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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Author: 쌍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16 05:16:16

하얀 눈이 내리던 12월의 어느 날, CF 촬영 현장.

지희는 새하얀 코트를 입고 조명 아래 섰다.

“하나, 둘, 셋— 액션!”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조명이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비추는 순간, 갑자기 칼로 찌르듯한 통증이 복부에서 폭발했다.

“으—!”

지희가 비명을 억누르며 몸을 굽혔다.

“컷! 컷! 지희 씨!”

깜짝 놀란 스탭들이 우르르 지희에게로 달려왔다.

부축할 새도 없이 그녀는 다리가 풀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한순간에 촬영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지아는 "언니!"언니!"를 외치며 지희에게 달려갔다.

지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점점 의식이 흐려지더니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

서울의 어느 큰 병원.

하얀 병실 안에서 기계음이 일정하게 울렸다.

지희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그 주변에는 의사 한명이 난감한 얼굴로 서 있었다.

“CT도, MRI도, 혈액 검사도 전부 정상이에요.

통증의 원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일수 있으니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시는게 좋을겁니다.”

"네, 참고하겠습니다."

의사가 돌아간 후, 지아는 의자를 끌어와 지희의 손을 잡았다.

그 기척에 지희는 힘겹게 눈을 떴다.

“지아야, 여기 병원이야? 촬영은?”

"촬영은 취소됐어요. 언니가 쓰러졌는데 촬영은 무슨..."

"의사는 뭐래?"

"저번이랑 똑같은 소리 하고 갔어요. 다 정상이라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일수 있으니 정신과 상담 받아보라고 하면서요."

"뭐 들으나마나 그 소리겠지."

"죽이라도 사올까요? 언니, 오늘 한끼도 안먹었잖아요."

"그럴래? 뭐라도 삼켜야 힘이 날거 같아."

"그럼 금방 다녀올게요 언니."

지아는 서둘러 옷을 입고 병실 안을 나갔다.

창밖은 벌써 캄캄해진 밤이었다.

지아가 병원을 나서고 얼마 후, 조용하던 그곳의 정적을 깨는 건, 병실에서 터져 나온 지희의 비명소리였다.

“아아아아악!”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비명소리에 놀란 간호사들과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문을 여는 순간, 병실 안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의료기기와 침대 시트가 뒤엉켜 있었고, 지희는 한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바닥에 웅크려 있었다.

그녀는 다른 한손으로 복부를 움켜쥐며,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강지희 씨! 진정하세요!”

간호사 둘이 그녀를 붙잡았지만 지희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팔과 다리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그만! 그만해! 날 만지지 마!!”

간호사는 급히 호출 버튼을 눌렀다.

“진정제 준비해요!”

잠시 후, 주사바늘이 그녀의 팔에 꽂혔다.

곧, 천천히 몸의 긴장이 풀리며 지희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제발 그만...”

그녀의 마지막 말이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

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 지아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간호사 한 명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강지희씨 보호자분 되시죠?"

"네 맞아요. 언니한테 무슨일 있어요?"

“그게...방금 강지희씨가 난동을 피우셔서...침대랑 장비 다 부서질 뻔했어요.”

그 말을 듣고 지아의 얼굴이 굳었다.

“네? 언니가요?”

“네. 진정제랑 수면제 투여했어요. 지금은 주무시고 계세요.”

지아는 복도 창가에 기대어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대로라면 내일 대문짝만한 기사가 나올 것다는 그녀의 직업적인 감각이 작동했다.

병원에 오래 있을수록, 불안이 커질 것이다.

“언니 깨어나면 퇴원수속 할게요.”

그녀가 단호하게 간호사에게 말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해가 뜨려고 하는 새벽쯤에 지희가 천천히 눈을 떴다.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놀랍게도 통증은 사라져 있었다.

“지아야…”

“언니, 괜찮아요?”

지희는 힘들게 몸을 일으켜 말했다.

“이상하게 지금은 하나도 안 아프네.”

지아는 조심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집으로 가요. 병원보단 집에서 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지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더는 여기 있고 싶지 않아.”

---

집으로 돌아온 그날 점심때쯤, 지아가 우려하던 기사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배우 강지희, CF 촬영 중 실신 후 병원 이송. 병실에서 발작 증세 보여...약물 중독일수도...>

<강지희, 아랫배 통증 호소. 임신일 가능성 있어...>

기자들은 톱스타 강지희를 핑계로 어그로를 끌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쓰기 바빴다.

또, 팬들은 커뮤니티에서 댓글로 추측을 쏟아내며 가십거리로 삼았다.

기사를 대충 확인한 지아는 진지한 얼굴로 지희에게 말했다.

“언니, 이건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면 안될거 같아요. 더 큰일나기 전에 명옥님한테 다시 가보는게 어때요? 그때 상담을 제대로 받았다면...”

지희는 눈썹을 찌푸렸다.

“지아야, 또 그 소리야?”

“병원에서도 결국 원인을 못 찾잖아요. 언니, 고집부릴때가 아니에요. 뭐라도 해봐야죠."

그 말에 지희는 냉소를 흘렸다.

“그만해. 나 그런 거 믿지 않아. 차라리 의사 말대로 정신병원에 가고 말지...”

"언니! 정신과 상담은 몇번이나 받았잖아요! 그때도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언니한테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나요?"

"됐어. 사람들이 뭐라하든 난 신경쓰지 않으니까."

무신경한 그녀의 말에 지아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새벽, 지아는 서둘러 명옥의 집을 찾아 갈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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