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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무너진 흐느낌 끝에

작가: 데이지
last update 게시일: 2026-07-09 08:30:33

보낸 사람: 윤시훈. 영상 파일 첨부됨.

유리는 손을 떨며 핸드폰을 들었다.

이우는 그녀의 눈빛을 읽고 핸드폰을 가로막았다.

“지금은, 그걸 보지 마십시오.”

“…하지만 그 안에…”

“그 사람이 만든 ‘두 번째 상처’일지도 모릅니다. 확인하는 순간, 그 사람이 원하던 감정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유리는 핸드폰 화면에서 영상을 다시 눌렀다.

이우의 말대로 지금은 보지 말아야 할 타이밍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클릭하고 있었다.

영상이 시작됐다.

흐릿한 야간 조도. 멀리서 흔들리는 헤드라이트.

그리고 흙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 여자.

유진이었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움직이는 손이 보였다.

마치 누군가를 향해, 뭔가를 짚으려는 듯한 손짓.

그리고 그 순간. 프레임 안으로 누군가의 다리, 검은 정장이 들어왔다.

천천히 조유진 앞에 앉아 무릎을 꿇고, 얼굴을 숙였다.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 실루엣은 유리가 알고 있는 그리고 너무 잘 알고 있는 윤시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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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위험한 여자   92. 우리라는 이름

    이른 아침이었다. 햇살이 유리창을 천천히 타고 내려와 바닥에 금빛 줄무늬를 만들고 있었다.이우는 작은 이삿짐 트럭 앞에 서 있었다.박스 몇 개, 낡은 가구 두어 점,그리고 서랍 안에서 발견한 오래된 사진 한 장.사진 속 웃고 있는 소년은 지금의 그와 닮은 듯, 닮지 않은 듯했다.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다 문득 숨을 멈췄다.창밖으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노부부,분식집 앞에서 떡볶이를 먹는 학생들,햇살 아래 웃고 떠드는 사람들.그 평범함 속에 자신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 낯설었다.그러나 낯설음은 곧 묘한 위안이 되었다.한편, 유리는 상담센터에 있었다.문이 열리고 한 소년이 들어왔다.낮은 눈빛, 불안한 손끝, 작게 웅크린 어깨.유리는 천천히 손짓했다.“앉아요.”소년은 머뭇대다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그때부터 작은 대화들이 조심스레 오가기 시작했다.짧은 질문, 긴 침묵, 그리고 가끔 미묘한 웃음.저녁 무렵, 이우는 새 집 창가에 서 있었다.커튼을 걷으니 해 질 녘 햇살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작은 창틀 위에 커피잔을 올려놓고, 그는 한참을 밖을 바라봤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오후.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 있다는 걸 그는 처음으로 배우고 있었다.밤, 유리와 이우는 작은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어땠어요, 오늘은.”유리가 먼저 물었다. 이우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생각보다…괜찮았어요.”유리는 미소지었다.“저도요.”두 사람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그러나 그 침묵은 어색함이 아니라, 편안함이었다.카페를 나와 거리를 걷던 중, 이우가 말했다.“우리…”그는 말끝을 잠시 맺었다.유리가 옆에서 고개를 돌렸다.“우리?”이우는 짧게 웃었다.“그냥, 이제 우리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질 것 같아서요.”유리는 눈을 깜박이다가, 조용히 말했다.“그래요. 우리.”그 말이 밤공기 속으로 조용히 흩어졌다.그날 밤, 유리는 창가에 앉아 작은 메모지에 한 문장을 적었다.‘우리라는 이름을 배우는 중.’그 문장

  • 너무 위험한 여자   91. 말없이 기대어 선 공백

    늦은 오후였다. 햇빛은 창가에 가 닿았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유리는 상담센터에 앉아 있었다.오래된 소파, 낡은 책상, 한쪽 벽의 시계.똑딱, 똑딱.초침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서류 위로 손끝이 미끄러졌다.그동안 놓았던 일들, 쌓여 있던 기록들.하지만 마음은 아직,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이우는 가족 저택 앞에 섰다.집무실 창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누군가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그렇게도 조용히 찾아오는 일이었다.그는 긴 숨을 들이쉬고, 주머니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부고도, 고백도, 사과도 아닌, 단 한 줄.‘이제, 나는 갑니다.’그 말만으로 충분했다.밤이 되었다.유리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커튼이 반쯤 젖혀진 창 너머로 가로등 불빛이 번졌다.밖을 보았다. 익숙한 골목, 낯익은 표지판,그리고 멀리서 걸어오는 그림자 하나.그림자는 천천히 다가왔고, 문 앞에 멈췄다.벨 소리 대신, 낮은 두드림. 유리는 문을 열었다.이우였다.둘은 말없이 소파에 앉았다.테이블 위에 따뜻한 차 한 잔. 유리가 말했다.“모든 게 끝나니까, 이상하죠.”이우는 고개를 기울였다.“네.”짧은 대답. 그러나 그 짧은 말 안에 수많은 의미가 들어 있었다.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유리는 창밖을 가리켰다.“저 골목, 언젠가 당신이 처음 걸어오던 날이 생각나요.”이우는 잠시 미소지었다.“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죠.”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도 몰라요.”늦은 밤, 둘은 나란히 골목을 걸었다.가로등 불빛 아래 두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걸음은 빠르지 않았고, 말도 많지 않았다.그러나 그 사이의 공백은 서로에게 조용히 기대어 있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리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이우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내일 또 봅시다.”유리는 짧게 웃었다.“예.”문이 닫히고, 밤공기가 스며들었다.공백의 시간, 그러나 그 안에서 둘은 조금씩 다음 페이지를

  • 너무 위험한 여자   90. 마지막 고백

    밤이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공기는 젖어 있었다.유리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앞에 놓인 상자. 언니의 물건이 담긴 상자.하나씩 꺼냈다.작은 거울, 헤어진 손목시계, 반쯤 쓴 다이어리.손끝이 천천히 다이어리 표지를 쓰다듬었다.‘언니.’짧은 속삭임. 그러나 그 안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창밖, 이우는 차 안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앉아 있었다.라디오에서 누군가의 오래된 노래가 조용히 흘러나왔다.눈을 감았다.머릿속에는 마지막 순간, 아버지에게 남길 말이 맴돌았다.‘나 이제 당신 아들 아닙니다.’그 말은 몇 번이고 입술 안쪽에서 굴러다니다 결국 삼켜졌다.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유리는 상자를 닫았다.그때, 현관 초인종 소리. 문을 열자, 이우가 서 있었다.말없이, 그는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그 안에는 법원에서의 마지막 서류. 판결 일자.“다 왔네요.”유리가 말했다.이우는 짧게 웃었다.“예.”방 안,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전등 불빛 아래, 둘의 그림자가 테이블 위에 겹쳤다.유리는 낮게 말했다.“사실…가끔 무섭더라고요.”이우는 고개를 들었다.“어떤 게요.”유리는 잠시 웃었다.“끝이요.”그 말은 공기 중에서 천천히 녹았다.이우는 잠시 말이 없더니, 손을 뻗어 유리의 손등 위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끝나면,”그가 말했다.“내가 곁에 있을 거예요.”늦은 밤, 둘은 함께 짧은 산책을 나섰다.가로등 아래, 서로의 발걸음 소리만이 길 위에 남았다.유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별은 보이지 않았다. 구름에 덮인 하늘.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다.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돌아오는 길, 유리는 문득 멈춰 섰다.이우도 멈췄다.유리는 짧게 숨을 고르고 말했다.“고마워요.”그 말은 오래 준비한 고백이었다.이우는 미소지었다.말없이, 유리의 이마에 손을 가져가 짧게 머물렀다.그 밤, 세상은 잠시 멈춘 듯했다.방 안으로 돌아온 뒤, 유리는 창가에 서서 마지막으로 상자를 껴안았다.

  • 너무 위험한 여자   89. 지워지지 않는 기억

    마침내 두 사람의 거리가 몇 발자국 안으로 좁혀졌다.유리는 멈췄고, 이우도 멈췄다.한참을 눈빛만이 오갔다.그리고 유리가 말했다.“끝까지 같이 가요.”그 한마디에 이우의 입꼬리가 살짝 움직였다.“예.”짧은 대답. 그러나 그 안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저녁이 되자, 도시는 다시 어두워졌다.유리와 이우는 조용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테이블 위, 두 개의 커피잔.말없이 서로의 숨소리만이 오갔다.그러다 유리가 말했다.“난 아직도, 이게 끝나면 무서울 것 같아요.”이우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그때 되면, 같이 무서워하면 돼요.”유리는 눈을 감았다.이상하게도 그 말이, 지금까지 들은 말 중 가장 편안했다.그날 밤, 도시는 또 하나의 장을 넘어가고 있었다.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서로를 향해 조용히 손을 내미는 사람들.그 중심에서 유리와 이우는 잠시, 긴 숨을 고르고 있었다.아침이었다. 그러나 공기는 묘하게 눅눅했다.재판 당일, 법원 앞에는 벌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기자, 방송차, 호기심 어린 눈빛들.유리는 차 안에서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긴장이 아니었다.그보다는, 오래된 싸움이 마침내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낯선 감각.옆자리, 이우는 아무 말 없었다.서류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가 내렸다.문득 유리가 말했다.“끝나면 뭐하고 싶어요?”이우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짧게 웃었다.“한동안은, 쉬고 싶어요.”그 웃음 속에는 피로와, 그 너머의 약간의 기대가 묻어 있었다.법정 안. 서인국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그의 얼굴은 늘 그랬듯 무표정이었다.그 표정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숨겨왔는지, 유리는 이제 알 수 있었다.그가 고개를 살짝 들어 방청석을 향해 시선을 던졌을 때, 유리는 그 시선과 정확히 마주쳤다.한순간, 공기가 얇게 떨렸다.그러나 유리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재판이 시작됐다.법정 안에는 문서 넘기는 소리,속삭임, 누군가의 얕은 기침 소리.모든

  • 너무 위험한 여자   88. 지워진 적 없는 이름

    아침이었다. 그러나 빛은 희미했다.잔뜩 흐린 하늘 아래, 유리는 천천히 커튼을 걷었다.창가에 선 그녀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커튼 틈 사이로 스며든 회색빛이 그녀의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인터뷰 요청서. 기자들의 명함. 받지 않은 전화들.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유리는 손끝으로 그것들을 천천히 쓰다듬었다.마치, 가벼운 먼지를 털어내듯. 그 시간, 이우는 거울 앞에 서 있었다.검은 셔츠, 단정한 넥타이.넥타이를 조여 매는 그의 손끝에는 희미한 떨림이 있었다.서인국, 그 이름이 오늘 그의 앞에 다시 놓인다.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그 얼굴을 떠올렸다.그러나 떠오른 것은 서인국의 얼굴이 아니라, 유리가 건넨 마지막 미소였다.늦은 오후, 유리는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차창 너머로 흐르는 거리는 어딘가 무겁고 어딘가 멍했다.유리는 잠시 눈을 감았다.“끝내고 나면…”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그 물음은 마치 공기 중으로 녹아 사라졌다.저녁, 이우는 서인국의 집무실 앞에 섰다.문 앞에서, 그는 한 번 숨을 고르고 주먹을 살짝 쥐었다 폈다.문틈 너머로 낮은 대화 소리, 컵 놓는 소리,의자가 삐걱이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새어 나왔다.‘마지막이다.’그 말이 속에서 울렸다.그 시각, 유리는 카메라 앞에 앉아 있었다.마이크가 켜졌다. 기자가 낮게 물었다.“언니 이름을 왜 이제야 꺼내기로 결심하셨나요?”유리는 잠시 눈을 감았다.그 질문은 수백 번쯤 준비한 말이었지만, 막상 목 끝에서 걸렸다.그녀는 한 번 숨을 고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조유진.”단 두 음절. 그러나 그 이름은 방 안 공기를 갈라내며 조용히 내려앉았다.“그 이름은, 지워진 적이 없습니다.”밤. 서인국과 이우, 아버지와 아들, 지배자와 반역자.그들은 마침내 한 방 안에 마주 앉았다.“재밌게 크더니,”서인국이 낮게 웃었다.“결국 내 앞에서 칼을 드는구나.”이우는 웃지 않았다.그저, 이제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 너무 위험한 여자   87. 가장 깊은 밤

    밤이었다. 하지만, 완전한 밤은 아니었다.서울 끝자락, 늦은 불빛이 창에 비치고,어딘가에서 피아노 연습 소리가 미약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유리는 그 소리를 따라가듯 창가에 등을 기댔다.법정에서 돌아온 지 세 시간이 지났지만, 마음속은 아직 정리에 다다르지 못했다.‘끝났다.’‘이제 끝이다.’몇 번이나 그 말을 되뇌었지만,끝이란 건 생각처럼 쉽게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커피잔 위로 증기의 띠가 천천히 피어올랐다.유리는 잔을 감싼 손가락에 조금씩 힘을 주었다.‘언니.’속으로 부른 그 이름은 어쩐지 오늘따라 이상하게 멀리 있는 것 같았다.문이 열렸다. 낮은 발소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이우였다.그는 말없이 유리의 맞은편에 앉아 짧게 숨을 고르고 테이블 위 커피잔을 들었다.“괜찮아요?”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목소리는 낮고, 그러나 조심스러움은 없었다.“괜찮아요.”이우는 짧게 대답했다.그 말은 ‘별일 없다’는 의미보다,‘지금은 괜찮다’는 의미에 가까웠다.“법정에서 언니 이름 말할 때… 이상했어요.”유리는 잔잔히 말했다.“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말하고 나니까 더 아프더라고요.”이우는 시선을 들어 유리를 바라봤다.그 눈동자 안에는 이해가 있었고, 질문은 없었다.“아마,”그가 낮게 말했다.“그건…그 이름이 여전히 살아있어서일 거예요.”방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창밖, 버스가 한 대 지나갔다.정류장에서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다.그리고, 문이 닫히는 소리.유리는 고개를 들어 이우에게 물었다.“우리, 이제 어디로 가야 해요?”그 질문은 법정 싸움이나 재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이우는 천천히 잔을 내려놓고 테이블에 팔꿈치를 얹었다.“난,”그가 말했다.“이제 어디든 괜찮아요. 당신이랑이면.”그 말은 부드럽게, 그러나 천천히 유리의 귓가로 스며들었다.유리는 작게 숨을 삼켰다.늦은 밤, 그들은 함께 거리로 나왔다.가로등 불빛 아래, 둘의 그림자가 길게 이어졌다.걸어가는 동안, 유리는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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