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분노인지, 아니면 생경한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번들거리는 유환의 눈동자가 차가운 수액 바늘이 꽂힌 장하늘의 창백한 손등에 고정되었다.장하늘은 유환의 빈틈없는 슈트 차림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유환이 정장을 입은 모습은 그간 TV 광고나 잡지 화보 속에서나 박제된 이미지처럼 봐왔을 뿐, 이렇게 지근거리에서 살아 움직이는 실물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평소의 편안한 캐주얼 차림도 충분히 위협적일 만큼 잘생겼으나, 몸의 곡선을 따라 유려하게 감긴 슈트 차림은 심장이 요동칠 정도로 치명적이어서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어떻게···· 여기까지····.”유환은 190cm에 육박하는 긴 다리를 우아하면서도 급하게 움직여 장하늘이 누워 있는 낡은 병상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와, 놀라라. 유환이 너, 설마 장하늘 걱정돼서 여기까지 그 차림으로 달려온 거야?”옆에 있던 유경호가 경악 섞인 목소리로 물었으나 유환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서늘한 눈빛으로 장하늘의 안색을 낱낱이 살필 뿐이었다. 서정우 역시 쭈뼛거리며 유환의 흉흉한 기색을 살피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아, 아까 통화하다가 장하늘이 쓰러져서 의무실 갔다고 내가 무심결에 말하긴 했는데···· 진짜 올 줄은 몰랐네?”역시, 서정우의 연락을 받자마자 앞뒤 재지 않고 달려온 모양이었다.그래도 그렇지, 저런 차림새라면 분명 가문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자리에 있었을 텐데.“유환아, 나 진짜 괜찮으니까 어서 돌아가.”장하늘은 미안함이 앞서 서둘러 그의 등을 떠밀었으나, 유환의 기세는
일요일 늦은 저녁.장하늘은 내심 유환과 함께 돌아가기를 기대했지만 사정은 그러하지 못했다.연습이 한창이던 도중, 집안에 일이 생겼다며 그를 마중 본가 사람들로 인해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흐지부지 헤어지게 되었다.장하늘은 오늘 연습 내내 유환의 태도가 평소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느꼈다. 녀석은 이닝 중간중간 매니저 현신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기세가 흡사 무언가를 심문하는 듯이 위압적이었다가도 이내 안도한 듯 표정이 풀리는 등 감정의 기복이 롤러코스터처럼 심했다.특히 현신이 불치병을 극복하고 시한부의 삶을 이겨냈다는 사실에 대해, 유환은 지나칠 정도로 집요하고도 절박한 관심을 보였다.그 바람에 오늘은 유환과 별로 대화도 나누지 못했고 얼굴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대신 그라운드를 정리하는 시간이 되자, 장하늘은 서정우와 함께 남은 장비들을 챙기며 서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맞이했다.“정우야, 요즘 표정 진짜 좋아 보인다. 연애하는 티가 팍팍 나던데?”장하늘의 장난 섞인 말에 서정우는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저 멀리서 무거운 배트 가방을 정리 중인 유경호를 향해 아련한 시선을 던졌다.“정말 행복해. 물론 끝이 정해진 만남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즐기려고 해.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미련이 남지 않게 말이야.”유경호 역시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가 출신이라 들었다. 지금이야 학생이라는 신분 뒤에 숨어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머지않아 가문의 미래를 위해 원치 않는 정략결혼 상대를 만나거나 야구를 접어야 할 때가 올 터였다.그리고 남남 커플을 향한 세상의 차가운 멸시
장하늘은 화들짝 놀라 화끈거리는 뺨을 손등으로 연신 문질러 댔다.“유환아, 제발 농담 좀 하지 마.”볼멘소리를 내뱉으면서도 가슴 한구석은 말간 안도감으로 채워졌다. 다행이었다.최근 느껴졌던 그 기묘하고도 서늘한 거리감이 결코 자신에 대한 흥미가 식었거나, 소리 소문 없이 이별을 준비하는 전조 증상이 아님을 확인했으니까. 장하늘은 유환의 눈을 피해 남몰래 긴 숨을 내쉬며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그러나 장하늘의 핀잔에도 유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녀석은 장하늘의 어깨를 지그시 내리누르더니, 거침없는 손길로 허리를 낚아채 제 품 안으로 사정없이 끌어당겼다.유환의 손길은 평소보다 훨씬 더 크고 단단했으며, 장하늘의 몸은 거부할 수 없는 자석에 이끌리듯 순식간에 녀석의 탄탄한 가슴팍에 빈틈없이 밀착되었다. 코끝을 스치는 유환의 진한 체향에 정신이 아득해졌다.“농담 아닌데. 사귀는 데 뭐 어때.”부끄러움은 오롯이 장하늘의 몫이었지만, 그 당당한 선언이 싫지만은 않았다. 사실 장하늘도 이 벅찬 사랑을 숨길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혈기 왕성한 성인들이 서로를 탐하고 열망하는 것이 무슨 천덕꾸러기 같은 문제가 되겠는가.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서정우와 유경호도 아직 돌아가지 않고 세상에 둘밖에 존재하는 듯 꽁냥거리는 모습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서정우가 바닥에 엎드려 끙끙대며 스트레칭을 하면, 유경호가 다정하게 다가와 어깨를 주무르거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다정히 쓰다듬었다. 둘 사이는 멀리서 봐도 달콤한 기류가 넘실거렸고, 서정우의 입가에는 감출 수 없는 행복이 가득 걸려 있었다.“유환아, 그래도 나랑 사귀면 주변에서 수군댈 텐데···· 정말 괜찮겠어?”
그날 밤이 깊었다.학교에서 늦은 시각까지 이어진 훈련을 마치고 샤워를 마친 유환은 장하늘을 차에 태웠다. 모두가 떠나간 고요한 주차장, 가로등 불빛조차 비껴간 어둠 속에서 차 안의 공기는 장하늘의 비누향이 퍼지는 순간 순식간에 기름이라도 끼얹은 듯 달아올랐다.유환은 참지 못하고 장하늘의 가늘고 하얀 뒷덜미를 거칠게 휘어잡았다. 그대로 입술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녀석의 여린 숨결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방금 양치질도 마친 유환의 입안에서는 서늘하고 상쾌한 민트 향이 났고, 장하늘의 입술에서도 그와 닮은 잔향이 배어 나와 본능적인 욕망을 자극했다.유환은 장하늘의 허리를 부서질 듯 단단히 감싸 안으며 조수석 깊숙이 제 몸을 기울였다. 부드럽고 말캉한 혀가 장하늘의 입안을 집요하게 훑으며 파고들자, 녀석도 기다렸다는 듯 유환의 목을 끌어안으며 뜨겁게 화답했다.‘미치겠네, 정말. 참을 수 있을까.’이대로라면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아 유환은 신음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마침 토요일 밤이었고, 내일은 눈을 떴을 때 해가 중천에 떠 있어도 상관없는 일요일이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집으로 장하늘을 끌고 가 침대 위에 던져놓고 싶었고, 녀석을 곱게 재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유환의 큰 손이 천천히 장하늘의 얇은 티셔츠 밑단 사이로 거침없이 침입했다. 매끄럽고 납작한 배를 지나 허리선을 따라 훑어 올라가는 손길에 장하늘의 몸이 잘게 떨었다. 가슴팍의 굴곡을 노골적으로 더듬던 유환의 손가락 끝에, 잔뜩 긴장해 귀엽게 솟아오른 돌기가 감질나게 걸렸다.“읏······.”그 애처로운 신음에 유환은 '후-' 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녀석의 쇄골 근처에 얼굴을 묻었다. 샤워를 마친 뒤라 두 사람의 몸에서는 싱그럽고 청량한 향이 농밀하게 뒤섞여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정말, 미치겠군.”장하늘은 그냥, 존재 자체가 예뻤다. 아직 씻고 난 물기가 덜 마른 머리카락도 자극이 되었다. 유환은 오늘도 이 녀석에게 속절없이 휘둘리고 있었다.
유환과 정식으로 사귀기로 한 뒤 맞이하는 첫 번째 토요일.장하늘은 이른 아침 씻고 나온 순간부터 거울 앞을 떠나지 못한 채 분주하게 움직였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맨투맨 티셔츠에 늘 입던 청바지일 뿐인데,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거울 속의 자신을 뜯어보고 또 보았다.어차피 학교에 도착해 훈련을 시작하면 유환에게 보여줄 모습은 땀에 젖어 엉망이 된 야구 유니폼 차림뿐일 텐데 말이다.게다가 간밤에 간지러운 문자를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고, 오늘 따로 데이트를 하자는 약속이 잡힌 것도 아니었다. 무심한 녀석은 먼저 온다는 기별조차 없었다. 하지만 유환은 야구에 누구보다 진심인 놈이었고, 4월 1일 첫 경기를 목전에 둔 시점이었으니 당연히 연습하러 나타날 터였다.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장하늘은 가슴이 울렁거려 상반신만 간신히 비치는 낡은 거울 앞에서 연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3월도 어느덧 하순을 향해 달려가는 셋째 주, 계절의 바퀴는 부지런히 굴러 날씨에도 완연한 변화가 찾아왔다. 한낮의 열기에 벌써 반팔 차림으로 활보하는 열혈 남학생들이 눈에 띌 정도였다.장하늘은 몇 벌 되지 않는 옷가지를 옷장에서 전부 꺼내 이리저리 몸에 대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항공 점퍼를 집어 들었다가 계절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내려놓고, 얇은 바람막이로 바꿔 들기를 수차례.혹여 겉옷을 제대로 챙겨 입지 않아 감기에라도 걸리면 유환이 걱정할 텐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자신의 몸 상태보다 유환의 기분을 먼저 헤아리다니. 이건 분명 중증이었다. 기승전결, 1부터 10까지 온통 유환만을 의식하는 스스로가 멍청해 보였지만, 입꼬리는 자꾸만 경련하듯 실룩거렸다.“아, 정말 행복하다···.”좋아 죽겠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유환과 함께할 수 있다면 이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지독하게 엉켜 들었다.유환의 눈동자에는 상대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한 포식자의 갈증이, 장하늘의 눈동자에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운 떨림이 가득했다.이윽고 유환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뻔히 예상되는 다음 행보임에도 새삼스럽게 놀라 어깨를 움츠리는 장하늘의 어이없으면서도 참을 수 없이 귀여웠다.입술이 맞닿는 순간, 장하늘의 숨결이 촛불이 일렁이는 것처럼 뜨겁고도 가볍게 흩어졌다. 유환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녀석의 입안을 거칠게 혀를 파고들었다. 척추를 타고 내려가는 전율이 온몸을 짜릿하게 적셨다.조금 굳어 있는 녀석의 여린 점막을 유환은 제 존재감을 각인시키듯 집요하게 훑고 탐했다. 몸은 기억할 것이다. 이 지독하고도 농밀한 감각은 결코 낯설지 않을 테니까.녀석의 가파른 숨결이 유환의 뺨에 닿았고, 달콤하면서도 간지러운 열기가 제 입술 안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장하늘을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그랬다. 불펜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녀석을 억지로 눕혀 덮치는 꿈을 꾼 것도.유환은 스스로가 이토록 갈구하는 것이 단순한 소유욕인지, 아니면 시한부라는 비극이 주는 자극인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손길이 닿을 때마다 장하늘의 마른 몸을 타고 흐르는 욕망은 점점 더 투명하고 노골적인 형태로 머리를 들이밀었다.‘나랑 죽을 때까지 사귄다는 각오라면, 응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그런 비장한 각오로 제게 뛰어든 거라면, 기특해서라도 이 가련한 몸뚱이를 부서지도록 품어주고 싶었다.유환은 허리를 강하게 감싸 안으며 녀석의 내밀한 공간 안으로 제 더운 기운을 사정없이 밀어 넣었다. 한 줌밖에 안 되는 매끄러운 허리는 마냥 애처로울 정도로 가늘었다.이 가냘픈 몸으로 그 덩치 큰 운동선수들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버틴 건지.&n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