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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Author: 주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4 19:50:34

아이작은 마지막 시시의 가녀린 흔적까지 기록한 후 미련 없이 돌아섰다.

“잘 지내거라.”

300년전, 스스로 숲과 동화된 시시를 뒤로하고.

아이작의 귓가에 마지막으로 남겨진 시시의 목소리가 아련히 울려 퍼졌다.

[난, 다시는 그대들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을 거야.]

그는 시시의 뜻을 존중했다.

그 대가로 세계는 고요한 공기를 품은 채 벼랑 끝에 야생화와 같이 살아나가고 있었다.

아이작은 등 뒤, 커다란 나무의 존재를 인식한 채로 다시 사라졌다.

그가 움직이자 깊고 어두운 후드를 타고 여러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생이 깃든 인간의 목소리와 존재를 알리는 짐승의 신음 따위를 품고.

그렇게 바람이 부서지는 순간마다 세상 모든 것이 그의 귀와 눈과 피부로 스며들어,

아이작에게 기록하지 않을 수 없고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로 기록되었다.

그가 처음 기록한 것은 현자의 눈을 받은 그 순간이었다.

[아이작.]

보잘것없이 태어나 특별할 것 없이 자라던, 소년 아이작에게 내려진 여신의 목소리와 숨결과 손길이 닿았던 그 순간을.

그때 아이작에게는 여신 아르텐시아가 새로운 삶의 이유였으니까.

세계를 만들고 사랑과 애정을 쏟아부어 그것을 지키고자 인간과 그 외 생명체를 만들어 온기를 나누어 주었던.

다섯 명의 현자들에게는 주신이나 마찬가지였던 여신.

아르텐시아.

그녀는 이제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생명이 깃든 모든 것을 사랑했었다.

아이작은 여신의 마지막 모습과 스스로 신황이라 지칭하며 돌아서던 아미노의 모습이, 연못에 비친 그림자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러자 바람이, 따스했던 바람이 날카롭게 변해 그의 살결을 옭아맸다.

마치 그가 여신을 그리는 것을 죄악이라 여기는 것처럼.

마치, 그가 아르텐시아의 사랑과 애정을 떠올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처럼.

바람은 칼날보다 날카롭고 돌산 위의 바위보다 무겁게 그를 짓눌렀다.

그럼에도 아이작은 거친 손을 들어 그것을 어루만지듯 다독였다.

그의 손길은 위로하는 것 같았지만 그 속뜻은 결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이 세계에 살아 있는 모두가 죄인임을 잊지 않는 의미일지도 몰랐다.

아이작은 그렇게 누구에게도 향하지 못할 분노와 원망을 익숙하게 갈무리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가야 할 곳이 있었다.

세계의 끝자락. 옅은 한숨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세계를 지탱하는 생명의 원천이며 성스러운 신목, 에테르의 심장이 있는 땅이었다.

“…….”

하지만 그 찬란함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곳곳에 썩은 나무들과 윤기 없이 말라버린 풀, 가루가 되어 사라진 식물의 뿌리가 그것을 대신하고 있었으니까.

에테르의 힘으로 부와 영을 누린다는 지상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장소였다.

아이작은 눈 깜짝할 새에 도착해 더욱 침체된 회색빛의 세상을 둘러봤다.

그는 언제봐도 다르지 않을 이 참혹함 앞에 입이 썼다.

과거의 영광이 무색하게 지금은 겨우 기둥을 유지하고 서 있던 신목이 떠올랐으니까.

에테르는 위대한 세계의 기둥이었다.

아미노에게 힘을 빼앗겨 형편없는 모습으로 변하기 전까지.

여신이 없어진 세계에서 에테르는 지혜의 샘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아미노로부터 지켜낸 작은 심장 한 조각을 갈라진 숨겨 여전히 세계를 유지하는 데 힘을 보탰으니까.

“…에테르님.”

아이작은 흐릿한 시야 속에서 그 빛을 찾아 헤매며 마른 땅을 걸어 나갔다.

발에 치이는 마른 가지와 먼지는 올곧고 뚜렷하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그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그는 명치가 닫혀 숨이 막히는 기분에도 멈추지 않았다.

빛, 푸른 빛의 아래. 아이작의 삶의 한과 설움을 찾아야 했으니까.

매일 다른 죄책감과 후회로 점철된 곳.

무덤이었다.

흉측한 신목의 아래, 무언가를 막아놓은 듯한 바위 위로 크고 웅장한 비석이 있는 곳.

바로 인간이 잡아내려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여신 아르텐시아가 묻혀있는 곳이었다.

아이작은 떼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감히 소음을 내지 않고 걸었다.

그의 눈동자에 지독하게 시린 주변과 어울리는 무덤이 보일 때까지.

하지만 부지런히 걸어 도착한 무덤가는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과는 달랐다.

“이게 무슨.”

아이작은 여신이 죽은 300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에 왔다.

영원히 표출할 수 없을 감정을 뒤집어쓴 채로.

이 땅과, 저 비석과, 다 죽어가는 신목이 그녀와는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아서.

아름답고 자비로웠던 아르텐시아의 영면이 조금이라도 찬란하길 바라는 마음에 그랬다.

그것이 보잘 것 없던 자신에게 내려진 위대한 업과 삶의 이유를 준 그녀를 위해서 방관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최선은 오늘로 끝났다.

어둡게 빛이 나던 비석도, 그것을 비추던 하나 남은 세계의 조각도.

현자의 눈이 목도해버린 비현실적인 현실 앞에서 최선의 형체가 사라졌다.

뜨거운 바람을 타고 부서진 나무 조각이 걸음을 멈춘 그의 발에 부딪혔다.

아이작은 눈을 부릅떴다.

충격에 휩싸인 현자는 보이는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빛을 잃은 채 사라진 신목과 비석을 받치던 깨져버린 바위부터.

[세계를 잃었으니 너희는 곧 심연에 잠식되리라.]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비석 뒷면에 적힌 글자와

[나와 함께.]

파헤쳐진 여신 아르텐시아의 무덤까지.

모조리, 기록했다.

아이작은 잘 벼려진 죄악과 환희 속에서 숨 쉬는 법을 잃어버린 물고기처럼 떨리는 눈동자를 주체하지 못했다.

단 하나의 마지막 기록을 남겨 둔 채였다.

하지만 그 시간은 찰나와 같았다.

“…여신 아르텐시아.”

그는 마침내 숨을 토해냈고.

“재림.”

감히 그것을 확신하며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300년전, 강제로 강림 당해 죽음에까지 이르렀던 아르텐시아가 돌아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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