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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Author: YOON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16 07:30:03

열흘 뒤.

회장님 저택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있었다.

높은 철문이 천천히 열리고

차가 긴 진입로를 따라 올라갔다.

차창 밖으로 오래된 나무들이 지나갔다.

정돈된 정원, 조용한 분수, 넓은 마당.

모든 것이 지나치게 단정했다.

마치—

흠집 하나 없이 닦여 있는 유리 상자처럼.

서나는 무릎 위에 올린 손을 살짝 쥐었다.

레스토랑에서 이야기한 회장님과의 식사자리가 오늘이다.

그리고

회귀 후 처음으로.

그를 본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 창문을 살짝 열어 본다. 멈춘 차 밖엔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아카시아 나무 꽃 내음에 머리가 아찔해져

금방 문을 닫았다.

아니, 꽃 내음 때문인지 다시 마주 해야 할 그 때문인지 서나는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려 한다.

차에는 서현과 같이 타고 있었고

그는 나에게 눈짓 한 번 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이 열리기 직전.

“…괜찮습니까.”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서현이었다.

그는 창밖을 보고 있었지만

창문에 비친 시선 너머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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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의 아침은 변함없었다.차트가 쌓이고, 호출음이 울리고,누군가는 뛰고, 누군가는 웃는다.모든 것이—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간다.서나는 스테이션에 서서 펜을 들었다.차트를 넘기는 손끝이 멈춤 없이 움직인다.“한 간호사, 305호 수액 교체했어요?”“네, 방금 하고 왔어요.”담담한 목소리.흔들림 없는 표정.겉으로 보기엔—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서나와 같은 사람이었다.그런 서나를 보던 동료는 회식에서 그냥 그렇게 가버린 그녀가 걱정 되었지만 이내 그 걱정을 넣어두기로 했다서나는 어제 도윤과의 만남으로 전부 쏟아냈다눈물도, 감정도,붙잡고 있던 것들도.그래서 지금 남은 건—차갑게 가라앉은 이성뿐이었다.서나는 마지막 사인을 하고 펜을 내려놓았다.그리고 생각했다.이제—할 차례다.퇴근 후.서나는 병원을 나와 정처없이 걸었다. 배도 고프지않아 저녁도 거르고 발길 닿는 카페에 도착했다어서오세요-카페는 작았지만 곳곳에 페브릭 디자인의 인형이 놓여져 있었고 흔한 그릇이 아닌 사장의 미감이 돋보이는엔틱한 디자인의 작은 그릇들이 여기저기 놓여져 있었다.놓여져있는 그릇이나 인형이 순서나 정갈함은 없었지만 두서없는 그 자리들이 오히려 주광색 조명 밑에서 그것들을 더 빛나게 하였다.주문하시겠어요?단발머리에 나이가 조금 있어보이는 중년의 여성분이 서나에게 따뜻 어투로 질문하였다.따뜻한 분위기에 잠시 미소를 짓던 그녀는 습관처럼 이내 쓸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메리카노 따뜻한걸로 하나 주세요'그런 그녀를 본 사장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신경쓰였지만 이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러 뒤를 돌았다.뒤 돌은 그녀를 본 서나는 창가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책 하나를 꺼냈다.'몽테크리스토 백작' 그녀가 평소 좋아하는 고전문학 소설들 중 하나였다.한장, 한장 넘기며 읽기 시작했고, 그 무렵 아메리카노와 쿠키를 쟁반에 가지고 온 사장은 테이블에 내려놓으며머쓱하단 투로 이야기했다.'힘들어 보이시길래요 쿠키는 서비스입니다''

  • 나의 조각배   9화

    소독약 냄새. 분주하게 오가는 발걸음. 익숙한 호출음.그리고—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가는 일상. 회장님과의 식사, 정확히는 그와의 계약 후 3일이 지났다. 일상으로 돌아온 서나는 간호사복의 소매를 정리하며 스테이션에 섰다. 차트 위로 시선을 떨구고, 펜을 움직인다. 회귀 후 병가를 내고 한달을 쉬었다 말도 안되는 휴가 기간이였지만 근무하는 5년 동안 휴가 결근 없이 성실히 출근한 서나의 평소 행실과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간호사에게 정상참작 되어 한 달이라는 기간동안 쉴 수 있었다 처음 병원에서 회귀 후 회장님을 만나고 난 후엔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 온 병실이, 복도가 전부 그날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그 아이가 있었고.그 아이를 잃었고.그리고—그날.미세하게 손 끝이 떨리던 서나는 잠깐 펜을 멈췄다. “한 간호사, 302호 바이탈 체크했어요?”“네, 방금 하고 왔어요.”현실로 돌아 오게 만드는 그 질문에 손의 떨림을 멈추고 작게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완벽하게—평범한 간호사, 한서나였다.하지만.심장 깊숙한 곳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낯선 공간.“…괜찮아요?”옆에 있던 동료 간호사가 물었다.서나는 고개를 들었다.“아, 네. 잠깐 생각 좀…”“오늘 회식 있는 거 알죠? 빠지지 말아요~”회식.그 단어가 귀에 들어오는 순간,서나의 시선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네. 갈게요.”저녁.병원 근처의 식당.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웃음소리. 잔 부딪히는 소리. 가벼운 농담들.서나는 자리에 앉아 잔을 만지작거렸다.이 풍경도—너무 익숙했다.그때였다.문이 열리는 소리.그리고—“늦어서 죄송합니다.”그 목소리.서나의 손이 멈췄다.심장이—쿵.하고 내려앉았다.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곳에—도윤이 서 있었다.여전히 단정한 모습. 조용한

  • 나의 조각배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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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지만 날씨는 들쭉날쭉하다오늘도 갑작스런 소낙비에 황급히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 비에 살짝 젖은 옷과 머리를 털고 들어간다.OO호텔 레스토랑.같은 창가 자리.서나는 물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잔 표면에 맺힌 작은 물방울이 손끝에 묻어났다.왔다.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남자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주서현.그는 이번에도 같은 표정이었다.단정하게 떨어지는 검은 코트, 흐트러짐 없는 걸음.사람들 사이를 지나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다. 마치 이 공간 자체가 그의 배경처럼 조용히 따라 움직였다.서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오셨네요.”서현은 짧게 고개만 끄덕였다.그리고 의자에 앉았다.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웨이터가 물을 따라주고 물러나자 그제야 그가 입을 열었다.“…한 달.”차갑고 낮은 목소리였다.“정확하더군요.”서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한 달 전 그녀가 말했던 주가 움직임, 계열사 자금 흐름, 그리고 런칭 발표 전 지분 매집 서현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한 번 톡— 두 번 톡— 두드렸다.그의 습관이었다. 생각할 때 나오는 아주 미세한 버릇."일단 확인만하고 다른 조치를 취하진않았습니다. 출처가... 너무 황당해서 믿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요”그는 턱을 괴며 그녀를 쳐다보고 말했다. 여전히 믿지 못 한다는 태도였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아했다.“이제 본론을 듣죠.”잠시 멈췄다.그리고 천천히 말했다.“당신이 말했던 계약이 뭔지.”레스토랑 창밖의 야경이 유리창에 비쳤다.서나는 잠깐 시선을 떨어뜨렸다가 다시 올렸다.그리고 조용히 말했다.“계약결혼을 해주세요”정적.짧지만 분명히 공기가 멈춘 순간이었다.서현의 눈썹이 아주 미묘하게 움직였다.그는 웃지도 않았다.화도 내지 않았다.다만—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 손으로 턱을 문질렀다.그 행동은 아주 느렸다.마치 시간을 일부러 늘리는 사람처럼.“…흥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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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조각배   5화

    들어간 병실은 고요했다.심전도 모니터가 일정한 간격으로 짧은 신호음을 흘려보내고 있었다.창밖으로 늦은 오후의 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흰 이불 위에 길게 드리워졌다.침대에 기대 앉아 있는 사람은주광렬 회장이었다.한때 재계 1위를 쥐락펴락하던 사내의 기세는 병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조금 누그러져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날카로웠다.나이와 병색이 깎아내리지 못한 권위.그 모습을 오랜만에 본 서나는 당장이라도 안고 울고싶었다따뜻하셨던 내회장님단단하게 뿌리내린 고목같던 회장님속으로 뱉어내는 말에 울컥하였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한걸음 한걸음 그에게 다가갔다“왔느냐.”낮고 쉰 목소리.“네, 회장님.”서나는 조용히 인사를 하고 떨리는 손으로 회장의 상태를 체크했다회장이 그녀를 찬찬히 살폈다.그리고 회장이 본론을 꺼냈다.“니 얼굴도 볼 겸 겸사겸사 불렀는데, 널 부른건 다른건 아니고흥민이 만나는 날 장소는 oo호텔 레스토랑으로 오후에 잡아두었다.”그 이름이 공기 속에 떨어졌다.주홍민.서나는 떨리는 손을 우뚝 멈춰 눈을 내리깔았다가, 천천히 다시 들었다.“회장님.”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단했다.“그 자리… 다른 분으로 바꿔주실 수 있습니까.”회장의 눈이 가늘어졌다.“무슨 뜻이지.”“홍민 씨가 아니라, 다른 분을 뵙고 싶습니다.”“이유는.”본인이 예상한 대답이 아닌 것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단도직입적인 질문.서나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저는… 주서현 씨를 만나보고 싶습니다.”짧은 정적.모니터의 전자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주서현.막내딸의 아들.조용히 경영 수업을 받아왔고, 최근 세광그룹 3팀 팀장으로서 실적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차기 CEO 후보로 거론되는 주홍민 다음 두 인물중 하나.그리고—주홍민과 공개적으로는 우애를 유지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치열한 경쟁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회장의 눈빛이 깊어졌다.“서현이?”“네.”“홍민이 아니라.”“네.”회장은 손가락으로 침대 난간을 두드렸다.“이유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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