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그 목소리. 그 떨림. 그리고 이 지독한 백합 향기. 잘못 들은 게 아니다.그 순간만큼은 카시안은 자신이 블랑의 허리를 안고 있다는 사실조차 완벽하게 지워버렸다.스르르.등허리를 지배하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거짓말처럼 풀렸다. 블랑의 몸을 지탱하던 단단한 팔이 허공으로 툭, 떨어졌다.조금 전까지 마차 안에서 헐떡이며 몸을 맞댔던 사내의 뜨거운 온기가, 가차 없이 끊어지는 건 찰나였다.“……?”블랑이 당혹감에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카시안은 이미 몸을 돌리고 있었다.그는 소리쳐 부르지 않았다. 주변을 소란스럽게 만들지도 않았다.그저 눈빛만이 미친놈처럼 변해 있었다. 나른하게 블랑을 핥아내리던 오만한 눈동자가, 순식간에 이성을 잃은 맹렬한 열망과 집착으로 번뜩였다.저벅, 저벅.카시안은 인파 사이를 헤치고 나갔다.뛰지는 않았지만 보폭이 넓고 살벌했다. 춤추는 사람들 사이를 뱀처럼 유연하게, 그러나 거침없이 가로질러 나가는 움직임.그의 시선은 오직 하나.인파 너머로 멀어지는 하얀 뒷모습에 완전히 못 박혀 있었다.“폐하?”블랑이 당황하여 그를 불렀지만,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카시안은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블랑이라는 존재가 처음부터 세상에 없었던 사람처럼.그는 조용히, 그러나 무서운 속도로 하얀 유령을 쫓아 테라스 쪽으로 사라졌다.텅 비어버린 허공에 멈춘 블랑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어머, 저것 좀 봐. 폐하께서 혼자 가버리시네?”“방금 전까지 허리를 끌어안고 유난을 떨더니. 발정 난 암캐를 길거리에 버려두고 가듯 매정하기도 하시지.”“하긴, 근본 없는 여자의 약발이 길어봤자 얼마나 가겠어?”애초에 가면은 허울 좋은 사교계의 장식일 뿐이었다. 황제의 팔짱을 끼고 들어온 저 파격적인 핏빛 드레스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바보는 이 연회장에 없었으니까.부채로 입을 가린 귀족 영애들의 노골적인 비웃음과 경멸 어린 시선이, 사냥감의 피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 떼처럼 홀로 남겨진 블랑에게 일제히 쏟아졌다.“……놓았어?”
페온 공작 저택의 별실.타티아나는 전신 거울 앞에 서 있었다.화려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수녀복처럼 단정하고 눈부신 순백의 실크 드레스.타티아나는 거울 속 자신의 창백한 뺨을 쓰다듬으며 서늘하게 웃었다.이 결백할 정도로 하얀 천 아래에는, 미치광이 남편 엘런이 채찍으로 헤집어놓은 시커먼 멍과 흉터들이 흉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은 가장 더럽혀진 몸으로, 카시안이 기억하는 가장 순결했던 첫사랑을 연기해야 하는 밤이었다.‘그래, 그땐 내가 어리석었지.’카시안은 늘 무뚝뚝했다.그가 내미는 건 달콤한 사랑이 아니라, 무거운 책임과 헌신이었다. 반면 엘런의 혀는 달콤했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비.] 그 혀에 발린 꿀이 살을 녹이는 독인 줄도 모르고, 그녀는 제 발로 카시안의 손을 놓고 기꺼이 가랑이를 벌려 엘런의 침대로 들어갔었다.결과는 처참했다. 꿀은 순식간에 말라버렸고, 남은 건 짐승만도 못한 학대와 비웃음뿐이었다.“준비는 됐니? 순백의 첫사랑 치고는 눈빛이 너무 독한데, 타티아나.”뒤에서 아이린이 비웃듯 물었다.타티아나는 화장대 위에 놓인 가면을 집어 들었다. 눈물방울 모양의 큐빅이 박힌, 애처롭고 슬픈 하얀 피에로 가면이었다.“가면으로 가릴 거잖아, 아이린.”타티아나가 가면을 썼다.슬픈 피에로의 얼굴 아래로,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창부의 서늘한 눈빛이 감춰졌다.“이번엔 실수하지 않아. 내가 쓰레기통에 처박았던 그 남자…….”그녀의 붉은 입꼬리가 기괴하게 올라갔다.“이번엔 무슨 짓을 해서든 내 치맛자락 밑에 꿇리고 말 거니까.”타티아나의 그 지독한 선언에, 등 뒤에 선 아이린이 만족스러운 듯 붉은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기대할게. 나의 가여운 첫사랑.”끼익.아이린이 굳게 닫혀 있던 별실의 문을 열어젖히자, 무거운 정적이 깨지고 화려한 왈츠 선율이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두 마리의 독사가 완벽하게 세팅된 사냥터를 향해 우아한 발걸음을 옮겼다....아이린이 주최한 가면무도회장은 이미 인
덜컹.황실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가 짙은 어둠이 깔린 밤거리를 달리고 있었다.내부는 숨 막힐 듯 고요했다.블랑은 창가 쪽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카시안의 옷자락이라도 스치면 또 귀찮다는 소리를 들으며 내쳐질까 봐, 짐짓 몸을 사리는 중이었다.하지만 카시안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그는 팔짱을 낀 채, 가면 너머의 시선으로 블랑을 끈적하게 핥아내리고 있었다.‘왜 저렇게 멀리 앉지?’아까 집무실에서는 잘만 기어들어 오더니.제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허벅지에 부드러운 뺨을 비비며 헐떡이던 그 뜨거운 감촉이 아직도 사타구니를 뻐근하게 만들고 있었다.‘물론, 매몰차게 내쳐버린 건 나지만.’카시안은 짐짓 턱을 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블랑이 저렇게 거리를 두고 얌전하게 구니 되레 속이 탔다. 이 영악한 여자는 제 발밑에서 좀 더 수치스러워하고, 좀 더 안달이 나야 예쁜데.“블랑.”“네, 폐하.”블랑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카시안은 그 겁먹은 듯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미간을 좁혔다.“자리가 좁나?”“네? 아뇨, 아주 넓습니다만.”“그런데 왜 문짝에 붙어서 가지?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것처럼.”카시안이 턱짓으로 제 양다리 사이의 좁은 틈을 가리켰다.“이리 와.”권유가 아닌 명령이었다.블랑은 잠시 망설이다가, 슬금슬금 엉덩이를 움직여 그에게 다가갔다. 풍성한 벨벳 드레스 자락이 사각거리며 겹쳐지고, 두 사람의 단단한 허벅지가 노골적으로 맞닿았다.“더.”카시안이 굵은 팔을 뻗어 그녀의 얇은 허리를 확 끌어당겼다.“아, 읏…….”블랑의 몸이 속절없이 무너지며 그의 단단한 허벅지 위로 완전히 올라타듯 포개졌다. 맨살이 드러난 등허리에 카시안의 뜨겁고 거친 손바닥이 닿자, 블랑의 척추가 찌릿하게 굳었다.“이제야 좀 봐줄 만하군.”그는 만족스러운 듯 블랑의 등허리를 진득하게 쓸어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아까처럼 좀 더 음탕하게, 애원하듯이 제게 매달려주길 원했다.“아까 집무실에서.”카시안이 짐짓 무심한
저녁 6시, 서쪽 별궁.블랑은 화장대 앞에 앉아, 붉은 립스틱을 만지작거리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거울 속의 자신은 서늘할 정도로 차분했다.‘연회 시작까지 2시간… 아직도 아무 연락이 없어?’바닥에 무릎을 꿇고 다리 사이에서 애원했는데도 통하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은 그 썩은 동아줄을 쥐고 서연합을 밟고 제 왕국을 세우겠다는 허무맹랑한 꿈을 꾼 것이었다.이대로 카시안을 잃으면 언제든 목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그 거대한 야망마저 한낱 재로 흩어지게 된다. 사랑을 잃는 것이 아니라, 내 왕국을 세워줄 가장 완벽한 방패이자 절대적인 검을 잃는 것이다.[똑똑.]노크 소리에 블랑의 눈빛이 번뜩였다.“들어와.”대답과 함께 시녀가 들어왔다. 그 뒤로, 두 명의 시종이 커다란 검은 상자를 들고 있었다.“폐하의 명입니다.”상자가 바닥에 내려지고, 뚜껑이 열렸다.블랑은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짧은 헛웃음을 흘렸다.빛을 반사하지 않고 삼켜버리는 짙은 흑색.겉감은 밤의 어둠처럼 무거웠으나, 움직일 때마다 안감에서 핏빛 와인색이 아찔하게 번뜩이는 벨벳 드레스였다.목선은 단정하게 막혀 있었지만, 등은 허리선까지 노골적으로 깊게 파여 있었다. 천박하지 않은, 그러나 사내의 소유욕을 극도로 자극하는 완벽한 관능이었다.상자 한가운데 놓인 붉은 보석의 나비 가면과 짧은 쪽지.[내 파트너가 초라한 꼴로 다니는 건 질색이니, 입고 대기하도록.]블랑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사과도 애정도 섞이지 않은 이 드레스의 의미를 그녀는 한눈에 파악했다.이것은 옷이 아니라 황제가 던진 목줄이었다. 내 파트너로서 예쁘게 꾸미고 얌전히 엎드리라는, 그의 통제.‘입지 않고 버티는 괜한 자존심 싸움 따위는 안 해.’오히려 완벽하게 입어주고, 그의 숨통을 조여버릴 것이다. 진짜 목줄을 쥔 사람이 누구인지 똑똑히 알게 해주어야 하니까.“……알겠다고 전하세요.”블랑은 드레스 위로 손끝을 미끄러트리며 나른하게 웃었다. 거울 속에는 버림받을까 떨던 약자가 아니라, 가
“무서워서 그랬어요. 폐하가 절 장난감처럼 쓰다 버리실까 봐… 그래서 그 후작을 만나러 간 거였어요.”블랑의 섬세한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카시안의 허벅지 안쪽, 가장 뜨겁고 위험한 곳을 향해 느릿하게 기어 올라갔다.“화 푸세요, 네? 폐하가 원하시는 건 뭐든 다 할게요. 여기서 옷을 벗으라면, 당장 벗을게요.”카시안은 숨을 멈췄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절대 제 손에 길들지 않을 것 같던 여자가, 지금 제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엉망으로 다뤄달라며 제 발로 기어들어 왔다.허벅지에 닿은 그녀의 매끄러운 뺨, 가쁜 숨결, 사타구니를 향해 올라오는 끈적한 손길.당장이라도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책상 위로 끌어올린 뒤, 서류고 뭐고 다 쓸어버리고 짐승처럼 박아넣고 싶었다.하지만.‘여기서 눕히면 내가 지는 거다. 완벽하게 목줄을 채워야 해.’카시안은 아랫도리로 몰리는 터질 듯한 쾌감을 악물고 억누르며, 서늘하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조금 더 애타게, 조금 더 비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내 앞에서 다른 남자의 이름을 담지 않겠지.카시안은 천천히 손을 뻗어 블랑의 가느다란 턱을 쥐었다.부드럽게 쓰다듬는가 싶더니, 이내 억센 악력으로 그녀의 고개를 뒤로 밀어냈다.“후우…….”카시안이 짐짓 지루하다는 듯 길게 한숨을 쉬었다.“블랑. 네가 이 방에서 당장 꺼낼 수 있는 무기가 몸뚱이 하나뿐이라는 건 잘 알겠는데.”그는 허벅지를 어루만지던 블랑의 손을 차갑게 쳐냈다.“오늘은 발정 난 고양이를 달래줄 기분이 아니군.”블랑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잘게 흔들렸다.거절당했다.수치심을 내던지고 다리 사이로 기어 들어가 애원했는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폐, 폐하……?”“밀린 서류가 산더미야. 네 얄팍한 재롱을 받아주기엔 내 시간이 너무 비싸서 말이지.”카시안은 무감한 얼굴로 다시 펜을 잡았다. 시선은 이미 그녀를 지워버린 듯 서류로 향해 있었다.“나가 봐.”협박이 아닌 진짜였다.블랑은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
오후 2시. 황제의 집무실.공기는 숨이 막힐 듯 무거웠다.시종장도, 호위기사들도 숨소리 한 번 크게 내지 못했다.카시안은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넘기고 있었지만, 시선은 자꾸만 굳게 닫힌 문 쪽을 향했다.“다시 써와.”짜악!카시안이 보고서를 바닥으로 쳐내자, 종이가 눈송이처럼 허공에 흩어졌다.그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눈가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팼다. 머릿속에선 어젯밤 블랑이 뱉어낸 서늘한 독설이 귓가를 맴돌았다.[어설픈 사랑놀음에 장단 맞춰주다가 목이 잘리는 건 저라고요.]‘어설픈 사랑놀음?’“빌어먹을.”카시안은 손에 쥐고 있던 펜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졌다.만년필이 대리석 벽에 부딪혀 박살이 나고, 검은 잉크가 핏자국처럼 흉측하게 튀었다.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제 유일한 진심을 비웃고 짓밟은 그녀가 미치도록 밉고 원망스러웠다.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하게 화가 나는 건, 그 모욕을 당하고도 지금 당장 문을 박차고 나가 그녀의 향기를 맡고 안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사내의 발정 난 본능이었다.“폐하.”그때, 시종장이 얼어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블랑 백작 부인께서…… 돌아가라고 할까요?”카시안의 턱관절이 뻐근해지도록 힘이 들어갔다.어젯밤, 그녀는 레녹 후작을 등 뒤에 세운 양 턱을 치켜들고 자신을 몰아세웠다. 하지만 카시안은 그 어설픈 허세에 코웃음이 났다.순진한 진짜 ‘블랑’이라면 모를까, 가짜 껍데기를 뒤집어쓴 ‘로제’에게 레녹은 방패가 되어줄 수 없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권력과 부가 아닐 테니.그 위태롭고 앙증맞은 기만극을 빤히 알면서도, 기꺼이 속아 넘어가 주며 서연합으로부터 그녀를 지킬 이는 드라켄의 황제인 카시안 자신뿐이었다.제 살길을 영악하게 계산하는 그 여자가 그 뻔한 이치를 모를 리 없었다.결국 레녹이라는 카드는 드라켄에서 살기 위해 쥐어 짜낸 허세일 뿐, 그녀가 비를 피할 곳은 결국 내 발밑밖에 없다.지금쯤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하나뿐인 진짜 동아줄을 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