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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Author: YOON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03 14:05:35

일주일이 지났다.

세광그룹 CEO 아내 타이틀은 꽤나 지쳤다

그간 병원에는 여러사람들이 왔다갔고 그들을 상대하는 건 나 혼자 아니,

나를 생각해 쫓아내기도 하고 수습해주던 우리 병원 식구들 뿐이었다.

일주일 만에 마주한 햇빛이 눈부셨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했고

그 눈부신 햇빛을 손으로 가려 그늘을 만드니, 그 그늘이 햇빛보다 

지금 나에게 더 잘 어울린다 생각하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주홍민은 차 안에서 짧게 말했다.

“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고가 났던 교차로를 지나면서 미세하게 떨리는 내몸과

질끈 감는 내 얼굴을 보고도 그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집 안은 그대로였다.

거실 한쪽에 쌓인 나의 아이에 흔적들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직도 남아있었다

흘깃 시선을 두던 홍민은 심드렁한 말투로

“이따가 정리해. 원하면”

라고 가볍게 떨어졌다.

서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홍민은 서재로 들어갔다.

누구랑 통화를 하는 듯 문틈새로 말들이 새어 나왔다

침실로 들어가려 지나가던 서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한마디가 스쳤다

“…애새끼만 죽었어 쯧..”

그녀는 본능처럼 그 자리에 멈췄고, 문틈바구니로 나오는 그의 말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원래는 같이 뒤졌어야 했는데...그 년이 너무 많은 비밀을 알고 있어서

한꺼번에 처리할려고 했지 명줄도 긴지 피곤하게 됐어.”

잠시 웃음.

“나도 이제 새 출발하고 제대로 회사 키워봐야지 

할아버지도 요양병원으로 넣어버렸고 이제 쓸모 없는 년 언제까지 끼고 살아”

덜컹-

“당신 지금...내.. 내가 제대로 들은게 맞아..?”

홍민이 돌아봤다.

놀람은 짧았고, 곧 지워졌다.

“뭐야? 미쳤어?”

“당신이야? 정말로? 다 당신이 한거야?”

그는 천천히 휴대전화를 끊고 내려놓았다.

“그래.”

너무도 담담했다.

“왜… 왜 그런 짓을 했어…?”

그의 입가가 비틀리면서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넌 진짜 생각이 없어.”

“그건 우리 아이였어!!!니가!!!니가!!! 어떻게!!!!!!”

뚝-

가슴 깊은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억눌렸던 울음과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앞이 흐렸다.

그녀는 처음으로 홍민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정확히는 악을 썼다.

사랑한 사람에게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몰아치고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의 향연에 이성적인 판단이 서지않는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꿈을 꾸고있는 것같았고,

다가오는 홍민의 멱살을 붙잡고

당장이라도 주먹을 내려치던 머리채를 붙잡던 어떻게든 이 감정을 추스르고싶었다.

"왜 그랬는데!!!!! 도대체 왜!!!!!"

홍민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악다구니를 쓰는 나를 쳐다보며 자신에게 내려치는 내 팔을 붙들었다

“소리 지르지 마.”

“당신이 죽였잖아 내 아이를!!!! 나를!!!!!!!”

그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짧고 둔탁한 소리.

서나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뺨이 화끈하게 타올랐다.

귀 안에서 이명이 울렸다.

“감히 누구한테 소리를 질러.”

비웃음 섞인 그의 말투나 행동은 이제 내가 알던 홍민이 아니였다.

“그 애 어차피 올라가려는 수단일 뿐이였어. 너도 어렴풋이 알고있지않았나?”

“뭐?”

그는 낮게 웃었다.

“니가 아는 내 비밀, 이젠 거슬리는 애새끼, 한꺼번에 치워버리겠다고 내가

준비했는데 왜 니년은 살아서 사람 피곤하게 해”

홍민이 변한건 알고있었다. 

세광그룹 주광렬 회장님, 그러니까 홍민의 할아버지는 내 담당 VIP환자셨고,

대 세광그룹 회장, 재벌 등의 타이틀로 사람들은 그를 보았지만

나에게는 불의의 사고로 모든 가족을 잃고 남은 가족이라곤 두 손자뿐인 쓸쓸한 노인이었다.

일찍이 조실부모했던 나는 그런 그에게 따뜻했고, 그도 그 따뜻함에 응해 나를 손녀처럼 대해주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나에게 '내 가족이 되었으면 한다'는 그의 뜻에 따라 만난 사람이 죽은 장남의 아들이였던

첫째손자 홍민이었다.

홍민은 회사 사장 자리때문에 의도적으로 나에게 잘 해줬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고, 정을 주려 하지 않았지만

그의 따뜻한 배려와 애정을 무시하지 못하고 끝내 그에게 마음을 줘버렸다.

그때부터 잘못된 걸까? 

회장님과 홍민을 잃고 싶지않아 홍민에게 휘둘리던 내 감정과 행동들이

이렇게 파국으로 만들걸까? 적어도 회장님을 치매로 몰아가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요양병원으로 보내버렸을 때

그때 내가 회장님만이라도 지켰다면 그러면 달라졌을까?

“날 사랑하긴 했니...?”

악을 쓰던 그녀는 갑자기 우두커니 멈춰 많을 생각 끝에 고개를 숙이고 대뜸 차분한 어투로 물었다

“참 이와중에...넌 진짜 주제 파악을 못 해. 널 내가 왜 사랑해

노인네 눈에 들려고 적당히 맞춰준거지 뭐 이렇게 알았으니 끝이네?

다른사람들 눈때문에 이미지 챙긴다고 연기하는것도”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비아냥과 살기가 서려 있었다.

서나는 비틀거리며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 쥐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지만, 시선만큼은 그를 향했다.

“쓰레기 새끼”

“쓰레기?”

그는 코웃음을 쳤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돌아가. 네가 몰랐을 뿐이야.”

“아, 따지고 보면 니 애 니가 죽인거지 멍청해서

그러니까 애도 못 지킨 주제에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마.

그리고 니 병원에 김도윤 의사인가? 친한가보더라? 내말 무슨 뜻인지 알지?

뭐라도 조금 받고 나가고 싶으면 처신 잘하고 입다물어”

내 머리를 툭툭치며 한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모든 소리가 멀어졌다.

서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돌아서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도저히 저 구역질 나는 인간과 한 공간에 있을 수 없었다.

뛰쳐나온 도심의 밤 공기는 서늘했다.

눈물과 함께 뺨이 얼어붙듯 식어갔다.

손끝이 떨렸다.

강다리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물 위에 도시의 불빛이 번지고 있었다.

잔잔한 수면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요했다.

'내가 널 왜 사랑해'

'애도 못 지킨 주제에.'

그의 말이 계속 귓가를 파고들었다.

심장이 비어져 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도 듣고싶지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이유를 찾고 싶지도 어떠한 희망도 살아갈 용기 내고 싶지않았다.

그냥 홀로 남아 찢기고 짓이겨져 너덜거리는 마음을 들고

침묵하고싶었다.

다리로 지나가는 차들을 한번,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올려다 보았다

시커먼 하늘에 별은 없었다

아무도 자신을 붙잡지 않았다

자신을 붙잡지 않는 모든 것에 왜 다행인 마음이 드는지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덜컹-

아이의 심장 소리가 떠올랐다.

물결에 내 마음을 담가 조용해진 내 주변에 아이의 심장소리만 온전히 떠올리고 싶었다

그리고—

물 위로 한 번 파문이 크게 번졌다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해졌다

드디어 그녀가 원했던 침묵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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