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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테오도르 칼베른의 서명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22.07.2026 18:33:29

처음으로 존칭이 사라졌다.

마리엘의 미소가 아주 조금 굳었다.

세레나는 그녀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뒤에서 마리엘이 무언가 말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회랑 끝의 대기실에는 나무 탁자 하나와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창문은 작았고, 쇠창살 사이로 흐린 하늘이 보였다.

집행관이 두꺼운 서류철을 탁자 위에 펼쳤다.

“형 집행 전 확인 절차다.”

세레나는 의자에 앉지 않았다.

집행관은 죄목과 판결문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황실 성물 훼손, 고위 귀족 독살 미수, 공문서 위조, 성전 치료 규율 위반.

마지막에는 사형을 승인한 사람들의 이름이 이어졌다.

황실 재판관.

루멘 성전 대신관.

피해자 측 대리인.

그리고 북부 칼베른 공작.

세레나의 눈이 문서 아래에서 멈췄다.

테오도르 칼베른.

반듯한 글씨 아래 검은 늑대 문양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녀는 그 필체를 알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보내온 짧은 명령서와 약재 요청서, 

생일마다 도착하던 의례적인 카드. 단 한 번도 사랑을 적지 않았으면서도, 

세레나가 그 여백까지 사랑하게 만들었던 글씨였다.

집행관이 서류를 접으려 했다.

세레나가 손을 뻗었다.

“잠깐.”

“무엇을 하려는 거지?”

“한 번만 보겠습니다.”

집행관은 잠시 망설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도망칠 곳도, 바꿀 수 있는 판결도 없었다.

세레나는 종이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잉크는 완전히 말라 있었다.

누군가 위조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인장 가장자리에 생기는 미세한 균열까지 공작가의 정식 문서와 같았다.

테오도르가 직접 서명했다.

그녀가 죽어도 된다고.

아니, 제국의 질서를 위해 죽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마음이 조용히 식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손끝이 아주 차가워졌다.

전쟁에서 돌아온 테오도르의 몸이 이보다 차가웠던 적이 있었다. 

세레나는 사흘 동안 잠들지 않고 그의 곁을 지켰다. 

몸이 견디지 못해 피를 토하면서도 성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한 말은 감사가 아니었다.

다음 원정의 날짜였다.

그때도 세레나는 서운함을 숨기고 웃었다.

살아났으니 됐다고 생각했다.

그가 살아 있는 세상에 자신도 존재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종이 위의 서명이 손가락 아래에서 흔들렸다.

세레나는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됐습니다.”

집행관이 서류를 접었다.

“후회하나?”

세레나는 문을 바라보았다.

테오도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무엇을 말입니까?”

“공작을 사랑한 것.”

그 질문이 우스웠다.

사랑한 것이 죄였을까.

아니면 사랑을 이유로 자신을 버린 것이 죄였을까.

세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바깥의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처형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귀족들은 마차 안에서 창문을 조금 열어 두었고, 

평민들은 경비병의 창 뒤편에 몰려 있었다.

누군가는 돌을 던졌고 누군가는 성호를 그었다.

세레나가 치료했던 사람들의 얼굴도 보였다.

그들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였다.

비난해서가 아니었다.

두려워서였다.

죽는 사람을 끝까지 바라보면 자신도 함께 끌려갈 것처럼.

세레나는 처형대 계단을 올랐다.

발목의 사슬이 나무 모서리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냈다.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드레스 자락에 감옥의 먼지가 묻었다.

높은 곳에 서자 제도의 지붕들이 보였다.

황궁의 금빛 첨탑, 루멘 성전의 하얀 돔, 멀리 칼베른 공작저가 있는 북쪽 언덕.

그곳의 창문 하나쯤은 열려 있을지도 몰랐다.

테오도르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전쟁 보고서를 읽고 있을까.

마리엘과의 혼인 조건을 검토하고 있을까.

아니면 세레나라는 이름이 적힌 판결문을 서랍 깊숙이 밀어 넣고, 끝난 일로 정리했을까.

집행인이 검은 천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나?”

군중이 조용해졌다.

세레나는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목에 걸린 작은 은제 목걸이를 손으로 감쌌다. 

어머니가 죽기 전 남겨 준 유품이었다. 

열 수 없는 펜던트 안에서 가끔 미세한 온기가 느껴졌지만, 

세레나는 그것을 그리움이 만든 착각이라 여겼다.

“다음이 있다면.”

목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집행인이 고개를 기울였다.

세레나는 다시 말했다.

“다음 생이 있다면, 누구의 것도 되지 않겠습니다.”

군중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가문도, 성전도, 사랑도 제 삶보다 앞에 두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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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이 끝났다.테오도르는 세레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그런데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세레나가 그를 바라봤다.“무엇을 보고 계십니까?”“기록판입니다.”그녀도 같은 곳을 봤다.‘치료 거부’.‘도주 시도’.‘판단력 저하’.“익숙하십니까?”세레나의 질문에 테오도르의 얼굴이 굳었다.“어떤 의미입니까?”“사람이 싫다고 말하면, 그 판단을 무시할 이유를 만드는 방식이요.”테오도르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방 밖에서는 기록관들이 서류를 옮기고 있었고, 온실 유리를 때리는 새벽바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익숙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그가 결국 말했다.세레나의 시선이 움직였다.“왜요?”테오도르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저도 누군가의 거절을 걱정이나 위험을 이유로 다시 판단하려 했던 적이 있으니까요.”그 말에 세레나는 바로 전생을 꺼내지 않았다.지금의 테오도르는 아직 기억하지 못한다.그러나 이번 생에서도 이미 몇 번 같은 경계 앞에 섰다.베일런 저택에서.성전에서.신원 심리에서.“차이가 있다면요?”세레나가 물었다.테오도르는 침상에 놓인 가죽 고정띠를 보았다.“저렇게 되기 전에 멈춰야 한다는 겁니다.”세레나는 장갑의 손목 부분을 한 번 눌렀다.“말로는 쉽습니다.”“알고 있습니다.”“그래서 저는 오늘 한 일만 봅니다.”테오도르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십시오.”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그의 눈빛이 잠깐 변했다.익숙한 표현.세레나는 눈을 떼지 않았다.테오도르는 잠시 후 조용히 고쳐 말했다.“오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세레나의 손끝이 멈췄다.그 변화는 작았다.누군가에게는 단어 하나의 차이였다.하지만 세레나에게는 전혀 다른 질문이었다.판단을 내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묻는 말.그녀는 쉽게 답하지 않았다.대신 방 한쪽에 있는 의자를 봤다.테오도르는 서 있었다.상처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고, 밤새 움직인 사람의 얼굴이었다.“앉으세요.”테오도르가 조금 의외라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여기

  • 내 처형에 서명한 공작과 계약 결혼했다   197. 제 일을 공작가가 대신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작성 날짜는 닷새 전이었다.세레나가 백휘열이라는 이름으로 환자 분류표를 만들기도 전.성 루치아에 민간 환자가 몰려들기 전.이미 그녀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보고서가 준비돼 있었다.나디아가 세레나의 어깨 너머로 날짜를 읽고 얼굴을 굳혔다.“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때는 세리스가 민간인 환자들을 치료하기도 전인데.”“그래서 중요한 겁니다.”세레나는 보고서 아래의 첨부 예정 자료를 확인했다.성 루치아 치료 기록.백휘열 환자 사망률.세리스 베인의 무자격 의료행위 목록.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자료들이었다.앞으로 채워 넣을 칸이었다.사건이 어떻게 끝날지 미리 정해 놓고 증거를 맞출 계획이었다.황실 조사관이 물었다.“이 보고서를 만든 사람은 누구입니까?”마지막 장의 작성자 칸은 비어 있었다.검토자만 적혀 있었다.마티아스 로벤 대신관.그리고 ‘황실 의료 자문 전달 예정’이라는 문구.세레나는 한동안 보고서를 바라보다 말했다.“원본은 이곳에서 봉인하세요. 사본을 세 군데로 나눕니다.”“어디로요?”“황실 의료감찰원, 황실 법무감사국, 그리고 성기사단 감사실.”나디아가 물었다.“칼베른 공작가에는 안 보내요?”“필요한 군 협약 자료만 보내면 됩니다.”세레나는 보고서에서 손을 뗐다.“제 일을 공작가가 대신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그 말 뒤에 문밖에서 발소리가 멈췄다.테오도르가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로이스였다.“세리스 치료사.”세레나가 돌아봤다.“무슨 일입니까?”“공작 각하께서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계십니다만, 황실 조사관께서 확인을 요청한 문서가 하나 있습니다.”로이스가 들고 온 것은 방금 발견된 자료가 아니었다.별장 입구에서 확보한 방문자 명부였다.칼베른 공작가 군 의료 협약 담당자라는 가짜 이름 아래에 공작가 인장이 찍혀 있었다.위조 인장이었다.세레나는 황실 조사관을 바라봤다.“공작님께서 직접 확인하셔야겠네요.”“밖으로 가져갈까요?”세레나는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나디아가 그녀를

  • 내 처형에 서명한 공작과 계약 결혼했다   196. 행동을 증상으로 만든 기록

    세레나는 잠깐 침묵했다.며칠 사이 수도 곳곳에서 가장 자주 들은 질문이었다.“제 말을 믿으실 필요는 없습니다.”그녀는 침상 옆 기록판을 가까이 가져왔다.“첫 번째 강한 처치 전 체온과 소변량, 두 번째와 세 번째 이후 변화를 직접 보세요. 치료를 받을지 결정하기 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보실 수 있습니다.”모리스는 한참 동안 숫자를 바라봤다.세레나는 기다렸다.“그럼…… 지금은 더 안 받겠습니다.”“알겠습니다.”그 선택을 기록한 뒤 세레나는 황실 의원에게 넘겼다.환자 스스로 결정한 일은 세레나가 대신 책임지지 않았다.다섯 번째 환자까지 확인한 뒤 황실 조사관이 복도 끝에서 그녀를 불렀다.“열두 번째 병상을 찾았습니다.”세레나는 장갑을 새것으로 갈아 끼운 뒤에야 따라갔다.열두 번째 병상은 다른 환자들과 같은 층에 있지 않았다.별장 뒤편으로 이어지는 작은 온실을 지나야 나오는 서재가 개조되어 있었고, 문에는 번호 대신 사람 이름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세레나 베일런.’나디아의 표정이 굳었다.세레나는 종이를 뜯지 않았다.“그대로 기록해 주세요.”황실 기록관이 문에 붙은 위치와 필체까지 남겼다.문 안은 치료실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상태를 관찰하기 위한 공간처럼 꾸며져 있었다. 침상 하나와 의자, 세면대, 약제장이 있었고, 창문에는 안에서 열 수 없는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다.세레나는 가장 먼저 창문을 봤다.“밖에서만 열리는군요.”황실 조사관이 확인했다.“그렇습니다.”“정식 치료시설 규정에는 맞지 않습니다.”“격리 병실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세레나는 문을 돌아봤다.“그럼 내부 비상 호출 장치가 있어야죠.”아무것도 없었다.침상 옆 기록판은 더 노골적이었다.환자명 세레나 베일런.사용명 세리스 베인.신원 상태 불확정.직업 수습 치료사.그리고 그 아래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증상이 미리 적혀 있었다.고열.환각.의료진 불신.치료 거부.도주 시도.판단력 저하.세레나의 시선이 ‘의료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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