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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Author: 눈빛 속의 약속
강유영은 지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앞으로 닥칠 일들을 곰곰이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씨, 안색이 안 좋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단비가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가 얼굴이 창백한 강유영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좀 지쳤을 뿐이니 목욕물 좀 준비해다오. 일찍 쉬고 싶구나.”

강유영은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단비에게 말한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걱정거리만 더 얹어주는 꼴이었다.

“저녁도 안 드시고요?”

단비는 못내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되물었다.

“약방에서 먹고 왔어.”

강유영은 서둘러 침소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저녁 식사 따위는 구경도 못 했지만, 단비와 길게 대화할 기력이 없었다.

목욕을 마친 뒤 침상에 몸을 뉘였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조월아가 전해준 청천벽력 같은 소식과 주지상의 기름기 흐르는 음습한 눈빛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나는 진정… 저런 사내에게 시집가야 할 운명이란 말인가?’

지금 이 상황에서 떠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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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93화

    강유영은 억지로 고개를 젖힌 채 그의 거친 입맞춤을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다. 어느새 그녀의 목을 조르던 손이 뒷덜미를 단단히 휘어잡고 있었다. 조원철은 그녀를 품으로 쪽으로 강하게 밀착시키며, 마음속에 들끓는 맹렬한 분노를 숨 막히는 입맞춤으로 온통 쏟아냈다.강유영은 두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 보았으나, 그는 태산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온몸의 기운이 속절없이 빠져나간 채 허리가 꺾여 탁자 끝에 간신히 기댈 수밖에 없었다. 마치 맹수에게 새끼양처럼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그녀가 입고 있던 질 좋은 비단옷은 그의 억센 손아귀에서 허무하게 찢어져 나갔고, 북북 찢기는 섬뜩한 소리에 강유영은 공포로 몸을 바르르 떨었다."정녕 미쳤군요…."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행여나 밖의 시녀들이 눈치챌까 두려워 차마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조원철이 어떻게 감히 이런 곳에서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이곳이 어디라고. 여기는 다름 아닌 서준의 서왕부였다. 당장 문밖만 해도 시녀들이 지키고 서 있는데, 짐승 같은 기척이라도 들리면 당장 뛰어 들어올 것이 뻔했다."날 보거라!"조원철이 다시금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고개를 들게 해 분노가 끓어오르는 자신의 눈동자를 마주 보게 했다."이거 놓으십시오!"강유영은 겁에 질려 하염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그의 손을 내쳤다. 허나 그 알량한 반항은 그에게 티끌만큼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그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내가 누구냐. 말해 보거라, 내가 누구지?"조원철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숨 막히게 몰아붙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절박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무언가를 지독하게 확인받고 싶어 안달 난 음성이었다."원철 오라버니… 이러지 마십시오…."강유영은 극도의 공포에 질린 채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애원했다. 더 이상 그를 거스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조원철의 가슴팍이 거칠게 오르내렸다. 그는 굳은살이 밴 엄지손가락으로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92화

    강유영은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바로 등 뒤가 탁자인 탓에 피할 곳이 없었다.그녀는 뒤로 손을 뻗어 탁자를 짚고 나서야 간신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입술 밖으로 새어 나온 음성은 이미 잘게 떨리고 있었다.이 야심한 시각에 조원철이 제 집으로 가지 않고 서왕부까지 들이닥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그녀는 두려움에 마른침을 삼켰다.그는 단단히 분노한 듯했다.오늘 밤 그녀가 그를 거부하고 서준을 따라 서왕부로 온 일 때문에 화가 나서 쫓아온 것이다.그는 결코 그녀를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조원철은 그녀의 눈앞까지 다가왔다.강유영의 까만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그녀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고, 이마에 촘촘하게 식은땀이 맺혔다."그자가 네 몸에 손을 대었느냐."조원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잔뜩 잠긴 목소리에서 뱉어지는 글자 하나하나는 얼음장처럼 시렸다.강유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그는 대체 자신을 어떤 인간으로 여기기에, 이리 함부로 남의 손을 탔을 거라 지레짐작한단 말인가.하지만 바로 체념했다.어차피 그는 자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 그녀의 몸을 취하지 않았던가. 반항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그러니 남들도 그럴 것이라 당연하게 여기는 모양이었다."대답해라."조원철은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그의 눈 밑으로 짙은 먹구름이 소용돌이쳤고, 저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강유영은 턱을 파고드는 통증에 낮게 신음을 내뱉었다.그녀는 수치심과 분노가 뒤섞여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모욕적인 언사에 화가 치밀어 올라 앞뒤 잴 것 없이 쏘아붙였다."세자께서 상관하실 일이 아닙니다. 제 일에 신경 끄십시오."서준과 그 어떤 일도 없었지만, 설령 무언가 있었다 한들 그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그에게는 소은경이 있지 않은가. 가서 소은경이나 챙길 일이지, 왜 예까지 와서 자신을 통제하려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강유영, 방금 한 말 다시 해 보거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91화

    "뭘 그리 예의를 차리느냐."서준은 붉고 촉촉한 강유영의 입술로 시선을 내리며 묘한 기색을 띠었다."밤이 늦었습니다. 이만 돌아가십시오. 저도 쉬어야겠습니다."강유영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남녀의 일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서준의 끈적한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허나 서준은 조금 더 다가오더니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무슨 짓입니까."강유영은 제 몸을 감싸 안고 잔뜩 경계하며 다시 한 걸음 물러섰다. 미간이 좁혀졌다. 혹여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걸까?"내 망토는 돌려주어야지."서준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는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덮인 대창의 매듭을 풀어내며 짓궂게 미소를 지었다."아니면,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 줄 알았느냐?"강유영은 무안함에 슬그머니 팔을 풀고 긴 속눈썹을 내리깔았다.조원철에게 지독하게 시달린 탓이었다. 뱀에 한 번 물리면 밧줄만 보아도 놀란다더니, 세상 사내들이 다 조원철 같은 줄 알았다. 서준이 가끔 짓궂게 굴긴 해도, 조원철처럼 강압적으로 그녀를 대한 적은 없었다. 지레짐작으로 오해한 것이 내심 부끄러웠다.전각 밖, 조원철은 뒷짐을 진 손을 우악스럽게 말아 쥐었다. 뼈마디가 하얗게 질리며 우드득 소리가 났다.창호지 위로 서준이 망토를 벗겨주는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흐릿한 웃음소리와 낮게 속삭이는 밀어가 새어 나왔다.서준이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똑똑히 들리지는 않았으나, 오랜 세월 단단하게 다져온 이성은 이 순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서준의 인영이 움직였다. 그는 망토를 챙겨 들고 문가로 걸음을 옮겼다.조원철은 창호지에 맺힌 그림자가 멈춰 서서 강유영을 돌아보고는 무언가 더 말을 건네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서준이 밖으로 나왔다.강유영도 따라 나와 문가에 서서 그를 배웅했다. 서준이 회랑을 따라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시녀들을 물리고는 방문을 닫았다.조원철 역시 서준이 마당 입구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90화

    서준은 조원철을 마주 보고 턱을 치켜들며 그의 시선을 온전히 받아냈다.두 사람은 팽팽하게 맞선 채 누구 하나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설령 혼사를 논하는 사이라 해도, 마땅히 진국공부에서 가마를 타고 나가야 합니다. 아직 혼례도 올리지 않았는데 왕부에 머무는 법은 없습니다. 전하께서 진정 유영이를 아끼신다면, 그 체면과 명성을 헤아려 주셔야 합니다."조원철은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우리는 서로 연모하는 사이이고, 어차피 장차 혼례를 올릴 터인데 내 왕부에 머물면 또 어떤가. 세자는 쓸데없는 걱정 거두게나. 가자."서준은 손을 뻗어 강유영의 손을 거머쥐었다.서준은 가볍게 눈을 가늘게 떴다. 손은 한없이 부드러웠으나 지나치게 차가웠고, 꽉 쥔 손바닥에는 식은땀마저 배어 있었다.필시 조원철의 흉흉한 기세에 놀란 탓이리라. 서준은 고개를 돌려 조원철을 힐끗 노려보았다.강유영은 불쑥 손을 붙잡히자 무의식중에 뒤로 빼려 했다. 누군가 제 몸에 닿는 것을 꺼리는 터라 영 불쾌하고 어색했다.하지만 조원철이 뒤에서 빤히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내면의 거부감을 애써 억눌렀다. 그녀는 얌전히 서준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조원철과는 철저하게 선을 그어야 했다.이제부터 그가 자신의 삶에 조금이라도 간섭하게 두지 않으리라.등 뒤로 꽂히는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온몸이 얼어붙을 듯 서늘하여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안이 밀려왔다.강유영은 꾹 참고 서준의 뒤를 따랐다.이미 첫발을 내디뎠으니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소은경은 이미 건정제의 승은을 입고 지금은 냉궁에 머물고 있다. 조원철이 그 여인과 결실을 맺으려면 아마도 몹시 길고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허나, 이제 그 모든 것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남은 평생 조원철과 엮일 일은 없을 터였다.그럼에도 부디 그가 무탈하게 뜻하는 바를 이루기를 바랐다.모퉁이를 돌고 나서야, 강유영은 애써 힘을 주어 손을 빼냈다.서준은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89화

    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강유영을 이끌고 자리를 뜨려 했다."돌아가자."조원철은 성큼 한 걸음 다가와 강유영의 팔을 단단히 붙잡더니,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어깨에 덮인 대창을 벗겨내려 했다."세자, 지금 무슨 짓인가?"서준은 잽싸게 그의 손길을 막아섰다.조원철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으나, 강유영을 쥔 손 역시 놓지 않았다. 그는 오직 그녀만을 묵묵히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청류가 화를 당한 것은, 적의 배후를 끌어내기 위해 내가 의도적으로 안배한 일이었다. 네가 걱정할까 염려되어 미리 말하지 못했다."강유영은 그 말을 듣고 흠칫 놀라며 짙은 눈동자를 들어 서준을 쳐다보았다. 눈밑에는 그를 향한 의구심이 서려 있었다.'청류가 태자의 손에 넘어간 것이 고의였다고?'허나 서준은 청류 일행이 전멸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손을 쓰지 않으면 조원철은 영영 대옥에서 나오지 못할 거라고도 했다.과거에도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기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의심부터 고개를 들었다."난 청류가 일부러 잡힌 줄은 꿈에도 몰랐다."서준은 재빨리 손을 내저으며 여우 같은 눈매에 짐짓 진실함을 가득 담아 보였다."내 수하들이 청류 일행이 붙잡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단 말이다. 네가 네 오라비를 몹시 걱정하는 것을 알기에, 서둘러 소식을 전해준 것뿐이다."서준은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찼다. 자신의 눈앞에서 저리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조원철 저놈이 강유영에게 단단히 마음을 뺏기긴 한 모양이었다.하지만 이제 와서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강유영은 이미 그와 소은경이 밀회하는 상황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조원철이 지금 당장 입에서 꽃을 피워낸다 한들, 그녀는 결코 그를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네 오라비에게 직접 물어보거라. 이번 일에 내가 사람을 보내 힘을 보탰는지, 아닌지 말이다."서준은 강유영이 믿지 않을까 염려되어 황급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말을 마친 그는 조원철을 쳐다보았다. 조원철의 성정에 이런 일로 거짓을 고하지는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88화

    조원철은 가늘고 곧게 뻗은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꽉 쥐고 있었다. 뼈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을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어서 먹거라."서준은 고개를 돌려 다정하게 재촉했다.강유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앵두 화채를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달콤하냐?"서준이 웃으며 물었다.밝은 등불 아래, 그의 미소에는 나른한 다정함이 묻어나고 있었다."예."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웃음이 나오지 않았지만, 방금 도움을 받은 처지라 대놓고 차갑게 굴 수는 없었다."입에 맞으면 더 먹거라."서준은 손을 뻗어 그녀 입가에 묻은 당분을 닦아주려 했다.강유영은 황급히 몸을 피하며 손수건으로 입가를 눌렀다."제가 하겠습니다."서준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술잔을 들어 조원철 쪽을 향해 한 모금 머금었다.드디어 연회가 끝이 났다.강유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다 비틀거렸다. 너무 오래 앉아 있어 몸이 굳은 탓이었다.서준은 재빨리 그녀를 부축하며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천천히 가거라. 뭘 그리 서두르느냐?"강유영은 황급히 손을 뿌리쳤다. 채 반응도 하기 전에 시선은 본능적으로 조원철을 향했다.그녀의 시선은 짙고 깊은 그의 눈동자와 정면으로 얽혀 들었다.그는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겉보기엔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였으나, 그녀는 묘하게 그 눈빛에서 조소와 서늘한 혐오를 읽어내고 말았다.강유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불에 데기라도 한 듯 재빨리 시선을 거두고 밖을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두려움과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왔다.그의 낯빛은 그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내내 그를 보지 않으려 그토록 애썼는데, 연회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 결국 참아내지 못한 자신이 한심했다."천천히 가거라, 어디를 그리 급히 가는 게냐?"서준이 뒤를 쫓아왔다."몸이 피곤해서 일찍 쉬고 싶습니다."강유영은 적당히 핑계를 대며 발걸음을 재촉했다.두 사람은 말을 주고받으며 한적한 회랑으로 들어섰다."추운 게냐?"서준은 입고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4화

    한씨가 고개를 돌려 강유영을 바라봤다.곁눈질로 보니, 조원철도 고개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는 듯했다.강유영은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떡을 다시 집어 조심스럽게 입안에 넣었다.마치 돌을 씹는 것처럼 입안이 쓰고 껄끄러웠다.‘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거지? 뭘 알고 일부러 저러시는 걸까?’이유야 어찌 됐건 한씨가 이에 대해 굉장히 불쾌해하고 있음은 분명해졌다.조원철은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한씨는 손을 뻗어 아들의 목에 난 자국을 어루만지더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곱게 자란 처자라면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화

    조원철을 따라 밖으로 나갔더니, 밖은 어느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차가운 습기가 얼굴에 닿자,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움찔 목을 움츠렸다.“세자.”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원철의 측근 청운이 다가와서 우산을 건넸다.조원철은 우산을 펼치고는 강유영에게 따라오라는 듯, 눈짓했다.강유영은 난색을 띠며 주저했다.“아씨, 세자께서 처소까지 모셔다드린답니다.”청운이 웃으며 말했다.“배려 감사해요, 오라버니.”강유영은 어차피 그와 따로 할 말도 있고 해서 공손히 예를 행하고는 그를 따라나섰다.청운은 빗속을 나란히 걷고 있는 두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2화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꾸나.”한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강유영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정신은 아찔해져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문이 열리면 둘 다 끝장이라는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온몸은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어 조원철의 어깨를 밀었다.그녀는 안간힘을 쓴 것이었지만, 조원철에게는 그저 간지러울 정도였다.투명한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길게 말린 속눈썹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축 처진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화

    초여름의 이른 아침.경성 진국공부의 사당 주변은 아침부터 자옥한 안개로 휩싸였다.조용한 사당 안에서는 승려가 경을 읊는 소리가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정원 내 청동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당을 지키는 시녀와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강유영은 치맛자락을 들고서 처마 길을 따라 뒤뜰을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좌측 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가늘고 여린 그녀의 허리를 가로챘다.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끌고 뒤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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