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안 열 거면 부수지, 가주."밖에서 미는 힘이 가주 손잡이를 이긴다.문이 안으로 밀리고 율도경이 들어온다.가주가 한 발 물러나 나를 등 뒤에 둔다.뒤로 일족 여럿이 따라 든다.처음 보는 얼굴들이다.키 큰 남자 둘, 그 뒤로 더.다 율도경 사람이다.다 코를 들고 들어온다.들어오면서 냄새부터 읽는 코다.단우가 그랬던 것처럼.어른이 그랬던 것처럼.나는 가주 등 뒤에서 숨을 멈춘다.매뉴얼 11번.냄새를 죽인다.향도, 음식도, 감정도.숨을 죽인다.소용없다는 걸 안다.손에 이미 밴 걸.숨을 죽여도 손은 못 죽이니까.* * *"가주."
아침이 온다.등 하나가 꺼져 있고 창으로 빛이 든다.나는 가주 처소에서 잤다.그걸 깨닫는 데 잠시 걸린다.벽에 등을 기댄 채로.가주 팔에 손을 둔 채로.가주는 옆에서 잔다.사흘 만에 잔 얼굴로.짐승이 빠진 얼굴로.송곳니도 없고 좁은 눈도 없는 얼굴.손을 안 뺐다.밤새.빼면 가주가 추울까 봐.손이 저리다.안 식는 손이 저리기까지 한다.저린데 안 뺀다.밖에서 발소리가 난다.* * *문이 열린다.단우다.단우가 처소 문을 열다 멈춘다.나를 본다.가주 옆에 앉은 나를.
복도 끝에 가주 처소가 있다.나는 그 앞에 선다.어떻게 왔는지 모른다.작업방에서 일어섰고, 풀솔을 놓았다.그다음은 발이 셈보다 먼저 움직였다.도망의 셈이 가장 맞는 날에.정반대로 움직였다.문은 닫혀 있다.안에서 소리가 난다.낮게.길게.짐승이 목 안에서 끄는 소리.가주가 못 누르는 소리.어른이 한 번 풀게 한 짐승은 그날은 다시 안 잡힌다고 차오름이 그랬다.나는 손을 든다.두드리려고.그러다 멈춘다.담보가 가주 처소를 두드리는 칸은 없다.매뉴얼에 없다.부르면 가는 거지, 안 부르는데 가는 거 아니다.더구나 짐승이 깬 처소다.짝 냄새가 가까우면 짐승이 빨리 깬다고 단우
복도 건너에서 소리가 안 멈춘다.낮고 길게 끄는 소리.짐승이 목 안에서 내는 소리.어른이 다녀간 뒤로 안 멈춘다.가주가 못 누른다.어른 앞에서 한 번 풀어서.풀었던 게 다시 안 잡힌다.나는 작업방에 앉아 그 소리를 듣는다.듣는 게 일이 아닌데.담보는 가주가 짐승 누르는 소리를 듣는 거 아닌데.그런데 듣는다.풀솔을 잡고.손은 안 움직이고.귀만 복도 건너에 가 있다.장부를 편다.머릿속으로.이건 어느 칸인가.가주가 못 누르는 소리를 담보가 듣고 있는 칸.도망의 셈이 두 번 섰는데 두 번 다 발이 안 떨어진 칸.적을 데가 없다.빚 칸이 아니다.일 칸이 아니다.
D+15 아침이다.가주는 사흘째 안 부른다.짐승을 누르느라.복도 건너에서 혼자.나는 작업방에 있다.종이를 손본다.단우가 또 깔아 줬다.손이 일을 하니까 셈이 칸 하나만 돈다.가주가 며칠을 누를까.그 칸만.그런데 오늘은 단우가 다르게 들어온다.문을 닫고.등으로 막고.그건 어제도 그제도 했다.오늘은 그 위에 하나 더 있다.단우 얼굴이 굳어 있다.어린 수인의 얼굴인데, 처음 보는 얼굴이다."누나."단우가 낮춘다."본저에 손님이 와요. 오늘.""손님이요.""장로회예요."단우가 더 낮춘다.
D+13 아침이다.가주는 어제 안 물었다.내가 무서워하니까.그래서 오늘도 안 물을 줄 알았다.그런데 가주가 작업방에 안 온다.나는 풀솔을 잡고 기다린다.손이 갈 데가 있어야 셈을 멈춘다고 단우가 종이를 또 깔았다.나는 종이를 손본다.찢긴 데를 잇고, 바랜 데를 살린다.손이 일을 하니까 셈이 칸 하나만 돈다.가주가 왜 안 오나.그 칸만.어제는 안 물었다.무서워하니까.오늘 안 오는 건, 안 묻겠다는 건가.아니면 다른 데서 셈을 하는 건가.가주는 캘 걸 모아 두는 사람이다.한 번에 안 캔다.오늘 안 오는 게 안 캐는 게 아니라, 모으는 거면.문이 열린다.단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