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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Author: 눈빛 속의 약속
조원철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부릅떴다. 검은 눈동자는 더 이상 날카롭지 않고 뜨거운 욕망으로 가득 찼다.

“움직이지 말거라. 약에 당했다.”

손가락에서 느껴진 통증에 그는 잠깐 이성이 돌아왔다. 이마에 힘줄이 솟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는 애써 주먹을 꽉 움켜쥐고서 충동을 억제했다.

강유영은 입에 힘을 풀고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약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평소의 날카롭고 예리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는 그녀마저 녹여버릴 것 같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그녀는 여기서 더 그의 말을 거부했다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연회청에서는 괜찮았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누가 술에 손을 쓴 건가?’

조원철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날뛰는 충동을 억눌렀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전해지는 달콤한 향기에 정신은 점점 혼미해졌다.

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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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씨는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금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원철아, 셋째도 이제 나이가 찼으니 혼인을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서왕 전하께서도 아직 정실을 들이지 않으셨으니, 두 사람이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아 내가 그만...."분명 조원철은 그녀가 배 아파 낳고 키운 자식이었다.하지만 매번 그가 이리 싸늘한 얼굴로 무언가를 캐물을 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도 모르게 두려움이 솟구쳤다. 억누르려 해도 소용없었다.그가 이리 묻는 것을 보니 이미 상황을 다 아는 듯했다. 굳이 더 숨길 필요가 없었다."서왕이 승낙했습니까?"조원철이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그래, 서왕 전하도 승낙하셨단다."한씨의 입가에 그제야 진심 어린 미소가 번졌다.머지않아 그녀의 딸은 왕비가 될 것이다. 그리되면 그녀의 위상 역시 자연스레 높아진다. 황성의 모든 귀부인들이 자신을 부러워할 것이다. 조씨 노부인 그 늙은이도 더는 자신을 함부로 내리누르지 못할 터였다."조건이 무엇입니까?"조원철은 앞만 주시한 채 청설원의 문지방을 넘었다.한씨는 잠시 멈칫하더니, 일부러 한결 가벼운 말투로 대답했다."서왕 전하께서 특별히 요구하신 건 없단다. 그저 혼인할 때 유영이를 첩으로 함께 보내라 하시더구나. 연화가 잘 보살펴 줄 테니 유영이도 험한 꼴은 당하지 않을 거다. 서녀나 양녀가 적녀의 혼인에 첩으로 따라가는 일은 황성에서도 비일비재하지 않니. 유영이에게도 꽤 괜찮은 자리일 거다. 네 생각도 그렇지?"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그녀는 속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조원철과 강유영 사이의 묘한 기류를 그녀라고 어찌 눈치채지 못했을까.한씨가 이런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강유영이 감히 조원철을 홀리려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유영의 성정이 예전과 달리 맹랑해져 통제하기 까다로워진 탓도 컸다.훗날 강유영이 조연화를 따라 서왕부에 들어가면, 왕비인 조연화가 강유영을 꽉 쥐고 흔들 수 있다. 그리되면 두 모녀는 두 다리 뻗고 편히 지낼 수 있었다. 오직 조원철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50화

    그녀는 다소곳이 시선을 아래에 둔 채로 입술을 꼭 다물었다. 다소 억울하고 당혹스러운 기색이었다."이 일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조원철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마도 어머니께서…."강유영은 한씨를 언급하다가 말을 멈췄다. 주먹을 꽉 쥐고 있어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혹여 그의 어머니를 험담하는 것을 그가 언짢게 여길까 걱정되었다."계속 말해보거라."조원철의 안색은 변함이 없었다.강유영은 그가 노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어머니께서는 서왕부와 연을 맺고 싶으셨던 듯합니다. 저를 볼모로 삼아 연화 아씨를 서왕부 왕비로 들여보내려는 속셈일 테지요. 이렇게 하면 황실의 인척이 될 수 있고 골칫거리던 저를 처리할 수 있을 테니 일석이조라 생각하셨겠지요.”지난번 그녀가 한씨와 조씨 노부인 앞에서 조연화의 가슴에 단검을 들이댄 이후, 한씨는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그래서 멀리 내쳐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유영아,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그리 심각하게 나누느냐?”멀리서 한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유영이 고개를 돌리자, 시녀들을 거느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는 한씨의 모습이 보였다.한씨는 다리가 채 낫지 않아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 빨리 걸으면 더 티가 나니 품위를 유지하려고 일부러 느리게 걷고 있었다.“어머니.”조원철이 한씨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강유영도 무릎을 굽혀 예를 올렸다.“어머니를 뵙습니다.”두 사람은 인사만 건넬 뿐, 한씨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한씨는 정원에 있다가 조원철이 강유영과 대화 중이라는 전갈을 받고 서둘러 달려온 참이었다.“둘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한씨는 조원철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연화의 처소로 가던 길입니다.”조원철이 태연하게 답했다.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그를 힐끗 보았다.갑자기 조연화의 처소에는 왜 간다는 것일까? 그것도 그녀까지 데리고 간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혹… 무슨 일이 있느냐?”한씨가 조원철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그녀는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49화

    서준은 음침한 눈빛을 하고서 도발하듯 조원철을 노려보았다. 조원철은 올곧은 눈빛으로 그와 대치했다.두 사람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주변 공기가 얼어붙은 듯했다.청운과 남풍도 곁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두 사람은 주인의 명령 한마디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싸울 기세였다.강유영은 뒤에서 조원철의 소맷자락을 살짝 끌어당겼다.예전에도 두 사람은 여러 번 충돌한 적이 있었다.그녀는 두 사람이 또 몸싸움을 벌일까 걱정스러웠다.이곳은 다른 곳도 아닌 진국공부 저택이었다. 여기서 충돌이 일어나면 큰 소란이 일 게 분명했다.다른 것은 두렵지 않았다. 그저 서준이 흥분하여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을까 두려웠다.그녀와 조원철 사이의 일에 대해 서준이 쥔 확실한 물증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황자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람들의 믿음을 얻기 쉬웠다.믿지 않는다 해도 온갖 소문이 꼬리를 물 것이다.그녀는 그것이 두려웠다.조원철은 꽉 쥐었던 주먹을 느슨하게 풀었지만, 여전히 물러서지는 않았다.서준은 돌연 실소를 터뜨렸다.강유영은 그 웃음을 보고 속으로 안도했다. 서준이 저리 웃는 것을 보니 조원철과 주먹다짐을 벌이지는 않을 듯했다.웬만해서는 조원철이 먼저 손을 쓰는 일은 없었다.싸움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일은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었다."처형은 참으로 누이를 끔찍이 아끼는군."서준이 팔짱을 끼며 지극히 여유로운 태도를 취했다.강유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간신히 진정했던 가슴이 다시 철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서준은 입이 참 방정이었다. 어찌 또 저런 호칭으로 조원철을 부른단 말인가."제 누이는 서왕 전하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자중하시지요."조원철의 눈빛은 차가웠고, 말투는 한겨울 바람처럼 매서웠다."댁에 누이가 여럿 있지 않소. 유영이가 내게 시집오기 싫다 해도, 연화는 기꺼이 오겠다 하더군. 그러니 내 처형이 아니면 뭐란 말이오?"서준은 눈가에 의기양양한 기색을 띠며 웃음을 터뜨렸다.조연화는 조원철의 피를 나눈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48화

    잠시 후, 서준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유영아, 깜빡하고 말하지 않은 게 있구나. 연화는 우리의 혼례 날 너도 서왕부로 데려가 첩으로 삼겠다고 하였다."말을 마친 그의 시선이 강유영의 얼굴에 꽂혔다. 강유영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자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드디어 저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게 만들었다."전하, 농담하지 마십시오."강유영은 다시 차분한 표정을 되찾았지만 속으로는 셈을 굴렸다.서준의 말은 십중팔구 사실일 것이다. 서준이 어쩌다 조연화와 엮였나 했더니, 조연화가 그녀를 왕부로 들어갈 미끼로 삼은 것이 분명했다.어불성설이다. 누군가의 첩이 될 생각이었다면 차라리 조원철을 택했을 것이다. 그게 싫어서 그와 여태껏 아옹다옹 대치하고 있는 중이었다.누가 어떤 수를 쓰든 누군가의 첩실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연화 그대가 말해보시오. 내 말이 농담이오?"서준이 조연화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조연화는 헛기침을 하더니 강유영을 보며 말했다."이 일은 이미 어머니와 상의를 마쳤다. 넌 한낱 양녀의 신분이니 서왕부에 들어가 첩이 되는 것만으로도 네겐 큰 복이다. 남은 여생을 의탁할 곳이 생기지 않았느냐. 내게 고마워할 것 없다. 앞으로 우리 자매가 왕부에 들어가면 서로 돕고 살아야지. 우린 가족이 아니냐."그녀는 사실 지금 강유영에게 이 일을 알릴 생각이 없었다.지난번 강유영이 눈을 뒤집고 단검을 가슴에 들이댔을 때 아주 기겁을 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섣불리 강유영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다만 서준이 먼저 말을 꺼냈으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어머니께는 그런 말씀 못 들었습니다."강유영은 서준을 향해 가볍게 예를 올렸다."두 분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한씨의 계략이었다. 그렇다면 놀라울 것도 없었다.한씨라면 조연화를 서왕부에 들이기 위해 자신을 팔아넘기고도 남을 위인이었다.하지만 누구의 뜻대로도 움직여 줄 생각은 없었다."유영아."서준이 일어나 그녀의 뒤를 쫓았다."전하…."조연화가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47화

    "전하를 뵙습니다."강유영은 그에게 예를 올린 뒤, 탁자에 찬합을 내려놓고 조연화에게 말했다."할머니께서 아씨의 문병을 다녀오라 하시며 제비집을 챙겨주셨습니다."강유영의 얼굴은 평온했고 까만 눈동자는 티 없이 투명했다.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전혀 보지 못한 사람 같았다.서준은 몰래 주먹을 쥐었다.조연화에게 이리 다정하게 대했는데도 강유영은 저리 태연하게 굴었다.마음에 약간의 초조함이 일었다."수고롭게 걸음 했구나."조연화는 침상 머리맡에 기댄 채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강유영과 서준을 번갈아 보며 얼굴을 붉혔다."그저 고뿔에 걸렸을 뿐 큰 병은 아니다. 전하께서 친히 문병을 오셔서 보살펴주시니 어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구나."말투는 정중했고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강유영이 그 말에 숨겨진 과시욕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서준은 어느새 평소의 나른한 자태로 돌아와 강유영을 빤히 바라보았다.저 아이가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인지 자세히 살펴볼 참이었다."전하의 보살핌을 받다니 연화 아씨의 복입니다."강유영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말투는 예의를 갖추었지만, 시선에는 묘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일부러 조연화에게 보여주기 위한 시선이었다.두 사람 사이가 어떤 상황인지 직접 묻고 싶지 않았다. 조연화가 제 입으로 말하게 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조연화는 미끼를 물었다. 그녀는 수줍은 눈길로 서준을 힐끗 보았다."유영아, 너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와 전하께서는…."그녀는 하던 말을 멈추고 다시 서준을 쳐다보았다. 명색이 규수로서 이런 일에 먼저 나설 수는 없었다. 서왕부에 찾아가 제 마음을 전했으니, 강유영 앞에서는 서준이 나설 차례였다.서준이 자신을 위해 말을 해줄지 확인하고 싶었다."그래."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강유영을 향해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내가 연화를 왕비로 들이기로 약조했다."그는 긴 다리를 뻗고 등을 침상 가장자리에 기댄 채 편안한 자세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46화

    강유영은 채운이 걷어 올린 주렴을 지나, 몸을 숙여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조연화는 침상 머리맡 푹신한 베개에 기댄 채 두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병이 난 것이 아니라 수줍어하는 기색에 가까웠다.서준은 침상 곁의 둥근 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었다. 짙은 자줏빛 비단 도포 차림에 긴 다리를 편안하게 꼬고 특유의 나른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느라 강유영이 들어온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강유영도 눈치껏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섰다."자, 약을 드시오."서준이 머리맡에 놓인 탕약 사발을 들었다. 숟가락으로 약을 떠서 가볍게 입김을 분 뒤 조연화의 입가로 가져갔다."어찌 전하께 시중을 맡기겠습니까? 제가 마시겠습니다…."조연화는 수줍으면서도 황송한 기색으로 서둘러 두 손을 뻗어 그릇을 받으려 했다.자꾸만 꿈을 꾸는 것 같았다.서왕부를 찾아갔을 때 서준은 혼인을 단박에 승낙했다. 그러더니 지금은 이토록 다정하게 굴며 직접 약까지 떠먹여 주고 있었다.사실 몸은 그리 아프지 않았다.사람을 시켜 서준에게 알린 것도 그저 이 기회를 빌려 그의 마음을 떠보려는 심산이었다.서준이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달려올 줄은 몰랐다.마음 한구석이 달콤하게 부풀어 올랐다. 조연화는 곁눈질로 강유영을 힐끗 살폈다.단 한 가지 흠이라면 나중에 서왕부로 시집갈 때 강유영을 데리고 가야 한다는 점이었다.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때가 되면 자신은 정실 왕비고 강유영은 한낱 첩실에 불과했다. 강유영이 감히 하극상을 벌인다면 당장 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강유영은 한쪽에 선 채 눈앞의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았다.조연화의 표정에는 연모의 정이 가득했다. 진심으로 서준에게 마음을 뺏긴 모습이었다.하지만 서준의 속내는 알 수 없었다.강유영은 서준의 눈 깊은 곳에 스친 희롱의 기색을 놓치지 않았다.물론 그 조롱기 섞인 시선이 그녀를 향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그녀를 불러내어 이런 촌극을 보여줄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화

    강유영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들어오거라.”조원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강유영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내실로 들어갔다.“언제 오셨나요?”잠깐 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기러 나갔다 온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지금쯤이면 밖에서 왕 소저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조원철이 다가오더니 문을 닫았다.강유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와 거리를 벌리고 고개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화

    “기특하기도 하지. 어서 이리 와서 앉으렴.”한씨는 웃으며 강유영을 향해 손짓하더니 자신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밖에서 강유영에게 잘해주는 것은 인자한 진국공 부인의 명성을 위해서였다.강유영은 약상자를 장 의원에게 건네고는 고분고분 그쪽으로 다가갔다.장 의원은 그녀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유영의 처지를 잘 알기에, 그녀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았다. 장 의원은 손을 뻗어 한씨의 손목에 대고 진맥을 시작했다.한씨의 옆에 앉은 강유영은 불안하게 병풍 뒤쪽을 힐끔거렸다.조원철은 탁자 앞에 마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화

    “유영아? 얘네가 다 어디로 갔지?”한씨가 병풍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어머니, 오지 마세요. 제가 부주의로 우유차를 옷에 쏟아서 닦고 있었습니다.”다급한 마음에 강유영은 아무 핑계나 둘러댔다.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한씨는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네 오라비는?”강유영은 고개를 돌리고 애원에 찬 눈길로 조원철을 바라보았다. 당황하고 조급한 나머지 맑은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조원철은 그날 밤 그만하자고 애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긴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겨 단단히 품에 안았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4화

    한씨가 고개를 돌려 강유영을 바라봤다.곁눈질로 보니, 조원철도 고개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는 듯했다.강유영은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떡을 다시 집어 조심스럽게 입안에 넣었다.마치 돌을 씹는 것처럼 입안이 쓰고 껄끄러웠다.‘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거지? 뭘 알고 일부러 저러시는 걸까?’이유야 어찌 됐건 한씨가 이에 대해 굉장히 불쾌해하고 있음은 분명해졌다.조원철은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한씨는 손을 뻗어 아들의 목에 난 자국을 어루만지더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곱게 자란 처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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