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반차 쓸까.’
심각하게 고민해 보는 시아였다.
‘딩’
[퀘스트 : 남자주인공과 점심 식사를 하시오
성공 시 : 남자주인공 호감도 +1 / 실패 시 : 피로도 ×2]퀘스트가 떴다. 이 꼴을 하고 감히 남자주인공이랑 식사를 하라는 말도 안 되는 퀘스트였다.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시아는 주여에게 당당히 반차를 신청했다. 급한 일도 없으니 당연히 허락이 떨어졌다.
‘어제 지 업고 다닌 거 생각하면 아오.’
속으로 욕하던 시아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어젯밤 기억을 떠올리자 어깨가 다시 욱신거리는 기분이었다. 술 취한 남자 둘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생각만 해도 진이 빠졌다.
어느새 도윤이 도착해 있었다.
“대리님, 저 어제 실수한 거 없었어요?”
시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도윤을 쳐다봤다.
“있어요. 룸 값 줘요.”
화들짝 놀란 도윤이 얼마냐고 물었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던 시아는 바로 핸드폰을 열어 도윤에게 계좌번호를 보냈다.
“3분의 1로 해서 줘요.”
“제가 다 낼게요.”
“왜요?”
시아가 진짜 궁금해서 물었다. 자기 건 그렇다 쳐도 부장 것까지? 적은 돈도 아닌데?
“챙겨줘서 고마워서요.”
해맑은 도윤은 정말 그 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시아는 그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돈 굳는다는데 뭐.
있는 집 자식인가 보지.
시아는 슬쩍 도윤의 옷차림을 훑어봤다. 깔끔하긴 했지만 옷에 관심이 없는 시아가 보기엔 그냥 회사원 정장이었다.
“알면 됐어요. 술 적당히 먹어요.”
“감사해요.”
[퀘스트 : 권도윤의 호감도를 올려라
성공 시 : 권도윤 호감도 +1 / 실패 시 : 권도윤 호감도 -1]이미 주여에게 빠져가는 것 같은 권도윤 말이니?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이니?
이것도 그냥 호감도를 안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퀘스트창을 손으로 슥 밀어버린 시아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오늘따라 글자가 두 개씩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반차만 아니었으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시아 씨, 비품실 좀 다녀오지?”
김 팀장이 시아에게 비품실에서 A4용지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아니 신입사원 권도윤 내버려두고 왜 자신을 시키는 것인가.
시아가 아주 잠깐 도윤 쪽을 바라봤다. 도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신입은 사람 아니냐.’
궁시렁대면서도 시아는 비품실로 향했다.
에어컨이 안 틀어져 있어서 숨이 턱 막혀왔다. 날이 30도를 넘어갔다. 시아는 총총거리며 A4용지를 찾았다. 창문도 없는 좁은 공간이라 공기까지 후끈했다.
어렵지 않게 발견한 용지를 들고 비품실을 나가려던 그 순간.
‘덜컹.’
“응?”
‘덜컹덜컹.’
문고리가 헛돌며 열리지 않았다. 시아의 머릿속이 노래졌다. 핸드폰도 자리에 두고 왔기 때문이다.
“아니, 잠깐만.”
다시 한번 문고리를 돌렸다. 역시나 헛돌았다.
꼼짝없이 비품실에 갇힌 시아가 헉헉대며 문 옆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날이 너무 더워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부쳐봐도 뜨거운 공기만 움직였다.
“살려... 주세요.”
반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외쳐보았다.
대답은 없었다.
시아는 생각했다.
‘나 반차 냈는데.....’
기껏 반차까지 받아놨는데 퇴근은커녕 비품실에서 말라죽게 생겼다.
한여름 무더위에 숨이 막혀왔고 몸에서는 땀이 떨어져 내렸다. 블라우스는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한참을 헐떡이며 갇혀 있던 시아는 드디어 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었다.
‘쿵쿵쿵쿵.’
부서져라 문을 두드렸다.
“살려주세요!”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서 소리 질렀다.
이윽고 헛돌던 비품실 문이 열리고 도윤이 나타났다.
시아는 기쁜 마음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도윤을 불렀다.
“도윤 씨!”
이내 도윤이 얼굴을 붉히고는 양복 재킷을 벗어 시아에게 둘러줬다. 도윤이 시건이 잠깐 아래로 떨어졌다가 황급히 옆으로 비껴갔다. 그가 고개를 돌린채 대꾸했다.
‘더워 죽겠는데 뭐 하는 짓이야.’
“안에...다 비쳐요, 대리님….”
그랬다. 안에서 땀을 너무 흘린 나머지 블라우스가 젖어 시아의 속옷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시아가 황급히 자신의 앞을 내려다봤다. 재킷이 없었으면 그대로 사무실까지 걸어갈 뻔했다.
“으아아, 고마워요 도윤 씨. 옷 세탁해서 드릴게요.”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진 시아가 고개를 숙였다.
시아는 자리로 돌아가 복사기에 A4용지를 채워 넣었다. 겨우 살아 나왔는데 손에 들고 온 용지를 그대로 두고 가는 것도 억울했다.
그 모습을 본 도윤이 혼자 생각했다.
‘그런 일이 있어도 맡은 일은 다 하네?’
‘생각보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잖아?’
‘딩.’
[퀘스트 성공 : 권도윤 호감도 +1]
‘엥?’
시아는 당황했다.
도윤의 호감도가 오를 일이 뭐가 있었는가.
설마 속옷이 비쳐서 호감도가 오른 거냐?
권도윤 너 변태 새끼였어?!
시아는 실눈을 뜨고 도윤을 바라보며 가슴을 가렸다.
잘생겨도 변태는 사절이다.
도윤이 괜스레 고개를 돌려 목을 가다듬었다.
결국 반차를 낸 시아는 도윤의 옷을 입고 퇴근해버렸다. 다른 직원들의 시선이 따라붙었지만 지금은 그것까지 신경 쓸 체력이 없었다.
[남자주인공이랑 점심은!]
[안 먹으면 후회할 텐데.]
[넌 피로도 두 배의 무서움을 몰라서 그래.]
눈앞에 뜬 퀘스트창을 손으로 휙휙 날려버렸다. 야근이라면 지겹도록 해봤다. 남자주인공이랑 밥을 어떻게 먹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피로했다.
시아는 고로 집에 가서 씻고 바로 드러누웠다. 날려버린 반차는 조금 아깝지만, 오늘 그녀는 인간의 몰골이 아니었다.
침대에 몸을 던지자 그대로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베개에 얼굴을 묻은 시아가 발끝만 꼼지락거렸다.
‘딩.’
[퀘스트 실패 : 피로도 ×2]
쳇.
시아는 손을 휘저어 퀘스트창을 날려버렸다. 피로도 두 배면 어쩔 건데. 7일 야근도 해본 몸이라 이거야.
저 악녀들은 시아를 물로 보나 보다. 이번에는 시아도 배째라는 식으로 나왔다.
잠시 몸을 일으켜 도윤의 정장을 드라이 맡기러 나갔다. 받은 건 돌려줘야 마음이 편했다.
“어유, 이건 너무 비싸서 조심해야겠는데.”
시아의 눈이 튀어나왔다. 세탁소 사장님이 비싸다고 할 정도면 명품인가? 일개 신입사원 주제에 명품을 입고 다닌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부잣집 아들인가.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변태면 어때.
부잔데.
더 잘해줘야지 마음먹는 시아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아까보다 조금 가벼워졌다. 부잣집 아들과 친해진다고 생각하니 아픈 어깨도 조금 덜 아픈 것 같았다.
시아는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가 진정한 휴식을 만끽했다. 자고 나면 다시 아침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주인공도 부럽지 않았다.
다음 날, 시아는 피로도 두 배 이벤트를 몸소 겪어야 했다.
눈을 뜨는 것부터 평소와 달랐다. 눈꺼풀에 누가 추라도 매달아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겨우 몸을 일으키자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이것들 두 배가 아니라 몇 배로 준 거 아니야?’
도윤이 정말로 당황해서 허둥거렸다.“네? 갑자기 무슨. 지금 취하신 것 같은데.”“안 취했는데예?”예리가 몸을 세우고 말했다. 그녀가 핸드폰을 내밀었다.“괜찮으면 번호 주이소.”도윤이 당황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예리의 표정이 일순 상처받은 모양이 되었다. 도윤은 핸드폰을 받아들고 자신의 번호를 입력한 뒤, 제 핸드폰으로 통화를 걸었다.“울지 마세요!”“안 울었는데예?”예리가 뭔 소리를 하냐며 핸드폰을 다시 가져왔다. 도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예리를 쳐다보았다.‘재밌으신 분이네.’숙소 안에서는 시아와 이태가 파인애플을 두고 씨름하고 있었다. 시아가 사과처럼 껍질을 까려고 칼을 들었다가 단단한 껍질에 화가 나서 파인애플을 푹 하고 찔렀다. 이태가 시아가 다칠까 봐 그녀를 말리며 파인애플을 잘게 썰며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파인애플 몇 조각을 살려서 접시에 담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주여는 고개를 숙이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자면 안 돼! 파인애플 먹어야 돼요!”시아가 달려가서 주여의 어깨를 흔들어 그녀를 깨웠다. 주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헤롱거렸다. 시아가 손으로 주여의 입 가까이에 파인애플을 가져다 대었다.“제발! 과장님 눈을 떠요!”그녀의 애절한 외침에 주여가 결국 도윤의 품으로 쓰러졌다.“젠장!”시아가 파인애플을 거칠게 접시에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손에 묻은 즙을 핥았다.“으악!!”‘딩’[퀘스트 실패 : 시아 파인애플 먹기]소름 돋는 신맛에 시아의 눈이 감기며 파르르 떨려왔다.예리가 시아를 미친년 쳐다보듯 바라보았다. 두 남자는 또 시작이네 이러고 있었다. 시아의 몸이 배배 꼬이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도윤이 다급히 주여의 폭탄주를 넘겨주었다. 시아가 씁-하거리며 폭탄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이태는 그런 시아를 말리지도 않고 조용히 파인애플을 굽기 시작했다.“그걸 와 구워예?”“구우면 달아질 것 같아서 굽습니다.”시아가 이태를 보고 소리쳤다.“그거 버려요!”이태가 과감히 불 사이로 파인애플을
예리가 천천히 일어나 그들을 돕는 척하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도윤을 쫓으며 교묘히 주여와 도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도윤은 그런지도 모르고 시아에게 다가가서 머리에 손을 턱 올렸다.“진짜 보고 싶었어요.”시아가 찡해져서 도윤에게 나도라고 말하려던 순간 이태가 시아를 품 안에 넣었다.“니가 왜.”“넌 보고 싶은 친구도 없냐?”도윤이 꽥 소리를 질렀다. 이태가 더욱더 방어적으로 시아를 껴안았다. 시아를 두고 두 남자가 유치하게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예리가 주여를 쳐다보았다. 주여는 옷을 벗어서 정리하고 있었다. 예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아니 한 과장님. 권이태 부산에서도 저럽니까?”도윤이 드디어 예리에게 말을 걸었다.“저도... 처음 보는데예.”예리가 당황해하며 이태를 쳐다보았다. 예리는 그들이 회사에서 얼마나 필사적으로 연기를 한 건지 이제야 깨달았다. 물론 더럽게 못했지만 저 모습을 숨기는 게 용했다. 예리가 혀를 차며 주여의 옆에서 자신의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몇 번 보다 보면 익숙해져요.”주여가 상큼하게 싱긋 웃으며 예리에게 말했다. 예리가 어쩐지 알 수 없는 짠함이 밀려와 주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야 너도?’‘응 나도.’둘은 눈빛으로 대화를 끝냈다. 예리가 처음으로 진짜 쿡하고 웃으며 팔을 걷어붙였다.“나와보이소. 새우 한번 닦아야 된다카이!”주여가 자연스럽게 그 옆으로 가서 붙어 예리를 돕기 시작했다. 시아가 그 모습을 괴기스럽게 쳐다보며 도윤을 한 번 바라봤다. 해맑게 웃고 있는 저 멍뭉이는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다.‘부장님한테 들이대는 것보단 나으니까. 미안하다 도윤아.’시아가 조용히 이태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이태가 바비큐에 불을 붙이는 동안 시아는 옆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코끝이 빨개지자 이태가 안에서 담요를 하나 가져와 시아에게 둘러주었다.“권도윤 보니까 좋습니까?”뜬금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시아가 풋하고 웃으며 바닥을 내려다봤다.“좋죠.”시아의 대답에 이태가 조금 신경
주여가 예리에게 밝게 자기소개를 했다.“저는 김주여 과장입니다.”“아... 네예...”예리가 떫떠름하게 대답하자 주여가 멋쩍어져서 손을 더듬더듬 접어 내렸다. 셋은 차에 나란히 들어서 굳이 커다란 도윤을 한가운데 앉혔다. 예리의 팔짱은 풀릴 줄 몰랐다.시아가 한숨을 내쉬고 예리에게 장 볼 만한 장소를 물어봤다. 예리가 대형마트 이름을 대면서 금방 갈 수 있다며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녀가 쓸모를 하기 시작했다.주여가 시아가 반가워서 그녀에게 이것저것 근황을 묻기 시작했다.“그래서 일단 한 과장님한테 들켜버렸어요.”이 말로 대화를 끝냈다.마트에 들어선 그들은 우루루 몰려다니며 고기며 채소며 먹고 싶은 것들을 마구 담기 시작했다. 이태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시아 씨, 이건 왜 사는 겁니까?”주여가 있어서 오랜만에 퀘스트가 나왔다.‘딩’[퀘스트 : 주여 안 익은 파인애플 먹이기성공 시 - 악녀력+1 / 실패 시 - 시아가 먹음]자기 얼굴만 한 초록 파인애플을 든 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주여 씨 먹이려구요.”당당한 그녀의 말에 주여가 사색이 되었다.“대리님, 저기 노란 것도 있는데요.”“이게 맛있는 거예요.”시아가 들은 척도 않고 초록 파인애플을 카트에 넣어버렸다. 말리던 주여의 손이 스르륵 내려가며 그녀가 체념했다.도윤이 낄낄대며 말했다.“설마 진짜 먹이겠어요?”일순 조용해진 장내에 도윤이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예리가 도윤의 팔짱을 끼고 그를 데리고 다른 코너로 사라져 버렸다. 커플 사이에 낀 주여는 약간 민망해져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이태가 주여를 챙겼다.“주여 씨, 더 드시고 싶은 것 있으십니까?”시아가 주여를 바라봤다. 그녀가 새우를 사자며 해산물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시아와 이태가 진지하게 새우를 보며 품평을 하기 시작했다.“사이즈가 이 정도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아니에요. 더 커야죠!”생물 새우 앞에 서 있던 주여가 황당해하며 그들에게 말했다.“냉동고에서 뭐하세요?”시아가
이태가 조용한 차 안에서 시아의 눈치를 보며 운전하고 있었다. 시아가 울상으로 도윤과 주여에게 예리가 간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시아만 예리가 신경 쓰이나? 시아가 부장을 쳐다보며 눈을 흘겼다.“소원 들어주기예요.”“같이 걸린 겁니다. 먼저 벽으로 미셨잖습니까?”시아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뿜었다. 할 말을 잃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계단으로 먼저 부른 것도 사실 시아였다. 얼른 주제를 돌리며 저녁밥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오늘은 제가 해볼까요?”이태가 고개를 저었다.“시켜 먹읍시다.”그의 말에 시아가 입을 삐죽이며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태는 단호했다.“지금 주문하십시오.”시아가 부장님이 명령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부리나케 짜장면을 주문한 시아가 이태에게 통보했다.“짜장면 시켰어요.”부산에서마저 짜장면을 사랑하는 시아를 보고 이태가 웃음을 흘렸다. 둘은 자연스럽게 같은 집으로 향해 들어가 짜장면이 오기를 기다렸다. 금방 도착한 조촐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시아와 이태가 번갈아 씻고 나왔다.먼저 씻은 시아가 가운 사이를 열어놓고 옆으로 누워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어 있었다. 이태가 조심스럽게 시아의 가운을 고쳐 입혀주며 그녀를 꽉 껴안았다.“그만 무방비해...”그의 심장 뛰는 소리가 밖까지 전해져 시아의 뺨을 울렸다. 그가 눈을 감으며 양을 세기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양을 세던 이태가 결국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다음 날 먼저 일어난 시아가 늦잠 자는 이태의 모습이 신기해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선을 따라 그어 내렸다. 이태의 눈썹이 바로 꿈틀거렸다. 입술까지 내려온 손이 그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이태가 시아의 입에 입맞춤을 시작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지만 누구보다 정확한 동작으로 시아를 탐닉했다.짜릿한 아침을 맞은 시아가 둘의 입술 사이로 손을 넣어 그를 막아섰다.“출근해야 돼요.”이태가 그 손에 머리를 들이밀며 그녀의
다음 날 출근한 시아에게 도윤이 전화를 걸어왔다.“대리님! 이번 주 토요일이랑 일요일에 김 과장님이랑 부산 가기로 했어요!”쩌렁쩌렁한 남자의 목소리에 옆에 있던 예리의 귀가 번쩍 뜨였다. 시아가 조용히 일어나서 탕비실로 향했다.“갑자기? 무슨 일 있어?”도윤이 서운하다는 듯 말했다.“나는 벌써 허전한데, 대리님은 어쩐지 신나 보이네요?”도윤의 말에 시아가 작게 키득거렸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너스레 떨고 있을 도윤이 눈앞에 훤했다.“부장님도 알아?”“몰라요. 형 보러 가는 거 아니니까.”시아가 자신이 말해 놓겠다며 넷이서 부산에서 놀기 위해 숙소를 예약하기로 했다. 기분이 좋아진 시아가 재빨리 통화를 끊고 이태에게 문자를 남겼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자 예리가 시아에게 물었다.“남자친구?”“아니오. 서울 지사 직속 후배요.”관심 꺼라. 시아가 사무적으로 말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잠시 업무를 내려놓고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바비큐도 해먹고 밤새 재미있게 놀아야지.’딸각거리는 손짓이 바빠졌다. 예리의 눈이 시아의 모니터를 훑었다. 그녀가 예약하는 숙소 이름을 본 예리의 눈이 반짝였다.‘분명 남자 목소리였어!’‘부장님한테 꼬리칠 땐 언제고!’‘뒤를 밟아주마.’예리가 웃고 있는 시아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시아는 그것도 모르고 숙소의 주소를 주여와 도윤, 이태에게 보내고 벌써부터 토요일을 기다렸다. 오랜만에 볼 생각에 신나서 업무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들뜬 시아를 예리가 나서서 지적했다.“신 대리님? 오늘따라 일이 좀 더디네예?”시아가 급격히 다운되어 고개를 꾸벅 내렸다.점심시간이 되자 예리가 부장실 앞에서 이태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아는 기가 막혀 예리에게 팔짱을 끼고 그녀를 데리고 식당으로 끌고 갔다.“아니, 부장님이랑 같이 묵을라 캤는데예.”예리가 발버둥 쳤지만 시아에게 초인적인 힘이 솟아나 그녀를 끌고 가버렸다. 이태가 부장실에서 나와 시아의 자리에 그녀가 없는 모습을 보고 허탈해져 한숨을 쉬었다. 부지런히
작게 입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시아는 죽을 한쪽에 챙겨뒀다.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신 대리님, 빠르게 부탁합니다.”이태가 사무적인 어조로 말하고 부장실로 들어갔다. 시아는 직원들의 눈치를 힐끔 보고는 모니터에 얼굴을 들이댔다.‘신 대리님 완전 찍혔네.’시아가 4시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심하게 나 죽을 들고 탕비실로 향했다. 쓰라린 속을 식은 죽으로 달래며 퍼먹고 있자 문이 열리며 이태가 들어왔다.“신 대리님! 데워 드십시오!”그가 얼른 죽을 빼앗아서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시아가 숟가락을 물고 헤헤 웃으며 이태를 쳐다보았다. 이태가 잔뜩 찌푸리며 시아에게 말했다.“꼭 비밀로 해야 되는 겁니까?”“회사 조용히 다녀야죠. 말하면 소원 들어주기!”시아의 장난기 어린 웃음에 이태가 허탈한 듯 웃으며 데워진 죽을 꺼내 들었다. 시아의 입에서 숟가락을 빼내어 조심히 죽을 휘저으며 식혀주고 있었다.“부장님예, 할 말이!”한예리 과장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재빨리 수저에서 손을 뗀 이태가 팔짱을 꼈다.“무슨 일입니까?”한예리 과장이 시아를 보고 잠시 움찔하더니 이내 이태에게 다가갔다.“프로젝트 인수 건이 좀 남아가예.”“저녁에 시간 좀 되십니꺼?”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웃으며 이태에게 말했다. 이태가 곤란해하며 뒷걸음질 치며 손을 올렸다.“저는 업무 시간에만 업무를 합니다. 과장님, 지금 설명하시죠. 부장실로 오세요.”그가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시아가 앙큼한 예리를 보며 죽을 입에 밀어 넣었다. 예리가 시아에게 눈을 찡긋하고는 부장을 따라갔다.“저거 일부러 따라온 거 아니야?”따뜻한 죽이 목을 타고 흘러 넘어갔다. 시아가 허겁지겁 죽을 먹고 정리한 후, 탕비실을 나섰다. 한예리 과장은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별 내용도 아니었나 보네.’입을 한 번 삐죽인 시아가 자리로 가 앉았다. 모두가 퇴근 준비를 시작할 때, 시아 혼자 바쁘게 키보드를 두들겼다. 한예리 과장이 시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우째예? 이 정도는 하신다 카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