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영은 얼굴에 난 상처를 걱정하며 안지영을 지켜보았다. 손을 뻗어 상처를 만져보려 했지만 혹시 더 아프게 만들까 봐 주저했다. 안지영은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갑자기 고은영의 작은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었다. “봐, 안 아파!”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손을 빼려 했지만 안지영을 더 아프게 할까 봐 걱정했다. “빨리 놓아줘.” 안지영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안 아프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왠지 차가운 기운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배준우가 자신을 노려보며 시선이 날카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지영은 당황해서 살짝 손을 놓았다. ‘배준우는 정말 질투가 나면 누구에게나 그런 건가? 나는 여자인데? 질투도 성별을 가려야 하지 않나?’ 고은영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정말 안 아파?” “안 아파. 하나도 안 아파.” 안지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고은영도 조금 안심한 듯 보였다. 안지영은 그런 고은영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 바보는 진짜 내가 뭐라 해도 다 믿네.’ 그렇게 순진한 모습이야말로 자신이 그녀를 보호하게 만들었던 이유였다. 그 순수함이 누구에게도 악용당할 수 있을 만큼 여렸기 때문이다. “아기는 어때?” 안지영은 조용히 물었다. 고은영은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기는 정씨 어르신이 데려갔어. 며칠 동안 함께 지내기로 했대.”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씨 어르신은 고은영의 선생님으로서 그녀에게 엄청 잘해주었다. 안지영은 고은영을 잘 챙겨주려는 이들이 많다는 생각에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어리석은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고은영은 참 순수했고 그런 그녀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안지영을 보고 하늘 그룹에서 나온 고은영은 배준우의 몸에서 이상한 기운을 내뿜는 것을 느꼈다. 고은영은 조심스럽게 그의 표정을 살펴보고 자연스럽게 조금 거리를 두었다. 그 모습을
쇼핑몰의 매니저는 공손하게 배준우에게 다가갔다. “배 대표님, 오셨군요. 오늘 어떤 것을 보시겠습니까?”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보여줘요.” 배준우가 말했다. 쇼핑몰은 매우 크고 그들은 그곳을 돌아다니기보다는 이곳의 매니저가 잘 알고 있으니 바로 그들을 원하는 곳으로 안내해 주기를 원했다.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배준우와 고은영은 매니저의 안내에 따라 걸어갔다. 그들이 지나가던 중, 한 남성 맞춤양복 가게 앞에서 고은영이 무언가를 보았고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유리창을 응시했다. 배준우는 그녀가 멈추자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고은영은 한쪽을 집중해서 봤고 그가 보고 있는 방향을 따라 배준우도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있었던 것은 바로 나태현이었다. 그는 한 정장을 입어보고 있었고 그 앞에는 긴 웨이브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넥타이를 매어주고 있었다. 배준우는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매니저는 두 사람이 뒤처져 있는 것을 보고 서둘러 돌아와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을 쳐다보았다. 나태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씨 큰 도련님 이제 곧 약혼할 예정이에요. 결혼식 드레스와 예복도 우리 가게에서 맞췄습니다.” “약혼?” 고은영은 충격에 빠져 매니저를 쳐다보았다. ‘나태현이 약혼한다고? 그 사람은 희주의 아버지 아닌가? 이건...’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셨죠? 저 여성분은 지씨 가문의 딸, 지신혜씨입니다.” 고은영은 그 말을 듣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배준우를 바라보았고 그의 굳어버린 얼굴을 보자 조심스레 물었다. “준우 씨도 이 소식을 들었어요?” 배준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오늘은 일단 선물을 고르지 말고 돌아가자.” 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곧장 고은영의 손을 잡고 가버렸다. ‘나태현이 약혼한다고? 지신혜 씨와 결혼한다고? 그럼..
란완리조트로 돌아온 후 배준우는 서재로 들어가 전화를 걸었다. 그가 다시 나올 때까지 10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 고은영은 그의 얼굴이 여전히 좋지 않은 것을 보며 결과를 어느 정도 짐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물어보았다. “정말이에요?” “응, 약혼식은 다음 주래.” 고은영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본래 좋지 않았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럼 제 언니는 뭐라고 생각할까요?” 고은지는 언젠가는 이 일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녀에게 숨기고 있는 이유는 언니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은지가 고희주의 아버지를 찾을지 확신이 가지지 않지만 희주가 조금이라도 그리워하면 그녀는 반드시 사람을 찾아낼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고은지가 나태현이 희주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지신혜에 대한 일도 막 알게 되었고 네 언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직 모르겠어.” 고은영은 그의 말을 듣고 더욱 화가 났다. 배준우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물어볼까?” “아뇨!” 고은영은 화가 나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미 그들은 약혼을 하기로 결정했고 지금 그녀의 언니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그에게 뭘 물어볼 자격이 있는 거냐고 생각했다. 그때, 집에 돌아온 진정훈은 고은영이 눈에 띄게 화가 나 눈물이 고인 얼굴을 보고 놀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네가 내 동생을 괴롭혔어?” 그는 바로 배준우에게 눈을 마주치며 따지듯 물었고 배준우의 얼굴은 이미 어두워졌다. “아니에요, 말하지 마세요!” 그녀는 지금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기분이 확실히 나쁘다는 것을 본 진정훈은 무의식적으로 배준우를 쳐다봤다. 배준우는 여전히 얼굴이 좋지 않았지만 그들의 분위기는 싸우는 것 같지 않았다. 어떤 일에 대해 둘 다 불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정훈은 고은영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둘째 오빠한테 얘기해 봐. 내가 해결해 줄까?” “너무 봐주지 마세요!”
확실히 고은영은 진씨 가문에 대해 마음에 걸리는 게 많았고 그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어머니를 본 적이 없으니 깊은 감정을 가지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진정훈이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언급했을 때 고은영의 가슴이 갑자기 아팠다. 아이로서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니... 그녀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자신에게 모든 사랑을 주고 싶어 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진정훈의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죽음 앞에서도 아이를 사랑했던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가 그녀에 대해 깊은 감정을 가지지 못하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슬퍼할까? 갑자기 고은영의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 찼다. 진정훈은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서둘러 달랬다. “아, 내가 이런 말을 하려고 한 게 아니었어. 너 힘들게 하려고 한 게 아니야. 난 그냥...” 그는 말을 멈췄다. 그저 뭐라고 말하려던 걸까? 어머니가 죽는 순간까지도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리려던 걸까? 그녀를 위해 남겨진 것들을 지키고 싶어 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말하려던 걸까? 진정훈은 엄격하게 말했다. “어쨌든 이건 네가 가져야 해. 이건 어머니가 너에게 남긴 거야. 그런 사람들에게 절대 넘길 수 없어!” 그녀를 설득하는 그의 말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진유경과 김영희가 지난 몇 년간 이익을 나눠 가진 것을 생각하면 그는 더 화가 났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어머니의 사랑을 가질 자격이 있겠어?’ 처음에는 망설였던 고은영이었지만 진정훈의 말을 듣고 서류를 받아들었다. 이 순간, 그녀는 서류를 들고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진정훈은 그녀가 받아든 것을 보며 말했다. “이제 마지막 한 부분만 남았어. 내가 꼭 찾아올게.” 고은영은 조용히 물었다. “마지막 한 부분은 어디에 있나요?” 진정훈은 답했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어.” 그 말을 듣고 고은영의 표정은 굳어졌다. ‘아버지?
원래는 상관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한 여자를 이렇게 짓밟는 모습을 보니 그 여자가 바로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생각하니 자신에게 남겨진 것들을 그들이 계속 차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진정훈은 원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런데 고은영의 말을 듣고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걱정 마. 곧바로 찾아서 돌려줄 거야!” 단순히 찾아오는 게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를 짓밟은 그들에게는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고은영에게 부탁을 받은 진정훈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지금 진성택은 상태가 심각해져서 이미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진정훈이 갑자기 나타나자 그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진성택 앞에서도 진정훈의 마음속에는 어느 정도 감동이 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고은영에게 남긴 것을 이렇게 훼손한 그들을 생각하니 그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직설적으로 말할게요. 엄마가 고은영에게 남긴 거 지금 바로 은영이에게 돌려줘요.” “네가 이미 유경이와 호영이, 할머니의 것까지 다 가져갔으면서도 아직 만족하지 못하냐?” “왜요? 아직 돌려주지 않는 건 그걸 진유경에게 주려고요?” 진정훈은 차가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진성택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정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진짜 좋은 첫사랑이네요!” 진성택은 잠시 침묵을 하며 말했다. “정훈아, 사람은 길을 남겨야 해. 한 번에 해결하지 말고.” “그 말은 진유경이 제 남은 길이라는 건가요? 걱정 마요, 저는 그런 건 필요 없어요!” 진성택은 그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진정훈은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유경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 뒤 그는 진유경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본래 이렇게 공격적인 성격이 아니었지만 과연 무엇이 그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갔을까? 진성택은 깊은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진유경은 아무것도 없다.” 그 말을 듣고 진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해!” 전화 너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진유경은 고개를 끄덕인 후 전화를 끊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계획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휴대폰을 들고 있는 그녀의 손은 분도로 인한 떨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고은영, 죽어버려!’ 처음에는 자신의 주식을 진정훈에게 넘겨주면 진정훈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할머니가 가진 주식도 언젠가는 그녀의 것이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진정훈은 고은영을 위해 무엇이든 다 버렸고 심지어 진씨 가문과 연락을 끊고 할머니가 가진 주식도 가져갔다. 이제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녀와 진호영, 그리고 할머니의 것까지 모두 고은영의 손에 들어갔다. 그 사실만으로도 진유경은 미칠 것 같았다. 고은영과 함께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이 모든 차이가 그녀를 죽고 싶게 만들었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진유경의 목소리는 차갑고 냉정했다. 문이 열리고 집사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그리고 공손하게 진유경을 불렀다. “아가씨.” “무슨 일이야?” 진유경은 말투는 별로 좋지 않았다. 진씨 가문에서 그녀는 항상 이들을 하찮게 여기며 마치 노예를 대하듯이 대했다. 집사는 진유경의 차가운 목소리에 조금 떨며 말했다. “아가씨, 저희 월급날이 다 되었는데 어떻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사는 진유경의 차가운 분위기에 하려던 말을 멈췄다. 원래 진씨 가문은 월급을 미루지 않지만 이번 달은 이미 반 달이 지나버렸다. 진유경은 이 문제에 대해 신경 쓴 적이 없었고 집사가 월급 얘기를 꺼내자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예전엔 다 할머니가 하셨잖아?” “어르신 쪽에서 이번 달은 돈이 조금 부족하시다고 아가씨에게 남는 돈이 있는지 여쭤보셨습니다.” ‘남는 돈?’ 예전엔 진씨 가문의 딸로서 무엇이든 마음대로 쓸 수 있었고 마음에 드는 것은 모두 사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진씨 가문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진실을 알게 된 진정훈은 이제 그동안 어머니가 고은영에게 남겨준 모든 것들을 되찾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고은지는 병원에서 퇴원했다. 그녀는 란완리조트로 와서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는 구희주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쏟았다. 고은영은 다가가며 말했다. “언니, 미안해.” 구희주와 관련된 일에 대해 고은영은 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에게 맡겨진 사람인데 이런 일이 생기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고은지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의사는 뭐라고 했어?”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사람이 이런 상태에 접어들면 대부분 기적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하셨어. 매일 희주와 많은 대화를 하라고 하시더라고.” 고은영은 매일 시간을 내어 구희주와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침대에 누운 작은 아이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고은지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고은영의 머릿속에는 나태현과 지신혜가 곧 약혼한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마음 한편이 씁쓸하게 아려왔지만 그럴수록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 아기, 나 대체 어떡해야 돼!” 이 순간, 고은지의 목소리에는 고통만이 가득했다. ‘하늘은 왜 이렇게 나에게 벌을 주는 걸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렇게까지 벌을 받는 걸까?’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가족은 무너지고 자신도 망가졌다. 유일하게 남은 이 아이마저 하늘이 빼앗으려 했다. 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술을 움직여 몇 마디 위로를 건네려 했지만 떠오르는 모든 말들은 너무도 무력하게 느껴졌다. 결국, 고은영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고은지는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은영아.” “언니!” 고은영은 한 걸음 다가갔다. 고은지가 말했다. “정말 너무 미워. 그 남자를 천 번 만 번 찢어 죽이고 싶어.” 고은지의 모든 말에는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지금 그녀는 고은지에게 말할 수 없었다. 구희주의 아버지가 나태현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태현이 이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한다는 것조차도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식물인간 상태인 구희주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들에게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언니는 이제 막 수술을 마친 상태니까 마음을 안정시키는 게 중요해, 알겠지?” 고은영은 부드럽게 말했다. 고은지는 눈을 감고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예전의 구희주가 착하고 성숙했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토록 착한 그녀의 아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이 생각에 고은지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 사람을 찾아줘, 꼭 찾고 싶어.” 고은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순간, 그녀는 마치 미쳐버린 사람처럼 그 남자를 바로 찾아가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고은영은 고은지를 안았고 자신의 가슴도 아프게 내려앉았다. 고은지는 그 남자, 그리고 량천옥을 미워했다. 그리고 량천옥은 고은지가 퇴원한 이후, 다시는 그녀와 마주할 기회를 잃었다. 어느 날, 고은영이 회사에 도착했을 때 지하 주차장에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량천옥이 무언가를 들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고은영은 배준우를 힐끗 보며 말했다. “먼저 올라가요.”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량천옥을 잠시 바라본 후,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배준우와 량천옥 간의 이 싸움에는 승패가 없었다. 결국 남은 것은 상처로 가득 찬 마음뿐이었다. 고은영과 고은지가 얽혀든 것은 량천옥에게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량천옥은 고은영 앞에 서서 여전히 감추지 못하는 고통을 얼굴에 드러내며 손에 든 것을 고은영에게 건넸다. “이것 좀 전해줘.” “이게 뭐죠?” 고은영은 차갑게 물었다. 고은영은 구희주와 관련된 일에 대해 여전히 량천옥에게 마음속에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량천옥이 두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