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컴퓨터를 닦아주다 나는 실수로 파일 하나를 열게 되었다. 안에는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수위를 가진 영상이 만 개 남짓하게 들어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남편과 여태 결혼하지 않은 친구 윤아였다. 내가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몸을 상해 더는 잠자리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며 플라토닉 연애를 하자고 했고 그렇게 40년간 내게 손도 대지 않았다. 반평생 그를 위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살아온 내게 돌아온 건 완벽하게 포장된 거짓말뿐이었다.
もっと見る나는 팬층이 두터운 편이었다. 게다가 70세 고령에 이렇게 높은 성과를 냈으니 팬이 아닌 사람도 내 사연에 공감했고 팬이 또 한 번 급증했다.댓글 창에는 전부 나를 대신해 연놈을 처단하는 댓글이었다.진우진과 윤아도 그동안 쌓아왔던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고 이어진 악플에 SNS를 중단했다.그렇게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진우진의 노트북이 망가지면서 고치러 갔다가 엔지니어가 전에 봤던 그 파일을 발견했다엔지니어가 마침 내 팬이었기에 그 영상을 인터넷에 전부 올려버렸다.인터넷이 다시 뜨겁게 달구어졌고 진우진과 윤아에 대한 악플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진우진이 다니던 직장에서 이를 알고 전에 수여했던 영예를 전부 회수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진우진을 데리고 다시 집으로 찾아왔다.두 사람의 손에는 쇼핑백이 잔뜩 들려 있었다. 진우진은 내게 선물할 금팔찌와 금가락지, 금목걸이를 꺼내 보였다.“여보, 내가 잘못했어. 한 번만 용서해 줘. 당신이 얼마나 좋은 여자였는지, 내겐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콩깍지가 벗겨지자 내 눈엔 진우진이 그저 날아다닐 힘을 잃은 똥파리 같았다.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있노라니 정말 토가 나올 것 같았다.“노을아, 나 당신 없으면 안 돼. 우리 한평생을 같이 살아왔는데 이렇게 헤어지는 게 어디 있어. 당신이 없으니까 며칠째 밥도 못 먹고 있어. 밥 같은 밥을 먹은 지가 언젠지도 몰라.”진우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그러면 굶어 죽으면 되잖아요.”“노을아, 그동안 나한테 잘해줬잖아. 왜 갑자기 이렇게 매정해진 거야?”“그걸 말이라고 해요? 한평생 잘해준 거 맞아요.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했는데요? 나를 아이 낳는 도구로 생각하고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속였어요. 사람마다 인생은 한 번뿐이에요. 사람의 탈만 쓰고 있다고 다 사람인가? 무슨 낯으로 찾아온 거예요?”“차라리 그냥 벽에 머리 박고 죽어버리지.”“엄마, 엄마도 아빠가 사람이 아니라며. 그러니 사람이라면 못 할 짓까지 한 거지.
며느리가 아들의 등짝을 내리쳤다.“얼른 어머님께 사과해요. 당신을 낳고 평생 길러준 어머님께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거예요? 어머님 마음이 얼마나 상하겠어요.”“엄마, 미안해요. 정말 잘못했어요. 전에 엄마 그렇게 대한 거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어요.”“후회? 너 정말 나를 엄마로 생각하긴 했어? 그냥 집에 돈 안 주고 부려 먹어도 되는 식모가 사라지니까 아쉬워서 그러는 거 아니야. 넌 후회 같은 거 안 해. 그냥 윤아가 나처럼 고분고분하지 않아서 불만인 거지.”“너 어릴 적에 무슨 말 했는지 다 잊었지? 어릴 적에는 평생 엄마 옆을 지키면서 슬프지 않게 지켜주겠다고 하더니 결국 네가 한 게 뭐야.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너희 아버지처럼 이기적이고 가식적으로 변했지. 나는 너희들 절대 용서 못 해. 은우 상하교를 도울 사람이 없으면 시터를 찾아. 나를 다시 무료로 부려 먹을 생각하지 말고.”“난 이제 나만을 위해서 살 거야. 내 커리어도 쌓고 있어. 이제 더는 요리에 설거지만 하는 황노을이 아니야. 알아들어? 한 번만 더 길 막아봐. 그때는 경찰에 스토킹으로 확 신고해 버릴 거니까.”나는 이 말을 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내 커리어는 고작 문학과 교수로 있는 진우진과는 비길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해졌다. 소위 문학평론가로 불리는 윤아와는 완전 급이 달랐다.나는 이제 셀럽이었다. 내 책을 사랑해 주고 기다리는 팬들이 수두룩해 매년 판세만 해도 두 사람 몇 해 연봉보다 훨씬 많았다.진우진과 윤아 사이도 점점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그날 그쪽에 있는 부동산을 정리하러 갔다가 길가에서 누군가 싸우고 있는 걸 발견했다. 옆에는 구경꾼들로 가득했고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사람까지 있었다.“너 발랑 까진 건 알고 있었는데 하얗게 센 머리를 하고도 다른 남자와 그 짓거리 하고 싶어?”“지금까지 나 몰래 여러 남자들 누비고 다녔지?”그러더니 사정없이 여자의 뺨을 후려갈겼다. 여자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엉엉 울었지만 입은 쉴 새 없이 놀렸다.“진우진 씨,
그리고 나는 나만의 생활을 시작했고 SNS도 점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가끔 라이브 방송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고 예쁘다고, 젊을 적에 무조건 남자 꽤나 울리고 다녔을 미모라고 칭찬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나는 점점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나는 고풍스러운 물건들을 좋아했다. 사실 학교 다닐 때 공부도 꽤 잘했고 특히 문학을 좋아해 아는 시구도 많았다.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환경에 아버지는 여자는 공부해도 결국엔 시집가면 끝이라면서 내게 돈 쓰기는 아깝다고 소에게 먹일 풀이나 뜯으라고 했다.가끔 나도 책을 읽었다면 진우진 같은 사람이 아닌 나만 바라보는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은 아무리 돌이켜봤자 과거일 뿐 아무 소용이 없었다.나는 나의 전원생활을 공유하는 것 외에 가끔 시를 쓰기도 했다. 생각 외로 그 시가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두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내 팬은 100만까지 늘었다.그러다 한 제작사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내 시가 좋다며 저작권을 사서 가사로 쓰고 싶다고 제안했고 나는 흔쾌히 그래도 좋다고 대답했다.노래가 발매되자 신속하게 인터넷을 장악했다. 내가 쓴 가사도 여러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고 책을 발매해 볼 생각이 없냐며 찾아오는 사람도, 작가 협회의 가입을 초대하는 사람도 있었다.나는 진정한 시인이 되어 있었다. 내가 꿈에도 바라던 것이었다.오는 길이 순탄치 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종착역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그리고 진우진은 인터넷에서 가끔 어떻게 사는지 볼 수 있었다. 결국 그가 원하던 대로 윤아를 만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체면은 차려야 했기에 정식으로 윤아와 결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윤아를 본처로 소개하며 바로 금혼식을 올렸다.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자 네티즌들은 의외라며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감동했다.그들을 다시 만난 건 2달 후였다. 나는 노팅던으로 날아가 국제문학상 대상을 받았다.비록 크게 알려진 상은 아니었지만 가치
이튿날 침대에서 일어나 호텔 방을 나서는데 진우진이 문 앞 바닥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진우진은 나를 보자마자 다급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이혼 얘기하러 온 거 아니면 당장 내 앞에서 사라져요.”“진우진 씨, 연기 좀 그만해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나랑 이혼하면 그 발랑 까진 년과 만날 수 있잖아요. 좋아해도 모자랄 판에 왜 이러는 거예요?”“정말 아이들한테 비밀로 하고 소문도 안 낼 거지?”나는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잘생기고 훤칠한 진우진을 보며 갑자기 서글퍼졌다. 도대체 왜 이런 남자를 사랑하게 됐는지 의문이었다.“잔말 말고 지금 바로 이혼 서류 사인해요. 아니면 대학교에 대자보 붙여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해줄 테니까.”진우진이 드디어 나와 이혼하는 데 동의했다.나는 진우진의 만년 절조를 지켜주는 걸 조건으로 진우진의 모든 재산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진우진은 빈털터리가 되었고 나는 그가 한 달 안에 집에서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한 달 후 나는 진우진과 법원 앞에서 만났다. 그렇게 이혼을 마치고 서류를 찢은 뒤 서로 갈 길을 찾아 떠났다.그리고 나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윤아를 발견했다.부동산이 처리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사기를 당할까 봐 일단 세를 두었다. 집이 5, 6채는 되었기에 월세만 받아도 꽤 짭짤한 수익이었다.나는 돌아갈 때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처음 타는 거라 절차가 꽤 번거로웠다.하지만 돈만 있으면 문제 될 건 없었다. 나는 2시간 만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계정 업로드를 오랫동안 쉰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고양이를 기르고 텃밭을 가꾸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그냥 아무렇게나 올린 영상인데 갑자기 빵 뜨게 될 줄은 몰랐다. 그중 어떤 영상은 좋아요가 100만 개가 넘었고 팬도 몇만 명으로 불어났다.나는 축하의 의미로 만두를 빚어 먹었다. 그렇게 한창 맛있게 먹고 있는데 불청객이 찾아왔다.아들이 기세등등해서 안으로 들어오더니 바로 캐묻기 시작했다.“엄마, 아빠랑 이혼했어요
채소 모종을 심고 기념으로 케이크도 하나 샀다. 앞으로 더는 그들에게 얽매인 삶을 살지 않았다. 아니, 그 어떤 사람에게도 얽매이기 싫었다.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싶었다.나는 아내이고 어머니이기 전에 나 자신이었다.나는 케이크를 먹고 소파에 누워 편안하게 티브이를 봤다.티브이에 나온 바다는 넓고 웅장했다. 그제야 나는 문득 한 번도 여행해 본 적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그렇게 여행지를 찾다가 결국 홍도를 선택했다. 바다 반대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했다.나는 바로 기차표를 예약하고 짐을 챙겨 출발했다.바닷가에 서서 두 팔을 짝 벌리고 전에는 만끽한 적 없었던 편안함과 자유를 즐겼다.이제야 삶의 의미를 찾은 것 같았고 나를 위해 산다는 느낌이 들었다.나는 홍도의 볼거리를 돌아보며 길거리 음식도 먹었다. 발길이 닿은 곳마다 너무 아름다워 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 SNS 계정도 새로 만들어 내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누르며 댓글로 소통해다.떠나기 전날 나는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바다를 한 번 더 보러 갔다.전화만 해달라고 했지 눈앞에 나타나달라고 한 적은 없는데 보기만 해도 역겨운 사람이 이곳에 나타나 아름다운 풍경을 싹 망쳤다.나는 갑자기 나타난 진우진을 보고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지나쳤다. 하지만 몇 걸음 걷지도 못했는데 진우진에게 손목을 잡히고 말았다.“왜 한마디 말도 없이 여기로 온 거야? 도대체 뭐 하자는 건데? 지금까지 잘 지내왔으면서 왜 갑자기 이혼은 이혼이야? 아들이 윤아 씨 도와서 가지 좀 쳐준 것 때문에 그래?”이미 다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진우진이 이 얘기를 다시 꺼내자 바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윤아 씨? 참 친절하게도 부르네요. 진우진 씨, 도대체 언제까지 속일 셈이에요?”“40년이에요. 40년 동안 나를 속였어요.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오윤아와 짜고 나를 속인 거예요? 그날 내가 컴퓨터를 닦았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죽을 때까지 깜빡 속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평소 아들을 대할 때 소리 한번 지른 적 없었고 늘 부드럽고 온화했다. 아들은 이런 내가 너무 놀라웠는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다른 사람도 다 내 반응에 놀랐는지 그 자리 그래도 서 있었다.내게 한 소리 들은 아들은 체면을 이기지 못해 문을 박차고 나갔다.며느리는 오늘따라 이상한 나를 보며 아무 말 없이 손주를 안고 도망치듯 나갔다.진우진도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질책하기 시작했다.“아이들 다 열받아서 나가니까 이제 좋아?”내가 대꾸하지 않자 진우진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황노을, 내가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이제 그만해.”말투가 매우 언짢아 보였다. 이미 인내심이 바닥난 것 같았다.“사람 말 못 알아들어요? 이혼하자니까요. 기분 더럽게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이혼 얘기만 해요.”진우진은 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도고한 교수라 교양이 넘쳤기에 아무리 화가 나도 거친 말은 하지 않았다.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듣기 거북한 말이라면 다 모아서 욕해주고 싶었고 지금이라도 당장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 말로 진우진의 신경을 긁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진우진은 이런 나의 모습에 살짝 놀랐는지 씩씩거렸지만 얼굴만큼은 매우 덤덤했다.“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줄게. 이혼은 못 들은 걸로 할 거야.”진우진이 이렇게 말하더니 서재로 들어갔다.나는 늠름한 척하는 진우진의 모습이 그저 역겨울 뿐이었다. 정말 염치가 없어도 여간 없는 게 아닌 것 같았다.한평생 나를 속여놓고 정말 일말의 죄책감도 없어 보였다. 지금 이 상황을 단순히 심술부리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더는 입씨름하기 귀찮았다.나는 필요한 짐만 간단히 챙겨 인사도 없이 호텔에서 하룻밤 묵었고 이튿날 바로 북쪽으로 올라가는 기차를 탔다.내 고향은 북쪽에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다시 돌아온 지도 한참 지났다.마당에는 잡초가 가득 자라났지만 다행히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시공팀을 찾아 간단하게 손을 좀 봤다.이틀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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