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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eur: 꽃미소
이경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를 바보처럼 여기기라도 하듯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침묵이 흐르자 방 안의 공기는 한껏 긴장감에 휩싸였고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때, 바깥에서 누군가 다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자 저하, 변방에서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이경이 고개를 들어 침대 옆에 선 윤세현의 표정을 살피려는 순간, 그가 갑자기 손을 휘저으며 두꺼운 이불을 그녀 얼굴에 덮어씌웠다. 한순간에 시야가 어둡게 가려지더니, 숨이 턱 막힐 만큼 온몸이 이불에 감겨버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간신히 이불에서 빠져나온 이경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방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한숨을 내쉰 이경은 조심스럽게 침상에서 내려와 벽 쪽으로 다가갔다.

바닥에는 하얀 가루가 한 겹 쌓여 있었는데 그제야 산산조각 난 옥비녀가 완전히 가루가 되어버렸다는 걸 알았다.

손에 힘을 살짝 주어 보니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아까 잠깐 긴장했던 마음을 애써 숨겼지만 그래도 윤세현이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았다.

곧 머릿속에는‘변방 급보’라는 말이 떠올랐다.

비록 지금은 세자에 불과하지만 그는 실질적으로 대군을 거느린 전쟁의 영웅이다.

이번 기회에 그가 변방에 몇 해라도 나가 있게 된다면 적어도 이경은 당분간은 자기 일상도 조용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신부방을 천천히 둘러보다 이런 기막힌 상황까지 겪게 된 현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평생 지켜온 몸을 이렇게 한순간에 잃게 될 줄이야...’

긴 손가락으로 비녀 자리를 매만지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곰곰이 생각했다.

여길 떠날 것인지 아니면 당분간 구공주로 살아갈 것인지. 피곤이 몰려오자 하품을 하며 옷매무새를 고쳐 입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침상에 몸을 던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해가 뜨기 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공주마마.”

문밖의 목소리는 자신을 따라온 시녀 연지였다.

“무슨 일이냐?”

이경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한밤중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탓인지, 조그만 소리에도 금세 잠이 깼다.

연지는 낮게 속삭였다.

“변방에서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세자 저하께서 즉시 출정을 명 받으셨답니다.”

이경의 눈에는 반가운 빛이 번졌다.

‘드디어, 그 사람도 멀리 떠나는구나.’

하지만 연지의 다음 말은 이경의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세자 저하께서 황상께 아뢰어, 공주마마께서 황제를 대신해 직접 친정을 나가시라고 하셨답니다.”

“뭐라고?”

이경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이 사람, 정말 나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작정한 건가...’

연지는 무슨 뜻인지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이어 설명을 덧붙였다.

“세자 저하 측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공주마마께서는 반 시진 안에 짐을 꾸려, 날이 밝으면 바로 출발하셔야 한다고 합니다.”

...

이경은 공주 신분인 만큼 짐 꾸리는 일은 시녀들이 모두 맡았고 해가 채 떠오르기도 전에 긴 행렬이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공가에서 먼저 출발해 황궁에 들러 황제와 대왕대비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도성의 대문을 지나며 백성들의 축복을 받는 의식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오늘 이경은 누구보다도 단정하게 예복만 걸치고 화장은 손도 대지 않았다.

“공주마마, 저희가 시중을 제대로 못 들여서 그런 겁니까? 아니면 저희가 무슨 실수라도... 저희가 죄를 지었습니다!”

몇몇 시녀들이 놀란 눈으로 무릎을 꿇고 떨리는 목소리로 사죄했다.

그 모습을 본 이경은 구공주로 살아온 지난 시간 동안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 못되게 굴었구나. 모두가 나를 두려워하는 것도 저 사람이 나를 멀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겠지...’

이경은 조용히 일어나 옷자락을 가볍게 털고 문밖으로 걸어갔다.

“아니다. 내가 짙은 화장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다. 지금 이 모습이 오히려 보기 좋지 않으냐.”

거울을 비추어보니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 오히려 더 맑고 깨끗하게 빛났다.

문이 열리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이경이 차분하게 한 걸음씩 밖으로 나섰다.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이 그녀의 하얀 얼굴을 비추며 투명하고 고운 피부와 또렷한 이목구비를 더욱 빛나게 했다.

이제는, 예전처럼 진한 분칠로 얼굴을 가리던 구공주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당으로 나오자 시위와 시종들, 병사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고개를 돌려 이경을 바라봤고 작은 탄식과 놀라움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한편, 갑옷을 갖춰 입고 말에 올라탄 윤세현은 멀리서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조용히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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