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음날 아침, 흙먼지가 매섭게 몰아치는 칼날 협곡.거대한 진군 나팔 소리가 대지를 찢듯 울려 퍼졌다.“시작이구나.”블랑은 전장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후방의 고지대 막사 입구에 섰다.“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기세네.”서연합의 방어선을 향해 해일처럼 쏟아져 내리는 드라켄의 철기병들을 보고 있으니 척추를 타고 전율이 흘렀다. 그리고 그 선두에서 적의 진형을 무자비하게 유린하는 자는 다름 아닌 카시안이었다.서연합이 악착같이 짜 올린 창병들의 방어선은 카시안의 검기가 한 번 번뜩일 때마다 얄팍한 종잇장처럼 우습게 찢겨 나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잔혹하고도 유려한 궤적이었다.핏물이 솟구치는 아비규환의 한복판. 오직 적의 목을 치며 나아가는 황제의 움직임만이 기묘할 정도로 고요하고 비현실적이었다. 그것은 전술이나 전투라기보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준비된 도륙에 가까웠다.현장을 응시하던 블랑은 천천히 시선을 거두고 제 손에 들린 양피지를 매만졌다.새벽녘, 나른한 정사 끝에 카시안이 직접 황실의 인장을 찍어 하사한 아르센 포로 처분권이었다.[황궁으로 돌아가면 제 거처를 새로 꾸미고 싶어요. 아르센의 포로들을 제게 주세요. 에다를 보니 아르센 사람들이 시중을 꽤 잘 들더라고요. 게다가 폐하께서 주신 권력을 누려보고 싶기도 하고요.]탐욕을 속삭였을 때, 카시안은 기꺼운 실소를 터뜨리며 흔쾌히 응했었다.블랑은 막사 뒤편의 짙은 그림자 속에 묵묵히 대기하던 카일을 향해 입을 열었다.“카시안의 시선은 완전히 전방으로 쏠렸어요. 놈들이 협곡 입구에서 발이 묶인 지금이 유일한 기회예요.”그녀의 나직한 명령에 카일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수용소로 가서 아르센의 백성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거두세요. 목적지는 대륙의 법망이 닿지 않는 무법지대, 자유 항구 타르타스입니다.”타르타스.돈과 폭력만이 유일한 규칙인 거친 용병들의 집결지.정규군이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그곳이야말로 굶주린 난민들을 대규모로 숨겨두고 은밀히 세력을 키우기에 가장
그러나 카일은 한 치의 동요도 없이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묵직한 음성을 내뱉었다.“어둠 속의 혼란은 암살자가 가장 선호하는 사냥터입니다, 폐하.”카시안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카일은 고개를 숙인 채 완벽한 기사의 논리로 대답을 이어나갔다.“적의 규모도, 목적도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은 오히려 적이 파놓은 함정으로 걸어 들어가 과녁이 되는 꼴이라 판단했습니다. 불길이 막사로 옮겨붙지 않은 이상, 입구만 틀어막고 방어선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전술적 판단이었다. 카시안의 날카롭던 기세가 일순 멈칫하자, 침상에서 얇은 숄을 두른 채 웅크려 있던 블랑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카일의 말도 맞지만, 제가 이곳에 있자고 했어요.”떨림이 배어 있으나 기묘할 정도로 맹목적인 목소리. 블랑이 맨발로 다가와 카시안의 가슴에 조심스레 손을 얹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막사를 버리고 피해야 할 절체절명의 위기라면…… 폐하께서 반드시 절 구하러 오실 거라 확신했으니까요.”그 달콤한 한마디는 카시안을 틀어쥐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내가 직접 내 여자를 구하러 올 것이다.' 그 당연하고도 절대적인 진리를 제 여자의 붉은 입술로 확인받는 순간, 카시안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던 불쾌한 의심은 남김없이 증발하고 그 자리에 짙고 폭력적인 소유욕이 번져 들었다.“……하.”카시안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조금 전까지 살기로 번뜩이던 표정이 일순간 거짓말처럼 다정하게 허물어졌다.그는 제 품으로 파고든 블랑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커다란 손의 힘을 천천히 풀었다. 이내 거친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이 그녀의 가녀린 뺨과 턱선을 조심스레 감싸 쥐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깨지기 쉬운 유일한 보물을 다루는 듯한, 지극히 애틋하고 부드러운 손길이었다.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숙여 블랑의 붉은 입술을 다정하게 머금었다. 짙은 맹신에 화답하는 깊고 달콤한 입맞춤이었다.블랑을 감싸 안은 그의 너른 품은
시뻘건 화마가 휩쓸고 간 군량고의 잔해 앞. 매캐한 연기가 채 가시지 않은 잿더미 위로 카시안의 군화가 무겁게 내려앉았다.“폐하, 서연합의 척후조 소행으로 추정됩니다! 외곽 경계병 두 명이 목이 그인 채 발견되었고, 그 직후 이곳에 불길이 솟았습니다.”얼굴이 검게 그을린 기사단장이 다급하게 보고를 올렸다. 헐떡이는 그의 숨소리 위로 잔불을 끄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병사들의 고함과 쇳소리가 어지럽게 얽혔다.그러나 횃불의 일렁이는 빛 아래, 카시안의 표정은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서연합의 척후라.”그는 나직하게 읊조리며 바닥에 눕혀진 경계병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한쪽 무릎을 굽힌 그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시신의 턱을 거칠게 틀어쥐었다.‘단 한 번의 검격이다.’뼈를 건드리지 않고 정확히 기도와 혈관만 끊어내, 비명조차 지를 틈을 주지 않은 소름 끼치도록 깔끔한 상흔이었다.기분 나쁜 위화감이 아래에서부터 스르륵 척추를 타고 올랐다.‘적의 척후조가 이토록 완벽하게 외곽을 뚫어냈다면, 고작 변두리 군량고에 불이나 지르고 도망칠 이유가 없다.’목표는 지휘관인 자신의 목이거나 무기고여야 마땅했다. 게다가 발화점을 훑던 카시안의 시선이 날카롭게 좁혀졌다. 외부에서 던져 넣은 불화살의 흔적이 아니었다. 군량고 내부에 비치된 등유통을 안에서 걷어차 엎은 뒤 불을 붙인, 철저히 내부에서 시작된 작위적인 화재였다.‘이것은 습격을 위장한 소란이다.’누군가 의도적으로 진영 전체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몰아넣기 위해 던진 미끼에 가깝다는 확신이 들었다.카시안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기사단장을 향해 조용히 음성을 흘렸다.“방금 전 화재가 터졌을 때, 블랑의 막사 주변에 은신해 두었던 내 그림자들은 어디 있었지?”“예? 아, 그게…… 불길이 거세게 번지는 바람에 폐하의 막사 쪽으로 옮겨붙을 것을 우려하여, 사태 수습을 위해 일제히 이쪽으로 투입되었습니다!”그 순간, 카시안의 이성에 차가운 불꽃이 튀었다.진영 전체의 눈과 귀가 군량고로 쏠리고, 제 그림자 호
달빛조차 숨죽인 막사 밖. 카시안이 작전 회의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블랑이 곁을 지키는 카일에게 나직하게 속삭였다.“카일. 폐하의 귀가 닿지 않는 곳에서 둘만 할 이야기가 있어요.”대놓고 주인을 배신하라고 요구하는, 위험하고 은밀한 시험이었다. 블랑은 달빛 아래 굳게 다물린 카일의 입술과 가면 너머로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을 살피며 팽팽하게 호흡을 조였다.'어떻게 나올까. 이 불경한 도발을 당장 네 주인에게 바칠까. 아니면…….'엄연히 카시안의 돈을 받고 움직이는 사내다. 침묵하는 거구의 기사가 과연 제 목에 칼을 들이밀지, 아니면 기꺼이 제게 목줄을 쥐여줄지. 서늘한 긴장감이 블랑의 등줄기를 타고 기어올랐다.가면 너머로 블랑을 응시하던 카일의 안광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둘만 할 이야기…….’은밀하게 닿아오는 그 나직한 목소리에 사내로서의 심장이 찰나, 속절없이 거세게 뛰었다. 하지만 이내 차가운 이성이 거친 박동을 짓눌렀다. 황제의 눈과 귀를 철저히 피해야만 하는 대화라니.‘혹시 그녀는 단순히 카시안의 곁에 있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무언가 거대한 다른 판을 꾸미고 있었던 건가?’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 위험한 호랑이 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당장이라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카일의 턱선은 이내 단단하게 굳어졌다.‘이유가 무엇이든, 당신이 향하는 곳이 반역이든 파멸이든 상관없어. 나는 그저 당신의 뜻을 따를 뿐이다.’그녀가 원하는 틈이라면 기꺼이 만들어 주리라.“……잠시만 기다리십시오.”카일은 낮게 읊조린 뒤, 지체 없이 막사 뒤편의 짙은 어둠 속으로 몸을 녹여냈다.그리고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콰아앙-!본진 후방의 군량고 쪽에서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시뻘건 불길이 밤하늘로 치솟았다. 연이어 누군가의 단말마가 울려 퍼지고, 병사들이 다급하게 무기를 뽑아 드는 소리가 진영 전체를 뒤흔들었다.“적습이다! 서연합의 첩자가 불을 질렀다!”진영 한복판에서 터진 대대적인 화재와 혼란에, 블랑 주변에 은신해 있던 황제의
드라켄 본진의 막사 안은 차가운 밤공기와 짙은 잉크 냄새만이 맴돌았다.전선의 최전방이었으나, 대군을 지휘하고 돌아온 카시안의 제복에는 먼지 한 톨 내려앉지 않았다.막사 중앙에 놓인 거대한 탁자 위로는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정밀한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블랑은 따뜻한 차가 담긴 잔을 쥐고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갔다.“폐하, 밤공기가 찹니다.”카시안은 시선을 지도에 고정한 채, 한 팔을 뻗어 다가온 블랑의 허리를 감아안았다. 그의 단단한 품에 가련하게 기댄 블랑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카시안이 주시하고 있는 지도 위로 향했다.그의 손끝이 머물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아르센이었다.“서연합이 겁도 없이 발톱을 드러내게 만든 건, 결국 이 아르센의 나약함 때문이었어.”카시안이 지도 위 아르센의 영토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조소가 섞인 음성이었다.“대륙의 질서는 각 제국이 제 몫의 힘을 쥐고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할 때 비로소 성립되지. 하지만 아르센은 그 균형의 축을 담당할 힘조차 없는 무능한 나라였어. 저들이 제멋대로 오랜 균형을 무너뜨리고 이 따위 전면전을 끌어낼 줄 알았다면, 차라리 내가 먼저 아르센을 집어삼키는 편이 백배는 나은 결과였을 테지.”“……!”그 순간, 카시안의 품에 안겨 있던 블랑의 숨이 턱 막혔다.[내가 먼저 아르센을 집어삼키는 편이…….]그 무심한 한마디가 시퍼런 비수가 되어 꿰뚫고 들어왔다.까마득한 성벽 아래로 불어닥치던 맵찬 바람. 자신을 전리품 취급하던 전생의 카시안. 그리고 제 목숨을 부지하려 아내를 팔아넘기던 남편 레온의 비참한 얼굴까지.아르센의 태양이 붉게 부서져 내리던 그날의 감각이 너무도 생생하게 되살아나, 블랑의 가녀린 어깨가 속절없이 파르르 떨렸다. 카시안의 팔이 제 허리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끔찍한 구토감과 감정의 요동이 치밀어 올랐다.“블랑? 춥나.”품 안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에 카시안이 시선을 내렸다. 블랑은 본능적으로 입술을 꽉 깨물며 그의 넓은
드라켄 제국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들의 함성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황금빛 갈기의 군마의 옆에 선 카시안의 모습은 그 자체로 대륙의 질서를 쥐고 흔드는 철혈의 지배자이자 완벽한 제국의 군주였다.그의 출정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대륙의 저울을 제 발밑에 완벽하게 다시 맞추겠다는블랑은 황제의 곁에 마련된 마차에 올라타기 전, 제 귓가에 걸린 푸른빛의 귀걸이를 작게 매만졌다.‘제 모든 정보망과 자금줄을 바친 증표치고는 꽤나 앙증맞은 모양새지.’이제 이 작은 장신구 하나면 제국 전역에 깔린 레녹의 밀정들을 수족처럼 부리고, 후방의 막대한 자금을 제 뜻대로 굴릴 수 있다.'카시안의 눈앞에서는 가장 가련한 척 안겨 있으면서, 그의 등 뒤로는 이 거대한 전쟁의 판도를 완벽하게 훔쳐내는 거야.'“바람이 차.”생각에 잠겨 있던 블랑의 어깨 위로 묵직한 망토가 덮였다. 언제 다가왔는지, 카시안이 다정한 손길로 그녀의 옷매무새를 여며주고 있었다.“다시 말하지만, 막사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마. 내 영역을 벗어나는 순간, 네 안전을 장담할 수 없으니.”다정함을 가장한 완벽한 통제. 블랑은 가녀린 어깨를 가볍게 떨며 그의 큰 손에 자신의 뺨을 기대었다.“당연하죠, 다만 폐하와 함께라면 괜찮은 거죠? 가끔 데리고 나가주세요.”만족스러운 듯 카시안의 입가에 짙은 호선이 그려졌다. 그가 블랑을 마차 안으로 에스코트한 뒤, 몸을 돌려 제 군마로 향했다.황금빛 갈기의 군마에 올라탄 카시안은 여유로운 시선으로 굳게 닫힌 마차의 창문을 응시했다.‘그저 발톱이나 숨긴 고양이인 줄 알았더니, 감히 내 등 뒤에서 아르센의 부활을 꿈꾸고 있을 줄이야.’그럼에도 기꺼이 모르는 척 이 위험한 동행을 허락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발버둥 쳐 보아라. 어차피 네가 되찾으려는 영토도, 네 숨결도 전부 내 것이 될 테니.’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그녀의 정체를 밝히고, 드라켄의 정식 황후로 맞이할 생각이었다.한 번 망했던 나라의 과부 황후의 재혼?자신이 황제인 드라
탑의 꼭대기 방.육중한 문이 닫히고,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감옥의 철창 소리보다 더 무겁게 울렸다. “하아….” 엘런은 로제를 침대 기둥으로 몰아붙이며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그는 급하지 않았다. 이미 제 손아귀에 들어온 완벽한 전리품이었으니까. 그는 로제의 얇은 쉬폰 드레스 자락을 손끝으로 느릿하게 훑어 올렸다. “떨고 있군요, 황후.” 그의 손이 로제의 허리를 지나, 맨살이 드러난 어깨를 타고 뱀처럼 미끄러졌다.“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그 무능한 황제 놈은 당신의 이 뜨거운 몸을 제대로 다루는 법조차 몰랐던 모양인
“황후 폐하를 들라 하라.”레온은 목소리 아래 깔린 비릿한 긴장을 억눌렀다.대접견실의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리자, 은빛 스며든 틈 사이로 한 겹의 드레스 자락이 부드러운 광채를 머금으며 모습을 드러냈다.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은빛과 금빛이 기묘하게 얽혀 흐르는 듯한 머리칼이었다. 햇빛 아래 흔들리는 그 물결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바람 한 점 스치지 않은 얼음 조각처럼 투명하고도 서늘했다.은회색과 청색이 겹겹이 섞인 로제의 눈동자가 천천히 방 안을 훑었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얇은 실크 드레스가 허벅지 곡선을 따
아르센의 수도 칼텐부르크.나른한 봄볕 아래 평화롭던 도시의 공기는, 일순간 비릿한 피 냄새와 뜨거운 무쇠의 열기에 짓눌려 굳어버렸다.먼저 들린 것은 말발굽 소리가 아니었다.규칙적인 철제의 파동, 대지를 가르는 짐승의 박동이었다.“……왔다.”군중 속 누군가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성문 너머로 검붉은 그림자가 폭포수처럼 들이닥쳤다.북방의 포식자, 드라켄 제국의 황실 근위대.태양 빛을 집어삼킬 듯 번쩍이는 흑철색 갑옷들은 흙먼지 하나 없이 오만했다.300명의 기사들이 내뿜는 살기는 도시를 순식간에 질식시킬 듯 무거웠다.
패전국의 황후가 맞이한 결말은 비참했다.적국 황제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것조차,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사치였다.“정말 이 여자를 두고 갈 텐가, 아르센의 황제여?”로제는 고개를 들어 카시안을 보았다.피 묻은 검을 쥔 북방의 포식자.그는 흥미롭다는 눈으로, 그러나 지독히도 오만한 시선으로 로제의 남편을 조롱하고 있었다.“……제국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단이오.”레온은 차마 로제 쪽을 보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로제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밤마다 자신의 생명력과 마력을 쥐어짜 내어 그 핏줄에 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