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처음으로 존칭이 사라졌다.
마리엘의 미소가 아주 조금 굳었다.
세레나는 그녀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뒤에서 마리엘이 무언가 말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회랑 끝의 대기실에는 나무 탁자 하나와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창문은 작았고, 쇠창살 사이로 흐린 하늘이 보였다.
집행관이 두꺼운 서류철을 탁자 위에 펼쳤다.
“형 집행 전 확인 절차다.”
세레나는 의자에 앉지 않았다.
집행관은 죄목과 판결문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황실 성물 훼손, 고위 귀족 독살 미수, 공문서 위조, 성전 치료 규율 위반.
마지막에는 사형을 승인한 사람들의 이름이 이어졌다.
황실 재판관.
루멘 성전 대신관.
피해자 측 대리인.
그리고 북부 칼베른 공작.
세레나의 눈이 문서 아래에서 멈췄다.
테오도르 칼베른.
반듯한 글씨 아래 검은 늑대 문양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녀는 그 필체를 알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보내온 짧은 명령서와 약재 요청서,
생일마다 도착하던 의례적인 카드. 단 한 번도 사랑을 적지 않았으면서도,
세레나가 그 여백까지 사랑하게 만들었던 글씨였다.
집행관이 서류를 접으려 했다.
세레나가 손을 뻗었다.
“잠깐.”
“무엇을 하려는 거지?”
“한 번만 보겠습니다.”
집행관은 잠시 망설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도망칠 곳도, 바꿀 수 있는 판결도 없었다.
세레나는 종이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잉크는 완전히 말라 있었다.
누군가 위조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인장 가장자리에 생기는 미세한 균열까지 공작가의 정식 문서와 같았다.
테오도르가 직접 서명했다.
그녀가 죽어도 된다고.
아니, 제국의 질서를 위해 죽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마음이 조용히 식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손끝이 아주 차가워졌다.
전쟁에서 돌아온 테오도르의 몸이 이보다 차가웠던 적이 있었다.
세레나는 사흘 동안 잠들지 않고 그의 곁을 지켰다.
몸이 견디지 못해 피를 토하면서도 성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한 말은 감사가 아니었다.
다음 원정의 날짜였다.
그때도 세레나는 서운함을 숨기고 웃었다.
살아났으니 됐다고 생각했다.
그가 살아 있는 세상에 자신도 존재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종이 위의 서명이 손가락 아래에서 흔들렸다.
세레나는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됐습니다.”
집행관이 서류를 접었다.
“후회하나?”
세레나는 문을 바라보았다.
테오도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무엇을 말입니까?”
“공작을 사랑한 것.”
그 질문이 우스웠다.
사랑한 것이 죄였을까.
아니면 사랑을 이유로 자신을 버린 것이 죄였을까.
세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바깥의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처형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귀족들은 마차 안에서 창문을 조금 열어 두었고,
평민들은 경비병의 창 뒤편에 몰려 있었다.
누군가는 돌을 던졌고 누군가는 성호를 그었다.
세레나가 치료했던 사람들의 얼굴도 보였다.
그들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였다.
비난해서가 아니었다.
두려워서였다.
죽는 사람을 끝까지 바라보면 자신도 함께 끌려갈 것처럼.
세레나는 처형대 계단을 올랐다.
발목의 사슬이 나무 모서리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냈다.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드레스 자락에 감옥의 먼지가 묻었다.
높은 곳에 서자 제도의 지붕들이 보였다.
황궁의 금빛 첨탑, 루멘 성전의 하얀 돔, 멀리 칼베른 공작저가 있는 북쪽 언덕.
그곳의 창문 하나쯤은 열려 있을지도 몰랐다.
테오도르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전쟁 보고서를 읽고 있을까.
마리엘과의 혼인 조건을 검토하고 있을까.
아니면 세레나라는 이름이 적힌 판결문을 서랍 깊숙이 밀어 넣고, 끝난 일로 정리했을까.
집행인이 검은 천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나?”
군중이 조용해졌다.
세레나는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목에 걸린 작은 은제 목걸이를 손으로 감쌌다.
어머니가 죽기 전 남겨 준 유품이었다.
열 수 없는 펜던트 안에서 가끔 미세한 온기가 느껴졌지만,
세레나는 그것을 그리움이 만든 착각이라 여겼다.
“다음이 있다면.”
목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집행인이 고개를 기울였다.
세레나는 다시 말했다.
“다음 생이 있다면, 누구의 것도 되지 않겠습니다.”
군중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가문도, 성전도, 사랑도 제 삶보다 앞에 두지 않을 겁니다.”
거의 없었다.약제 연구원이 공기 표본을 채취했지만 즉각적인 백휘석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가레스의 열쇠가 맞는 서랍은 안쪽 두 번째 방에서 발견됐다.작은 금속 보관함.열쇠가 돌아갔다.그 안에는 계약서 한 장이 들어 있었다.‘의료 예비 저장고 일부 공간 임대 계약.’임차인.루멘 성전 북부 지원국.임대 승인자.칼베른 영지 의료행정 책임관.테오도르가 물었다.“언제 계약한 거지?”황실 공증관이 날짜를 확인했다.
전력 사용을 숨기고.폐석 수량을 조작하고.구형 협약과 현재 광산관리소 인장을 함께 사용하고.성전 물류와 드레이크 수송망을 연결했다.한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가레스를 잡는 건 필요하다.하지만 그를 잡았다는 이유로 구조를 찾는 일을 멈추면 안 됐다.그때 기록관이 책상 안쪽의 이중 바닥을 발견했다.숨겨진 공간에는 금화나 비밀문서가 없었다.작은 열쇠와 카드 한 장만 있었다.카드에는 숫자 여섯 개와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임대 만료 전 회수.’세레나가 물었다.“무슨 임대입니까?”
이번에는 누구도 바로 말하지 않았다.가레스는 일곱 해 전 드레이크 정제 시설에서 일했고,그 시설이 사라진 뒤 칼베른 광산관리 체계로 들어왔다.제4광맥 환자 기록 일부가 드레이크 정제소로 넘어갔던 시기.그 뒤 가레스가 칼베른으로 이동했다.그리고 현재 제7광산 하부에서 오래된 백휘석을 재정제하고 있었다.세레나는 서류의 아래쪽을 봤다.가레스를 채용한 당시 추천인이 있었다.칼베른 현직 인물이 아니었다.‘리오넬 카르트.’일곱 해 전 베일런 사고 기록.황궁 의료 물자.오래된 제3장부.여러 지점에서 끊어졌다 이어지던 이름이 다시 나타났다.
“머리를 부딪혔습니다.”군의관이 물었다.“마차에서 떨어진 걸까요?”“그럴 수도 있습니다.”세레나는 손상 위치와 주변 바닥을 번갈아 봤다.“하지만 여기서 넘어졌다면 바닥 돌에 피나 머리카락이 조금이라도 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황실 조사관이 주변을 살폈다.아무것도 없었다.시신의 손에는 말고삐를 잡았던 굳은살이 있었지만 손바닥에 새 흙이 거의 묻지 않았다.세레나는 더 이상 사망 원인을 현장에서 단정하지 않았다.“부검 가능한 시설로 옮기되 오염 가능성 때문에 다른 시신과 분리해 주세요.백휘석 노출 여부도 검사하고요.”
황실 조사관이 받아 봉인을 확인한 뒤 펼쳤다.배송 인계표의 절반이었다.목적지는 여전히 ‘제국 중앙 의료조달창’.그런데 그 아래 최종 분류란이 남아 있었다.세레나는 한 줄을 읽고 움직임을 멈췄다.‘우선 배정 대상 - 중앙 귀빈 의료 공급.’아직 황궁이라는 단어는 없었다.황제라는 이름도 없었다.그러나 일반 광산촌 구호용이라고 알려진 물건이, 수도의 귀빈 의료 공급망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그리고 가장 아래에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급하게 덧붙인 짧은 지시가 있었다.‘첫 공급 전 북부 환자 반응 보고 확인.’세레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북부 사람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었다.누군가는 그들의 몸에서 먼저 반응을 보고 있었다.그리고 그 결과를 확인한 뒤, 같은 물량을 더 높은 곳으로 보내려고 했다.북부 관문 밖에서 버려진 마차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들어온 뒤에도 세레나는 수도로 향하는 모든 의료 수송을 막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제국 중앙 의료조달창으로 향하던 오염 의심 물량이 사라졌고, 운전자는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게다가 인계표에는 ‘중앙 귀빈 의료 공급’이라는 문구와 함께 ‘첫 공급 전 북부 환자 반응 보고 확인’이라는 지시까지 남아 있었다. 상황만 보면 누군가 북부 환자들의 반응을 먼저 확인한 뒤 수도의 더 높은 신분에게 같은 물자를 공급하려 했다고 의심하기 충분했지만, 의심과 사실 사이의 거리를 줄이지 않은 채 사람들을 움직이면 정작 필요한 물자까지 모두 길 위에서 멈추게 된다.세레나는 광산 사무소의 긴 탁자 위에 운송 인계표와 현재 의료조달 체계를 그린 지도를 펼쳐 놓았다.“수도로 들어가는 모든 백휘석 물량을 세우면 안 됩니다.”황실 조사관이 물었다.“문제 물량이 어느 마차로 옮겨졌는지 모르는 상태입니다.”“그래서 번호를 따라가야 합니다.”세레나는 7-B / 12와 제4광맥 하부 정제실에서 확보한 출고 번호를 나란히 적었다.“지금까지 확인된 오염 의심 물량에는 공통되는 포장 방
세레나는 계속 말했다.“누군가 공작님의 잘못을 예상했다고 해서 그 잘못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제가 그걸 바로잡은 선택이 그 사람 것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테오도르는 한동안 그녀를 바라봤다.“그 말을 제가 해도 됐습니까?”세레나가 눈을 조금 가늘게 떴다.“어떤 말이요?”“누군가 유도했다고 해도 세레나의 선택은 그 사람 것이 아니라고.”세레나는 잠시 생각했다.“지금은 제가 했으니 됐습니다.”테오도르가 아주 작게 웃었다.“알겠습니다.”세레나는 그의 웃음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그리고 내일 치료원 계약에는 예정대로 오세요.”“이 상황에서도요?”“이 상황이라서 더요.”세레나는 천천히 장갑 끝을 정리했다.“누군가 ‘공작 부인의 의료 사업’으로 만들려고 했다면, 우리는 정확히 반대로 기록하면 됩니다.”테오도르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어떻게요?”“공작가 소유 건물을 임대한 독립 치료원.”세레나는 한 단어씩 분명하게 말했다.“공작 부인의 치료원이 아니라요.”테오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겠습니다.”“그런데.”세레나는 한 발도 가까이 가지 않은 채 그를 바라봤다.“공작님 도움은 필요합니다.”그의 눈빛이 멈췄다.세레나는 이번에는 그 말을 거두지 않았다.“제 권한이 아닌 부분까지 제가 잡으려고 하면 결국 똑같아집니다. 광산 행정과 영지 물류는 공작님이 맡아 주세요.”“맡겠습니다.”“제가 부탁하지 않은 치료까지 결정하지는 마시고요.”“네.”“그리고 제가 공작님 권한을 요청할 때마다 빚으로 세지 마세요.”테오도르가 아주 잠깐 숨을 멈췄다.“그건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었습니다.”세레나의 입가가 조금 풀렸다.이번에는 둘 다 웃지는 않았다.그보다 더 조용한 것이 남았다.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의존하는 것은 같지 않았다.세레나는 그 차이를 처음으로 조금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그날 밤 늦게, 황실 조사관이 하부 정제실에서 확보한 물품 목록을 가지고 왔다.최근 재정제된 백휘석 상자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