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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이름 없는 아이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2 20:43:23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이 지났다.

위지헌은 그 사흘을, 거의 곤원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조정이 그를 여러 번 찾았다. 그때마다 그는, 급하지 않은 일이면 사람을 돌려보냈다. 정사보다 앞에 둔 것이, 두 생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

낮에, 그가 아이를 안았다.

큰 손이었다. 활을 당기고 칼을 쥐던 손이었다. 그 손 위에, 아직 이름도 없는 것이 담겼다.

"…이렇게, 안는 게 맞소."

위지헌이 낮게 물었다.

"목을, 받치세요. 아직 못 가눠요."

월령이 자리에 누운 채, 옅게 웃었다.

위지헌이 조심스레 아이의 목을 받쳤다. 전장의 손이, 그 작은 목 하나 앞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무겁소."

"안 무거워요."

"…그런데 왜, 손이 떨리오."

"…무거워서가, 아니라서 그렇겠죠."

"…눈을, 떴소."

"부군을 보네요."

"아직 잘 못 본다 하던데."

"그래도, 보는 것 같잖아요."

위지헌은 그 작은 눈이 저를 향한 것 같아, 숨을 죽였다. 활도 칼도, 그 눈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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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441. 빈전 둘

    곤원전 회랑에는 흰 천이 두 겹으로 걸려 있었다.바깥 겹은 어제 새로 건 선제의 것이었고, 안쪽 겹은 아직 걷히지 않은 황후의 것이었다. 삼베가 바람에 스칠 때마다 분향 연기가 한쪽으로 쏠렸다가 돌아왔다. 월령은 봄을 오른팔에 안고 그 두 겹 사이를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방어멈과 청아는 회랑 입구의 시녀 줄에서 걸음을 멈췄다. 상주 자리 가까이에는 종실 여인과 비빈만 들 수 있었다.예부 주사 변영달이 서열표를 접어 쥐고 달려왔다. 문턱에 발이 걸려 표가 반쯤 펼쳐졌고, 그는 그것을 가슴에 눌러 붙이고서야 절을 했다."섭정왕비마마, 아니, 왕비마마. 자리를 안내하겠사옵니다.""섭정왕비라 부르는 것이 틀렸습니까.""틀리지는 않사오나 맞지도 않사옵니다. 어제 폐하의 조서로 섭정이 파해졌으니, 섭정왕비 또한 파해진 것이옵니다."변영달이 표를 다시 펴서 손가락으로 짚었다."상주는 폐하이시고, 그 곁이 황제 생모 마마이시옵니다. 이어서 현비 마마, 덕비 마마, 순빈 마마, 의빈 마마, 정빈 마마, 류 귀인 마마, 그다음이 왕비마마이옵니다.""비빈 뒤로군요.""종실 서열에서는 선제의 후궁이 윗자리이옵니다. 왕비께서는 선제의 아우님 부인이시니, 예법이 그리 정하고……""알겠습니다."월령이 말을 끊자 변영달은 입을 다물고 상궁에게 눈짓했다. 상궁이 삼베 방석 하나를 들어 류 귀인의 방석 뒤로 옮겼다. 방석이 놓일 때 먼지가 얇게 올라왔다. 그것이 어제까지 섭정왕비였던 사람의 자리였다.*월령이 그 방석에 앉자 상주 자리가 보였다.위명서가 흰 상복에 매화 없는 소매로 병풍 없는 빈전 앞에 서 있었다. 어제 사위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어깨가 지나치게 곧았다. 그 곁에서 숙비가 한 걸음 뒤처진 자리를 지켰고, 비빈들이 그 뒤로 줄을 이루었다.위지헌은 이 줄에 없었다. 종실 아우의 자리는 남자들 줄의 맨 뒤쪽이었다. 인도 관도 없는 흰 옷의 사람이 거기 서 있다는 것을 월령은 돌아보지 않고 알았다. 돌아보지 않는 것이 이 자리의 법도였다.봄이 오른팔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440. 낭떠러지를 꽃밭으로

    흙이 얼어 있었다.왕부 마당 구석, 큰 살구나무 곁에 작은 나무 하나를 들일 자리를 초비가 팠다. 괭이가 언 흙에 튀었다. 묵아가 그 옆에서 볏짚을 풀었다. 심각이 등에 지고 온 삼베 속의 뿌리에는 흙이 덜 마른 채로 붙어 있었다."마마님, 겨울에 심는 게 아니에요. 봄에 심어야 해요.""안다. 심는 것이 아니라 묻는 것이다. 봄까지 뿌리만 묻어 둔다.""그럼 봄에 다시 파요?""봄에 다시 파서 제대로 심는다. 그때는 네가 파라."초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고향 밭두렁에서 움튼 것이었다. 마을이 탔고 그 옆 마을도 탔는데 뿌리는 타지 않았다. 초비가 그것을 제 손으로 언 땅에 묻고 묵아가 볏짚을 덮었다. 설련이 이레 만에 갈아입은 왕부 옷으로 그 곁에 섰고, 청아가 그 옆에 섰다."설련 언니, 이게 봄에 꽃이 필까요.""뿌리가 안 탔으면 피지. 살구나무는 뿌리로 산다고 했어."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흙이 덮이는 것을 보았다.*방어멈이 봄을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렸다.언 땅 위에 깐 멍석에서 아이가 방어멈의 손가락 하나를 잡고 섰다. 서자 방어멈이 손가락을 뺐다. 아이는 혼자 서서 기울었으나 넘어지지 않았다.월령이 오른쪽으로 세 걸음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봄아. 이리 오너라."아이가 소리 나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어미를 찾았다. 찾고 나서 발을 뗐다.하나, 둘, 셋째 걸음에서 기울어 월령의 무릎으로 왔다. 세 걸음이었다. 오른쪽으로 온 아이를 어미가 받았다.방어멈은 아이가 놀랄까 봐 소리도 손뼉도 내지 않고, 대신 혀를 한 번 찼다."셋이에요. 넘어지긴 뭘 넘어져요. 저놈이 안 넘어지네. 제가 키운 셋 중에 제일 빨라요."위지헌이 흰 옷에 왼 어깨를 감은 채, 배운 대로 오른쪽 마루에 서 있다가 내려왔다. 아이가 어미 무릎에서 아비를 보고 손을 뻗었다. 옥관이 없어서 흰 소매를 잡았다.*월령이 깃을 올렸다.목덜미에는 며칠 전 자국 위에 어젯밤 자국이 겹쳐 있었다. 위지헌이 오른손으로 그 손을 잡고 깃을 도로 내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439. 담 밖

    세숫물이 식어 있었다.삼황자부 침전에서 위명서가 사흘 만에 상복을 갈아입기 전에 그 물에 얼굴을 씻었다. 낮이라 주란은 등잔 없이 문 밖에 서 있었다.벗은 상복이 서안 위에 있고, 그 위에 품에서 꺼낸 것 둘이 놓여 있었다. 반으로 접힌 첫 장과, 그 곁에 반, 또 반 접힌 작은 종이 하나였다.위명서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새 상복을 입어 끈을 매듭 없이 묶었다. 첫 장을 품에 넣고 작은 종이를 마저 넣으려다가 손이 멈췄다. 발 밖에서 고 내관의 목소리가 났다."삼전하. 폐하께서 찾으십니다.""간다."그가 나가자 작은 종이만 서안 위에 남았다.주란이 벗은 상복을 걷으러 들어왔다가 서안 위의 종이를 보았다. 펴지 않고 접힌 채로 들었는데, 마른 먹에 물을 부은 냄새가 났다. 사흘 전 이 방 문 밖에서 맡은 냄새였다.주란이 종이를 폈다.삼전하의 흠 없는 글씨였다. 매화 소맷단을 벗은 손이 쓴 두 줄이 있었다.'위명서 · 태후.''심월령 · 황후.'*주란이 종이를 도로 접어 있던 자리에 있던 방향 그대로 놓았다. 그러고는 벗은 상복을 걷어 들고 회랑을 지나 대문 밖으로 나갔다.*왕부 마루에 월령이 봄의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아이가 마루 기둥을 잡고 섰다가 앉기를 되풀이했고, 방어멈이 그것을 세고 있었다. 오늘 여섯 번째였다."여섯이에요, 아씨. 어제는 넷이었어요. 이러다 이달 안에 걷겠어요."청아가 대문에서 왔다."마마님. 삼황자부 나인이 왔어요. 주란이라고 해요. 마마님을 뵙겠대요."주란이 흰 옷에 단정한 머리로 마당에 섰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월령이 그 여인을 보았다. 전생에는 없던 사람이었다. 이번 생에 저 사람의 침소에 든 사람이고, 명단에 이름이 없던 사람이었다."왕비마마.""말해라.""삼전하 서안에 종이가 있어요. 삼전하 글씨로 두 줄이에요. 위명서, 태후. 심월령, 황후. 그렇게 적혀 있어요.""삼전하는 네가 그 종이를 본 것을 아시느냐.""모르세요. 접힌 대로 도로 놓고 왔어요."월령은 한동안 아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438. 매듭들

    자가 재가 칸 위에 놓였다.호부 상서의 방이었다. 허도겸이 군량 절목의 섭정왕 재가 칸에 자를 놓았다. 칸이 비어 있었다. 사흘 전부터 상서가 비워 두라고 한 칸이었다."낭중. 그 칸은 비워 두게. 재가는 삼황자부로 올리고.""삼전하는 재가하실 자리가 아닙니다. 태자가 아니십니다.""곧 되실 자리지. 폐하께서 누우셨고 종친부가 움직였네. 낭중은 숫자를 보는 사람이니 알 것 아닌가. 어느 쪽 숫자가 큰지."허도겸이 자를 들지 않고 빈 칸에 대어 쟀다."비운 칸도 길이가 있습니다, 대감. 두 치 반입니다. 섭정왕 재가 칸은 절목이 생긴 뒤로 늘 두 치 반이었습니다. 삼황자부 칸은 절목에 없습니다. 없는 칸에 올리면 그것은 재가가 아니라 종이 한 장입니다. 소신은 종이 한 장에 군량을 못 내보냅니다."상서가 허도겸을 보았다. 인장을 도둑맞았다고 말한 사람이었고, 염로 물표 열한 장을 종친부가 덮어 준 덕에 아직 관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이제 종친부 쪽, 저울이 기운 쪽에 가서 서 있었다."낭중. 옥에서 닷새 있어 봤지. 또 있을 텐가.""자는 옥에서도 됩니다. 손가락으로 재면 됩니다."허도겸이 자를 들고 나왔다. 절목은 재가 칸이 빈 채로 상서의 방에 두고 나왔다.*왕부 마당에서 위지헌이 목패 둘을 꺼냈다.왕부 인이 찍힌 암위의 검은 목패였다. 초비와 묵아가 담 위가 아니라 땅에 서서 그 앞에 섰다."궁에 든다. 담이 아니라 문으로 든다. 자녕궁이 아니라 빈전 뒤채다. 흰 천 뒤로 누가 드나드는지 보고 와라."초비가 손바닥을 위로 하고 목패를 받았고, 묵아는 실을 든 손으로 받았다."저희도요? 강 나리나 기윤 나리처럼요?""암위다. 여자라 여암위고, 패는 같다.""패가 같으면 하는 일도 같아요?""같다. 보고 와서 말하는 것까지 같다."초비가 목패를 내려다보았다. 열아홉에 담 위에서 한 달 반을 보내고 땅에 내려온 지 열흘이었다. 발밑이 흔들리던 것이 목패 하나로 가라앉았다. 묵아는 목패를 실패 옆 소매에 넣었다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437. 셋

    고 내관이 발을 걷었다."섭정왕 전하. 폐하께서 드시라 하십니다."위지헌이 흰 옷에 왼 어깨를 감은 채로 회랑에서 들어왔고, 월령이 그 뒤를 따랐다. 월령은 발 앞에서 멈추고 안으로 들지 않았다. 여인이 설 자리가 아니라서 문밖, 발 하나 너머에 섰다.발 안에는 누운 사람 하나와 꿇은 사람 둘이 있었다. 아우와 아들이 꿇어서 셋이 되었다. 머리맡에는 꼭지가 오른쪽인 잔이 놓여 있었다."둘 다 있느냐.""예, 형님.""예, 아바마마.""짐이 죽으면 태자는 없다. 방금 명서한테 그리 말했다. 지헌아, 너도 들어라. 태자는 없다. 짐이 세우지 않았다. 열 해 동안 보류했다. 대황자 때 못 찍은 붉은 점을 그 뒤로 한 번도 못 찍었다. 그것이 짐의 흠이고, 흠인 채로 간다."기침이 났으나 잔은 흔들리지 않았다."그러니 짐이 죽으면 너희 둘이 정해라. 둘 중 하나가 오른다. 종친부가 정하면 배중곤이 정하는 것이고, 군이 정하면 칼이 정하는 것이다. 너희 둘이 정하면 너희 둘이 정한 것이다. 짐이 남길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다."*위지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저는 안 합니다."짧은 답에 경화제가 눈을 뜨고 아우를 보았다."까닭은.""제가 오르면 제 아내가 황후입니다.""그렇지.""그 여자 명부의 값 장에 제 아내 이름이 있습니다. 값이 황후입니다. 제가 오르면 그 값을 제 손으로 치르는 것이 됩니다. 그 여자 아비가 살구나무 밑에서 적게 한 것을 제가 옥새로 찍는 것입니다. 안 합니다. 그 종이대로는 안 갑니다."월령이 발 밖에서 그 말을 듣는 동안 손이 소매 안, 꽃잎 넷이 있는 자리로 갔다. 그 사람이 저를 황후로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전생에 제가 형장에서 한 말을, 못 들었다던 그 말을, 이 사람이 병상 앞에서 대신 하고 있었다."또 하나 있습니다.""말해라.""저는 전장 사람입니다. 열 해를 그리 살았습니다. 앉아서 붓 드는 자리는 제 자리가 아닙니다. 형님이 앉으신 자리에 제가 앉으면 저는 칼로 다스립니다. 그러면 나라가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436. 제 자리

    등잔이 문턱에 놓여 있었다.삼황자부 침전 문 앞에 주란이 흰 옷을 입고 그 등잔을 놓고 서 있었다. 위명서가 회랑 끝에서 그것을 보았다. 편전에서 아비 곁에 열흘 넘게 앉아 있다가 상복 한 벌을 갈아입으러 온 걸음이었다. 상복은 사흘에 한 번 갈아입는 것이 법도였다."들어오지 마라.""알고 있습니다, 삼전하. 새 상복은 서안 옆에 두었습니다."주란이 문을 열고 물러섰다. 위명서가 들어가자 문이 닫혔다. 주란은 등잔 곁, 문 밖에 남았다.안에서 접힌 종이를 펴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는 붓 소리가 났다. 먹 가는 소리는 나지 않았으니, 마른 먹에 물을 부어 쓴 것이었다. 붓이 두 줄을 짧게 지나가고 멈췄다. 그러고는 종이를 반, 또 반 접는 소리가 났다.문이 열렸을 때 상복은 갈려 있었다. 주란이 벗은 삼베 상복을 받았고, 위명서는 아무 말 없이 회랑을 걸어 나갔다.주란이 그 삼베를 안고 서 있었다. 소맷단에서 마른 먹에 물을 부은 냄새가 났다. 주란은 냄새를 안 맡은 얼굴로 상복을 접었다.*빈전 앞 저녁 곡에서 숙비가 앞에 서고, 위명서가 그 뒤 황자의 자리에 섰다.병풍 없는 어미의 등이 열흘째 앞에 있었다. 곡이 세 번 길게 가고 끊기고, 다시 세 번 가는 것을 위명서가 흠 없이 따라 했다. 배운 적이 없는데도 어미의 음과 제 음이 같았다.곡이 끝나자 숙비가 돌아서서 아들을 보았다."아바마마 곁에 있어라. 짐이 자다 깨면 네 얼굴이 보이게 하라고 하셨다지.""예, 어머니. 곡이 끝나면 바로 돌아갑니다.""어미 곁은 흰 천이 지킨다. 스무이레 동안은 그렇다. 네가 여기 서 있을 까닭이 없다."숙비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첫날 한 번 내밀어 잡은 손을 두 번 내밀지 않았다. 위명서가 절하고 편전으로 돌아섰다. 어미의 눈이 제 등에 있다는 것을 등으로 알았다.*발 안에서 아비가 눈을 떴다."명서냐.""예, 아바마마.""거기 앉아라."위명서가 앉자 머리맡에 꼭지가 오른쪽인 잔이 있었다. 아비의 숨이 그 잔 곁을 지나갔다. 드는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9. 잔

    태후의 초대장은 향이 없었다.그 사실이 먼저 심가를 조용하게 만들었다.아침 부엌에서는 멥쌀 씻는 물소리가 나고, 무쇠솥 가장자리에는 지난밤 끓여 둔 닭죽의 기름이 얇게 굳어 있었다. 행랑 쪽에서는 하인들이 장작을 패며 낮은 농담을 주고받았고, 마구간에서는 젖은 짚을 갈아내는 냄새가 느리게 흘러왔다.어제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그런데 검은 칠을 한 죽간 하나가 대문을 넘자, 집 안의 모든 소리가 반 박자씩 늦어졌다.칼을 갈던 호위가 손을 멈췄고, 죽을 푸던 계집종은 국자의 끝을 솥 가장자리에 대고 오래 움직이지 못했다. 살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8. 문턱

    아침빛은 얇았다.밤새 창을 열어 두었기 때문인지 방 안에는 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연꽃 향도, 난향도, 사람의 판단을 늦추던 희미한 쓴내도 모두 빠져나가고 없었다.대신 창가에는 말린 살구꽃 한 줌이 놓여 있었다.누가 두고 갔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청아는 그것을 보자마자 얼굴이 묘하게 굳었다. 웃음을 참는 얼굴과 울음을 참는 얼굴이 이상하게 닮을 수 있다는 것을, 월령은 그때 처음 알았다."왕부에서 보낸 거예요."청아는 아주 작게 말했다.왕부.그 두 글자만으로도 방 안의 공기가 다시 낮아지는 듯했다. 월령은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7. 숨

    심가의 아침은 낮은 소리들로 가득했다.지하 창고가 비었다는 말은 아직 누구의 입에서도 크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물동이가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내려앉고, 회랑을 쓸던 하인의 빗자루가 같은 자리에서 두 번 멈추고, 부엌의 계집종들이 죽 솥을 젓다 말고 서로의 눈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큰 집의 소문은 늘 사람보다 먼저 일어난다.쌀을 씻는 물소리,말에게 여물을 붓는 소리,행랑채 문고리가 바람도 없는데 달그락거리는 소리.그 작은 것들이 밤사이 심가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먼저 알렸다.안에서 잠긴 문.끊어지지 않은 밧줄.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6. 그늘

    이번에는.내 손을 놓지 마라.위지헌의 말은 한참 동안 측백나무 잎 사이에 머물렀다.봄빛은 잘게 부서져 내려왔고, 먼 연회장의 웃음소리는 얇은 비단 몇 겹 너머에서 들리는 것처럼 흐렸다.월령은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놓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다시는 다른 손을 잡지 않겠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심가를 살리겠다고,당신을 이용하겠다고,당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반드시 알아내겠다고.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는,당신을 믿고 싶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모두 참이었다.그래서 어느 하나도 먼저 꺼낼 수 없었다.말은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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