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경화제는, 그 일을 오래 끌지 않았다.*"섭정왕이 법도를 어긴 것은, 사실이다."경화제가 어전에서 말했다."하여 벌한다. 섭정왕은 한 달간, 봉록을 거둔다."위지헌이 고개를 숙였다."그 거둔 봉록은—"경화제가 잠깐 말을 멈추었다."—그 밤, 산실에서 산모와 아이를 지킨 이들에게 내린다."어전이, 한순간 조용해졌다.*벌을 청한 자리에서, 상이 내렸다.문을 넘은 값을 물리면서, 그 값을 아이를 지킨 손들에게 돌린 명이었다. 황후에게, 설련에게, 청아에게. 섭정왕을 흔들려던 칼이, 도리어 그 밤의 공을 온 조정에 알렸다.노예원이 빌려 준 대간의 칼이, 노예원의 손으로 되돌아온 셈이었다. 그 밤 산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제 온 조정이 알았다.대간은, 더 상소하지 못했다.*그 밤, 왕부에서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위지헌이 붓을 들었다. 그러나 오래, 첫 획을 긋지 못했다."…무엇이든이라 하셨잖아요."월령이 곁에서 옅게 웃었다."아들이든 딸이든.""…그랬지.""그런데 왜 못 쓰세요.""…무엇이든 좋다 했더니, 무엇이든 아까워서.""…이름 하나에, 그렇게 오래요.""이름은, 평생 부를 것이니."위지헌이 낮게 말했다."내가 이 아이를 부를 때마다, 이 아이는 제 이름을 들을 것이오. 그러니 아무 이름이나 줄 수가 없소."두 생을 통틀어, 처음 얻은 이름 하나였다.*"…봄에 왔으니."월령이 낮게 말했다."봄을, 넣어요."위지헌이 그 말에, 붓을 내렸다.아이의 아명(兒名)을, 그렇게 지었다. 기다림 끝에 온 봄이라 하여, '봄'이라 불렀다. 정식 이름은, 아이가 조금 더 자라거든 짓기로 했다."봄아, 하고 부르니."월령이 낮게 말했다."이 아이한테, 봄을 하나 쥐여 준 것 같아요.""전생엔, 우리한테 봄이 없었지.""이번 생엔, 이 아이가 봄이에요."위지헌이 그 말에, 붓끝으로 아이의 이름자를 허공에 한 번 그어 보았다. 아직 종이에 옮기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입에는, 이미 그 이름
이튿날, 어전이 술렁였다.한 대간이, 섭정왕을 겨누어 상소를 올렸다.섭정왕의 힘이 커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자들이, 조정에 있었다. 그 달갑지 않음이 찾은 첫 틈이, 이 상소였다.*"섭정왕께서, 내명부의 산실 문을 넘으셨다 하옵니다."대간의 목소리가 어전에 울렸다."내명부는 사내의 걸음이 닿지 않는 자리이옵니다. 하물며 섭정왕이 그 법도를 어겼으니, 이는 종실의 기강을—""그 자리에, 짐이 있었다."경화제가 그 말을 끊었다.어전이, 한순간 조용해졌다.*"…폐, 폐하.""짐의 조카가 태어나던 밤이었다."경화제가 낮게 말했다."적이 그 산실 안에서, 산모와 아이를 해하려 했다. 섭정왕은 그 적을 잡으러 문을 넘었다. 경은, 그것을 기강이라 부르는가."대간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물러서지는 않았다."…적이 있었다 하나, 법도는 법도이옵니다. 한번 열린 문은, 다음에도 열리기 마련이라—"몇몇 대신이, 그 말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간 하나의 상소가, 여럿의 침묵을 등에 업기 시작했다.*그 상소의 뒤에, 노가가 있었다.섭정왕이 아이를 얻어 대를 세운 것이, 노예원에게는 눈엣가시였다. 힘으로 못 미는 자리를, 이번에는 법도로 흔들려 했다.그러나 노가는, 위지헌이 그 벌을 어떻게 받을지는 셈하지 못했다."…적을 잡은 것이, 어찌 죄가 됩니까."한 무장 출신 대신이, 대간을 향해 낮게 물었다."법도를 지키다 아이를 잃었으면, 그때는 누가 책임을 졌겠소."대간이 그 말에, 잠깐 답을 못 했다. 아이를 잃었을 때의 책임까지는, 상소에 적히지 않았다.어전이, 두 갈래로 갈렸다.한쪽은 법도를 세우자 했고, 한쪽은 아이를 지킨 공을 보자 했다. 갈린 소리가, 어전을 오래 메웠다.위지헌은 그 갈린 소리 한복판에, 홀로 곧게 서 있었다.위지헌이, 어전에서 낮게 입을 열었다."법도를 어긴 값은, 내가 치른다."그가 대간을 보았다."벌을 내리시면 받겠소. 다만."*"내 아이가 죽을 자리에서, 다시 그 문 앞이 온대도."위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이 지났다.위지헌은 그 사흘을, 거의 곤원전 곁을 떠나지 않았다.조정이 그를 여러 번 찾았다. 그때마다 그는, 급하지 않은 일이면 사람을 돌려보냈다. 정사보다 앞에 둔 것이, 두 생을 통틀어 처음이었다.*낮에, 그가 아이를 안았다.큰 손이었다. 활을 당기고 칼을 쥐던 손이었다. 그 손 위에, 아직 이름도 없는 것이 담겼다."…이렇게, 안는 게 맞소."위지헌이 낮게 물었다."목을, 받치세요. 아직 못 가눠요."월령이 자리에 누운 채, 옅게 웃었다.위지헌이 조심스레 아이의 목을 받쳤다. 전장의 손이, 그 작은 목 하나 앞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무겁소.""안 무거워요.""…그런데 왜, 손이 떨리오.""…무거워서가, 아니라서 그렇겠죠.""…눈을, 떴소.""부군을 보네요.""아직 잘 못 본다 하던데.""그래도, 보는 것 같잖아요."위지헌은 그 작은 눈이 저를 향한 것 같아, 숨을 죽였다. 활도 칼도, 그 눈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이 아이가, 나를 아비로 알겠소.""당연하죠. 매일 안아 주는데.""…그럼 됐소."*월령이 손을 뻗어, 아이를 안은 그의 손등에 제 손을 얹었다."부군.""…음.""고마워요. 넘어와 줘서."위지헌이 그 말에, 아이에게서 눈을 들어 월령을 보았다.그가 몸을 숙였다. 아이를 안은 채로, 월령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오래, 그리고 조심스럽게."…아직, 몸도 안 풀렸소."그가 낮게 말했다."압니다.""그러니 지금은, 이것만."그가 다시 한 번, 그녀의 관자놀이에 입을 대었다. 그 이상은 참았다. 참는 것이, 그의 얼굴에 옅게 드러났다.월령이 그 얼굴을 보고, 옅게 웃었다."…부군도, 그런 얼굴을 하는구나 싶어서요.""…무슨 얼굴.""참는 얼굴이요.""…삼칠일."그가 낮게 말했다."길겠소."월령의 귓불이, 옅게 붉어졌다."…뭘 상상하세요.""아무것도.""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요."위지헌이 헛기침을 했다. 삼칠일이라는 말이, 그에게는 유독
아이 울음소리가, 산실을 채웠다.위지헌이 그 소리를 들었다. 두 생을 통틀어, 처음 듣는 소리였다.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순간, 그는 넘지 못하던 문지방을 넘었다.상궁 하나가 놀라 그를 막아섰다."왕야! 이 안은, 사내가 들 수 없는—"위지헌은 그 상궁을 지나쳤다. 반나절을 그 앞에서 멈춰 서 있던 걸음이, 한순간에 문을 넘었다.*한 걸음에, 그는 도망치려던 초야의 앞을 막아섰다."…법도라 했느냐."위지헌이 낮게 말했다."내 아이가 우는 자리에서, 법도가 내 걸음을 멈출 것 같으냐."초야의 웃음이, 처음으로 걷혔다.위지헌의 손이 초야의 어깨를 눌렀다. 도망치던 몸이, 그 한 손에 붙들려 멎었다."…법도를 어기셨습니다."초야가 낮게 말했다."어겼다."위지헌이 낮게 답했다."그 값은 뒤에 치른다. 지금은 아니다."*초야는 그 자리에서 붙들렸다.재가 든 눈으로도, 그 여인은 위지헌을 올려다보았다."…넘으셨군요."초야가 낮게 말했다."두 생에, 늘 그 문 앞에서 멈추시던 분이.""두 번은, 늦지 않는다."위지헌은 그 여인을, 뒤따라 든 상궁들에게 넘겼다.끌려 나가면서도, 초야는 소리 내지 않았다. 늙은 후궁이 그러했듯, 그 젊은 여인도 고요했다.다만 문턱에서, 그 여인이 고개만 돌려 낮게 말했다."…오늘 밤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름은 얼마든지, 다시 오르니까요."*그가 안으로 들었다.월령이,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어의가 아이를 받아, 월령의 품에 안겨 준 참이었다. 핏기가 가시지 않은 작은 것이, 월령의 가슴 위에서 울고 있었다.위지헌이 그 작은 것을 보았다. 붉고 쭈글쭈글한, 아직 사람 같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보는 순간, 그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두 생을 살며 수많은 주검을 보아 온 눈이었다. 그 눈이, 처음 보는 생명 앞에서 젖었다.땀에 젖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얼굴이, 위지헌을 보고 웃었다."…부군."월령이 낮게 불렀다."보세요. 봄이… 왔어요."위지헌이 그 곁에 무릎
황후가, 향로의 재를 초야의 얼굴에 뿌렸다.재가 눈에 들자, 초야가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향낭을 쥔 손이, 허공에서 흔들렸다.그 틈에 설련이 향낭을 빼앗아, 물그릇에 처넣었다. 마른 붉은 꽃잎이 물속에서 풀어졌다.초야가 눈을 감싸 쥐고 비틀거렸다. 그러나 넘어지지 않았다. 오래 도망쳐 온 몸은, 눈이 멀어도 발이 먼저 문을 찾았다."…잡아! 문을 막아!"황후가 소리쳤다. 그러나 산실 안에는, 그 여인을 힘으로 막을 손이 없었다. 산모와, 시비와, 늙은 황후뿐이었다.설련이 초야의 옷자락을 잡았다가, 그 힘에 밀려 넘어졌다.*"…마마님, 지금이에요!"청아가 소리쳤다.월령의 통증이 가장 높은 데까지 올라왔다. 향낭은 물에 잠겼고, 초야는 눈을 감싸 쥐었고, 산실은 아수라장이었다. 그 한복판에서, 아이가 나오려 했다."마마님, 눈 뜨세요! 정신 놓으면 안 돼요!"청아가 소리쳤다.월령의 눈이 자꾸 감겼다. 통증과, 옅게 남은 향이 그녀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러나 그녀는 배에 힘을 주며, 눈을 떴다."…안 놔. 이 아이는, 내가 낳아.""초야를 잡아라!"황후가 명했다.그러나 그 명을 받을 금군이, 문 안에는 없었다. 문밖의 위지헌이 그 명을 들었다. 그의 손이 칼자루로 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벨 자리가 아니었다. 그가 벨 수 있는 것은, 그 문 안에 없었다."…월령아."위지헌이 문밖에서 낮게 불렀다.반나절 동안, 그는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지 못했다. 그러나 아내가 안에서 정신을 놓으려는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낮게 이름을 불렀다."…듣고 있느냐. 나, 여기 있다."안에서, 월령이 그 목소리를 들었다. 감기던 눈이 다시 떠졌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그 소리는 닿았다. 늦지 않은 소리였다.그러나 초야는, 재를 뒤집어쓴 채로도 문 쪽으로 몸을 틀었다. 눈이 멀어도, 나갈 문은 아는 몸이었다.*산실 문이, 그 순간 벌컥 열렸다.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자리에, 위지헌이 서 있었다.들 수 없는 자리였다. 그러나
초야의 손이 소매에서 나왔다.작은 것이 쥐여 있었다. 마른 붉은 꽃잎을 뭉친, 향낭이었다."태울 것도 없습니다."초야가 낮게 말했다."지친 숨 가까이 두기만 하면 됩니다. 산기에 지친 숨은, 이 향을 이기지 못하지요."그 여인이, 향낭을 쥔 손을 월령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물러서라."황후의 목소리가 산실을 갈랐다. 그러나 초야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물러설 수 없습니다, 마마. 이 일은 오늘 밤으로 정해진 일이라."*설련이, 그 손목을 잡았다.두 손이 향낭 하나를 두고 실랑이했다. 늙지 않은 초야의 힘이, 설련의 손을 조금씩 밀어냈다. 향낭이 다시 월령의 얼굴 쪽으로 기울었다."…놓으십시오."설련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러나 손은 떨리지 않았다."놓아라, 아이야."초야가 낮게 말했다."이 일은 너보다 오래된 일이다. 너 같은 아이가 막을 일이 아니야.""…압니다."설련이 손목을 더 세게 쥐었다."오래된 일인 거, 저도 압니다. 그래서 막습니다."초야가 설련을 보았다. 재를 뒤집어쓰기 전의, 아직 고요한 눈이었다."…너도 자녕궁의 그늘에서 자란 아이가 아니냐. 그 그늘이 무엇을 시키는지, 너는 알 텐데.""알아서, 나왔습니다."설련이 손목을 더 세게 쥐었다."그 그늘이 무엇을 시키는지 알아서, 저는 거기서 나왔어요."초야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러나 곧 다시 고요해졌다."…나온다고 벗어날 것 같으냐. 명부에 한번 오른 이름은, 지워지지 않아.""그럼 오늘, 지우는 걸 보여 드리지요."설련이 이를 악물었다.향낭이, 두 손 사이에서 다시 한 번 기울었다.*월령의 통증이, 다시 밀려왔다.산기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향낭이 코앞에서 실랑이하는 그 순간에도, 아이는 나오려 했다."…마마님!"청아가 월령을 부축했다.월령은 이를 악물었다. 정신이 흐려지면 저 향에 지고, 정신을 붙들면 아이를 낳는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야 했다."…청아야."월령이 통증 사이로 낮게 불렀다."네, 마마님."
은매가 사라졌다는 말은 밤공기보다 먼저 월령의 손끝에 닿았다.청아는 거의 뛰어오다시피 했으나, 마지막 몇 걸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숨은 목구멍에서 가늘게 부서지고 있었고, 치맛자락에는 서원당 뒤뜰의 젖은 흙이 묻어 있었다. 품 안에 넣어 두었던 열쇠가 삐져나와 달빛을 받았다."제가 문을 잠갔습니다."청아가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분명히 안에서 잠그고, 바깥 고리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월령은 먼저 아이의 손을 보았다. 열쇠를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거짓말하는 손이 아니었다. 너무 놀라 제 잘못을 먼
아침 햇살은 젖은 종이를 가장 먼저 찾아왔다.비가 그친 다음날의 빛은 맑았으나 따뜻하지는 않았다. 서원당 대청 앞마당에 길게 비껴든 볕은 아직 물기를 품은 돌바닥 위에서 희게 부서졌고, 처마 끝에 남은 마지막 물방울들은 가끔씩 떨어져 마른 소리를 냈다.청아는 낮은 평상 셋을 대청 아래에 나란히 놓았다.그 위에 흰 천을 깔고, 다시 그 위에 등초본을 베껴 쓸 때 받쳤던 흡지를 한 장씩 펼쳤다. 종이는 밤사이 눅어 가장자리가 아주 조금 말려 있었고, 먹이 스친 곳에는 흐릿한 그림자가 남았다."젖은 종이는 그냥 두면 곰팡이가 습니
비가 그친 뒤의 새벽은 지나치게 맑았다.밤새 지붕을 두드리던 물소리가 멎자, 심가는 잠시 숨을 잃은 집처럼 조용해졌다. 처마 끝에는 아직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고, 뜰 가운데 고인 얕은 물에는 회색 하늘이 얇게 비쳤다. 행랑채 쪽에서는 젖은 짚을 뒤집는 소리가 늦게 깨어났고, 부엌에서는 불씨를 살리려 부싯돌을 치는 소리가 두어 번 낮게 울렸다.비가 지나간 자리는 늘 사람보다 먼저 말을 했다.기와 밑에 떨어진 진흙, 담장 아래로 밀려온 풀씨, 회랑 끝에 비스듬히 남은 발자국. 맑은 날에는 누구의 것인지 묻지 않아도 될 흔적들이,
비는 밤새 그치지 않았다.새벽녘에는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실을 감는 소리처럼 가늘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한 방울씩, 곧이어 두 방울씩, 나중에는 어느 것이 먼저 떨어졌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잦아졌다.심가의 아침은 젖은 냄새로 열렸다.행랑채 아이들은 짚신 밑창에 진흙을 묻힌 채 창고 앞을 오갔고, 부엌에서는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이느라 연기가 낮게 깔렸다. 말린 생강은 다시 대청 안으로 들여졌고, 약방의 작은 종은 창포 묶음을 처마 아래에 걸며 연신 코를 훌쩍였다.비가 오는 날에는 집안의 틈이 먼저 보였다.기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