.”“그것도 그 계획이라는 거랑 관련 있는….”순간 우진이 빠르게 다가왔다.“읍…!”커다란 손이 도희의 입을 틀어막았다.도희의 눈이 크게 뜨였다.반사적으로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어젯밤의 일이 떠올랐다.“쉿…!”우진이 아주 작게 말했다.하지만 이번에는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급해 보였다.우진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도희도 천천히 그 시선을 따라갔다.천장 구석.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그러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우진이 입을 막고 있던 손을 조심스레 내렸다.그리고 거의 숨소리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만 얘기해요.”“저게 뭐예요?”“보지 마요.”도희

  • 구원자   제 3장. 부탁 : 살인

    “이번에는…?”이상했다.어제부터 몇 번이나 그랬다. 처음 자신의 이름을 물었을 때도 기억이 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꽃다발을 보여주며 결혼식 전날의 일을 떠올리게 한 것도 그였다. 마치 자신만 모르는 무언가가 둘 사이에 있는 것만 같았다.도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우진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렸다.도희는 그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방금 ‘이번에는 꼭 자유로워질 수 있게’라고 했잖아요.”“….”“이번에는, 이라고….”우진은 장바구니 속 물건들을 괜히 계속 정리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우리 전에 만난 적 있죠?”우진의 침묵은 부정이라기보다 인정에 가까웠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도희는 확신했다. 자신은 이 남자를 알고 있었다. 기억하지 못할 뿐이었다.도희를 바라보던 그가 낮게 물었다.“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나요?”“뭘요?”“아무것도 아니에요.”“강우진 씨!”처음이었다. 도희가 우진의 이름을 똑바로 부른 것은. 우진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내 차분해진 우진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장바구니에 있는 것들을 마저 정리했다.“오믈렛, 괜찮죠?”우진은 도희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도희는 더 묻지 않고 우진을 바라봤다. 대답을 피하는 게 오히려 대답처럼 느껴졌다.우진은 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와 달걀을 차례로 넣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부터 손이 미세하게 빨라져 있었다.“왜 말 안 해줘요?”“뭘요?”“나랑 어디서 만났는지.”냉장고 문이 닫혔다.우진이 한동안 손잡이를 잡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알아서 좋을 거 없어요.”“그건 제가 판단할게요.”“….”처음으로 우진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도희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그때,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우진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전화가 아니었다. 짧은 진동과 함께 화면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그가 급하게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지만 도희가 한

  • 구원자   제 2장. 이번에는 꼭

    “급한 대로 옷은 이걸로 갈아입어요. 내일 나가서 편한 옷들 좀 사 올게요.”우진이 곱게 갠 옷가지를 내놓았다. 식사를 마쳤다고 해서 또 도희를 묶진 않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도희는 뭔가가 묘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요.”문을 나서려던 우진이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어차피 창문도, 현관문도 안 열릴 테니까.”우진은 그 말 한마디를 끝으로 방문을 닫고 나갔다.문이 닫히자 도희는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한동안 우진이 나간 문만 쳐다봤다. 다시 들어오지는 않을까 싶어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문밖에서는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도희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창문 앞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았다. 혹시 겁을 주려고 한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힘껏 당겨보았다.덜컹-창문이 미세하게 흔들릴 뿐 열리지는 않았다.한 번 더 힘을 주었다. 이번에는 양손으로 손잡이를 붙잡고 온몸의 힘을 실었다.“제발….”소용없었다.도희는 망설이다 방문으로 향했다. 문고리에 손을 올린 채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거실은 고요했다.식사를 하며 봐두었던 현관문이 눈에 들어왔다.도희는 맨발로 소리가 나지 않게 한 걸음씩 현관으로 다가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우진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등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았다.현관문 앞에 도착한 도희가 잠금장치를 살폈다.그리고 손잡이를 잡았다.움직이지 않았다.다시 한번.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그제야 우진의 말이 떠올랐다.어차피 창문도, 현관문도 안 열릴 테니까.처음부터 자신이 이렇게 할 것을 알고 있었던 걸까.도희는 손잡이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헛웃음이 났다. 절망스러웠다.방으로 돌아온 도희가 침대에 주저앉았다. 자신을 납치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대체 자신을 왜 데려온 걸까.돈도, 원장님에 대한 원한도 아니라고 했다.그렇다면 정말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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