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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

Autor: 연무
절망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버텨온 5년이라는 세월이 주마등처럼 그녀의 앞을 지나갔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반드시 5년 뒤에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희망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겨우 사흘 남은 시점, 여기서 황제의 은총을 입는다면 그녀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싶었다.

강만여는 당장이라도 남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로 차든, 물든, 할퀴든, 뭐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구오지존(九五至尊)이었다.

그에게 반항한다면 어떤 대가가 따를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체념한 그녀는 한줄기 눈물과 함께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문밖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숙비(淑妃) 마마, 여긴 들어가시면 아니되옵니다!"

"비켜라! 이 미천한 것!"

그리고 들리는 날카로운 호통소리, 곧 침전 문이 벌컥 열리고 저벅저벅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오는 발소리가 올려 퍼졌다.

방해받은 황제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면 강만여에겐 실낱 같은 희망이었다.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침상을 벗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곧 눈부신 흰 여우털 외투를 걸친 숙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다짜고짜 강만여의 뺨을 후려쳤다.

"이 여우같은 년이, 감히 폐하를 유혹하려 드는 것이냐? 다시는 그 반반한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하게 망가뜨려주마!"

강만여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몸을 비틀거렸다. 하지만 고통도 잠시,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아무리 막나가는 황제라도 숙비가 보는 앞에서 그녀를 범할 수 없을 테니까. 숙비의 아버지는 전장에서 황제를 구하다 죽은 충신이었고, 황제는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숙비를 지극히 아꼈다. 숙비가 황위를 탐하지 않는 이상,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황제는 그녀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숙비는 흐트러진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강만여의 모습을 보며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요망한 년! 변변치도 않은 몸뚱아리 하나 믿고 감히 폐하를 넘봐? 퉷! 주제를 알아야지!"

숙비가 다시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강만여를 향해 발길질을 날리려던 순간이었다. 황제가 그녀를 붙잡아 품에 가두며 달래기 시작했다.

"됐어. 그만하거라. 네가 싫다면 바로 내보내마. 괜히 늦은 밤에 씩씩거리다 잠에 못 들라."

그러자 숙비는 순식간에 표정이 풀리더니, 강만여에게 경고했다.

"썩 꺼지거라! 오늘은 폐하가 있어 봐주지만,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있으면 진짜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강만여는 축객령이 내려지자 망설임 없이 고개를 조아리고 옷을 여민 다음 밖으로 향했다.

하지만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는 황제, 결국 보다 못한 숙비가 그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투정 부리듯 가슴에 얼굴을 비볐다.

"폐하, 신첩이 앞에 있는데 왜 자꾸 저년만 보십니까? 안 그래도 저년 때문에 화병 걸릴 지경인데, 어서 위로해 주시지는 않고!"

그렇게 강만여는 서서히 황제와 숙비로부터 멀어졌고, 침전의 문턱을 넘어 문을 닫고서야 긴장이 풀려 몸을 휘청였다.

침전 밖엔 건청궁 총내관 송량언과 함께 몇몇 하급 내시들이 줄을 선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들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나온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유난히 겨울 공기가 아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손량언이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며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었다.

"겨울 밤은 몹시 추우니, 어서 처소로 돌아가 따뜻한 물에 발부터 담그고 푹 쉬거라. 그래야 내일 하루도 견뎌낼 수 있을 테니."

강만여는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외투를 꼭 움켜쥔 채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런 다음 다시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밤길을 걸어갔다.

하지만 결코 빠른 걸음은 내디딜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해야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초라한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이게도 그녀가 궁녀들의 숙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모든 등불이 꺼진 뒤였다.

그녀는 외투를 더 단단히 여미고 조심스레 어둠 속을 더듬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때, 다른 방을 지나던 순간이었다. 작은 대화 소리 안에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강 상궁님은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말도 못하는 것 같던데, 어떻게 건청궁에서 일하고 있어요?"

"너 몰랐어? 그 분 안평후부(安平侯府)의 셋째 아가씨잖아."

"아니, 그런분이 어떻게 궁녀가 되셨대요?"

"사연이 복잡해. 지금 폐하가 아직 사황자였을 시절, 안평후부는 원래 안국공부(安国公府)였던 건 들어본적 있을 거야. 당시 그 집 장녀 강만당(江晚棠)과 폐하가 연인 사이였는데, 안국공은 폐하가 황위에 오를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해, 두 분을 갈라놓은 것도 모자라 삼황자에게 시집 보냈어. 하지만 보다시피 폐하께서 반전을 일으켜 황위에 오르셨네? 그럼 누가 가장 먼저 그 분풀이 대상이 될까? 당연히, 안국공이겠지. 결국 안국공은 안평후로 강등됐고, 나름 폐하께 성의를 보여주려 셋째 딸을 궁에 보낸 거야. 표면적으론 폐하를 모시라고 보낸 거지만, 사실상 화풀이 대상이 되라는 거지."

"그럼 처음부터 말 못했던 게 아니에요?"

"어, 아니야. 처음엔 멀쩡했어. 그런데 숙비마마에게 찍혀 약을 먹게 되더니, 갑자기 말을 못하게 되더라고."

"세상에, 숙비마마 진짜 무섭네요...."

방 안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벙어리가 됐으면 지금 직책에서 물러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계속 폐하 옆에 남을 수 있었죠? 설마 폐하께서도 마음이 있으신 건...."

"에이, 그건 아니야. 폐하는 그냥 분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것뿐이지. 날마다 모욕하고, 벌하고.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에 비자리라도 하나 내주지 않았겠어?"

"듣고 보니, 정말 불쌍한 사람이네요. 그래도 이제 출궁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에요."

"그렇게 쉽게 볼 문제가 아니야. 강 상궁님이 나가시면 누가 또 황제의 분풀이 대상이 되겠어? 출궁이라는 것도 결국 다 폐하의 뜻에 달려있는 거지."

처음 자신의 말이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한 마디에 강만여는 가슴에 비수가 꽂힌 듯 아팠다.

'정말 만약 황제가 자신을 못 나가게 한다면?'

그렇다면 지난 천여 일, 그녀가 버텨온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된다. 그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이 이상 궁에 머무를 수 없었다. 반드시 궁을 탈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이 궁 안에서 황제의 뜻을 바꿀 수 있는 이가 존재하긴 할까?'

그녀는 멍한 얼굴로 방으로 돌아와 한참을 어둠 속에 생각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고, 결국 차가워진 몸을 겨우 이불 속으로 구겨 어렵게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새벽, 동이 틀 무렵.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몸을 이끌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방 한 구석에 거의 얼기 직전인 찬물에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었다.

원래는 후임 궁녀들이 그녀의 아침을 도와줬어야 했지만, 얼마 전에 그녀가 출궁한다는 소식에 서로 앞다투어 자리를 탐내다 들켜 징벌을 받게 되어 혼자가 되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꽤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 사흘이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아무리 아버지가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녀 두어 명쯤은 충분히 붙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천천히 옷을 챙겨 입고 찬바람을 맞으며 다시 건청궁으로 향했다.

평소 황제는 오경쯤에 기상해 조정에 나간다. 그녀의 임무는 황제가 일어난 자리를 정돈하는 것, 이쯤이면 마주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황제의 침전에 들어서자마자 산산조각 났다.

방을 들어간 동시에 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는 황제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강만여는 쿵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자신은 궁녀의 몸,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황제는 한참이고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살얼음 같은 분위기가 흐르고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지나면, 이틀이 남던가? 설마 이틀만 날 피하면 무사히 출궁 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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