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무리 기다려도 하승민은 오지 않았다.그녀는 초조해져서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차갑고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만 들려왔다.“죄송합니다. 고객님께서는 현재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다시 걸어 주세요.”하승민은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쾅!지유나는 휴대폰을 벽에 던져버렸다. 그녀의 예쁜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유나야, 진정해. 심장에 안 좋아.”이윤희는 지유나를 달랬다.지유나는 이윤희를 밀치며 말했다.“내가 어떻게 진정해요? 멍청한 유지안 같으니라고! 임신 작정만 성공하면 우리
지서현은 손을 뻗어 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을 만지려 했다.하지만 곧 그녀의 하얀 손가락은 붙잡혔고 하승민이 졸린 눈을 떴다.그는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대고 입을 맞춘 후,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일어났어?”잠에서 막 깨어난 그의 목소리는 나른하면서도 매혹적이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정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지서현의 작은 얼굴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시간이 늦었어요. 일어나야 해요.”하승민은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끌어안았다.“조금만 더 자자.”그는 더 자고 싶어 했다.하지만 지서현은 몸
하승민은 그녀를 흘끗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두 사람은 병원에 도착해서 VIP 병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유나를 보았다.지유나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굴에는 산소호흡기가 씌워져 있었고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오른쪽 손목에는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었고 붕대에는 아직도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이윤희는 하승민을 보자마자 다가왔다.“하 대표님, 오셨어요?”하지만 그녀는 곧 멈칫했다. 하승민 뒤에 서 있는 지서현을 보았기 때문이다.이윤희의 표정이 굳었다.“하 대표님, 얘는 왜 데려
지유나가 지서현을 내쫓자 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그러자 그는 지유나의 손을 잡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만났다.하승민이 입을 열기도 전에 지서현은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지유나를 흘끗 보고 입술을 올리며 미소 지었다.“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야. 갈게.”지서현은 돌아서서 나갔다.그녀는 바로 떠나지 않고 문밖에 서서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를 들었다.지유나는 슬픈 목소리로 물었다.“승민 오빠, 나한테 솔직히 말해 줘. 서현이랑 잤어?”하승민은 문밖을 바라보다가 지유나
...기숙사로 돌아온 지서현에게 엄수아한테서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화면 가득 엄수아의 환한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서현아, 어땠어? 어젯밤 너랑 하 대표님이랑...”엄수아는 짓궂게 윙크하며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지서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수아야, 넌 왜 아직 안 와?”“너랑 하 대표님 사이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그렇지. 내가 눈치 없이 굴 순 없잖아.”엄수아는 말을 이었다. “서현아, 이번에 하 대표님이 유지안 문제 해결한 거 정말 멋졌어. 내 생각엔 하 대표님이 널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 너희 이제 잠자리도
‘승민 씨, 나를 좋아한 적 있어요?’그 말에 하승민은 흠칫했다.좋아했었다.그는 일찍이 지서현을 향한 자신의 이질적인 감정을 자각한 순간이 있었다.애틋했고 마음이 흔들렸으며 온전히 소유하고픈 욕망을 느꼈다.그에게는 분명 지서현을 향한 일말의 연정이 존재했다.하지만 그 미미한 감정은 지유나라는 존재 앞에서는 무의미했다.이제 이혼을 목전에 둔 이상, 그는 칼로 내리치듯 매섭고 무정하게 모든 것을 끊어내려 했다.그가 입을 열었다. “지서현, 난 지유나를 사랑해.”그는 지유나를 사랑한다고 했다.지서현의 눈빛이 천천히 죽
하승민을 잃는다는 것이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그녀 스스로도 이 남자의 어떤 점이 좋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는 그녀에게 전혀 잘해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한두 명쯤 그런 쓰레기 같은 남자를 사랑해보지 않은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녀는 하승민을 사랑하고 있었다.그녀의 손에는 그가 준 옥 반지가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지서현은 자신이 그를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그녀는 자신의 오빠야를 잃었다.한편 길가에는 롤스로이스 팬텀 고급 차 한대가 멈추어 서 있었다. 운전석의 하승민은 번쩍이는 앞 유리를 통해 몸을 웅크린 채 길
이혼 후, 하승민과 지서현은 다시 연락한 적이 없었다. 그가 지서현에 대한 소식을 접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그녀가 크게 앓았다니.지유나는 즉각 붉은 입술로 조소를 머금었다. 눈에는 의기양양함과 동정, 그리고 조소가 뒤섞여 있었다.“서현이가 오빠한테 아주 그냥 푹 빠졌었나 보네.”지예슬도 지서현을 비웃었다.“서현이 그 조건으로 앞으로 하 대표님 같은 남자는 다시 못 만날 텐데, 생각해 보니 정말 안됐어.”지유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승민을 보고는 애교 섞인 투로 말했다.“승민 오빠, 서현이가 아프다는데 전 남편으로서
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도 마치 따귀를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하 대표님, 이제 제 말 믿으시겠죠?”그녀의 맑은 두 눈은 영롱하게 빛났고 소문익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에 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이 요망한 여자가! 소문익까지 자기 치마폭에 둘러싸다니, 정말 대단한 여자야!’“서현아, 너 쇼핑하러 온 거잖아. 어때? 마음에 드는 원피스 있어?”점원은 곧바로 레이스 원피스를 가져왔다. “이 원피스가 손님께 아주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지서현은 고
소문익이 왔다.지유나 일행은 어제 동연당에서 소문익을 만났었기에 오늘 다시 만나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소문익은 지서현 옆으로 다가왔다.“서현아, 잠깐 전화 받느라 밖에 나갔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 뭔가 재밌는 걸 놓친 것 같은데.”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끌어올렸다.“아니. 타이밍 딱 맞춰서 잘 왔어. 다들 내 남자친구인 당신을 보고 싶어 했거든..”지서현은 소문익에게 눈짓했다.소문익은 바로 눈치채고 지서현의 가녀린 어깨에 팔을 둘렀다.“이분들은?”지서현은 한 명씩 소개했다.“이분은 지씨 가문 어르신, 이윤희 씨, 지
지예슬은 곧바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서현아, 부러워할 것 없어. C신은 내 남자친구야. 우리 곧 결혼할 거라고.”지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재산이 열 배로 늘었다며? 그럼 그 돈은 어디 있어? 그 C신이라는 사람이 언제 준다고 했어?”박경애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게...”“말 안 했나 보네요.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C신이 열 배든 백 배든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겠죠. 아까도 말했지만 그 C신이라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알아서들 하세요.”지예슬은 곧바로 화를 냈다. 남자친구가 C신이라는 사
하승민의 잘생긴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누가 준 거야?”지서현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남자친구요!”남자친구?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지서현이 전에도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이제 그 남자친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네 그 돈 많은 남자친구 말이야?”“네. 맞아요.”하승민은 냉소했다.“비싼 차를 몰고 좋은 집에 살게 해주다니 돈 좀 쓰는 모양인데. 해성이 좁은 동네인데, 도대체 네 남자친구가 누군지 감도 안 잡히네.”지서현은 입꼬리를 올렸다.“하 대표님, 내 남자친구가 누군지 모
지서현은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하승민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지서현, 나한테 할 말 없어?”지서현은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할 말?”하승민은 입술을 깨물었다.“네가 몰고 다니는 고급 차, 살고 있는 고급 아파트, 다 어디서 난 거야? 누구 돈 쓴 거냐고.”지서현은 가녀린 등을 꼿꼿이 펴고 말했다.“하 대표님, 어쨌든 당신 돈은 안 썼으니까 상관없잖아요. 더는 말씀드릴 게 없네요.”지서현은 가려고 했다. 그러나 하승민의 큰 키는 마치 벽처럼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살짝
이윤희와 지예슬은 지유나가 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급히 달려가 그녀를 구하려 했다.“당장 유나를 놔줘!”“세 번째 경고입니다. 이제 내보내겠습니다!”결국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는 모두 제성아파트에서 쫓겨났다. 쾅 소리와 함께 제성아파트의 대문이 그들 앞에서 닫혔다.세 사람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이런 수모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지유나는 하승민과 함께 다니면서 항상 환대받았는데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쫓겨나다니, 생전 처음이었다.지예슬도 화가 났다.“다 서현이 때문이야! 유나야, 도대체 어떻게
이윤희가 말했다.“서현아, 하 대표님 미행 안 했다고 하더니,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잖아!”“너 진짜 무섭다. 승민 오빠가 9층에 사는 것까지 알고 있었어? 너 완전 스토커잖아. 정신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지서현은 하승민을 쳐다보며 물었다.“하승민, 9층에 살아요?”하승민은 901호 문패를 가리켰다.“나 여기 살아.”“아.”지서현은 902호 문 앞으로 가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지서현이 902호에 산다고?정말 제성
‘아니, 그럴 리가?’하승민은 스스로가 우스웠다. 어떻게 지서현을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연당 설립자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을까?‘하 대표님, 저 좀 태워다 주시겠어요?'방금 지서현이 차 밖에서 자신을 태워달라고 했었다. 하승민은 웃음이 나왔다. 자기 차가 있으면서 일부러 저런 말을 하다니, 분명 지유나를 약 올리려는 것이었다.자신을 놀리려는 의도도 있었다.지서현은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그때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가 차에 올라탔다. 지유나는 조수석에, 지예슬과 이윤희는 뒷좌석에 앉았다. 하승민은 액셀을 밟았고 롤스로
지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때 마침 새로 산 차가 도착했다.“난 여기서 차 기다리고 있었어. 이만 가볼게.”“차를 기다려? 택시?”지유나가 웃었다.“서현아, 병원 앞에서 택시 잡기 힘들 텐데?”지서현은 평소에 택시를 타고 다녔기에 지유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지예슬은 지서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서현아, 넌 정말 한심해. 다른 선배들은 다들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넌 아직도 택시 타고 다니잖아. 천재 소녀라는 말이 아깝다.”이윤희는 지예슬의 팔을 잡아당겼다.“예슬아, 그만해. 서현이도 불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