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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랑을 이유로 내 선택을 넘기지 않을 것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2 18:46:45

제국력 612년 초봄, 열이틀째.

테오도르의 낙마 사고.

그 아래에는 기억나는 사건을 시간순으로 적기 시작했다. 

베일런 광산의 두 번째 붕괴, 북부 국경의 대규모 전투, 

황제의 첫 발작, 루멘 성전에서 원인 불명의 열병 환자가 나타난 시기.

마리엘과 테오도르의 정략혼 발표일과 자신의 체포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기억은 완전하지 않았다.

전생의 세레나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테오도르와 관련된 날짜는 계절과 시간까지 떠올랐지만, 

제국을 뒤흔든 사건들은 신문의 제목이나 공작저 사용인들의 대화로만 기억했다. 

황태자와 에드릭 황자의 갈등이 언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는지,

루멘 성전이 백휘석 가격을 올린 시점이 언제였는지는 선명하지 않았다.

그 불균형이 종이 위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테오도르의 사건에는 날짜가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는 계절만 있었다.

세레나는 펜을 내려놓고 손을 씻었다.

물그릇의 표면이 잉크로 희미하게 흐려졌다. 

손가락을 닦은 뒤 장부로 돌아온 그녀는 테오도르의 이름 옆에 썼던 세부 내용을 몇 줄 지웠다.

이 장부는 그를 구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었다.

자신이 같은 길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기록이었다.

세레나는 첫 장을 다시 펼쳤다.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던 펜이 종이를 눌렀다.

‘내 삶을 가질 것.’

잉크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창밖으로 정오의 빛이 들어왔다. 

장부의 흰 면 위에서 문장이 지나치게 단정해 보였다. 

목적이라기보다 맹세에 가까웠고, 

맹세라는 말은 언제나 사람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면이 있었다.

세레나는 그 아래에 구체적인 항목을 덧붙였다.

정식 치료사 자격을 얻을 것.

가문과 분리된 재산을 마련할 것.

베일런의 빚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확인할 것.

누군가의 허락 없이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치료원을 세울 것.

마지막 줄에서 펜이 잠시 멈췄다.

테오도르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쓰려다가 그만두었다.

감정은 명령으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처형 승인서에서 그의 이름을 본 뒤에도, 

다쳤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그것을 부정하면 또 다른 거짓말이 될 뿐이었다.

세레나는 대신 다른 문장을 적었다.

‘사랑을 이유로 내 선택을 넘기지 않을 것.’

그 문장을 쓰고 나서야 펜을 놓을 수 있었다.

복도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짧은 비명이 이어졌다.

세레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전생의 날짜를 적던 장부를 덮고 문을 열자, 

사용인 숙소 방향에서 하녀들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에마!”

세레나는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사용인 숙소 앞 복도에는 깨진 약병과 유리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독한 약초 냄새가 공기 중에 퍼졌고, 에마는 벽에 기대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의 오른손 아래로 피가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손바닥 한가운데가 깊게 찢어져 살이 벌어졌고,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상처 안쪽에서 희끗한 힘줄이 드러났다. 

놀란 하녀 하나가 천을 가져와 상처 위에 얹으려 했지만, 

피에 젖은 천은 이미 바닥을 닦는 데 사용하던 것이었다.

“그 천은 치우세요.”

세레나가 다가가며 말했다.

하녀가 놀라 손을 뗐다.

세레나는 에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치맛자락이 약품과 피가 섞인 바닥에 닿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제 다쳤어요?”

“약병을 옮기다가 상자가…….”

에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세레나는 손목을 잡아 맥박을 확인했다. 

빠르지만 아직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다. 

손바닥의 출혈이 많았고 상처 안에 유리 파편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컸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세요. 천천히요.”

에마가 이를 악물고 손가락을 굽혔다. 

엄지와 검지는 움직였지만 약지가 제대로 따라오지 않았다.

“아가씨, 의원을 불러올까요?”

“불러오세요. 깨끗한 천과 끓인 물도 준비하고요. 

약제실에서 가장 밝은 등잔을 가져오세요.”

하녀들이 흩어졌다.

세레나는 자신의 소매 끈을 풀어 에마의 손목 위를 압박했다. 

피가 흐르는 속도가 조금 줄었다.

“죄송해요, 아가씨. 바닥을 더럽혀서…….”

“바닥은 닦으면 됩니다.”

세레나는 에마의 얼굴을 보지 않고 손바닥만 살폈다.

“지금부터는 손을 움직이지 마세요.”

“공작가에서 온 기사님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제가 상자를 잘못…….”

“그 일과 이 상처는 관계없어요.”

세레나는 피를 닦아 내기 위해 깨끗한 천을 받았다. 

상처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벌리자 투명한 유리 조각 하나가 살 안쪽에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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