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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죽어납니다: 하늘 위의 낙화(落花)
그녀에게 죽어납니다: 하늘 위의 낙화(落花)
Author: 요정리더

제1화 구름 위의 도망자들

Author: 요정리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4 18:24:30

제1화

150년이라는 세월은 그리 짧지 않았다. 그것은 인류의 기억 속에서 ‘땅’이라는 개념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상을 요괴들에게 내어준 그날 이후, 인류가 기워 붙인 하늘 위 징검다리는 거대한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악력으로 짓이겨! 도깨비의 가죽은 바위보다 단단하다!”

전장은 승리를 향한 진군이 아니라, 그저 죽지 않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었다. 본디 지하의 어둠 속에서 태어나 햇빛조차

보지 못하던 괴물들은, 겁도 없이 지상을 집어삼킬 야욕으로 기어 올라왔다. 놈들은 인간의 살점을 씹어 삼킬수록 뱀처럼

허물을 벗고 더 단단해졌다. 

머리를 잘라도 재생했고, 낮이 되어도 죽지 않았다.

무사들은 피로 물든 칼자루를 놓지 못했다. 철퇴가 뼈를 으스러뜨리는 둔탁한 소리, 시퍼런 칼날이 도깨비의 살점을 파고들 때 나는 비릿한 파열음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도깨비의 이빨과 손톱이 갑옷을 긁어대며 내는 ‘끼이익-’ 하는 금속음은 무사들의 고막을 찢어 놓았다. 

지키다가 손목이 잘려 나가는 것은 차라리 양호했다. 동료의 피와 내장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도 무사들은 멈출 수 없었다. 물러서는 순간, 우리가 쌓아 올린 징검다리는 무너지고 뒤에 남은 가족들은 놈들의 먹이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땅이 갈라지고 절벽이 무너져 내리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무사와 도깨비는 서로의 목을 조른 채 끝까지 추락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의 광기에, 도리어 도깨비들이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는 기이한 풍경조차 연출되었다.

참혹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동료가 죽어 있었고, 매일 저녁에는 새로운 어린 동료가 빈자리를 채우러 칼을 잡았다. 비릿한 피 냄새는 하늘 위 대기 속에서도 가시지 않았다.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막사 안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의 잘린 팔을 동여매며 내일의 칼을 갈았다.

끝내 도깨비들은 항복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의 완전한 승리가 아니었다. 지상은 놈들의 발악으로 지각이 뒤틀려 갈라졌고, 그나마 숨 쉴 곳이었던 대지마저 산산이 부서져 사라져 버렸다. 지하를 잃고 지상마저 잃은 소수의 도깨비들의 굴욕은 뼈아팠으나, 인간 또한 갈 곳을 잃은 신세가 되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무너져가는 세상 끝에서 협상을 맺고 하늘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를 건설했다. 그것은 피와 눈물로 쌓아 올린 잔인한 등굣길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등에 짐을 짊어지고 구름 사이로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징검다리를 오르던 평민들이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허공과 무너져 내리는 대지를 본 순간, 공포에 질린 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발을 헛디뎠다. 비명은 짧았다. 떨어지는 자를 붙잡을 손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군가는 동료의 시신을 껴안고 오열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잘린 다리를 끌며 신음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칼을 휘둘렀던 무사들도, 정작 살아남은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아비규환의 와중에도 기이한 풍경은 있었다.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은 영주들은 생채기 하나 없이, 수십 명의 쿠노이치(여닌자)에게 호위를 받으며 가장 앞서서 징검다리를 건넜다. 그들은 발밑에서 죽어가는 백성들을 외면했다. 오직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희생된 수많은 목숨을 밟고 올라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전쟁의 참혹함보다 더 씁쓸한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승자의 대가였다. 우리는 이겼지만 무너졌고 지상을 얻지 못했으며, 그저 하늘 위 작은 섬에 매달려 숨을 헐떡이는 도망자가 되었을 뿐이다.

그 모든 광기와 비극이 멈춘, 구름 너머의 사각지대. 그곳에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정원이 있었다.

전쟁의 포화가 대지를 찢고 있을 무렵, 홀로 하늘로 도망쳐 숨어버린 존재가 있었다. 야츠키. 그녀는 인간을 죽이지도, 놈들의 피와 살을 탐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섭고 두려워서 안개라는 장막 뒤로 제 몸을 숨겼을 뿐이다.

“……또, 바람이 차구나.”

야츠키는 매화나무 아래 앉아 제 손끝에서 피어난 분홍 꽃잎을 만지작거렸다. 전쟁의 참혹함을 엿보았던 그녀의 눈동자는 깊고도 슬펐다. 그녀는  외로움과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피워낸 꽃들,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흩뿌리는 안개뿐이었다.

그녀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제 영역을 침범하는 것들을 막아내기 위해, 본의 아니게 꽃의 향기를 섞은 요력을 끊임없이 뿜어내야 했다. 그것은  생존의 몸짓이었다.

향기로운 꽃향기가 안개와 섞여 바람을 타고 흘러나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이성을 갈아먹는 마약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꽃을 피워낸 그녀 자신은, 아무도 없는 정원에서 홀로 매화 꽃잎을 쥐고 흔들 뿐이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정원. 그녀는 지상의 비명과 하늘 위의 오열도 듣지 못한 채, 다시 한 번 꽃을 피워내며 스스로를 안개 속에 가두었다.

이곳은 금지구역이었다. 그러나 정찰을 나온 렌은 무의식중에 그 안개 너머로 발을 들였다. 

안개 너머로 달콤한 향기가 렌의 코끝을 찔렀다. 그것은 전쟁터의 비릿한 피 냄새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향기였다.

붉은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비녀가 꽂혀 있었고, 옅은 손짓으로 가지를 만지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렌과 눈이 마주친 순간, 세상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야츠키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고, 그녀가 당황하며 손을 휘저었다. 가느다란 손끝에서 안개와 섞인 꽃가루가 렌을 향해 흩날렸다.

“……아.”

렌의 입술이 갈라지며 멍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꽃가루가 섞인 안개가 렌의 폐부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독이었다. 하지만 달콤한 독이었다. 렌의 심장이 기이하게 박동했다. 마치 이성이 무너져 내리는 감각.

렌은 돌아가야 했다. 그녀는 분명 도깨비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붉은 기모노 아래 드러난 그녀의 가녀린 목선과, 꽃을 만지는 하얀 손가락을 보며 렌은 자신의 칼자루를 꽉 쥐었다. 손바닥에 칼집이 박혔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이 도깨비의 함정인가, 렌은 뒤를 돌아 징검다리로 달리기 시작했다. 폐 속 깊숙이 박힌 꽃향기가 마치 낙인처럼 그의 안을 헤집어 놓았다. 이미 그의 몸은 놈들의 방식대로 침식되고 있었다.

무사에게 더 깊은 전쟁의 참혹함보다 더 끔찍한 것은, 어쩌면 저 안개 너머의 고요함일지도 몰랐다.

렌은 다급하게 징검다리를 건너며,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옷자락에 묻은 매화 꽃잎 하나는

끈질기게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운명은 그렇게, 하늘 위에서 비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8명의 무사가 야츠키라는 치명적인 재앙과 마주하게 될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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