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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4화

Author: 눈빛 속의 약속
운귀사는 제법 큰 사찰이라, 선방의 살림살이는 소박하면서도 청아한 멋이 있었다. 방 안에는 소색 방석 하나와 낮은 나무 탁자가 놓여 있었고, 탁자 위 청자병에는 마른 연꽃이 꽂혀 있었다. 벽에는 관음보살의 화상이 걸려 있었다.

회공 스님은 선방에 들어서자마자 보살 화상 앞에 단향 한 자루를 피웠다.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고 향기가 감돌아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하, 유영 아씨, 앉으시지요."

그가 몸을 돌려 자리를 권했다.

"거기 앉거라."

서준은 강유영을 가볍게 밀며 자리를 내어주었다.

강유영은 그의 말대로 자리에 앉았다.

원래는 서준을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자신의 출생이 이토록 곡절이 많으니, 필시 남모를 비밀이 숨겨져 있을 터였다.

하지만 회공 스님이 서준을 다소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자 잠시 생각을 바꾸었다.

자신은 회공 스님과 일면식도 없었고, 내세울 것이라곤 진국공부의 양녀라는 허울뿐인 신분이었다. 이 신분으로는 누구 하나 압박할 수 없었다.

보아하니 회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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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언제 모든 것들이 정리되나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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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209화

    "두려워 할 것 없다. 아버지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실 거다."조원철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독였다."두려운 게 아닙니다."강유영은 작게 대꾸하며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그럼 왜 그러느냐.""그저 고개를 들 수가 없을 뿐입니다. 두 분 다 저희 관계를 알아버리셨으니 민망해서 다시 얼굴을 뵙지도 못하겠습니다."자신이 내뱉고도 부끄러워져 얼굴이 화끈거렸다.어찌 되었든 두 사람은 같은 족보에 이름이 오른 남매였다.남들이 알면 파렴치한 짓이라고 욕할 것이다."우리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남이다."조원철은 무심히 대꾸했다.하지만 강유영은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오라버니, 차라리 제가 밖으로 나가 사는 게 낫지 않을까요?""나가서 어딜 가겠다는 거냐."조원철이 눈을 내리깔고 물었다."전당포로 가면 되지요."강유영은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어차피 그곳에 남는 방도 있고 서재도 있으니까요."그 정도면 충분했다. 자신은 방 하나를 쓰고, 서재를 비워 오씨 어멈과 서유 일행을 지내게 하면 그만이었다."안 된다. 전당포는 오가는 사람이 많아 어떤 자들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다."조원철은 단칼에 거절했다."그럼 어찌합니까. 정 안 되면 조그만 집이라도 하나 빌려……."강유영은 말을 하려다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나갈 생각은 말거라. 보기 싫은 사람은 피하면 그만이니 저택에 머물며 날 기다리면 된다."그는 그녀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밖에서 집을 세내어 지내면 그게 외실이지 뭐겠느냐."그 말을 들은 강유영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하려는 일은 외실이나 할 짓이었다."또 엉뚱한 생각을 하는구나."조원철은 기가 차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소은원에만 틀어박혀 지내면 누가 찾아온다고. 어머니는 감금을 당하셨고, 아버지께선 그곳에 발길조차 하지 않으신다. 다른 이들도 감히 함부로 드나들지 못할 테니, 정 불안하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208화

    그녀는 문득 울컥하며 코끝이 찡해졌다.강유영은 출생의 비밀도 모른 채 부모 없이 혼자 자란 고아였다. 평생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줄 알았다.자신을 이렇게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네가 차마 손을 쓰지 못하겠다면 내가 직접 나서마."진국공이 서늘한 눈빛으로 강유영을 훑어내렸다.일개 양녀 따위가 가문의 희망인 장남의 앞길을 망치도록 구경만 할 수 없었다.이는 국공부의 가주로서 짊어져야 할 마땅한 책임이었다."유영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시면, 전 이 국공부를 쑥대밭으로 만들 겁니다."조원철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하지만 그 말에 실린 무게는 천근보다 무거웠다.강유영은 흠칫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그가 자신을 아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무서운 각오를 다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기억 속의 조원철은 언제나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과 관련된 일에서 이렇게까지 과감한 결단을 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분노를 참지 못한 진국공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네 이놈! 감히 아비한테 무슨 망언을 지껄이는 것이냐!""제가 못 할 것 같습니까."조원철의 표정은 여전히 고요한 호수 같았다.하지만 뱉은 말은 진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너, 너 이놈!"진국공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숨을 헐떡였다.장남은 어려서부터 부모 속을 한 번도 썩인 적이 없었다. 평생 제 앞가림 알아서 잘하며 가문을 빛낼 줄 알았다.그런데 이제 와서 늙은 아비의 복장을 터지게 할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대형 사고를 치다니!조원철은 차가운 눈빛으로 진국공을 응시했다."이 일은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하거라. 당장 저 아이를 어떻게 하진 않을 테니,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주마."진국공은 깊은 한숨을 들이마시며 화를 억누르고는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아들을 설득하려 애썼다.그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겨우 양녀 하나 없애려다 귀한 아들과 등을 돌릴 이유는 없었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207화

    조원철은 강유영의 등 뒤에 서서 진국공을 흔들림 없이 마주 보았다.진국공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나리, 이제 제가 한 짓이 그리 큰 잘못은 아니지요? 그러니 저를 별장으로 쫓아내지 마시고 저택 사당에 머물며 속죄하게 해주십시오. 안 그러면 저 두 사람의 추악한 짓거리를 온 동네방네 다 떠벌릴 겁니다. 어차피 별장에 가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데 제가 뭐가 두렵겠습니까."한씨는 틈을 놓치지 않고 협상을 시도했다.그녀가 둘의 관계를 폭로한 것은 단순히 화풀이 때문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계산도 깔려 있었다.사당에 갇히더라도 국공부 안에 머물 수 있다면 재기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벙어리가 되어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당장 입 다무십시오."조원철이 고개를 숙여 한씨를 서늘하게 내려다보았다.한씨는 그 시선에 숨이 턱 막히며 몸을 움츠렸다. 불효막심한 놈이라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눈빛은 흉포하지 않지만 한겨울 서리처럼 차가워서 더 이상 입을 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공들여 키운 아들이 이렇게 무서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만약 여기서 한마디라도 더 거들었다간 당장 독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 게 분명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부인을 당장 안채로 모셔라!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게 하지 말고 아무도 들이지 말거라!"진국공은 하인들을 향해 싸늘하게 호령했다.지금 그의 머릿속은 온통 강유영과 조원철의 일로 꽉 차 있어 한씨를 상대할 여유가 없었다.'어찌 이런 어리석은 짓을!'천하에 널린 게 훌륭한 규수들인데, 왜 하필 강유영이어야 했을까!한씨가 하인들에게 끌려 밖으로 나가자, 서재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강유영은 두 사람이 서 있는데 자신만 앉아 있는 상황이 가시방석 같아 안절부절못했다.한참 뒤, 무거운 발걸음으로 책상 앞으로 돌아가 앉은 진국공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네 손으로 저 아이를 치워라. 그럼 이 일은 없던 일로 덮어주마."조원철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206화

    진국공은 한씨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굳은 표정으로 강유영을 쳐다보았다. 한씨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했다."저 둘이 뒤에서 눈이 맞아 놀아났단 말입니다! 저 요망한 계집은 입만 열면 큰오라버니를 부르며 꼬리를 치고, 나리의 자랑스러운 장남 놈은 남들 앞에서는 점잖은 군자인 척 행세하면서 뒤로는 제 양누이와 붙어먹고 있었으니! 나리,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한씨는 강유영을 가리켰다가 다시 조원철을 가리키며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기어이 입 밖으로 내뱉고야 말았다.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조원철이 자신을 구해주는 걸 거부한다면 강유영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지옥에 떨어지더라도 강유영만큼은 기필코 길동무로 데려갈 작정이었다.기어이 한씨가 비밀을 폭로하고 말았다.강유영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식은땀이 등을 흠뻑 적셨다.진국공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조원철을 먼저 바라보았다.하지만 조원철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담담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조금의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진국공은 이번에는 강유영에게 시선을 돌렸다.시선과 마주친 강유영은 입술을 꽉 깨물고 어떻게든 평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조금이라도 당황한 기색을 내보일 수 없었다.어떤 위기 상황이 닥쳐도 겉으로는 절대 티를 내지 말라던 조원철의 당부를 끊임없이 되뇌었다.하지만 조정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진국공의 눈을 속이기에는 부족했다.진국공은 단 두 번의 눈길만으로 이상 기류를 간파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꾸며도, 흔들리는 눈동자에 서린 불안감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심스러웠다."나리, 아직도 못 믿으시겠습니까? 정 못 믿으시겠거든 당장 저 계집의 시녀들을 잡아다 족쳐 보십시오! 저 둘이 언제부터 눈이 맞았는지 모조리 불 겁니다!"한씨는 진국공이 안 믿을까 봐 옆에서 계속 선동질을 해댔다."시끄럽소!"진국공은 분노에 차서 호통쳤다.한씨는 그 기세에 눌려 입을 다물었다.진국공은 다시 강유영을 응시했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205화

    한씨의 말에 강유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기어이 진국공에게 그녀와 조원철의 사이를 폭로하려는 걸까?그녀는 불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조원철을 쳐다보았다.조원철은 동요하지 말라는 듯 담담한 눈빛을 보내고는 문 쪽을 향해 말했다."청류, 진 부인을 밖으로 모셔라."진 부인은 두 눈을 반짝이며 사람들의 다툼을 구경하고 있었다.직감적으로 이 뒤에 엄청난 추문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귀를 쫑긋 세우고 끝까지 들어볼 생각이었는데, 조원철이 느닷없이 나가라 할 줄은 몰랐다."왜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야! 네가 저지른 짓이 남의 귀에 들어갈까 봐 두려운 거지? 안 될 일인 줄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런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어!"한씨가 악에 받쳐 쏘아붙였다.하지만 이미 안으로 들어온 청류가 진 부인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진 부인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아무리 호기심이 생겨도 주인이 나가라는데 계속 버틸 수는 없었다.게다가 두 사람 모두 함부로 대할 상대가 아니었다. 얌전히 물러나는 편이 나았다.문이 굳게 닫히고, 방 안에는 진국공 부부와 강유영, 조원철 네 사람만이 남았다."원철아, 네게 마지막 기회를 주마. 나를 도울 것이냐, 계속 내버려둘 거냐?"한씨는 조원철을 똑바로 쳐다보며 최후통첩을 날렸다.조원철이 남의 협박에 굴복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유영이 연관된 일이라면 달랐다.그는 진국공이 두 사람 사이의 일을 아는 것을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진 부인 앞에서 굳이 털어놓지 않은 것은 조원철이 마음을 바꿔 자신을 도울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이 위기만 넘기면 앞으로의 일은 두렵지 않았다."대체 무슨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야! 내 앞에서 감히 자식을 협박해!"진국공은 홧김에 책상 위의 두꺼운 책을 집어 들어 한씨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하지만 책에 맞고서도 한씨는 꼼짝하지 않고 조원철만 뚫어지게 노려보았다.강유영은 눈앞의 상황을 보며 마른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204화

    "나리께서 그걸 어찌……."한씨는 말을 뱉은 후에야 아차 싶어 입을 틀어막았다.하지만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럼 정말 그자와 엮였단 말이오!"진국공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내리치며 분노했다.다리에 힘이 풀린 한씨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나리, 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저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까 억지로 짜내던 눈물이 아니었다. 겁에 질려 흘리는 진짜 눈물이었다."당장 말하시오! 대체 그자에게 얼마를 빌렸고 이자는 어떻게 치르기로 했소!"진국공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한씨가 이렇게 대담한 짓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공금 빈곳을 메우려고 은자 이만 냥을 빌렸습니다……. 이자는 육 할로 쳐서……."한씨는 덜덜 떨며 사실을 털어놓았다.그녀도 나름 계산을 해 둔 게 있었다. 빌린 돈은 유 점주를 시켜 강유영에게 억지로 받아내게 할 계획이었다.하지만 강유영이 이렇게 쉽게 유 점주의 손아귀를 빠져나갈 줄은 몰랐다.강유영은 속으로 혀를 찼다.은자 이만 냥을 빌렸을 때 선이자를 떼고 손에 쥐는 돈은 만 사천 냥도 채 되지 않았다. 기한이 되면 원금과 이자를 합쳐 근 삼만 냥에 달하는 빚을 갚아야 했다.한씨가 굴리는 점포 몇 개의 알량한 수익으로는 어림도 없는 액수였다. 참으로 배짱 한번 두둑했다."육 할라니! 감히 어찌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를 수 있소!"화를 참지 못한 진국공은 곁에 있던 찻잔을 한씨를 향해 내던졌다.한씨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하는 바람에, 찻잔은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고 뜨거운 찻물이 사방으로 튀었다.강유영은 파편에 맞을까 싶어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구석에 있던 진 부인은 한씨를 향해 비웃듯 말했다."꼴 한 번 좋네."그녀는 다시 진국공을 향해 소리쳤다."나리, 저런 천박한 여인은 안주인의 자격이 없습니다! 당장 쫓아내셔야 마땅합니다!""내 집안일이니 참견 마시오."진국공은 이내 냉정을 되찾고 바닥에 널브러진 한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화

    조원철을 따라 밖으로 나갔더니, 밖은 어느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차가운 습기가 얼굴에 닿자,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움찔 목을 움츠렸다.“세자.”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원철의 측근 청운이 다가와서 우산을 건넸다.조원철은 우산을 펼치고는 강유영에게 따라오라는 듯, 눈짓했다.강유영은 난색을 띠며 주저했다.“아씨, 세자께서 처소까지 모셔다드린답니다.”청운이 웃으며 말했다.“배려 감사해요, 오라버니.”강유영은 어차피 그와 따로 할 말도 있고 해서 공손히 예를 행하고는 그를 따라나섰다.청운은 빗속을 나란히 걷고 있는 두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2화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꾸나.”한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강유영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정신은 아찔해져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문이 열리면 둘 다 끝장이라는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온몸은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어 조원철의 어깨를 밀었다.그녀는 안간힘을 쓴 것이었지만, 조원철에게는 그저 간지러울 정도였다.투명한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길게 말린 속눈썹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축 처진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화

    초여름의 이른 아침.경성 진국공부의 사당 주변은 아침부터 자옥한 안개로 휩싸였다.조용한 사당 안에서는 승려가 경을 읊는 소리가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정원 내 청동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당을 지키는 시녀와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강유영은 치맛자락을 들고서 처마 길을 따라 뒤뜰을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좌측 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가늘고 여린 그녀의 허리를 가로챘다.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끌고 뒤뜰에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화

    강유영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들어오거라.”조원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강유영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내실로 들어갔다.“언제 오셨나요?”잠깐 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기러 나갔다 온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지금쯤이면 밖에서 왕 소저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조원철이 다가오더니 문을 닫았다.강유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와 거리를 벌리고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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