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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Author: 도수정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14 02:34:33

언제나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머니, 레이루나가 부채로 제 표정을 능숙하게 가리며 물었다.

"루시, 아이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니?"

그녀가 아주 걱정스럽단 듯이, 루시아의 손을 애절하게 잡으며 말했다. 어릴 적 그녀가 꾸미지 않을 거라고 했을 때, 코르셋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다고 했을 때. 레이루나는 젊었을 적 꾸미지 않으면 언젠가 루시아가 후회할 거라고 했다. 아마도 백작부인으로서의 경험에 비롯하여 조언을 해준 것같았으나 루시아를 위한 말은 아니었다.

루시아 아르테미스, 언젠가 팔아치울 백작가의 귀한 상품을 위한 말이었다.

인형같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루시아가 말했다. 어머니와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이가 워낙 바빠서요. 어머니. 둘 사이의 일이니 너무 심려치 마시어요."

루시아는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필사적으로 떠올리려고 했다. 아버지인 아르테미스 백작은 주사가 있었다. 여자도 밝혔다. 정부를 들이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레이루나는 아이들, 루시아와 아들 제레미를 위해 참고 버텼다. 불면증도 그때 생겼다.

어딘가 의문스러운 마차사고로 아버지가 죽고, 제레미가 백작위를 이었다. 그 뒤로 레이루나의 삶은 전보다 자유로웠다. 백작인 아들. 공작부인인 딸. 선대백작부인인 저의 신분, 넘지는 재산. 남편에게 얽메이지 않는 삶. 그건 사실 이 제국의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결말이었다.

때때로 루시아는 어렴풋이 레이루나의 삶이 부럽다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루시아가 데미안의 죽음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그가 행복했으면 했다. 매일 황궁으로 출근하는 그가 황후의 정원이 있는 방향으로 몇 분간 시선을 준다는 것은 이미 사교생활이 전무한 그녀의 귀에도 들어올법한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예전이라면 질투라도 났겠으나 오르지 못할 나무인걸 너무도 잘 알게된 지금은, 오히려 그가 그걸로 위로를 받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름도 없는 아이는 언젠가부터 제 속에 생긴 자그마한 폐허에 묻어두고 늘 그래왔듯 루시아 혼자 기도를 올리고 애도하면 될 일이었다. 언제나 그래왔듯, 제게 운명은 늘 그런 식이었으므로.

벨루아 공작가의 원로회에서 정한 합방일이 돌아왔다. 평소 각방을 쓰던 공작 부부도 이 날만큼은 합방을 해야했다. 데미안이 물방울이 떨어지는 금방을 수건으로 훑으며 가운 차림으로 루시아를 바라봤다. 벨루아 공작가의 상징과도 같은 금발과 자안이 동화속 왕자님을 닮았다고 생각했던 첫날밤이 떠올랐다. 마리아의 이름을 불렀었지.

루시아는 레이스로 된 슬립차림이었다. 그 아래로 투명한 살이 보였고, 장미 향유를 발라 은근한 향을 풍겼다. 하녀들은 데미안이 좋아하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인위적인 향을 좋아하지 않았다. 루시아는 알고도 가만있었다. 그래야 이 불편한 의식이 최대한 빨리 끝날 테니까.

데미안의 미간이 구겨졌다. 루시아의 표정이 굳어있어서 였다. 이 여자는 벌써 함께 지낸 지 3년째인데도 목석같기만 했다. 오늘도 아르테미스 선대 백작부인이 다녀갔다고 들었다. 미망인 주제에.

감히 벨루아의 일에 참견하려 들다니. 루시아의 몸 위에서 내려온 그가 말했다.

"아르테미스 대부인이 다녀가셨다고 들었는데."

루시아가 조심스레 말을 고르는 사이 데미안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아르테미스의 일을 내 귀에까지 들어오게 하는 거지? 당신 선에서 처리할 수는 없었나? 고작 미망인 하나를."

고작 미망인 하나. 그가 혀를 찼다. 루시아가 손등이 하얗게 변하도록 이불을 틀어잡았다. 죽은 남편을 따라 아직 죽지 않은 여자.

그렇지 않았다. 그날 아버지의 장례식에서야말로 레이루나의 삶은 새로 시작되었다. 두 남매의 손을 잡고서. 장례식장에서 끝내 울지 않은 두 사람은 레이루나와 루시아 뿐이었다.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단호한 루시아의 음성이 못마땅한 듯 데미안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이 여자는 제 가족 이야기를 할 때에만 반응했다.

"그럼 뭐라고 부를까. 당신 어머니를, 장모님?"

"......"

루시아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그 눈물을 보면 데미안은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쯧. 한번 더 혀를 찬 그가 루시아를 두고 집무실로 향했다. 밤새 돌아오지 않겠지. 희미하게 침대에 남은 그의 온기를 느끼려 홀로 남겨진 루시아가 제 몸을 웅크렸다.

결혼 계약서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아르테미스는 벨루아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

하여서 루시아는 공작부인의 업무에도 임할 수 없었다. 그저 먹고 마시고 아이를 낳기 위한 가축처럼 길러졌다. 이곳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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