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성림동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주말 아침의 주택가는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높은 담장과 잘 다듬어진 정원수 사이로 수입차 몇 대가 드문드문 지나갔고, 골목 어귀에는 새벽 배송을 마친 냉장 탑차가 비상등을 켠 채 서 있었다. 운동복 차림으로 개를 산책시키던 남자가 폴리스라인 앞에서 걸음을 늦췄다가 경찰의 시선을 받고 다시 움직였다.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의 아침이었다.
그 지나치게 반듯한 풍경 한가운데 경찰차 세 대가 서 있었다.
태혁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현장으로 걸었다.
“팀장님.”
대문 앞에서 기다리던 준호가 다가왔다.
“신고는?”
“아침 여섯 시 십칠 분. 피해자 동생이 발견했습니다. 오늘 같이 등산 가기로 했는데 연락이 안 돼서 왔다가.”
“피해자 혼자 살고?”
“네. 오십팔 세 남성. 이혼했고 자녀는 따로 삽니다.”
태혁이 덧신을 받아 신었다.
“출입문.”
“파손 없습니다.”
대문도, 현관문도 멀쩡했다. 잠금장치에 억지로 손댄 흔적도 없었다.
태혁의 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
벌써 익숙한 시작이었다.
“CCTV는.”
“수빈이가 보고 있습니다. 집 앞 하나, 골목 진입로 두 개 더 확보 중이고요.”
태혁이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서 거실까지 이어진 바닥은 지나치게 깨끗했다. 신발장도 닫혀 있었고 넘어지거나 깨진 물건 하나 없었다. 이 집에서 밤사이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만 떼어놓으면, 누군가 강제로 들어왔다는 흔적부터 찾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거실 끝.
식탁 옆 바닥에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하얀 장갑을 낀 감식반 직원들이 주변을 촬영하고 있었다.
준호가 목소리를 낮췄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 들어가야 합니다. 현재는 경부 쪽 손상으로 보고 있고, 사망 추정 시각은 어젯밤 열한 시에서 오늘 새벽 두 시 사이입니다.”
태혁은 시신보다 먼저 주변을 봤다.
창문.
현관.
식탁.
가구 배치.
그리고 거실장 위 액자.
시선이 멎었다.
“준호야.”
“네.”
“저거 원래 위치 확인해.”
준호도 곧 액자를 봤다.
피해자와 성인 남녀 둘이 함께 찍힌 가족사진이었다. 거실장 한쪽에는 액자가 놓였던 듯 먼지가 네모나게 비어 있었고, 사진은 그 자리에서 반 뼘쯤 옮겨져 있었다.
준호의 표정이 굳었다.
“……또네요.”
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첫 번째 집.
두 번째 집.
그리고 세 번째.
누군가 집 안으로 들어와 가족사진을 봤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했고, 같이 사는지 물었고, 언제 돌아오는지까지 알아냈다.
앞의 두 집에서는 사람이 살아남았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태혁이 바닥의 남자를 다시 바라봤다.
십 년 전 사건을 닮았다는 말로는 이제 부족했다.
누군가 같은 순서를 밟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
“팀장님.”
현관 쪽에서 수빈이 들어왔다.
태블릿을 든 얼굴이 평소보다 굳어 있었다.
“CCTV 하나 잡혔어요.”
태혁이 바로 다가갔다.
화면에는 어두운 골목이 찍혀 있었다.
시각은 어젯밤 9시 47분.
프레임 오른쪽 끝에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한 탓에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색 작업복 위로 조끼를 걸쳤고 한 손에는 작은 장비 가방을 들고 있었다.
준호가 화면을 확대했다.
“작업자처럼 보이죠.”
“보이게 입은 거겠지.”
남자는 피해자의 집 앞을 지나갔다.
몇 분 뒤 다른 각도의 CCTV에서 다시 잡혔다. 이번에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수빈이 영상을 넘겼다.
“밤 열두 시 삼십팔 분쯤 다시 나옵니다.”
“세 시간 가까이 있었네요.”
남자는 들어올 때와 같은 속도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뛰지도 않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준호가 혀로 볼 안쪽을 눌렀다.
“겁도 없네요.”
태혁은 화면을 멈췄다.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정지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안 들킬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카메라 위치를 미리 파악한 움직임이었다. 얼굴이 잡힐 각도에서는 고개를 숙였고, 걸음은 이상할 만큼 일정했다.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나온 인간의 뒷모습은 아니었다.
“차량은?”
수빈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입니다. 골목으로는 걸어 들어왔어요.”
“들어오기 전 동선 끝까지 따.”
“네.”
태혁이 태블릿을 돌려주며 말했다.
“피해자 세 명 공통점도 처음부터 다시 봐. 직장, 금융, 병원, 학교, 가족관계까지.”
“알겠습니다.”
“사소한 것도 빼지 말고.”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혁은 장갑을 끼며 식탁 쪽으로 걸었다.
범인은 세 시간 가까이 이 집에 있었다.
사람 하나를 죽이는 데 세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 전에 무언가를 했다는 뜻이었다.
집을 봤거나.
사람을 봤거나.
아니면.
확인했거나.
“강 팀장님.”
감식반 직원이 불렀다.
“이것 좀 보시죠.”
식탁 한쪽에 작은 증거물 표지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 카드 한 장이 있었다.
태혁은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내려다봤다.
오래된 체크카드였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디자인에 잔흠집이 많았고, 유효기간도 한참 전에 끝나 있었다.
“피해자 겁니까?”
“아닌 것 같습니다. 지갑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감식반 직원이 식탁을 가리켰다.
“여기 놓여 있었습니다.”
놓여 있었다.
태혁의 시선이 식탁 위를 훑었다.
물컵 하나.
휴대폰.
그리고 그 사이에 카드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떨어진 물건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얌전한 모양이었다.
준호가 옆으로 다가왔다.
“명의부터 확인해야겠네요.”
태혁은 카드 아래쪽을 보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영문으로 새겨진 이름.
JINWOO SEO.
서진우.
순간 주변 소리가 한 겹 멀어졌다.
십 년 전 수도 없이 읽었던 이름이었다.
수사 기록의 첫 장.
수배 전단.
통신 내역.
그리고 끝내 종결하지 못한 추적 보고서까지.
서진우.
스물넷.
성림동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준호도 곧 이름을 확인했다.
“……미친.”
옆에 있던 수빈의 표정도 굳었다.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십 년 전 대한민국을 뒤흔든 연쇄살인사건이었다. 사건이 한창일 때는 뉴스만 틀면 얼굴과 이름이 나왔고, 서진우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온갖 추측이 쏟아졌다.
감식반 직원까지 카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거…… 그 서진우 맞습니까?”
태혁이 곧바로 말했다.
“확인부터 해주세요. 발급 이력, 계좌, 분실 신고까지 전부.”
“네.”
준호가 낮게 물었다.
“팀장님.”
태혁은 여전히 카드를 보고 있었다.
“진짜 그 사람 거면.”
말이 잠깐 끊겼다.
“죽은 사람 아닙니까?”
태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틈을 준호가 놓치지 않았다.
“……아니었습니까?”
태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망 추정.”
“시신은요?”
“못 찾았어.”
준호의 얼굴이 달라졌다.
태혁은 다시 카드를 내려다봤다.
십 년 전 겨울.
서진우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주하다 강변도로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차량은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불어난 강물.
심하게 파손된 차량.
차 안에서 나온 혈흔.
서진우의 것과 일치한 DNA.
수색은 오래 이어졌다.
시신만 나오지 않았다.
당시에도 가능성은 검토했다.
탈출했을 가능성.
헤엄쳐 나왔을 가능성.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
전부 확인했다.
나오는 것은 없었다.
겨울 강물의 수온과 유속, 혈흔의 양, 사고 당시 부상 가능성까지 종합하면 생존 가능성은 희박했다.
시간이 지나며 희박하다는 말은 사망 추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십 년이 흘렀다.
사람은 그런 식으로 죽은 사람이 되기도 했다.
시체가 없어도.
준호가 카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럼……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모르지.”
태혁의 대답은 짧았다.
“확인하기 전에는.”
“하지만 이게 진짜 그 사람 카드면.”
“카드가 있다고 사람이 살아 있는 건 아니야.”
“그렇다고 죽었다는 증거도…….”
준호가 말을 멈췄다.
없었다.
적어도 시신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태혁은 아무 말 없이 식탁을 바라봤다.
카드는 너무 잘 보이는 곳에 있었다.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마음에 걸린다는 이유만으로 가능성을 지울 수는 없었다.
십 년 전과 같은 지역.
같은 침입 방식.
가족사진.
가족관계와 귀가 시간 확인.
그리고 이제는 사람이 죽었다.
거기에 서진우의 이름까지 나왔다.
죽었다고 믿었던 남자가 정말 죽었는지.
처음부터 다시 확인해야 했다.
태혁은 턱을 한 번 쓸었다.
그 순간 엉뚱한 장면이 머릿속으로 끼어들었다.
몇 시간 전 자신의 차 조수석에 앉아 있던 이재.
술이 조금 올라 평소보다 느슨하게 풀린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던 얼굴. 검은 머리카락이 흰 뺨 옆으로 몇 가닥 흘러내렸고, 설렁탕에서 올라오는 김 너머로 웃을 때마다 오른쪽 눈 아래의 작은 점이 따라 움직였다.
한국이 그립기도 했고.
오기 싫기도 했다고 했다.
그 말을 하고도 이재는 금세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깍두기를 집어 먹었다.
겨우 몇 시간 전이었다.
태혁은 혀끝으로 입 안쪽을 눌렀다.
참 타이밍도 더러웠다.
***
오전 아홉 시가 가까워질 무렵 카드 조회 결과가 나왔다.
“본인 명의 맞습니다.”
수빈이 출력물을 내밀었다.
“서진우 명의로 실제 발급됐던 체크카드예요. 유효기간은 사건 발생 전에 끝났고, 이후 재발급 기록은 없습니다.”
“분실 신고.”
“없고요.”
“계좌는?”
“사건 이후 장기 미사용 상태였다가 정리됐습니다.”
태혁이 서류를 넘겼다.
“피해자하고 접점은?”
“현재까지 없습니다.”
준호가 책상 옆에 서서 출력물을 내려다봤다.
“그럼 카드 자체는 진짜네요.”
“어.”
“누가 가지고 있었든.”
태혁이 고개를 들었다.
“거기까지만.”
준호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 확인된 건 서진우 명의로 실제 발급됐던 카드라는 것까지야. 그 이상 가정하지 마.”
“네.”
“십 년 전 사고 자료 다시 꺼내.”
준호가 눈을 들었다.
“차량 인양 기록부터 수색 범위, 당시 목격자, 병원 내원 기록까지 전부.”
“생존 가능성 다시 보시게요?”
태혁이 서류를 덮었다.
“봐야지.”
준호는 더 묻지 않았다.
태혁이 경계하는 건 가능성 자체보다 확인하지 않은 채 지워버린 가능성이었다.
십 년 전에는 결국 시신을 찾지 못했다.
그 사실이 이제 와서 이렇게 목을 물었다.
“팀장님.”
수빈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윤이재 씨한테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태혁의 손이 멈췄다.
알려야 했다.
이번에는 사람이 죽었다.
현장에서는 서진우의 물건까지 나왔다.
이재가 몰라도 되는 정보라고 판단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그런데 전화기를 집어 드는 데 평소보다 한 박자 오래 걸렸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다음에는 비싼 걸 얻어먹겠다는 얘기를 했다.
주말에 뭐 하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평범한 금요일 밤이었다.
그런데 다시 사건이었다.
태혁은 휴대폰을 들었다.
어쩌겠나.
이게 자신과 윤이재 사이에 처음부터 놓여 있던 것이었다.
***
토요일 오전 열 시.
이재는 평소보다 늦게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목이 마르다는 거였다.
두 번째는.
어제 술을 왜 그렇게 빨리 마셨지.
그리고 세 번째쯤에서 설렁탕집이 떠올랐다.
이재는 베개에 얼굴을 반쯤 묻었다.
“…….”
기억은 쓸데없이 선명했다.
안전벨트 경고음을 환청인 줄 알았다고 한 것.
강태혁의 차가 꼭 강태혁 같다고 한 것.
주말에는 뭘 하냐고 캐물은 것.
심지어 집에 돌아와서는 메시지까지 썼다가 지웠다.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던 이재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어제의 윤이재는 꽤 적극적으로 사회적 자살을 시도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보내지는 않았다.
마지막 이성이 훌륭하게 버텼다.
이재는 그 사실에 감사하며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을 보고 그대로 멈췄다.
강태혁.
전화가 오고 있었다.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이재는 일부러 한 번 더 울린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일어났어요?
어젯밤보다 훨씬 건조한 목소리였다.
이재도 모르게 자세가 조금 바로잡혔다.
“네. 방금.”
―술은 깼고?
“그 얘기는 안 하면 안 돼요?”
―깼네.
이재가 이불을 걷어찼다.
“전화 끊어요?”
―그러든가요.
“…….”
어제랑 똑같았다.
그런데 태혁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이재는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
“무슨 일 있어요?”
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그리고 태혁의 목소리에서 사적인 온기가 깨끗하게 빠졌다.
―사건이 하나 더 생겼어요.
이재의 손이 멈췄다.
“성림동에서요?”
―네.
“또 검침원으로 들어갔어요?”
―그렇게 보고 있어요.
“다친 사람은요?”
대답이 바로 오지 않았다.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길었다.
이재가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강태혁 씨.”
―이번에는 사람이 죽었어요.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민망함도 깨끗하게 사라졌다.
“……어제요?”
―네.
이재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봤다.
맑았다.
햇빛은 침실 바닥까지 들어와 있었다.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듣기에 지나치게 멀쩡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십 년 전이랑.”
목이 조금 말랐다.
“같아요?”
이번에는 태혁이 몇 초간 대답하지 않았다.
―직접 보고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왜요.”
―보여줄 게 있어요.
“뭔데요?”
―전화로 설명하고 싶진 않아요.
휴대폰을 쥔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언제 봐요.”
―시간 되는 대로.
“지금도 돼요.”
이번에는 태혁이 잠깐 조용했다.
―집에 있어요?
“네.”
―몇 동이에요. 호수하고.
이재가 잠깐 멈췄다.
“……우리 집으로 오게요?”
―그게 낫겠어요.
이재는 동과 호수를 알려줬다.
전화를 끊은 뒤에도 한동안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몇 시간 전에는 저 남자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낼지 말지를 고민했다.
오늘은 그 남자가 자기 집으로 온다.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고.
강태혁과 다시 만난 뒤로 일의 순서가 영 엉망이었다.
***
초인종이 울린 건 삼십 분쯤 뒤였다.
이재는 인터폰 화면부터 확인했다.
검은 셔츠 위에 얇은 재킷을 걸친 태혁이 서 있었다.
혼자였다.
문을 열어주고도 이재는 현관 앞에서 잠깐 멈췄다.
검침원.
현관문.
낯선 남자.
하필 오늘 들은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쳤다.
좋지 않은 연상이었다.
곧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들렸다.
문이 열리고 태혁이 걸어왔다.
그를 보는 순간 이재의 어깨에서 아주 조금 힘이 빠졌다.
그 사실은 모른 척하기로 했다.
“들어와요.”
태혁이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신발을 벗다가 집 안을 한번 훑었다.
이재가 바로 눈치챘다.
“왜요.”
“뭐가요.”
“지금 집 봤잖아요.”
“봤죠.”
“형사라서?”
태혁은 잠깐 현관 잠금장치를 바라봤다.
“오늘은 좀.”
이재는 그 말을 듣고 괜히 도어락 쪽을 한번 봤다.
“커피 마실래요?”
“괜찮아요.”
“저는 마실 건데.”
“그럼 주세요.”
이재가 그를 한번 봤다.
“아무거나요?”
“네.”
“취향 없어요?”
“커피에까지 있어야 합니까?”
역시 강태혁이었다.
사람 긴장시키는 것도 잘하고, 풀어주는 건 본인도 모르게 했다.
이재는 더 묻지 않고 주방으로 갔다.
잠시 뒤 두 사람은 거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태혁은 커피에 손도 대지 않은 채 얇은 서류봉투를 꺼냈다.
이재의 시선이 거기에 붙었다.
“그게 보여줄 거예요?”
“네.”
태혁은 바로 건네지 않았다.
“현장 사진이 몇 장 들어 있어요.”
이재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굳었다.
“시신 사진은 없습니다.”
그제야 이재가 숨을 조금 내쉬었다.
“보여줘요.”
태혁은 잠깐 그녀를 봤다.
“확실해요?”
“제가 결정할게요.”
익숙한 말이었다.
태혁의 시선이 아주 잠깐 멈췄다가 내려갔다.
“그래요.”
이번에는 막지 않았다.
봉투가 이재에게 넘어왔다.
***
첫 번째 사진은 거실이었다.
두 번째는 현관.
세 번째는 가족사진이 놓인 거실장.
이재의 손이 멈췄다.
“또 가족사진을 봤어요?”
“네.”
“앞의 두 집처럼?”
“네.”
사진 속 거실은 낯설었다.
그런데 하는 짓은 낯설지 않았다.
남의 집에 들어와 사진부터 보는 사람.
누가 사는지.
누구와 사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이재는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식탁.
휴대폰.
물컵.
그리고 그 사이에 카드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오래된 체크카드.
아래쪽에 영문 이름이 박혀 있었다.
JINWOO SEO.
이재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서진우.
몰라볼 수 없는 이름이었다.
십 년 전 뉴스와 신문에 지겹도록 반복됐던 이름.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사람의 이름.
“……이게 왜 여기 있어요?”
“오늘 현장에서 발견됐어요.”
이재가 고개를 들었다.
“진짜예요?”
“확인했습니다.”
“서진우 거라고요?”
“네.”
이재는 다시 사진을 봤다.
말이 되지 않았다.
“죽었잖아요.”
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에 이재가 고개를 들었다.
“죽었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판단됐어요.”
말이 미묘하게 달랐다.
이재의 눈썹이 천천히 좁아졌다.
“무슨 뜻이에요.”
태혁은 잠시 말이 없었다.
이재가 그를 바라봤다.
“강태혁 씨.”
“서진우는 추격 중에 차와 함께 강으로 떨어졌습니다.”
“알아요.”
거기까지는 알고 있었다.
도주 중 사고가 났고 살아남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그리고 경찰은 서진우가 죽었다고 했다. 그게 이재가 들은 전부였다.
태혁이 말을 이었다.
“차량은 인양됐어요. 안에서 서진우 혈흔도 나왔고.”
“그러니까 죽은 거잖아요.”
태혁이 잠시 침묵했다.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재가 움직임을 멈췄다.
“……뭐라고요?”
“수색했지만 못 찾았어요.”
이재의 눈이 천천히 흔들렸다.
“잠깐만.”
손에 들고 있던 사진이 아래로 내려갔다.
“저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요.”
태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재는 기억을 더듬었다.
사고.
강.
사망.
그 세 개뿐이었다.
병원에 있던 자신에게 경찰이 와서 말했다.
범인은 도주 중 사고가 났고,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아버지도 같은 말을 했다.
다 끝났다고.
이제 아무 일 없을 거라고.
그 뒤로 이재는 관련 뉴스를 보지 않았다.
보고 싶지도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니 정말 몰랐다.
서진우의 시신이 없었다는 걸.
“그럼.”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죽은 걸 확인한 게 아니잖아요.”
태혁은 부정하지 않았다.
“정황상 생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습니다.”
“낮은 거랑 없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왜 아무도 저한테 말 안 했어요?”
태혁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당시 열여덟 살이던 이재에게 어디까지 전달됐는지 자신은 몰랐다. 담당 수사관은 따로 있었고, 보호자였던 윤정호를 통해 전달된 내용도 많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재는 몰랐다.
십 년 동안.
“그럼 살아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태혁은 곧바로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그게 제일 무서웠다.
“가능성을 다시 확인하고 있어요.”
“살아 있을 확률이 얼마나 돼요?”
“지금은 말 못 합니다.”
“모르는 거예요?”
“네.”
이재가 입을 다물었다.
사진 위에 박힌 이름이 아까와는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서진우.
죽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다.
어쩌면, 십 년 동안 살아 있던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문득 아주 오래된 목소리가 들렸다.
쾅.
문이 흔들렸다.
쾅, 쾅.
목재가 갈라지는 소리.
열여덟의 이재는 드레스룸 안에서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울면 안 됐다.
숨소리도 내면 안 됐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자가 있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문을 걷어차던 소리가 멈췄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올게.
이재가 숨을 들이켰다.
거실이 돌아왔다.
햇빛, 커피, 벽에 걸린 시계.
그리고 맞은편의 강태혁.
“윤이재 씨.”
이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 봐요.”
낮은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들었다.
태혁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냥 거기 있었다.
이재가 입술을 한번 눌렀다.
“그 사람이.”
목소리가 생각보다 멀쩡하게 나왔다.
“그때 저한테 다시 온다고 했어요.”
“알아요.”
태혁은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진술서에도 있었다.
열여덟의 윤이재가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했다.
다시 온다고 했어요.
그 사람이 다시 온다고 했어요.
그리고 강태혁은 그때마다 같은 대답을 했다.
안 옵니다.
우리가 잡을 겁니다.
결국 잡지는 못했지만.
이재가 물었다.
“저한테 다시 올까요?”
이번에는 대답이 쉽지 않았다.
태혁은 아무 근거 없이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이재의 얼굴에서 남아 있던 핏기가 조금 더 빠졌다.
“그러니까.”
그가 낮게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하자는 대로 해요.”
평소 같았으면 바로 반박했을 말이었다.
그런데 이재는 가만히 있었다.
“당분간 혼자 다니지 말고.”
“네.”
이번에는 태혁이 잠깐 멈췄다.
“출퇴근 시간도 일정하게 하지 마요. 집 보안도 다시 확인하고.”
“알겠어요.”
“경찰도 붙일 겁니다.”
이재는 이번에도 싫다고 하지 않았다.
“네.”
고작 두 번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걸로 충분했다.
보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싫다고 잘라내던 윤이재가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이재가 사진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오늘은요?”
“집에 있어요.”
“강태혁 씨는요?”
“서진우 사고 기록 다시 봐야 합니다.”
“지금 가요?”
“네.”
태혁은 서류를 챙겼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이 죽었고, 십 년 전 범인이 살아 있을 가능성까지 다시 확인해야 했다.
강태혁은 형사였다.
여기 앉아서 자신과 커피를 마시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이재의 시선이 현관 쪽으로 갔다.
문이 닫히면 혼자였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집이었다.
십 년 동안 혼자 있는 법을 누구보다 잘 배웠다.
그런데 오늘은 저 문이 이상하게 멀어 보였다.
태혁이 재킷을 집어 들었다.
“경찰은 바로 보내겠습니다.”
“……네.”
이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혁이 현관 쪽으로 몇 걸음 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이재가 입술을 깨물었다.
말하지 않아도 됐다.
경찰이 올 거였다.
조금만 기다리면 됐다.
그런데.
“강태혁 씨.”
태혁이 멈춰 돌아봤다.
이재는 그를 바라봤다.
막상 불러놓고도 몇 초간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무서워서 가지 말라고 하는 것뿐인데.
그 말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결국 이재가 먼저 시선을 내렸다.
“……가지 말아요.”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태혁의 표정이 멎었다.
이재는 괜히 손끝을 말아 쥐었다.
“조금만.”
그제야 다시 눈을 들었다.
“조금만 더 있다 가요.”
태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길어지기 전에 이재가 덧붙였다.
“오늘은 혼자 있기 싫어요.”
변명하지 않았다.
경찰이 올 때까지만이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사실이었다.
태혁은 한동안 이재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손에 들었던 재킷을 다시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
“알겠어요.”
그뿐이었다.
왜냐고 묻지도 않았다.
언제까지냐고 묻지도 않았다.
태혁은 다시 이재의 맞은편에 앉았다.
조금 전까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던 커피를 집어 들었다.
이재도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서진우의 이름이 찍힌 사진이 놓여 있었다.
십 년 전의 공포가 그대로 돌아온 것 같은 아침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직원이 두 사람을 안쪽 자리로 안내했다.창가를 따라 낮은 조명이 길게 이어진 곳이었다. 이재가 먼저 걸었고, 태혁은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몇 걸음인데 이상하게 시선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검은 원피스는 가까이서 보니 더 그랬다. 노출이 많은 것도 아닌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느다란 몸의 선이 고스란히 따라 움직였다.태혁은 괜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오늘따라 서울 야경이 볼 만했다.자리에 도착하자 직원이 이재의 의자를 빼주었다. 이재가 앉고 태혁도 맞은편에 자리했다.메뉴판이 놓였다.이재는 바로 펼쳤지만 태혁은 한 박자 늦었다.“여기 괜찮죠?”“네.”“메뉴는요?”대답은 하는데 정작 메뉴판은 보지 않았다.이재가 눈을 들었다.태혁의 시선이 자신에게 있었다.“왜요. 마음에 안 들어요?”“아뇨.”그제야 태혁이 메뉴판을 펼쳤다.“좋은데.”“근데 왜 안 봐요?”“보고 있었습니다.”“나를 보고 있었잖아요.”태혁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이재가 웃었다.“뭐 먹고 싶은데요?”“윤이재 씨 먹고 싶은 걸로 골라요.”“내가 사니까?”“그건 아니고.”“그럼?”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태혁은 물잔만 들었다.뭐야.아까부터.이재는 메뉴판으로 시선을 내리면서도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걸 느꼈다.그러고 보니 이쪽만 평소와 다른 것도 아니었다.오늘따라 반듯한 셔츠에, 평소보다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 가까이 섰을 때 느꼈던 향도 어제보다 조금 선명했다.괜히 옷장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은 게 자기뿐은 아닌 모양이었다.그 사실을 깨닫자 조금 전부터 붕 떠 있던 기분이 더 이상해졌다.“강태혁 씨.”“네.”“향수 뿌렸어요?”“네.”대답이 너무 순순했다.“왜요?”태혁이 눈을 들었다.“나는 향수 뿌리면 안 됩니까?”“아니, 그런 건 아닌데.”“그럼 됐네요.”“그게 아니라…….”이재는 말을 고르다 웃었다.“그런 거 성가셔할 것 같아서.”“평소에는 그렇죠.”평소에는.이재의 손가락이 메뉴판 위에서
일요일 아침, 이재는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 잠에서 깼다.경찰이었다.전날 성림동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당분간 주거지 인근 순찰을 강화할 예정이며, 건물 보안팀과도 협조를 마쳤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상한 사람을 보거나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며 담당자 번호까지 남겼다.전화를 끊고 거실로 나온 이재는 커튼을 걷었다.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도로 위로 차가 드문드문 지나갔고, 산책하는 사람도 보였다.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그런데 이제는 알고 있었다.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라는 걸.아버지가 보낸 사람들도 어젯밤부터 근처에 있었다. 이재가 불편하지 않도록 건물 안팎에서 거리를 두고 교대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창가에 서 있던 이재의 시선이 길 건너편에 멈췄다.어제부터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검은색 세단이 한 대 있었다.설마 저건가.이재는 잠깐 바라보다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사람 확인했어요. 경찰에서도 연락 왔고.]조금 고민하다 한 줄을 덧붙였다.[나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답장은 금방 왔다.[알았다. 그래도 당분간은 아빠 말 좀 들어.]이재의 입술이 슬쩍 비뚤어졌다. 아빠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네네.]보내놓고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는데 다시 진동이 울렸다.[오늘은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이재의 손가락이 멈췄다.오늘 저녁 일곱 시.어제 잡은 약속이 떠올랐다.[그건 안 돼.]이번에는 답장이 없었다.이재는 잠깐 기다리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어차피 조금 있으면 전화가 올 것이다.잔소리 들을 준비나 해야겠다.***십 년 전 기록은 생각보다 상태가 좋았다.태혁은 책상 위에 펼쳐놓은 수색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서진우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새벽 두 시 십칠 분.경찰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다 성림대교 인근에서 사고가 났고, 차량은 교량 진입부 난간을 들이받은 채 발견됐다.차량 내부에서는 상당량의 혈흔이 나
눈을 떴다.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이재는 한동안 소파에 누운 채 눈만 깜빡였다. 블라인드 사이로 오후의 햇빛이 길게 들어와 거실 바닥에 걸쳐 있었다.이렇게 낮에 저절로 잠든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십 년 전 사건 이후 잠은 이재에게 꽤 번거로운 일이었다. 피곤하다고 자연스럽게 잠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누워서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약을 먹는 날이 많았고, 어쩌다 잠들어도 작은 소리에 쉽게 깼다.낮잠은 더더욱 없었다.그런데 오늘은 이상할 만큼 깊게 잤다.이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맑았다. 몸에 오래 눌어붙어 있던 피로가 조금 걷힌 것처럼 개운했다.낮잠이 원래 이렇게 개운한 거였나.그 순간 무언가가 허벅지 아래로 미끄러졌다.검은 재킷.“…….”강태혁 거였다.아까 소파 등받이에 걸어놓았던.소파에 기대 휴대폰을 보다가 살짝 잠이 든 모양이었다. 태혁은 식탁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고, 자신은 정말 잠깐만 눈을 감으려고 했다.정말 잠깐이었는데.이재는 테이블 위 휴대폰을 집었다.오후 세 시가 조금 넘었다.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대충 정리하며 거실을 둘러봤다.식탁이 비어 있었다.서류도 없었다.“……강태혁 씨?”대답이 없었다.조금 전까지 느긋하던 심장이 순간 덜컥 내려앉았다.설마 갔나.이재는 소파에서 급하게 일어나 넓은 거실을 가로질렀다.현관에 도착해 가장 먼저 바닥을 내려다봤다.강태혁의 신발이 그대로 있었다.다행이다.그 생각을 한 순간 잠이 덜 깬 발이 엉켰다.“어…….”몸이 옆으로 기울었다.넘어지기 거의 직전이었다. 이재의 허리를 단단한 팔이 받쳤다. 거의 동시에 다른 손이 팔뚝을 잡아 세웠다.“조심해요.”귓가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이재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고개를 들자 태혁의 얼굴이 보였다.가까웠다.허리를 받친 손바닥의 온기가 얇은 옷 너머로 선명했다. 이재는 그것을 의식한 순간 오히려 움직이지 못했다.시선이 마주쳤다.잠이 덜 깬 탓인지 머리가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였
태혁은 정말 남았다.재킷을 소파 등받이에 걸어두고,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던 사진부터 다시 봉투에 넣었다. 서진우의 이름이 가장 마지막으로 사라졌다.그 뒤로는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태혁은 식탁 한쪽에 가져온 서류를 펼쳐놓고 휴대폰으로 몇 통의 전화를 돌렸다.이재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었다.둘 사이에는 식탁 하나가 놓여 있었고, 태혁은 긴 다리를 의자 아래로 조금 접어 넣은 채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평소 혼자 쓰던 식탁에 덩치 큰 남자가 마주 앉아 있으니, 여섯 명은 넉넉히 앉는 테이블이 이상하게 좁아 보였다.“차량은?”태혁이 낮게 물었다.잠깐의 침묵이 흘렀다.“거기서 끊겼으면 반경 넓혀. 도보로 들어왔다고 도보로 빠졌다고 생각하지 말고.”일할 때는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이재는 턱을 괸 채 태혁을 바라봤다.생각보다 더 차가웠다.자신과 이야기할 때도 살가운 남자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눈썹이 움직이거나,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거나, 아주 가끔은 웃기도 했다.지금은 달랐다. 표정이 거의 없다고 해야 하나.필요한 것만 물었고, 상대가 보고하는 동안에는 말을 끊지 않았다. 듣고 판단한 뒤 곧바로 다음 지시를 내렸다.“피해자 금융 기록은?”태혁의 손이 서류 한 장에서 멈췄다.“최근 것만 보지 말고 첫 사건 전까지 넓혀.”목소리에도 높낮이가 거의 없었다.새벽부터 살인 현장에 있었고, 몇 시간 전에는 십 년 전 죽은 줄 알았던 연쇄살인범의 물건까지 발견했다.그런데도 흐트러지는 게 없었다.십 년 전에는 그저 어른처럼 보였다.열여덟 살의 자신에게 스물다섯은 충분히 그런 나이였으니까.지금 보니 꽤…….이재의 시선이 태혁의 손으로 내려갔다.서류를 넘기는 길고 반듯한 손가락을 따라가다가 다시 얼굴로 올라왔다.턱을 괴고 있던 손가락이 입술 아래를 한번 눌렀다.생각은 거기까지만 하기로 했다.“뭘 그렇게 봐요.”이재의 어깨가 움찔했다.태혁은 여전히 서류를 보고 있었다.“뭐, 뭐가요?”그제야 태혁이 눈을 들었다.시선이 정확하게
성림동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주말 아침의 주택가는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높은 담장과 잘 다듬어진 정원수 사이로 수입차 몇 대가 드문드문 지나갔고, 골목 어귀에는 새벽 배송을 마친 냉장 탑차가 비상등을 켠 채 서 있었다. 운동복 차림으로 개를 산책시키던 남자가 폴리스라인 앞에서 걸음을 늦췄다가 경찰의 시선을 받고 다시 움직였다.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의 아침이었다.그 지나치게 반듯한 풍경 한가운데 경찰차 세 대가 서 있었다.태혁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현장으로 걸었다.“팀장님.”대문 앞에서 기다리던 준호가 다가왔다.“신고는?”“아침 여섯 시 십칠 분. 피해자 동생이 발견했습니다. 오늘 같이 등산 가기로 했는데 연락이 안 돼서 왔다가.”“피해자 혼자 살고?”“네. 오십팔 세 남성. 이혼했고 자녀는 따로 삽니다.”태혁이 덧신을 받아 신었다.“출입문.”“파손 없습니다.”대문도, 현관문도 멀쩡했다. 잠금장치에 억지로 손댄 흔적도 없었다.태혁의 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벌써 익숙한 시작이었다.“CCTV는.”“수빈이가 보고 있습니다. 집 앞 하나, 골목 진입로 두 개 더 확보 중이고요.”태혁이 안으로 들어갔다.현관에서 거실까지 이어진 바닥은 지나치게 깨끗했다. 신발장도 닫혀 있었고 넘어지거나 깨진 물건 하나 없었다. 이 집에서 밤사이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만 떼어놓으면, 누군가 강제로 들어왔다는 흔적부터 찾기가 어려웠다.그리고 거실 끝.식탁 옆 바닥에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하얀 장갑을 낀 감식반 직원들이 주변을 촬영하고 있었다.준호가 목소리를 낮췄다.“정확한 사인은 부검 들어가야 합니다. 현재는 경부 쪽 손상으로 보고 있고, 사망 추정 시각은 어젯밤 열한 시에서 오늘 새벽 두 시 사이입니다.”태혁은 시신보다 먼저 주변을 봤다.창문.현관.식탁.가구 배치.그리고 거실장 위 액자.시선이 멎었다.“준호야.”“네.”“저거 원래 위치 확인해.”준호도 곧 액자를 봤다.피해자와 성인
본사에서 두 블록쯤 떨어진 횟집 안은 이미 제법 시끄러웠다.잔 부딪치는 소리와 웃음이 칸막이 너머까지 뒤섞였고, 처음에는 정갈했던 테이블도 빈 술병과 접시로 제법 어수선해져 있었다.한국에 돌아온 뒤 처음 참석한 팀 회식이었다.회장 딸이랍시고 첫 회식부터 술까지 빼면 사람들이 더 어려워할 것 같아 오는 잔을 적당히 받아 마셨는데, 문제는 그 적당히가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는 데 있었다.“윤 대리님.”옆자리 과장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진짜 미국에서 십 년을 있었어요?”“네.”“근데 한국말을 진짜 잘하시네.”이재가 잠시 과장을 바라봤다.“……한국인이니까요.”맞은편의 다은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과장님.”“어?”“진짜 장난 아니고, 똑같은 질문 세 번째 하신 거 알아요?”과장이 눈을 크게 떴다.“내가? 진짜?”“네. 진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또옥같았어요.”“야, 김다은. 너 취한 거 아냐?”이재가 웃음을 참으며 둘을 번갈아 봤다.“과장님이 다은 씨보다 조금 더 취한 것 같기는 해요.”“거봐요.”다은이 냉큼 이재 쪽으로 붙었다.과장이 헛웃음을 터뜨렸다.“둘이 벌써 한 편을 먹었네.”이재는 이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입사 초기만 해도 이재가 출근하면 괜히 모니터부터 확인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같은 농담에 웃고, 취한 얼굴까지 보여줄 정도는 됐으니까.“자자, 슬슬 2차 가실 분들은 가시죠.”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강요 아닙니다. 집에 갈 사람은 집에 가고. 신나게 놀 사람들은 더 놀고.”누군가 바로 받았다.“팀장님이 제일 신나게 놀고 싶으신 것처럼 들리는데요.”“내가 언제.”웃음이 터지는 틈에 이재는 가방을 챙겼다.다은이 고민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대리님 가세요?”“네. 저는 여기까지.”“저는 어떡하죠. 사회생활을 좀 하긴 해야 할 것 같고……. 따라가면 또 취할 것 같고.”“가서 안 취하면 되죠.”“그게…… 될까요?”“그걸 해내는 것도 사회생활 능력이에요.”다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