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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作者: 김희랑
올해 7살이 된 성연우는 삶에 엄마라는 존재가 없었다.

항간에 떠도는 수많은 억측과 유언비어가 이 아이의 귓가에 닿았고 성지민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성연우도 더 캐묻지 않고 의젓하게 말했다.

“일찍 주무세요, 아빠.”

아이가 묵묵히 자리를 떠난 후에야 뒤에 있던 남자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중요하지 않아.”

성연우는 걸음을 멈추고 몇 초간 뜸을 들이더니 시선을 내리깔고 무언가 생각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아빠.”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치 않았다.

김도아가 그를 미워하니 이제 그의 아들까지도 미워할 테니까.

그 여자가 연우에게 상처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성지민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남자의 검은 눈동자는 깊고 고요한 연못 같았다. 그는 밤새도록 두 손을 등 뒤로 한 채 불당 앞에 서 있었다. 청회색의 음울한 비구름이 그의 뒤로 드리워져서 오래도록 걷히지 않았다.

다음 날, 김도아는 외진 근무 일정이었다.

“교수님, 어제 수술이 몇 개나 연속으로 있었는데 오늘은 좀 쉬시지 그러셨어요.”

“어쩌겠어요, 몸이 근질거려서.”

주차하고 병원에 막 들어선 김도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동료 박서윤과 마주쳐 얘기를 나누며 나란히 진료과로 걸어갔다.

김도아는 친절하고 쾌활한 성격을 지녔다.

그녀가 부교수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모두들 ‘미르에서 온 부교수라면 분명 오만하고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당일, 한참을 기다리다가 구급차에서 환자와 함께 내려온 김도아를 보았을 때 다들 놀랐다. 그녀는 환자 이송 카트를 따라 들어오더니 손에 끼고 있던 반지와 시계를 아무렇게나 던져두고는 재빨리 환자에게 응급 지혈 처치를 시작했다.

반쯤 묶은 머리는 어깨 위로 헝클어져 흩날렸고 린넨 셔츠 소매를 높이 걷어 올린 채 로고도 없는 흰색 니트 가방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다른 의사에게 환자 상태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인계했고 수술 담당 의사가 응급실로 들어간 뒤에야 그녀는 가방에서 반쯤 남은 바게트를 꺼내 다시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게 반지랑 시계를 떨어뜨렸다고 알려주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알겠다며 대답하곤 급히 되돌아가 찾았다.

바로 그때였다. 한도 병원에 새로 부임한 정형외과 부교수가 누구인지 확실히 각인시킨 순간이.

박서윤과 함께 수액실 앞을 지나가던 김도아는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서 성연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이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가 몇 초 후 다시 조심스럽게 쳐다보더니 또다시 황급히 시선을 피했고 귓불이 살짝 붉어졌다.

“...”

김도아는 이 아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의사 가운으로 갈아입고 정기 검진을 하러 다시 수액실 앞을 지나갈 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성연우는 조용히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수액을 맞고 있었고 옆에는 책가방이 놓여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님의 핸드폰으로 시간을 때웠지만 숏폼의 소음으로도 성연우를 흔들지 못했다.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제자리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참으로 얌전한 아이였다.

시선을 거두려던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다가가 보니 성연우의 오른쪽 손등이 심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바늘이 움직여 국소적인 부기가 생겨버린 것이다.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서 얼른 아이의 손을 잡고 주삿바늘을 빼고는 다정하게 물었다.

“안 아팠어?”

성연우의 몸이 살짝 뻣뻣해졌다.

“괜찮아요.”

“아프면 말했어야지.”

이에 아이가 나직이 대답했다.

“참을 수 있었어요.”

“...”

김도아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

“이건 참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아무리 참아도 계속 아파. 다음부턴 이런 일 생기면 꼭 의사 선생님 찾아서 말해야 해. 알겠지?”

성연우는 그녀의 진지한 눈빛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은 부어 있을 거야.”

김도아는 인내심을 갖고 아이의 손을 찜질해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예쁜 손을 잘 지켜내야지.”

어린아이가 혼자 수액을 맞으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김도아는 담당 간호사에게 특별히 더 신경 써달라고 당부하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한편 성연우는 그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산뜻한 샴푸 냄새가 아직도 아이의 주변에 남아도는 것만 같았다.

오후 내내 바빴던 김도아는 외래 진료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성지민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두 의사가 나란히 그의 옆을 지나쳐 갔다.

“교수님 또 식사 거르신대요? 오늘 종일 아무것도 못 드셨을 텐데.”

“우리 교수님이 어떤 분인지 아직 모르시는구나. 식사는 단지 기본적인 생명 기능을 유지하는 옵션일 뿐이에요. 서랍에는 우유빵 아니면 소금빵밖에 없다니까요.”

정형외과 외래 진료실 문이 비스듬히 열리고 김도아는 한창 진료를 보러 온 아이를 침착하게 달래는 중이었다.

아이는 말을 듣지 않고 엉엉 울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온화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달랬다.

“하나도 안 아파. 이모 손에 주삿바늘 없지? 그냥 네 손 잠깐 보고 싶어서 그래.”

그녀는 많이 변했다.

성지민이 기억하던 응석받이로 자란 김도아와는 달랐다.

그때 그녀는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부잣집 아가씨였고 성지민은 김씨 가문에서 후원하고 거두어준 가난한 아이에 불과했다.

김씨 가문의 연회가 열릴 때면 김도아는 늘 테이블 밑으로 성지민에게 깍지를 꼈고, 집안 어르신들이 과외를 받고 있다고 여길 때 김도아는 그를 옷장으로 끌고 가 숨 막힐 듯한 키스를 퍼부었다. 자신의 소유임을 표시하듯 그의 몸에 일부러 이빨 자국을 남겼었지.

김도아는 모든 걸 다 갖춘 완벽녀였다.

누구나 그녀를 사랑했지만, 오직 성지민만은 죽도록 싫어하고 역겨워했다.

원하는 바가 있었기에 그녀에게 접근했지 안 그러면 손끝 하나 대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성지민이 그녀에게 보복할 유일한 기회는 바로 관계를 가지는 일이었다. 김도아는 피부가 연약하길 타고난 것인지 건드리기만 해도 빨갛게 물들었다. 그런 그녀가 마침 젊고 활력이 넘치는 성지민을 만났으니 남자의 패기와 열정에 종종 속수무책이었다.

김도아는 배시시 웃으며 그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다음엔 좀 살살 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애틋한 눈빛에 오만함을 담아서 남자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넌 내 거야. 이번 생은 오직 내 남자로 살아야 해.”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몸을 숙여 아이의 진료를 보다가 문밖의 성지민도 힐긋 본 것 같았는데 어젯밤의 그 눈빛과 똑같았다.

처음의 열정도 아닌, 나중에 배신당했을 때의 고통도 아닌 평온하고 담담한 시선, 가고 오는 인파들 속의 아무나 한 명 쳐다보듯이 무심한 눈빛이었다.

사랑도 증오도 그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이러한 시선이 오히려 성지민을 더 지독하게 불태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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