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손바닥의 상처에서는 피가 굳어 있었고, 포승에 쓸린 손목은 부어올랐다. 젖은 옷에서 올라오는 술 냄새가 역겨웠지만 갈아입을 옷도, 몸을 씻을 물도 없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들어온 사람은 금옥이었다.
금옥은 소하의 얼굴이나 상처를 살피는 대신 방바닥부터 훑어보았다.
“술병 두 개, 잔 네 개, 부서진 의자 하나.”
하인에게 장부를 가져오라고 명한 금옥은 손님에게 돌려준 술값까지 적으라고 했다.
소하는 벽을 붙잡고 일어서며 항의했다.
“저 사람들이 저를…….”
“네가 얌전히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
금옥은 그녀의 말을 끊고 붓을 들었다.
“오늘부터 네가 깨뜨린 물건값은 전부 빚이다.”
“저를 팔아넘기면서 오백 냥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건 내가 낸 돈을 회수해야 할 밑천이지.”
“그렇다면 저는 언제 나갈 수 있습니까?”
금옥은 장부를 덮으며 냉정하게 대답했다.
“빚을 다 갚으면.”
소하는 피 묻은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자신이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했던 밤이 금옥의 장부에서는 갚아야 할 빚으로 바뀌어 있었다.
***
이튿날 아침, 소하는 공동 뒷간으로 끌려갔다.
나무판자가 썩어 발을 디딜 때마다 흔들렸고, 구덩이에는 오물이 넘쳐 있었다. 문짝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마당에서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으며, 바닥에는 벌레가 기어 다녔다.
금옥은 삽과 낡은 바가지를 내밀었다.
“이거부터 퍼내.”
소하는 바가지를 내려다보며 다친 손을 보여 주었다.
“제 손이 다쳤습니다.”
“손이 다쳤으면 발로 하든가. 일 못 하면 밥도 없어.”
금옥이 등을 밀치자 소하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헝겊으로 손바닥을 감은 뒤 바가지를 들었다.
오물을 퍼내는 동안 악취 때문에 몇 번이나 헛구역질이 났고, 다친 무릎은 쪼그려 앉을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을 멈추면 금옥이 마당으로 나와 욕설을 퍼부었고, 하인들은 그녀가 쉬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한참 뒤 소하는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며 물 한 그릇을 청했다.
하인은 우물에서 떠 마시라고 했지만, 손을 씻고 싶다는 말에는 우물물을 아껴야 한다며 조금만 쓰라고 윽박질렀다.
소하는 우물가로 가서 물을 길었고, 차가운 물이 상처에 닿자 손가락이 저절로 펴졌다. 다시 피가 흘렀지만 깨끗한 천이 없어 더러운 헝겊을 감아야 했다.
점심 무렵 받은 음식은 손님들이 남긴 식은 죽이었다.
죽 위에는 기름이 굳어 있었고, 그릇 가장자리에는 누군가의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소하는 한동안 숟가락을 들지 못했지만, 전날부터 제대로 먹지 못한 배가 아프기 시작하자 결국 죽을 입에 넣었다.
금옥은 그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왕비마마도 배고프면 다 먹는구먼.”
소하는 대꾸하지 않고 그릇을 비운 뒤 빨래터로 갔다.
젖은 옷더미에서는 술과 땀, 오래된 피 냄새가 났다. 그녀는 손바닥에 헝겊을 더 감고 옷을 비볐지만, 상처가 벌어지면서 물속으로 붉은 피가 퍼졌다.
하녀 하나가 그 모습을 보고 다가왔다.
“그 손으로 계속하면 곪아요.”
“약을 구할 수 있습니까?”
“금옥 마님이 허락해야 해요.”
“제가 가진 물건을 팔아서라도…….”
소하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어머니의 은비녀는 이미 빼앗겼고, 옥가락지와 옥패도 정왕부에 남아 있었다.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녀는 잠시 그녀의 손을 살피더니 자신의 낡은 헝겊을 찢어 건넸다.
“이거라도 감아요.”
“고맙습니다.”
소하가 헝겊을 받자 하녀는 주위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금옥 마님께는 말하지 마요.”
그날 밤 소하는 부엌 뒤편의 골방에 갇혔다.
방에는 제대로 된 침상도 없었고, 축축한 짚자리 하나만 놓여 있었다. 벽 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는 가운데 천장에서는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났으며, 문 아래로는 부엌의 썩은 음식 냄새가 스며들었다.
소하는 짚자리에 앉아 다친 무릎을 살폈다. 붓기가 심해져 있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치맛자락을 찢어 무릎을 감았다.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눈을 감으면 첫날밤의 방이 떠올랐고, 복도에서 사내들의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소하는 목록을 두 장으로 나누어 한 장은 자개함에 넣고 다른 한 장은 유담에게 맡겼다.“이제부터 물건을 옮기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누구의 명령인지, 무엇을 가져가는지 먼저 확인해 줘.”유담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곧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마님께서 노하실 겁니다.”“그러시겠지.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무엇을 빼앗겼는지조차 알 수 없게 돼.”그때 마당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송미령을 따라왔던 시녀가 방문 앞에 멈춰 섰다.“아씨, 마님께서 혼수함을 안채로 옮기라고 하십니다.”소하는 문밖에 선 시녀를 바라보았다.“어째서?”“정왕부에서 확인할 물건이니 마님께서 직접 보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목록을 대조하고 있으니 오늘은 옮길 수 없다고 전해라.”시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 셋이 빈 들것을 가지고 돌아왔다.그들은 송미령의 명령을 받았다며 가장 큰 혼수함을 옮기려 했고, 소하가 막아서자 서로 눈치를 살폈다.“아씨, 저희도 마님의 명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소하는 함 앞에 놓인 목록을 들어 보였다.“안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가져가겠다는 것이냐?”“마님께서 안채에서 확인하신다고 하셨습니다.”하인들은 물러나지 않았다.소하는 그들이 송미령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아무리 정당한 말을 해도 이 집안에서 하인들을 움직이는 사람은 송미령이었다.결국 그녀는 비단과 장부를 넣어 둔 작은 함을 지키는 대신, 큰 혼수함 하나를 내주어야 했다.하인들이 함을 들고 나가자 방 한쪽이 텅 비었다.유담은 분한 얼굴로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아씨, 저대로 가져가게 두셔도 되겠습니까?”소하는 비어 있는 자리를 보며 숨을 골랐다.“오늘은 막을 수 없었어. 하지만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는 기록해 두었으니, 나중에 없어진 물건이 있다면 확인할 수 있을 거야.”그녀는 혼수함이 옮겨진 시간과 하인들의 이름까지 목록 아래에 적었다.첫 번째 반격의 대가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
상을 물린 직후 송미령이 찾아왔다.그녀는 시녀 둘을 거느리고 들어오면서도 소하의 얼굴보다 방 한쪽에 놓인 혼수함을 먼저 살폈다.“이제 몸은 괜찮으냐? 정왕부에서 혼수 목록을 다시 확인하겠다는데 네가 쓰러지는 바람에 일이 늦어졌구나.”송미령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혼수함 앞으로 걸어가 뚜껑을 열었다.“내일까지 목록을 정리해야 하니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채린이에게 맡겨라. 그 아이가 너보다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느냐.”그녀가 함 안의 비단 보자기를 집어 들자 소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어머니께서 남기신 물건은 제가 직접 확인하겠습니다.”송미령의 손이 멈췄다.“네가 무슨 수로 그 많은 물건을 확인하겠다는 것이냐? 혼례를 앞둔 처녀가 장부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니?”그녀는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지만 손에서는 보자기를 놓지 않았다.“집안일은 어른에게 맡기는 것이 도리다. 네가 정왕부에 들어가면 더 큰 살림을 맡게 될 테니 지금은 몸이나 추스르거라.”소하는 송미령의 손에 들린 보자기를 가리켰다.“그 물건부터 내려놓아 주십시오.”송미령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지금 나한테 명령하는 것이냐?”“제 혼수함에 있는 물건을 확인하기 전에는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네 혼수는 윤씨 가문에서 준비하는 것이다. 네 어머니가 남긴 물건도 이 집안에서 보관해 왔으니 관리하는 사람의 뜻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소하는 보자기를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렇다면 목록에 적힌 물건과 지금 함 안에 있는 물건을 대조하게 해 주십시오. 모두 그대로라면 저도 안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송미령은 잠시 그녀를 살피다가 보자기를 내려놓았다.“쓰러졌다 깨어나더니 성정이 이상해졌구나. 혼례를 앞두고 마음이 뒤숭숭한 것은 알겠지만, 이런 식으로 어른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그녀는 시녀들에게 함을 닫으라고 지시한 뒤, 내일까지 목록을 채린에게 가져오라고 명했다.소하가 거절하자 송미령은 더 다투지 않고 돌아섰다.그러나 마당에 이르
유담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그녀의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 주었다. 소하가 손을 놓지 못하자 억지로 떼어 내지 않고 침상까지 부축했으며, 한참 동안 곁에 앉아 숨이 고르게 돌아오기를 기다렸다.“제가 어디에 가겠습니까. 아씨께서 쓰러지신 뒤로 계속 곁에 있었는데요.”그 말을 듣자 소하는 더욱 견딜 수 없었다.전생에서 자신을 끝까지 걱정했던 사람은 이 아이뿐이었다. 그런데도 소하는 유담이 끌려가던 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이번에는 그 아이를 지켜야 했다.하지만 소하는 자신이 죽었다가 돌아왔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금 유담에게 필요한 것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겠다는 주인의 실제 행동이었다.***유담이 날짜를 알려 주었을 때 소하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열일곱 살.정왕 이태윤과의 혼례까지 정확히 한 달이 남아 있었다.소하는 탁자 위에 놓인 달력을 끌어당겨 날짜를 확인했다. 전생에서 스물두 살로 죽었으니, 그녀는 다섯 해를 거슬러 돌아온 셈이었다.방 안에는 혼례를 준비하는 물건이 가득했다.병풍 옆에는 붉은 혼례복이 걸려 있었고, 자개로 장식한 혼수함들이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아직 정왕비가 되지 않은 처녀의 방이었지만, 이미 모든 물건은 그녀가 정왕부로 들어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소하는 붉은 혼례복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전생의 혼례 첫날밤, 이태윤은 신방에 오지 않았다.소하는 밤새 촛불을 지키며 남편이 바쁜 일이 있어 늦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그의 마음을 기다렸고, 그렇게 오 년을 보내는 동안 자신이 무엇을 잃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마지막에 이태윤이 남긴 것은 은자 오백 냥이 적힌 매각 문서였다.그 문서의 끝에 찍힌 정왕부 인장과 이태윤의 친필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올랐다.그를 사랑했던 마음은 기루의 문턱에서 끝났다.소하는 붓과 종이를 가져오게 했다.먼저 기억나는 사건들을 적으려 했지만, 죽기 직전의 고통은 선명한 반면 정왕부에서 있었던 일들의 날
문턱을 넘으면 살 수 있었다.윤소하는 손톱이 갈라지는 줄도 모르고 문턱을 긁었다. 금옥이 억지로 들이부은 약이 목구멍을 태우고 있었고, 배 속에서는 칼날이 뒤집히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녀는 문밖에 사람만 있다면 한 번쯤 더 살려 달라고 애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문짝 아래에 짓눌린 손등에서 피가 흘렀다. 소하는 마지막 힘을 다해 몸을 끌어당겼으나 바깥에서 빗장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고, 문틈으로 보이던 희미한 불빛마저 사라졌다.“살려…….”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누군가 문밖을 지나갔다. 소하는 그 발소리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손가락은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힘없이 떨어졌다.그때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아씨! 아씨, 문 좀 열어 주십시오!”소하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다.기루의 낡은 문짝 대신 붉은 비단 이불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불을 움켜쥔 채 침상 구석으로 기어 들어갔다. 문밖에서 다시 손바닥으로 나무를 두드리자, 금옥이 손님을 들여보내기 전에 빗장을 두드리던 소리가 귓속에서 되살아났다.“그만…… 제발 그만.”“아씨?”문밖의 목소리가 흔들렸다.“저 유담입니다. 아씨께서 어제 혼수함을 살피시다가 쓰러지셨잖습니까. 의원께서 약을 드시라고 하셔서 가져왔습니다.”유담.소하는 그 이름을 듣고 숨을 멈췄다.기루의 천장에서는 썩은 물이 떨어졌고, 침상 아래에는 굳은 핏자국이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나 눈앞에는 연꽃을 새긴 침실 기둥이 서 있었으며, 창호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깨끗한 마룻바닥을 비추고 있었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걷었다.손목에는 포승이 파고들었던 상처가 없었고, 손바닥에도 깨진 술병을 움켜쥐다 찢어졌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믿을 수 없어 손톱으로 살갗을 세게 누르자 선명한 통증이 올라왔지만, 그것조차 기루에서 느꼈던 고통과는 달랐다.소하는 침상 아래로 다리를 내렸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계단에서 굴러 다친 무릎이 멀쩡하게 움직였고, 오래 굶어 앙
“무슨 약입니까?”“네 병을 끝내 줄 약이지.”“먹지 않겠습니다.”그녀가 약사발을 밀어내자 금옥의 얼굴이 굳었다.“이년이 마지막까지 말썽이네.”소하는 몸을 돌려 문 쪽으로 향했다.“저를 보내 주십시오.”하인들이 앞을 막아서자 소하는 그들의 팔을 밀어내며 소리쳤다.“비키십시오!”몸이 휘청거렸지만 그녀는 다시 문으로 달려갔다.하인이 팔을 붙잡자 손목을 비틀어 빠져나왔고, 다른 하인이 길을 막자 그의 어깨를 밀치며 앞으로 나아갔다.문턱이 보였다.소하는 손을 뻗었지만, 다친 무릎이 꺾이면서 바닥에 넘어졌다.금옥이 뒤에서 다가왔다.“어디까지 가려고?”소하는 바닥을 짚고 다시 일어서려 했다.“살려 주십시오.”그녀는 처음으로 금옥에게 그렇게 말했다.“돈을 갚겠습니다. 청운상단의 장부를 찾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금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소하는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애원했다.“죽고 싶지 않습니다.”그러나 금옥은 하인들에게 눈짓했고, 소하는 그 손길을 피하려 했지만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약사발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입을 다물었으나, 강제로 먹인 약이 입안으로 흘러들었다.소하는 거칠게 기침하며 약사발을 밀어냈다.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금옥은 깨진 그릇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끝까지 물건을 깨뜨리는구나.”소하가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는 사이 금옥과 하인들은 방을 나갔다.문이 닫히고 빗장이 걸렸다.소하는 팔꿈치로 바닥을 밀며 문을 향해 기어갔다.손바닥의 오래된 상처가 다시 아팠고 숨이 가빠졌지만, 그녀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문턱에 닿기만 하면 누군가 문을 열어 줄지도 몰랐다.그 희망을 붙잡고 문짝을 두드렸다.“열어 주십시오.”목소리가 너무 작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소하는 다시 힘을 모아 문을 두드렸다.“제발…….”복도에서는 사내들이 웃고 있었다.누군가는 술값을 두고 다투었고, 다른 누군가는 노름판에서 돈을 잃었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
소하는 문을 두드리며 물 한 그릇만 달라고 청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약이 아니어도 좋으니 물만 달라고 몇 번이나 애원한 뒤에야 하녀가 작은 바가지에 물을 담아 왔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바가지를 받아 입술에 가져갔지만, 물을 마시던 중 기침이 터져 절반을 쏟고 말았다.하녀는 바닥을 닦으며 금옥이 이제 의원을 부르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을 전했다.“왜요?”소하가 묻자 하녀는 대답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돈을 못 벌면 소용없다고…….”소하는 바가지를 내려놓고 벽을 붙잡았다.“저는 아직 일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일어서려는 순간 다리가 떨렸고, 하녀가 부축하려 하자 그녀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다.“만지지 마십시오!”하녀가 놀라 물러서자 소하는 숨을 몰아쉬다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미안합니다.”그녀는 다시 벽을 붙잡으며 간청했다.“내일은 일하겠습니다. 그러니 금옥에게 의원을 불러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하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석 달째 되는 날, 소하는 자신의 발소리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다.열이 오르내리는 동안 귀가 먹먹해졌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몸을 일으키면 어지러웠지만, 골방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금옥은 식비와 방값을 장부에 적었다.소하는 더는 빚을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래도 죽을 생각은 없었다.그녀는 손바닥에 남은 흉터를 내려다보다가 벽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방문까지는 열 걸음도 되지 않았고, 그곳을 나가기만 하면 마당이 있었다. 마당을 지나면 대문이 있었으며, 대문 밖에는 사람들이 있었다.어쩌면 이번에는 누군가 도와줄지도 몰랐다.소하는 그 가능성을 되새기며 문으로 다가갔다.그녀가 손을 뻗으려는 순간 빗장이 풀리더니 금옥이 들어왔다.금옥의 손에는 작은 약사발이 들려 있었고, 뒤에는 하인 둘이 서 있었다.소하는 약사발을 바라보며 물었다.“의원을 부르셨습니까?”“이제 의원은 필요 없어.”금옥은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소하는 하인들의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