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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11화. 잠긴 찬장

작가: 6jay
last update 게시일: 2026-11-01 22:26:27

태혁은 자신의 기준에 자세가 완벽히 들어맞을 때까지 잔혹할 정도로 같은 동작을 짓이기듯 반복시켰다. 도희를 공포에 질리게 한 것은 처음 접하는 낯선 운동 종목이 아니라, 그의 입에서 언제 ‘끝’이라는 단어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지독한 불확실성이었다. 단 몇 분의 움직임에도 낯선 근육이 찢기듯 당겨왔고, 밤이 깊어질수록 머릿속은 온통 날이 밝으면 시작될 다음 고문으로 짓눌렸다.

절제된 식단에 수면마저 흩어지자, 뼈마디를 파고드는 근육통은 형벌처럼 가중되었다. 쥐어짜듯 뒤틀리는 빈속을 억누르며 저릿하게 마비된 손끝을 천천히 오므렸다 폈다. 홑이불 밖으로 비져나온 발끝을 타고 살갗을 에는 듯한 오한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도희는 덜덜 떨리는 몸을 짐승처럼 둥글게 말아 쥐었다.

“으…… 으으…….”

새벽 2시. 펜트하우스 게스트룸의 거대한 침대 위에서, 도희는 자궁 속 태아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젖은 식은땀을 비 오듯 쏟아내고 있었다.

손끝과 발끝이 잘게 경련하며 감각이 하얗게 바래져 갔다.

익숙하던 극렬한 자극이 한순간에 거세되자, 관자놀이를 부수는 듯한 편두통과 함께 전신을 뒤흔드는 소름이 몰아쳤다. 눈을 감아도, 부릅떠도 시야를 붉게 잠식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핏빛 고추기름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라면의 칼칼한 국물, 혀끝을 찔러오는 달콤 짭조름한 양념치킨의 파삭한 껍질, 그리고 점막을 사정없이 쥐어뜯듯 마비시키는 마라탕의 붉은 기름. 그 지독한 환영들이 망막 뒤편에서 잔인하게 점멸했다.

입안 가득 주체할 수 없이 침이 고여 들었고, 도희는 마른 목구멍으로 솟구치는 침을 연신 꼴깍 집어삼켰다.

‘먹고 싶어…… 짠 거…… 입안이 타는 듯이 매운 거…… 제발 그 국물 한 모금만…….’

코끝에 매캐한 라면 냄새가 스치는 듯해 허겁지겁 고개를 처들었지만, 서늘한 방 안을 메우는 것은 무미건조한 에어컨의 기계음과 냉기뿐이었다. 베개를 거칠게 뒤집어 얼굴을 파묻었다. 음식을 지우려 발버둥 칠수록, 뇌리에 각인된 붉은 기름기와 염분의 감각은 더욱 흉포하게 똬리를 틀었다.

문득, 유년 시절 눈앞에서 치워지던 휑한 밥그릇의 기억이 벼락처럼 스쳤다. 채울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도희의 식탐을 혐오하던 어머니가 손수 거두어 가 버린 밥그릇이었다. 도희는 그 시절의 자신을 달래듯 뒤틀리는 아랫배를 억누르며 숨을 몰아쉬었다. 음식은 존재했다. 이 집 어딘가에 분명히 숨 쉬고 있었다. 제 손이 닿지 못하도록 그 남자가 틀어막았을 뿐.

침대 모서리를 짚고 간신히 발을 디뎠으나, 두 다리가 맥없이 꺾였다. 바닥을 기어가는 도희의 몰골은 차라리 헐벗은 짐승에 가까웠다. 칠흑 같은 복도를 네 발로 기어 마침내 도달한 주방. 아일랜드 식탁 너머 수납장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손을 뻗었다.

삐-빅! 삐-빅!

손끝이 표면에 닿기 무섭게 찬장의 전자 센서가 시뻘건 레이저를 쏘아 올리며 날카로운 경고음을 찢어발겼다.

[접근 제한: 마스터(강태혁)의 홍채 또는 지문 인증이 필요합니다.]

“열려라, 열리라고! 제발……!”

미친 듯이 손잡이를 부여잡았으나, 매끄러운 틈새에서 손톱만 허망하게 미끄러졌다. 도희는 부서질 듯 찬장을 긁어대며 목메어 울부짖었다.

갈라진 손톱 끝에서 하얀 분진 같은 각질이 부스러져 내렸다. 문은 단 1밀리미터의 유격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냉혹하게 닫혀 있었고, 긁히는 금속성 소리만이 그녀의 밭은 호흡 사이를 처절하게 찢었다.

냉장고도, 팬트리도, 벽면의 서랍조차 빈틈없는 감옥이었다. 마지막 희망으로 정수기 밸브를 내리눌렀지만, 틱- 하는 기계음과 함께 급수관이 매정하게 잠겨버렸다.

[일일 허용 수분량 2.5L 섭취 완료. 수전 공급이 중단되었습니다.]

단 한 모금의 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낮 동안 정해진 할당량을 채웠다 한들, 지금 그녀의 구강은 모래사막처럼 바짝 메말라 있었고,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몇 번이고 밸브를 짓눌렀으나 돌아오는 것은 똑같은 전자음의 조소뿐이었다.

도희는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 열 오른 뺨을 짓이기며 헐떡였다. 뇌혈관이 터져 나가거나 심장이 먼저 파열되어 죽어버릴 것 같은 원초적인 공포가 목덜미를 휘감았다.

‘살아야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혀끝에 짠 걸 털어 넣어야 해…….’

그 순간이었다.

거실 한쪽, 태혁이 종종 서류를 검토하곤 하던 묵직한 원목 데스크 하단에서 푸르스름한 불빛이 은밀하게 깜빡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쿵쾅거렸다. 도희는 불빛이 꺼질세라 숨소리조차 삼킨 채 바닥을 기어 책상 아래로 파고들었다.

살짝 틈이 벌어진 서랍을 당기자 서류철 사이로 작은 디스플레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태혁이 해외 출장용으로 쓰던 구형 서브 폰이었다. 잔여 배터리는 30%, 상단 바에는 펜트하우스의 와이파이가 안정적으로 잡혀 있었다.

도희의 손가락이 발작하듯 떨렸다.

혹여 화면이 꺼질까 봐 마비된 엄지로 액정 테두리를 으스러지도록 눌렀다. 손바닥에 쥐어진 이 차가운 금속 덩어리를 놓치는 순간, 다시금 영겁의 굶주림과 철옹성 같은 찬장만이 남으리라는 공포 때문이었다. 도희는 지워지지 않은 기억 속 번호를 더듬으며, 바짝 마른 입술 사이로 숨을 잘게 끊어 뱉었다.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차단당한 지 사흘 만에 손에 쥔, 유일한 구원의 숨구멍.

도희는 마른침을 삼키며 배달 앱을 구동했다. 그러나 이 높은 펜트하우스의 삼중 방음 도어를 배달원이 뚫고 들어올 방법 따윈 없었다. 현관 도어록에 손을 댔다가는 그 찰나의 경보음으로 태혁을 깨우고 말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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