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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혁. 분명 아는 이름 같기는 했다.
문제는 대체 어디서 아는 이름인지 죽어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제 손님이라고요?”
―네. 1층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수화기 너머로 안내 데스크 직원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이재는 모니터 한쪽에 띄워둔 사내 메신저를 확인했다. 오늘 예정된 외부 미팅은 없었다.
애초에 있을 리가 없었다.
입사한 지 이제 나흘. 한국에 돌아온 지도 고작 열흘이었다. 그런 사람을 회사까지 약속도 없이 찾아올 인간이라면 둘 중 하나였다.
아주 가까운 사이거나.
아주 눈치가 없는 사이거나.
강태혁이라는 이름은 안타깝게도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무슨 일로 오셨대요?”
―따로 말씀은 안 하셨어요. 성함만 전달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아, 네. 내려갈게요.”
전화를 끊고 속으로 이름을 한 번 더 불러봤다.
강태혁.
역시 모르겠다. 한국을 떠난 지 십 년이었다.
그동안 잊은 사람이 한둘도 아니었고, 굳이 기억하며 살 필요가 없는 사람은 더 많았다. 그중 하나겠거니 했다.
적어도 그 사람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로비는 한산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탓인지 오가는 직원도 많지 않았다. 이재는 외부 손님 전용 라운지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누구든 얼굴을 보면 기억나겠지.
라운지 창가에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검은 정장. 길게 뻗은 다리.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어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남의 회사 로비치고는 지나치게 편해 보였다.
이재는 걸음을 늦췄다. 저런 인간을 알았던가.
그때였다.
기척을 느꼈는지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아.
알았다.
동시에 속이 뒤집혔다.
이재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화장실까지 어떻게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칸막이 문을 열고 변기를 붙잡자마자 헛구역질이 터졌다.
“욱…….”
나오는 것은 없었다.
아침에 마신 커피 한 잔이 전부였으니 당연했다. 그런데도 몸은 자꾸만 무언가를 뱉어내려 했다.
심장이 뛰었다.
손끝이 떨렸다.
그리고 아주 잠깐. 냄새가 났다.
피 냄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곳은 호텔 본사 1층 화장실이었다. 바닥은 지나치게 깨끗했고, 코끝에는 고급스러운 방향제 냄새만 맴돌았다.
그런데도 분명했다.
쾅.
어디선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 쾅.
문고리가 흔들렸다.
누군가 울부짖었다.
숨을 죽여야 했다.
소리를 내서는 안 됐다.
들키면―
이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만.
한동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남아 있는 것은 환풍기가 돌아가는 낮은 기계음뿐이었다.
이재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하나. 둘. 셋.
괜찮다.
여기는 회사였다. 낮이었고, 문밖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자신은 더 이상 열여덟 살이 아니었다.
몇 번이나 되뇌고 나서야 손끝의 떨림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이재는 세면대 앞으로 갔다. 찬물로 입을 헹궜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야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 여자의 눈가가 붉었다. 꼭 울고 난 사람 같았다.
꼴사나웠다.
그리고 이제야 완전히 기억났다.
강태혁.
목소리도 잊었다.
이름조차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은 몸이 먼저 알아봤다.
참 대단한 기억력이었다. 이재는 젖은 손끝으로 눈가를 꾹 눌렀다.
십 년 전의 그 형사.
가장 끔찍했던 밤의 끝에서 자신을 구한 사람.
그리고 보는 순간 그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사람.
이재는 한동안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도망치고 싶었다.
정확히는 그냥 사무실로 올라가버리고 싶었다. 안내 데스크에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전해달라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십 분 가까이 기다리게 한 것도 모자라 얼굴만 보고 도망치는 건 영 모양 빠지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재는 이제 열여덟 살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오늘 벌써 몇 번이나 되뇌는지 모르겠다.
“……진짜 짜증 나네.”
작게 중얼거린 이재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립스틱도 다시 발랐다. 눈가의 붉은 기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그럭저럭 사람 꼴은 돌아왔다.
괜찮았다.
이 정도면.
이재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강태혁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
“…….”
남자의 시선이 이재의 얼굴에 잠시 멎었다. 문을 닫고 다시 들어가고 싶었다.
“괜찮아요?”
십 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목소리까지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또 짜증이 났다.
“네.”
이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멀쩡해요.”
누가 봐도 멀쩡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태혁의 시선이 붉어진 눈가에 잠시 머물렀다. 이재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괜찮아요.”
“저 찾으러 오신 거예요?”
이재는 잠시 태혁을 바라봤다. “네.”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태혁이 이재를 끌어안았다. 숨이 막힐 만큼 세게. 이재도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익숙한 체온과 향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반년이나 지났는데 몸은 너무 쉽게 기억해냈다. 이재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태혁 씨.” “네.” “좀 세요.” 팔에 들어간 힘이 조금 풀렸다. “미안합니다.” 이재가 태혁의 셔츠를 움켜쥐었다. “놓으라는 건 아닌데.” 잠시 멈췄던 팔이 다시 등을 감쌌다. 이번에는 조금 덜 세게. 이재가 웃었다. “말 잘 듣네.” “그래야 될 것 같아서.” “이제 와서요?” “늦었습니까?” 이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가까웠다. 태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재가 먼저 발끝을 들어 입을 맞췄다.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 태혁은 한동안 이재를 바라보기만 했다. “왜요.” “…….” “뭐 할 말 있어요?” 태혁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 방금 닿았던 입술에 머물렀다. “아닙니다.” 이번에는 이재가 웃었다. “아까부터 자꾸 아니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혁이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다시 맞닿았다. 이번에는 짧지 않았다. 반년 동안 참았던 시간을 한꺼번에 되찾으려는 것처럼 몇 번이고 입술이 겹쳤다. 이재의 손이 그의 어깨를 감싸자 허리를 끌어당기는 팔에도 힘이 들어갔다. 숨이 흐트러졌다. 입술이 떨어졌다가 다시 닿았다. 그 사이 이재는 몇 번이나 웃었다. 태혁도 그때마다 따라 웃었다. 겨우 입술이 떨어졌을 때 이재가 그의 턱을 만졌다. 까슬했다. “따가워.” “아까 깎고 온다고 했잖아요.” “그러게요.” “지금이라도 깎고 올까요?” 이재가 피식 웃었다. “지금은 됐어요.” “마음대로네.” “원래 그랬잖아요.” 태혁도 작게 웃었다. 그 얼굴을 보자 이재는 괜히 한 번 더 입을 맞췄
태혁은 잠시 이재를 바라보다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네.” 이재가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익숙한 현관에 둘만 남았다. 구두를 벗던 이재가 발밑을 봤다. 없었다. 예전에 자신의 슬리퍼가 놓여 있던 자리에는 태혁의 것만 남아 있었다. 반년이나 지났으니 당연했다. 이재가 맨발로 올라서려는데 태혁이 신발장을 열었다. “잠깐.” 안쪽에서 슬리퍼 한 켤레를 꺼냈다. 분홍색. 이재의 슬리퍼였다. 태혁은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신어요.” 이재가 슬리퍼를 내려다봤다. “안 버렸네요.” “네.” “왜요?” 태혁이 신발장 문을 닫았다. “버릴 이유가 없어서.” 이재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슬리퍼에 발을 넣었다. 반년 만이었다. *** 집은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파도, 식탁도 그대로였다. “뭐 마실래요?” “물.” 태혁이 주방으로 향하다 돌아봤다. “얼마나 마셨어요?” “쪼금.” “……쪼금?” “네.” 태혁이 이재를 가만히 봤다. “그 쪼금 때문에 반년 만에 남의 집까지 온 겁니까?” 이재의 눈이 가늘어졌다. “남의 집?” 태혁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재가 발끝을 내려다봤다. “슬리퍼까지 꺼내주고?” “…….” “남의 집이었구나.” 태혁은 더 대꾸하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물이나 마셔요.” 이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여전했다. 태혁이 물을 가져왔다. 이재는 잔을 받아 들고 소파에 앉았다. 태혁도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 앉았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반년 만인데 막상 얼굴을 보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지냈어요?” “네.” “태혁 씨는요?” “저도요.” 이재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살 빠졌어요?” “조금.” “바빴나 보네.” “네.” 시선이 턱에 멈췄다. “수염도 기르고.” 태혁이 턱을 한번 쓸었다. “기른 거 아니에요. 오늘 안 깎은 겁니다.” “다행이다
첫눈이 온 지도 며칠이 지났다. 잠깐 내려앉았던 겨울은 거짓말처럼 물러갔다. 기온은 다시 올랐고, 길가에 남았던 눈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전부 녹았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이었다. “대리님.” 다은이 파티션 너머로 얼굴을 내밀었다. 표정부터 수상했다. “왜요.” “제가 저번에 추천한 영화 있잖아요.” “왜요. 환불해주게요?” “그거 평점 난리 났대요. 그래서 영화관에서도 거의 다 내렸잖아요.” “잘됐네요.” “그래서 약간 사죄의 의미로.” 다은이 두 손을 모았다. “오늘 저녁 제가 살게요.” 이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밥을요?” “네.” “영화표보다 비싼데?” “대신 술은 대리님이 사주셔야 돼요.” “그럼 사죄가 아니잖아요.” 다은이 웃었다. “싫으세요?” 이재는 잠시 생각했다. “좋아요.” “진짜요?” 다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바로 예약해요.” “업무 보고 보내는 거 잊지 말고.” “아.” 다은이 다시 얌전히 앉았다. “네.” 이재가 웃으며 다시 모니터를 보려는데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비서실이었다. [회장님께서 잠시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재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다은 씨.” “네?” “먼저 내려가 있어요. 금방 갈게요.” “넵.” *** 회장실 문을 열자 윤정호가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왔니.” “네.” 이재가 맞은편에 앉자 윤정호가 서류 하나를 앞으로 밀었다. “다음 달 싱가포르 건이다.” 이재는 서류를 펼쳤다. 신규 호텔 운영사와의 협의 일정이었다. 자신이 몇 달 전부터 맡아온 프로젝트였다. “일정이 길어질 것 같더구나.” “네. 현지에서 최종 협의까지 하면 일주일 정도 예상하고 있어요.” 윤정호가 이재를 바라봤다. “네가 직접 갈 생각이니?” 이재의 손이 서류 위에서 멈췄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결정되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네가 갈 필요 없다. 다른 사람을 보내겠다. 그렇게 통보하고 끝났을 것이다. 요즘은 달랐다.
“대리님.” 다은의 목소리에 이재가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다은은 대답 대신 창밖을 가리켰다. “우와!” 사무실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탄성이 터졌다. 이재도 창밖을 봤다. 통유리 너머로 하얀 눈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리에 닿자마자 녹아 없어지던 것이 어느새 제법 눈에 보일 만큼 많아졌다. 다은은 벌써 휴대전화를 들고 창가로 달려갔다. “첫눈이에요.” “아.” “반응이 왜 그래요?” 이재는 창밖을 한 번 더 봤다. “오늘 운전 어떻게 하지.” “…….” “길 막히겠네.” 다은이 혀를 찼다. “진짜 낭만 없다.” “눈이잖아요.” “첫! 눈이잖아요.” 이재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메일 한 통을 마저 쓰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회의가 하나 있었고, 수정해야 할 보고서가 두 개 생겼다. 첫눈이라고 별일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오후가 저물수록 눈발은 조금씩 굵어졌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에는 맞은편 건물의 불빛 사이로 흰 눈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재가 노트북을 덮고 코트를 입자 다은이 물었다. “대리님 오늘 바로 집 가세요?” “그래야죠.” “첫눈이 온 날인데요?” 이재가 가방을 들었다. “그러니까 더 빨리 가야죠.” “와.” 다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심하다.” 이재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봐요.” “네. 운전 조심하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특별한 연락은 없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탔다. 시동을 켜자 내비게이션에 집까지 40여 분이 찍혔다. 평소보다 10분 정도 더 걸리는 수준이었다. 이재는 잠시 화면을 보다가 기어를 넣었다. 집으로 향하던 차는 두 번째 교차로에서 방향을 바꿨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왠지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밤이었다. *** 큰맘 먹고 본 영화치고 내용은 그저 그랬다. 단지 슬픈 영화라서는 아니었다. 러닝타임 내내 사람을 그렇게 고생시켜놓고 마지막까지 불행한 건 좀
이재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기다리라고 하기에는 미안했고, 기다리지 말라고 하기에는 마음에 남은 게 너무 많았다. 좋아하지 않아서 떠나는 게 아니었다. 그 반대라서 어려웠다. “기다리지 마요.” 태혁의 눈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이재는 그걸 보고도 말을 바꾸지 않았다. 한참 뒤 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날 밤은 이상하리만큼 평범하게 지나갔다. 태혁은 거실에서 잤고, 이재는 침대에 누웠다. 처음 이 집에서 잤던 밤처럼 문을 열어두지도 않았다.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잠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이재가 캐리어를 끌고 나오자 태혁은 이미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칫솔도, 화장품도, 옷도 전부 캐리어 안에 들어 있었다. 이재가 신발을 신는 동안 태혁이 손잡이를 가져갔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재는 말리지 못했다. 복도로 나오자 캐리어 바퀴가 낮게 굴렀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태혁이 버튼을 눌렀다. 둘 사이에 캐리어 하나가 놓였다. 이재는 내려오는 숫자를 바라보다 괜히 옷소매 끝을 만지작거렸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태혁이 캐리어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재가 뒤따라 들어서려는데 태혁은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정말 안 데려다줘도 돼요?” “네. 경호팀이 밑에서 기다린대요.” 태혁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손을 놓았다. “알았어요.” 이재가 안으로 들어섰다. 태혁은 문밖으로 물러났다.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문은 알아서 움직였다. “도착하면…….” 태혁이 말을 멈췄다. 이재가 고개를 들었다. 몇 초쯤 그렇게 서로를 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삼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연락해요.” 이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태혁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읽기 어려웠다.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좁아지는 틈 사이로 태혁이 보였
태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이 이상하게 길었다. “십 년 전부터 의심했습니다.” 이재의 눈이 조금 커졌다. “십 년 전부터요?” “네.” “그때부터 아빠가 표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네.” 대답은 짧았다. 이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걸 확신하게 된 건 언제예요?” 이번에는 대답이 늦었다. “……며칠 전입니다.” 며칠 전. 이재는 가만히 태혁을 바라봤다. “그럼 내가 세림호텔 얘기 물어봤을 때는요?” 태혁의 시선이 멈췄다. “그때도 이미 확인한 뒤였어요?” 잠시 후 대답이 돌아왔다. “……네.” 차 안에서 자신이 물었다. 왜 하필 우리 호텔일까요. 그때 태혁은 확인할 게 있다고 했다. 확인되면 말해주겠다고. 그보다 전에는 서진우의 아버지가 세림호텔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자신이 먼저 알아냈다. 그때도 물었다. 지금도 아무 연결이 없느냐고. 태혁은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이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그때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한 건…….” “김현석하고 현재 사건이 어디까지 연결돼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는 뜻이었어요.” “아빠가 서진우의 표적이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요.” “……네.” 이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머릿속은 차분했다. “왜 말 안 했어요?” 태혁의 입술이 굳었다. “김현석 쪽도 더 확인해야 했고, 지금 사건과 어디까지 연결되는지 확실하지 않았어요.” “그게 다예요?” 대답이 없었다. 이재가 그를 바라봤다. “내가 알면 힘들까 봐요?” 태혁은 끝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네.” 이재는 그 대답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낯설지 않은 말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도 그렇게 말했어요.” “…….” “내가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태혁의 표정이 굳었다. “아빠는 오늘 나한테 거짓말했어요.” 서진우가 자신을 찾아오겠다고 직접 연락했다는 걸 숨긴 채, 몰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