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설련은 찻상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모의 말을 기다렸다.고개를 숙인 채로도 보이는 것이 있었다. 상 위에 놓인 잔 하나가 먼저였고, 잔 뚜껑의 꼭지가 어느 쪽을 가리키는지가 다음이었고, 그 잔을 밀어 줄 고모의 느린 손끝이 마지막이었다. 향방이 도로 열려 방 안에는 단내가 짙게 고였고, 그 냄새가 옷깃마다 스며 있었다. 태후는 책봉례 때 입은 옷을 벗지 않은 채 첫잔을 비웠다."설련아.""예, 고모님.""오늘부터 명서 곁에 서라. 낮에는 서안 앞에서 먹을 갈고, 밤에도 불을 지켜라.""밤에도요.""그 아이가 새벽까지 종이를 보는 날이 많다. 주란은 내가 믿지 않는다. 등잔은 믿는 사람이 들어야 한다."설련은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뚜껑 꼭지가 오른쪽을 향해 있었다. 고모가 자신에게 처음으로 내어 준 잔이었다. 열여섯 해 동안 찻상 뒤에서 남의 잔만 돌려놓던 손이 제 앞의 잔을 보자 저 혼자 무릎 위에서 오므라들었다. 기쁨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늦게 온 것이었고, 늦게 온 것은 늘 값이 붙어 있었다."그 아이가 보는 종이와 만나는 사람을 내게 와서 말해라. 네가 내 눈이다.""…알겠습니다, 고모님.""너는 내 눈이 되어 돌아와서 내 입에게 말해라. 한 줄도 숨기지 말고.""예, 고모님. 한 줄도요."설련은 절을 깊이 하고 일어났다. 알고 드는 일이었다. 남의 손에 쥐여 들어가는 것보다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편이 값이 가벼웠다. 가볍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비가 협도 어귀에 서서 치르던 값을 이제 제가 치른다고 설련은 제게 일렀다. 그렇게 이르면 무릎이 덜 떨렸다.회랑에 나서자 소매 끝에 이 방의 단내가 묻어 있었다. 설련은 소매를 한 번 털고 걸었다. 털어도 단내는 비단 올 사이에 남아 회랑 끝까지 따라왔다. 왕부 마당의 국 냄새는 벌써 어디에도 없었다.*편전 곁 서재에는 등잔이 하나 켜져 있었다.위명서는 서안에 종친부 문서를 펴 두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있었다. 설련이 벼루와 먹을 들고 서안 옆에 앉았다. 먹이 벼
순빈은 별궁 마루에 올라 앉기도 전에 입부터 열었다."왕비마마, 근신이 길어지시니 적적하실까 해서 들렀어요. 후궁전에서는 요즘 마마 이야기뿐이라서요. 마마가 밤에 냉궁에 가신다면서요?"청아가 들고 있던 찻쟁반이 한 번 기울었다. 월령은 그 기울어진 쟁반을 먼저 보았고, 쟁반 위에서 흔들린 찻잔 뚜껑을 다음에 보았고, 마지막으로 순빈의 얼굴을 보았다. 악의가 한 올도 없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등줄기에 가는 것이 하나 지나갔다. 서늘함이었고, 그 서늘함이 간밤 깃 안쪽에 남은 자리에서 멎었다."누가 그렇게 말하던가요.""누구라고 할 것도 없어요. 청소하던 나인이 광 창에 불빛이 비친다고 했고요, 순라 서던 군사가 그걸 봤다고 했고요, 소화전 덕비 마마도 아신다고 했어요. 저는 걱정이 되어서 마마께 미리 말씀드리려고요.""고마워요. 걱정은 접어 두세요.""예, 마마. 저는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정말이에요. 아까 태후전에 들러서 문안만 드렸어요.""문안 자리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오갔나요.""아무 이야기도요. 태후마마께서 차를 따라 주시면서 요즘 별궁에 불빛이 있느냐고 물으셔서, 있다고 대답했을 뿐이에요. 광 창에 비친 불이 아주 작았다고도요."방어멈이 마루 기둥 뒤에서 몸을 굳히는 소리가 났다. 청아는 쟁반을 내려놓다가 찻잔을 하나 달그락 부딪쳤다. 월령만 얼굴빛이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지지 않게 하는 데 턱 밑의 힘줄이 다 들어갔다. 태후가 손수 따라 준 차 한 잔으로 이 헐거운 입을 열었다. 그 값이 얼마나 싼지 월령은 셈해 보았고, 셈하는 제가 싫었다.순빈이 환하게 웃으며 차를 마셨다. 월령은 그 웃음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다음 찻잔 뚜껑의 꼭지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손가락 끝이 뚜껑 위에서 조금 떨렸다. 이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이미 문은 열려 있었다. 간밤에 제 손으로 든 빗장이 오늘 저녁에는 남의 손에 들릴 것이다.*해가 기울기 전에 태후전의 명이 별궁에 닿았다.냉궁이라 불리던 광의 문 앞에 상궁 둘이 풀 먹인
노은 내관은 흰 비단 보자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왕부 마루에 올랐다.위지헌은 마루 기둥에 등을 댄 채 그것을 보았다. 보자기의 흰빛이 먼저 눈에 들었고, 그것을 받친 손가락이 다음이었고, 그 손가락이 열 해 동안 자녕궁 출입 명부를 넘기던 손가락이라는 것이 마지막으로 눈에 들었다. 새 총관이 된 사람이었다. 자녕궁의 문을 지키던 손이 이제는 황제의 어보 곁에 있었다. 걸음이 가볍고 발소리가 없어서 마루를 밟고도 나무가 울지 않았다. 윤백이 그 발치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가 아무 말 없이 눈길을 거두었다.보자기 안에서는 황지 한 장과 붓 한 자루, 먹 한 덩이가 나왔다. 먹이 갈려 있지 않아서 윤백이 말없이 벼루를 내와 물을 부었다. 위지헌은 선 자리에서 종이를 읽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않은 얼굴에서 눈만 평소처럼 맑았다. 간밤 냉궁의 빗장 소리가 아직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그 손으로 지금 다른 것을 쥐어야 했다.종이 윗머리에는 이미 문장이 박혀 있었다. 신 위지헌은 이후 황명 없이 궁담 안에 발을 들이지 않으며, 어기면 대역의 죄를 달게 받는다는 글이었다. 그 아래 이름을 쓸 자리가 비어 있었고, 비어 있는 폭이 붓 한 자루가 딱 들어갈 만큼이었다. 사람을 넣을 자리를 자로 재어 비워 둔 손이었다. 그는 그 폭에서 조카의 손이 아니라 어미의 손을 보았다."폐하의 분부는 이러하옵니다, 전하."노은이 바닥에 시선을 둔 채 말을 이었다."왕부 사람 강무진은 야간에 궁담에 접근한 죄로 옥에 있사옵니다. 전하께서 이 글을 쓰시면 폐하께서는 그 허물을 전하께 돌리시고 사람을 풀어 주시겠다 하셨사옵니다.""허물을 내게 돌린다.""예, 전하.""그 사람은 내가 시킨 대로 길에 서 있었을 뿐이다. 허물이 내 것인 것은 맞다."위지헌이 붓을 들었다. 먹물에 붓끝을 담그는 손에 흔들림이 없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손이었고, 명치 밑은 달랐다. 거기서 무엇이 한 번 뒤틀렸다. 이 종이 한 장이 발 한 장 너머의 그녀에게 닿는 마지막 길을 끊는다는 것을 그
태후전 상궁이 문서를 펴 들고 별궁 마당에 서서 사람의 수를 읽었다.월령은 마루에서 그것을 보았다. 상궁의 손에 들린 종이가 먼저 보였고, 그 뒤에 먹빛 소매를 모으고 선 문상궁이 다음이었고, 빗자루를 든 채 멎어 선 나인 넷의 발이 마지막으로 눈에 들었다."별궁에 배속된 나인 넷은 오늘부터 태후전으로 거두옵니다. 왕비마마의 시중은 데려오신 하나로 족하다 하시옵니다."문상궁은 향을 쓰지 않아서 마당에는 상궁의 옷에 밴 단내만 떠다녔다. 월령은 문서의 끝줄까지 읽은 뒤에야 청아를 돌아보았다."하나라면 청아로구나.""예, 마마님. 제가 하나예요."청아의 목소리는 밝았고, 밝은 것이 월령의 목 안을 조였다. 방어멈이 봄을 안은 채 마루에서 목을 뺐다."물은 누가 긷고 불은 누가 땝니까. 저 아이 손이 열이랍니까. 손가락이 열 개라고 열 사람 몫이 나오는 게 아니에요.""어멈은 아기씨 몫이라 시녀의 수에 들지 않사옵니다."상궁이 문서를 접어 소매에 넣었다. 나인 넷이 빗자루를 내려놓고 줄지어 대문을 나갔고, 그 발소리가 멀어지자 별궁 마당이 갑자기 넓어졌다. 사람을 하나씩 거두어 가는 손을 월령은 전생에 보았다. 그때도 마지막에 남은 것은 하나였다.월령은 청아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물동이 줄에 쓸려 벌겋게 부은 손이었다."물동이는 오늘부터 나와 같이 든다.""마마님이 물동이를 드시는 걸 태후전 사람이 보면 그것도 상소로 올라가요. 왕비가 하인 일을 한다고요.""그럼 밤에 든다."청아가 입을 벌렸다가 도로 닫았다. 방어멈은 혀를 찼다. 문상궁만 마당 구석의 물 항아리를 한 번 쳐다보고, 아무 말 없이 상궁을 따라 대문을 나섰다.*해시가 되자 궁담 밖 협도가 꺾이는 모퉁이에 강무진이 서 있었다.한 길 위 담 그늘에는 기윤이 몸을 붙이고 있었다. 위지헌을 담 안으로 올려 보낸 직후라 기윤의 소매에서는 지붕 기와의 이끼 냄새가 났다."기윤. 순라가 이 모퉁이를 돌면 나는 어느 정도로 조용히 막으면 되나.""순라가 오기 전에는 숨소리도
닷새째 밤에도 별궁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본채 마루에 앉은 월령은 봄을 재우고 나서 등잔을 낮추고 귀를 기울였다. 낮춘 등잔불이 먼저 보였고, 그 불빛 끝에 걸린 뒷문의 문살이 다음이었고, 문살 너머 캄캄한 뒤채 지붕의 윤곽이 마지막으로 눈에 들었다. 사박, 사박, 마른 흙을 밟는 소리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뒤쪽 담 너머를 오가다 새벽닭이 울기 전에 그쳤다. 청아가 이불 속에서 목을 움츠리고 속삭였다."마마님, 또 나요. 저 소리는 뒤의 그 건물 쪽이에요. 광으로 쓰는 낮은 건물이요.""안다. 날이 밝으면 열어 보겠다.""안 열어 보시면 안 돼요? 저는 거기 이름만 들어도 오싹해요. 옛 냉궁이라서요."월령은 대답하지 않고 등잔 심지를 만졌다. 손끝이 심지에 닿기 전에 한 번 멎었다. 이름이 오싹한 것이 아니었다. 그 건물의 남쪽 창이 어느 쪽을 보는지, 문이 어느 쪽에서 잠기는지를 월령은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었다. 열여덟 살에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방이었다. 등골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두려움이었고, 그 밑에 깔린 것은 두려움보다 오래된 체념이었다. 그 방이 아직 거기 있다는 것을 닷새 동안 모른 척해 온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담을 넘어온 사람은 새벽 직전에 나타났다.회색 무복을 입고 얼굴을 반쯤 천으로 가린 사내였다. 기윤이 아니었고 정무도 아니었다. 사내는 담 위에서 마당 안으로 떨어지며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청아가 비명을 삼키는 사이 월령이 마루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저절로 굳었으나 발은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어전 그림자의 단우라 하옵니다."사내가 한쪽 무릎을 꿇고 목소리를 죽였다."선제께서 붕어하시기 전에 새 황제의 등을 지키라는 유지를 남기셨사옵니다. 소인은 그 명으로 폐하 곁에 있사옵니다. 다만 선제께서 따로 일러 주신 말씀도 하나 있었사옵니다.""무엇입니까.""왕께서 궁 안에 소식을 넣으실 길이 없으면 그 길을 열어 주라 하셨사옵니다. 왕 전하의 서찰을 가져왔사옵니다. 답이 있으시면 내일 밤 같은 시각에 받겠사옵
복도 끝에서 유자 껍질을 벗긴 듯한 향이 먼저 건너왔다.위명서는 서재 문을 열면서 보았다. 문 앞에 등잔을 든 주란의 손이 먼저 보였고, 그 뒤 회랑 저편에서 소리 없이 다가오는 흰 옷자락이 다음이었고, 그 옷자락 위에 걸친 연한 쪽빛 겉옷의 소매가 마지막으로 눈에 들었다. 향은 그 소매에서 나왔다. 밤이 깊어 궁인들이 다 물러난 시각이었다. 선제의 후궁 류담희였다. 지난가을까지 청화각에서 꽃 같은 소매를 흔들던 사람이 상복 위에 겉옷 한 장만 걸치고 아비의 아들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위명서가 주란을 내려다보았다."너는 이제 물러나 있어라. 귀인과 나눌 말이 있다.""예, 폐하."대답은 했으나 주란은 등잔을 든 채 문 앞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등잔불이 그녀의 턱 밑을 비추었고, 턱은 조금도 숙여지지 않았다."너는 안 물러나느냐.""물러나면 등잔이 꺼져요."위명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대답이 어디를 건드렸는지 그는 바로 알지 못했다. 다만 목 안이 한 번 마른 것은 알았다. 주란의 손에서 등잔불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그가 문을 반쯤 더 열어 주었다. 문턱을 사이에 두고 등잔이 방 안과 회랑 양쪽을 비췄다.*류담희가 서재 안으로 들어와 서안에서 가장 먼 자리에 앉았다.위명서가 서안 앞에서 책을 덮었다. 술병도 차도 없는 방이었는데, 찻잔 하나가 서안 한쪽 끝에 놓여 있었다. 주란이 아까 내온 것이었다. 류담희는 그 찻잔의 뚜껑을 한 번 보았다. 보는 눈이 잔보다 뚜껑에 오래 머물렀다."폐하께 청이 있어 밤길을 걸었사옵니다.""말하시오. 선제의 귀인이 밤에 오는 것이 어떤 눈에 비칠지는 알고 왔겠지.""알고 왔사옵니다. 하오나 낮에는 청할 수 없사옵니다. 낮에는 태후전의 눈이 신첩의 처마 밑까지 있사옵니다."류담희가 두 손을 무릎에 모았다. 소매에서 유자 껍질을 문질러 입힌 향이 올라왔다. 아비가 가끔 소매에 묻혀 오던 향과 같은 것이었다. 위명서는 그 냄새를 맡고 처음으로 눈길을 서안 위로 내렸다. 그리운 냄새가 아
조서는 얇았다.얇은 종이가 사람을 가장 깊게 베는 날이 있다.심가 대문에 걸린 등불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내관이 돌아간 뒤에도 하인들은 감히 소리를 높이지 못했고, 부엌의 솥뚜껑은 평소보다 조용히 닫혔다. 종이 한 장이 집 안의 숨을 바꾸었다. 누가 지나가도 발끝이 먼저 조심스러워졌고, 아이들은 웃다가도 어른들의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월령은 조서를 다시 펼쳤다.궁중 내지 유출.호부 군량 장부 조작.심가 여식.그 말은 일부러 넓었다.월령일 수도 있고, 서윤일 수도 있었다. 혹은 둘 다일 수도 있었다. 넓은 말은
자녕궁에 가는 날, 경성의 거리에는 낮부터 등틀이 세워지고 있었다.상원절은 이미 지났지만, 대연의 봄에는 작은 등놀이가 자주 열렸다. 남쪽 수해지에서 올라온 장인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종이등을 만들었고, 궁은 그것을 사들여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모양을 갖췄다. 거리의 아이들은 등불을 좋아했고, 어른들은 쌀값을 생각하며 그 빛을 보았다.빛은 늘 아름다웠다.그러나 빛을 밝히는 기름값은 누군가의 장부에 적혔다.마차 안에서 서윤은 말이 없었다.오늘의 서윤은 옅은 연두빛 치마를 입었다. 한씨가 골라 준 옷이었다. 너무 화려하지 않
살구꽃 향이 났다.빗물에 젖은 진흙 냄새도, 목 안쪽을 태우던 비린 독향도 아니었다. 부드럽고 희미했다. 오래 닫혀 있던 창문 틈으로 먼 봄이 숨을 죽이고 들어오는 듯했다.심월령은 숨을 들이켰다.그리고 곧바로 기침을 토했다."아가씨!"누군가 비명을 질렀다.월령은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칼날이 닿기도 전부터 속을 태우던 열기가 아직 목 안쪽에 남은 것 같았다. 피와 비가 뒤섞이던 형장의 냄새가 혀끝에 되살아났다.아니.칼이 아니었다.그녀를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던 것은 칼날보다 조용한 것이었다. 탕약의 밑바닥에 가라앉
비가 내렸다.그러나 비는 피 냄새를 씻어 내리지 못했다.젖은 흙은 피를 먹은 뒤 오래된 쇠처럼 비렸다. 낮은 돌계단 틈마다 붉은 물이 고였고, 빗방울은 그 위에 닿을 때마다 잘게 부서져 흩어졌다. 형장 둘레에 몰린 백성들은 숨조차 함부로 쉬지 못했다. 누군가의 젖은 소매에서 눅눅한 마 냄새가 났고, 멀리 황궁 쪽 붉은 담은 비안개에 잠겨 마치 아직 마르지 않은 상처처럼 서 있었다.심월령은 그 붉은 담을 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무릎이 진흙 속에 반쯤 잠겨 있었다.한때 대연에서 가장 고운 비단만 몸에 두르던 황후의 무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