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제국력 612년 초봄, 열이틀째.
테오도르의 낙마 사고.
그 아래에는 기억나는 사건을 시간순으로 적기 시작했다.
베일런 광산의 두 번째 붕괴, 북부 국경의 대규모 전투,
황제의 첫 발작, 루멘 성전에서 원인 불명의 열병 환자가 나타난 시기.
마리엘과 테오도르의 정략혼 발표일과 자신의 체포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기억은 완전하지 않았다.
전생의 세레나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테오도르와 관련된 날짜는 계절과 시간까지 떠올랐지만,
제국을 뒤흔든 사건들은 신문의 제목이나 공작저 사용인들의 대화로만 기억했다.
황태자와 에드릭 황자의 갈등이 언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는지,
루멘 성전이 백휘석 가격을 올린 시점이 언제였는지는 선명하지 않았다.
그 불균형이 종이 위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테오도르의 사건에는 날짜가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는 계절만 있었다.
세레나는 펜을 내려놓고 손을 씻었다.
물그릇의 표면이 잉크로 희미하게 흐려졌다.
손가락을 닦은 뒤 장부로 돌아온 그녀는 테오도르의 이름 옆에 썼던 세부 내용을 몇 줄 지웠다.
이 장부는 그를 구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었다.
자신이 같은 길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기록이었다.
세레나는 첫 장을 다시 펼쳤다.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던 펜이 종이를 눌렀다.
‘내 삶을 가질 것.’
잉크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창밖으로 정오의 빛이 들어왔다.
장부의 흰 면 위에서 문장이 지나치게 단정해 보였다.
목적이라기보다 맹세에 가까웠고,
맹세라는 말은 언제나 사람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면이 있었다.
세레나는 그 아래에 구체적인 항목을 덧붙였다.
정식 치료사 자격을 얻을 것.
가문과 분리된 재산을 마련할 것.
베일런의 빚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확인할 것.
누군가의 허락 없이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치료원을 세울 것.
마지막 줄에서 펜이 잠시 멈췄다.
테오도르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쓰려다가 그만두었다.
감정은 명령으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처형 승인서에서 그의 이름을 본 뒤에도,
다쳤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그것을 부정하면 또 다른 거짓말이 될 뿐이었다.
세레나는 대신 다른 문장을 적었다.
‘사랑을 이유로 내 선택을 넘기지 않을 것.’
그 문장을 쓰고 나서야 펜을 놓을 수 있었다.
복도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짧은 비명이 이어졌다.
세레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전생의 날짜를 적던 장부를 덮고 문을 열자,
사용인 숙소 방향에서 하녀들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에마!”
세레나는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사용인 숙소 앞 복도에는 깨진 약병과 유리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독한 약초 냄새가 공기 중에 퍼졌고, 에마는 벽에 기대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의 오른손 아래로 피가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손바닥 한가운데가 깊게 찢어져 살이 벌어졌고,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상처 안쪽에서 희끗한 힘줄이 드러났다.
놀란 하녀 하나가 천을 가져와 상처 위에 얹으려 했지만,
피에 젖은 천은 이미 바닥을 닦는 데 사용하던 것이었다.
“그 천은 치우세요.”
세레나가 다가가며 말했다.
하녀가 놀라 손을 뗐다.
세레나는 에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치맛자락이 약품과 피가 섞인 바닥에 닿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제 다쳤어요?”
“약병을 옮기다가 상자가…….”
에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세레나는 손목을 잡아 맥박을 확인했다.
빠르지만 아직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다.
손바닥의 출혈이 많았고 상처 안에 유리 파편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컸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세요. 천천히요.”
에마가 이를 악물고 손가락을 굽혔다.
엄지와 검지는 움직였지만 약지가 제대로 따라오지 않았다.
“아가씨, 의원을 불러올까요?”
“불러오세요. 깨끗한 천과 끓인 물도 준비하고요.
약제실에서 가장 밝은 등잔을 가져오세요.”
하녀들이 흩어졌다.
세레나는 자신의 소매 끈을 풀어 에마의 손목 위를 압박했다.
피가 흐르는 속도가 조금 줄었다.
“죄송해요, 아가씨. 바닥을 더럽혀서…….”
“바닥은 닦으면 됩니다.”
세레나는 에마의 얼굴을 보지 않고 손바닥만 살폈다.
“지금부터는 손을 움직이지 마세요.”
“공작가에서 온 기사님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제가 상자를 잘못…….”
“그 일과 이 상처는 관계없어요.”
세레나는 피를 닦아 내기 위해 깨끗한 천을 받았다.
상처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벌리자 투명한 유리 조각 하나가 살 안쪽에 박혀 있었다.
계약서에 적은 만큼.그 이상은 묻고.그 이하로는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적어도 지금은.출발 전날 오후, 테오도르와 세레나는 황실 의료감찰원 마차 정비장에서 다시 만났다.의도한 약속은 아니었다.황실 조사단 마차의 바퀴와 약제 적재 상태를 확인하러 나온 세레나와,북부 군 이동 경로를 최종 조정하고 황실 통신관에게 도로 정보를 전달하러 온테오도르의 시간이 겹쳤다.나디아는 마차 안에서 약제 상자 개수를 세고 있었고,황실 기록관들은 봉인함을 적재 중이었다.테오도르는 세레나에게 다가오다 세 걸음 정도 거리를 남겼다.“세리스 치료사.”
세레나는 그 부분에서 잠시 멈췄다.위치를 알려 주는 것과 자리를 대신 잡아 주는 것을 구분했다.그녀는 답장을 바로 쓰지 않았다.먼저 황실 의료감찰원에 조사관 숙소 사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한 시간 뒤 답이 왔다.빈방 네 개.약제 보관실 하나.작은 공용 진찰 공간.황실 소속자가 사용 가능하며 외부인의 출입은 입주자가 결정한다.조건은 나쁘지 않았다.세레나는 그제야 테오도르에게 답장을 썼다.‘서부 조사관 숙소를 사용하겠습니다.황실을 통해 직접 신청했습니다. 위치 정보 감사합니다.’그 아
세레나는 한 사람의 권위로 치료법을 뒤집을 생각이 없었다.그런 방식은 루멘 성전이 이미 하고 있었다.성 루치아에서 마지막으로 확인할 사람은 루카스였다.그는 침상 곁 작은 책상에 앉아 성기사단 보급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다.목발은 손이 닿지 않는 벽 반대편에 세워져 있었다.세레나는 그 위치를 보고 나디아를 바라봤다.나디아가 태연하게 말했다.“오늘은 두 개 다 숨기려다가 하나는 양심상 남겼어요.”루카스가 한숨을 쉬었다.“제 장비를 인질로 잡는 약제사는 처음 봅니다.”“다리가 나으면 돌려드릴게요.”세레나는 루카스의 상처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부
그리고 다음 문장.‘북부 출발을 하루 앞당겨 내일 새벽 출발하겠습니다.동행 인력과 의료 물자는 황실 의료감찰원과 성 루치아에서 준비합니다.’끝에는 필요한 사항만 적었다.‘공작님께서는 북부로 언제 돌아가실 예정인지 알려 주세요.같은 도로를 사용하게 된다면 군 이동과 의료 조사단 이동이서로 방해되지 않도록 출발 시간을 조정하고 싶습니다.**세레나는 거기까지 쓰고 잠시 생각했다.예전 같았으면 테오도르가 자신을 데려가는 그림이 되었을 것이다.이번에는 다르다.세레나는 자신의 조사단을 꾸린다.테오도르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간다.같은 목
자정이 지난 뒤 도착한 북부 전신을 세레나는 세 번 읽었다.에드윈 모라크.석 달 전 황실 군무 특별보좌실을 그만둔 사람. 성기사단 제2전투대가 오래된 칼베른군 표식 상자의 교체를 요구했을 때 두 차례나 그 요청을 거부했고, 퇴직 전에 자신의 서명이 찍힌 빈 회수 명령서를 남겨 놓은 사람.그가 칼베른 서부 제7광산촌의 하부 배수 갱도 입구에서 백휘열 의심 증상을 보인 채 발견됐다.고열과 은빛 혈관, 반복되는 환각과 심한 탈수.그리고 의식을 잃기 직전에 남긴 말.‘상자를 찾은 게 아닙니다. 그들이 묻어 둔 건 물건이 아니었습니다.’세레나는 그 문장을 두고 의미를 만들어 내지 않았다.‘물건이 아니다’라는 말이 사람을 뜻하는지, 기록을 뜻하는지, 광산 시설을 뜻하는지조차 현재로서는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에드윈은 고열과 환각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나온 한마디를 증언처럼 사용하면, 루멘 성전이 그동안 환자의 판단 능력을 자기들 편의대로 해석했던 방식과 다를 게 없었다.세레나는 전신지에서 에드윈의 발언 부분을 접어 가리지 않았다.대신 바로 아래에 메모를 남겼다.‘환각 상태 발언. 사실 확인 전 증언으로 사용 금지.’그리고 통신관을 불렀다.“제7광산촌 현지 치료사에게 먼저 보내 주세요.”“무엇을 전달할까요?”“에드윈 모라크 씨에게 추가 심문을 하지 말라고 해 주세요. 의식이 안정되기 전에는 광산이나 문서에 관한 질문도 중단하고요.”통신관이 펜을 들었다.세레나는 환자 상태부터 짚었다.“고열, 탈수, 은빛 혈관, 환각이 있으니 다른 환자들과 같은 기준으로 관찰하되, 그 사람이 행정 사건의 참고인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치료를 하지 마세요. 강한 성력 치료도 일괄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현재 배뇨량과 출혈 여부를 먼저 확인해 달라고 하십시오.”“지도는요?”“젖었다고 했죠?”“네.”“말리려고 펼치거나 화로 가까이에 두지 말고 현재 상태 그대로 평평한 판 사이에 보관해 주세요. 황실 기록 담당자가 도착하기
수신인.테오도르 칼베른 공작.편지는 짧지 않았다.제7광산촌 신규 환자 다섯 명.패치 비접촉자 세 명.하부 배수 갱도 작업 이력.회색 침전.이틀 뒤 북부 이동 결정.동행 예정자는 나디아 로웬과 황실 의료감찰원 기록관, 약제 연구 인력.마지막에는 요청 범위를 적었다.‘북부 이동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일반 도로 안전 정보와 제7광산촌까지의 공식 이동 경로입니다.별도 호위는 현재 요청하지 않습니다. 숙소 역시 제가 도착 전 확인한 뒤 정하겠습니다.공작저 내 방은 준비하지 말아 주세요.’세레나는 편지를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