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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부탁 : 살인

Autor: 신도아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09-08 15:00:38

“이번에는…?”

이상했다.

어제부터 몇 번이나 그랬다. 처음 자신의 이름을 물었을 때도 기억이 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꽃다발을 보여주며 결혼식 전날의 일을 떠올리게 한 것도 그였다. 마치 자신만 모르는 무언가가 둘 사이에 있는 것만 같았다.

도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우진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희는 그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방금 ‘이번에는 꼭 자유로워질 수 있게’라고 했잖아요.”

“….”

“이번에는, 이라고….”

우진은 장바구니 속 물건들을 괜히 계속 정리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죠?”

우진의 침묵은 부정이라기보다 인정에 가까웠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도희는 확신했다. 자신은 이 남자를 알고 있었다. 기억하지 못할 뿐이었다.

도희를 바라보던 그가 낮게 물었다.

“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나요?”

“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강우진 씨!”

처음이었다. 도희가 우진의 이름을 똑바로 부른 것은. 우진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내 차분해진 우진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장바구니에 있는 것들을 마저 정리했다.

“오믈렛, 괜찮죠?”

우진은 도희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도희는 더 묻지 않고 우진을 바라봤다. 대답을 피하는 게 오히려 대답처럼 느껴졌다.

우진은 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와 달걀을 차례로 넣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부터 손이 미세하게 빨라져 있었다.

“왜 말 안 해줘요?”

“뭘요?”

“나랑 어디서 만났는지.”

냉장고 문이 닫혔다.

우진이 한동안 손잡이를 잡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알아서 좋을 거 없어요.”

“그건 제가 판단할게요.”

“….”

처음으로 우진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도희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때,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우진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전화가 아니었다. 짧은 진동과 함께 화면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그가 급하게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지만 도희가 한발 빨랐다. 화면에 뜬 문자를 읽어버린 뒤였다.

[계획은 다음 주부터 시작될 거야.]

“뭘…. 시작한다는 거예요?”

차분했던 우진의 얼굴에 처음으로 선명한 긴장감이 번졌다.

우진은 휴대전화를 쥔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있는데요?”

“….”

“나…. 죽어요?”

도희의 물음에 긴장했던 우진의 표정이 풀어졌다.

“아니에요, 그런 거.”

우진은 짧게 대답하고 휴대전화 화면을 껐다.

“그럼 뭔데요?”

“도희 씨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 말을 어떻게 믿어요?”

“….”

우진은 도희를 바라보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적어도 죽이려고 데려온 건 아니에요. 이건, 믿어요.”

“그럼 왜 데려왔는데요?”

여전히 같은 질문이었다.

우진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냉장고에서 조금 전 넣어둔 달걀을 다시 꺼냈다.

“오믈렛 해줄게요.”

도희는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진 못했다. 불과 몇 초 전까지 굳어 있던 사람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프라이팬을 꺼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

저녁 식사를 끝내고 방에 들어가 있던 도희가 거실로 나왔다.

낮에 보았던 문자와 우진의 대답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더는 그가 먼저 설명해주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우진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강우진 씨.”

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왜요?”

“나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해요?”

“말했잖아요. 그때가 지나면….”

“그때가 언젠데요?”

도희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우진이 입을 다물었다.

“계속 그것만 말하잖아요. 나중에, 그때가 지나면,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도희 씨.”

“내가 여기 갇혀 있는데 어떻게 나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

“결혼하기 싫어했으니까 데려왔다면서요. 그럼 내가 고마워해야 해요?”

우진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그런 뜻으로 말한 적 없어요.”

“똑같잖아요.”

도희는 멈추지 않았다.

“그 사람들도 내 의견 같은 건 안 물어봤어요. 결혼하라고 정해놓고 따르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래서 난….”

“….”

“당신도 똑같아요.”

순간 우진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 사람들이랑 나를 똑같이 보지 마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도희가 움찔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그녀는 우진이 있는 소파 앞까지 다가갔다.

“왜요? 뭐가 다른데요?”

“도희 씨.”

“결국 당신도 내 의견은 안 물어봤잖아!”

우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희가 흠칫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우진이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도희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등 뒤로 차가운 벽이 닿았다.

쾅.

우진의 손바닥이 도희의 바로 옆 벽을 내리쳤다.

도희의 몸이 굳었다.

어느새 두 사람의 거리는 한 걸음도 되지 않았다.

“다르다고 했잖아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화를 내고 있는데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도희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미 등 뒤에는 벽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도희 씨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사람들이에요.”

“….”

“나는 아니야.”

마지막 말에서 처음으로 존댓말이 무너졌다.

“나는 다르다고. 나는 널…!”

우진의 말이 갑자기 끊겼다.

거칠어진 숨소리만 가까이서 들렸다.

도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그의 몸에 닿을 것 같은 거리가 무서웠다.

겁에 질린 눈.

우진은 천장 위를 한 번 봤다.

그제야 우진의 표정이 무너졌다. 벽을 짚고 있던 손이 느리게 내려갔다.

“미안해요.”

우진이 뒤로 물러났다.

“겁주려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미 늦었다.

도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도희는 입을 닫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은 후에야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조금 전 우진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아니야.

나는 다르다고. 나는 널.

대체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

그날 밤, 도희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거실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들렸다.

도희는 몸을 일으켰다.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우진이 보였다.

그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낮에 보았던 휴대전화를 손에 든 채였다.

“….”

도희는 문 뒤에 몸을 숨겼다.

그때 우진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예요, 선생님.”

낮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일정을 조금 당겨야 할 것 같아요.”

도희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다음 주는 너무 늦어요. 약속대로 죽여주세요, 선생님.”

도희의 숨이 멎었다.

죽여달라고? 누구를?

조금 전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적어도 죽이려고 데려온 건 아니에요.’

그 말을 믿어도 되는 걸까.

도희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삐걱-

발밑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우진의 말소리가 멈췄다.

“….”

도희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끊을게요.”

우진이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도희는 급하게 방문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희 씨.”

손이 멈췄다.

“다 들었어요?”

“….”

도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조금 전 벽을 내리치던 우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도희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

철컥.

문을 잠그려던 순간 도희의 손이 멈췄다.

잠금장치가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 떼어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도희 씨.”

이번에는 바로 문 앞이었다. 도희가 뒷걸음질 쳤다.

“문 열어요.”

“싫어요.”

“아무것도 안 할게요.”

“어떻게 믿어요?”

문밖이 조용해졌다.

“아까도 그랬잖아요. 나 안 죽인다고.”

“….”

“근데 누구한테 죽여달라고 했잖아요.”

대답이 없었다.

도희는 침대 옆에 놓인 작은 의자를 바라봤다. 혹시라도 문이 열리면 뭐라도 해야 했다.

그때 우진이 낮게 말했다.

“도희 씨 죽이는 거 아니에요.”

“그럼 누구인데요?”

“….”

“누구를 죽여달라는 건데요?”

이번에도 침묵이었다. 도희는 이를 악물었다.

“대답해요.”

잠시 후 문 너머에서 우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말 못 해요.”

그 순간 도희 안에 남아 있던 작은 믿음마저 사라졌다.

“가요.”

“….”

“제발 가요.”

한참 뒤, 문밖에서 발소리가 멀어졌다.

도희는 그제야 침대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무서워해야 하는 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어야 했다.

하지만 정작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건 따로 있었다.

나는 다르다고. 나는 널!’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왜, 조금 전에는 그런 얼굴을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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