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라우덴 항구 저울 규정. 받은 무게가 짐 목록과 다를 때에는 전체 짐을 다시 잰다. 확인이 끝날 때까지 출항을 보류할 수 있다.」
로잘린은 저울 위의 자루를 내리지 못하게 손을 들었다.
“이 자루가 어느 배에서 내려왔는지 적어 주세요.”
베크가 창고지기를 돌아보았다. 창고지기는 자루 입구의 매듭을 확인하고 짐 목록을 펼쳤다. 페트라는 종이 맨 위에 배의 표식을 옮겨 적었다.
“다른 자루도 가져올까요?”
“먼저 이 자루를 따로 두세요. 잰 물건과 안 잰 물건이 섞이면 다시 시작해야 해요.”
로잘린은 뼈 자로 종이에 줄을 그었다. 배의 표식, 자루에 적힌 무게, 저울로 확인한 무게를 나누었다.
마티아스가 저울 옆으로 다가왔다.
“전부 확인하시겠습니까?”
“900자루예요. 하나만 보고 나머지도 같다고 할 수는 없어요.”
“사람을 붙이겠습니다.”
베크가 짐 목록 끝을 눌렀다.
“이미 창고 안쪽까지 쌓았습니다. 꺼내려면 자리를 먼저 비워야 합니다. 부엌으로 보낼 밀도 가려 두어야 하고요.”
“그럼 부엌에 보낼 것부터 재 주세요. 나머지는 꺼낼 순서를 정하고요.”
로잘린은 빈칸이 남은 종이를 베크에게 건넸다.
“저울이 틀렸다는 말도 나올 수 있어요. 추를 확인한 기록이 필요해요.”
“항구에서 쓰는 규정을 가져오겠습니다.”
베크는 종이를 접지 않고 들었다.
“사스에게도 검사할 때 입회하라고 알려야 합니다.”
“좋아요. 사스 씨가 보는 데서 저울을 맞춰 주세요.”
마티아스가 창고지기에게 말했다.
“확인이 끝나기 전에는 이 밀을 다른 짐과 섞지 마십시오.”
창고지기가 저울 위 자루에 천 조각을 묶었다. 로잘린은 그 표식을 기록 옆에 작게 그렸다.
사스가 배에서 돌아왔을 때에도 자루는 저울 곁에 놓여 있었다.
“말라서 줄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스는 자루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럴 수 있죠. 얼마나 줄었는지 보겠어요.”
“부인께서 직접 다 재시려고요?”
“값을 치를 사람이 확인해야죠.”
로잘린은 서리달 12일이라고 적은 검사 통지를 내밀었다. 사스는 날짜를 확인하고 종이를 받아 들었다.
“저울은 제가 먼저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이번에는 새 값을 적을 빈칸을 만들지 않았다. 로잘린은 자루에서 읽은 무게만 기록했다.
«▼»
서리달 12일, 창고 문 앞에 등불이 걸렸다.
짐을 꺼낼 길은 낮 동안 비워 두었다. 아직 재지 않은 자루는 창고 안에, 확인한 자루는 반대편 벽을 따라 쌓기로 했다. 문턱에 자루를 내려놓지 않도록 기사들이 길을 지켰다.
사스는 빈 저울판과 추를 살핀 뒤 자기 장부에 확인 표식을 남겼다.
“추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베크가 그 말을 항구 기록에도 적게 했다.
“검사가 끝나면 두 기록을 맞추겠습니다.”
“저는 배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다 되면 알려 주십시오.”
사스가 돌아선 뒤 로잘린은 목도리를 외투 안으로 넣었다. 깃펜 셋을 나란히 놓고, 낮에 그어 둔 표를 등불 가까이 당겼다.
마티아스가 외투를 벗어 빈 상자 위에 놓았다.
“어디로 옮기면 됩니까?”
로잘린은 맞은편 벽을 가리켰다.
“저쪽이에요. 기록을 마치기 전에는 다음 자루를 올리지 말아 주세요.”
마티아스는 소매를 걷었다. 일꾼이 가져온 자루를 함께 받쳐 저울판에 올렸다. 밧줄에 쓸린 손바닥이 거친 천을 붙잡았다.
저울이 멎자 창고지기가 무게를 읽었다.
로잘린은 자루의 표시를 먼저 쓰고 그 옆에 확인한 무게를 적었다. 베크는 짐 목록에서 그 표식을 찾아 줄 끝에 표시했다.
“옮기셔도 돼요.”
마티아스가 자루를 들었다. 다음 자루는 그 뒤에 올라왔다.
자루마다 되풀이였다. 자루를 올리고, 저울이 멎기를 기다리고, 적고, 옮겼다. 서둘러 옮기려는 일꾼에게 로잘린이 손바닥을 보였다.
“잠깐만요. 끈이 저울판 밖에 걸렸어요.”
일꾼이 끈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창고지기가 추를 다시 맞췄다.
“제가 먼저 읽은 것은 지우십시오.”
로잘린은 잘못 적은 줄에 선을 긋고 바로 아래에 고친 무게를 썼다. 베크가 그 옆에 확인 표식을 남겼다.
“지워 버리지 않는군요.”
“어디서 고쳤는지 남겨야 나중에 물어도 답할 수 있어요.”
베크는 종이를 자기 쪽으로 조금 당겨 살폈다.
그 뒤부터는 자루가 올라올 때마다 끈과 바닥을 함께 확인했다.
«▼»
등불 아래 쌓인 종이가 두꺼워졌다.
마티아스는 일꾼들과 번갈아 자루를 옮겼다. 기록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자루가 기울지 않도록 붙잡았다. 로잘린은 무게를 읽다가 손바닥에 남은 천의 올을 보았다.
“전하, 손에 가루가 묻었어요.”
마티아스가 손을 펴 보였다.
“밀가루입니다.”
“눈을 만지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마티아스는 옆에 놓인 마른 천으로 손을 털었다. 그러고는 다시 자루를 받았다.
베크가 창고지기와 함께 기록을 맞추는 동안 로잘린은 굳은 어깨를 펴려 했다. 목도리 끝이 종이 위로 떨어졌다. 펜을 들지 않은 손으로 끌어 올리자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았다.
그때 페트라가 뚜껑 있는 냄비를 들고 왔다.
“종이는 잠깐 덮으세요, 마님.”
뒤따라온 기사가 쟁반을 내려놓았다. 잔에서 따뜻한 김이 올랐다.
“우유야?”
“부엌에서 데웠어요. 올덴에선 밤을 새울 때 이렇게 마셨잖아요.”
페트라는 로잘린의 손에서 깃펜을 받아 펜 받침에 놓았다. 먼저 잔을 쥐여 주고 마티아스에게도 건넸다.
마티아스가 냄새를 맡았다.
“달군요.”
“바닥에 눋지 않게 저으면서 데우면 그래요. 설탕은 넣지 않았어요.”
페트라는 나머지 잔도 기사들에게 돌렸다.
문 앞을 지키던 기사가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잔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입을 댔다. 곁의 기사는 단숨에 마시려다 뜨거워서 잔을 내렸다.
로잘린은 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펜을 쥐었던 손가락에 온기가 닿았다.
“창고에서 일하는 분들 것도 있니?”
“부엌에서 더 데우고 있어요. 여기부터 가져왔어요.”
베크가 종이를 가리려 하자 페트라는 냄비를 상자 끝으로 옮겼다.
“장부에는 안 흘려요, 재상님.”
베크는 입을 다물고 자기 잔을 받았다.
한동안 자루를 옮기는 소리가 끊겼다. 문 앞에서 젖은 장화를 문지르는 소리와 잔을 내려놓는 소리만 들렸다.
먼저 마신 기사가 빈 잔을 쟁반에 돌려놓다가 멈췄다.
“남으면 더 받아도 됩니까?”
페트라가 냄비 뚜껑을 열었다.
“올덴 우유가 입에 맞으세요?”
“우유는 같은데, 따뜻한 게 좋습니다.”
“그럼 잔 주세요. 다음에는 부엌에 부탁하고요.”
기사는 잔을 내밀면서 로잘린 쪽을 보았다.
로잘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기사도 짧게 웃었다.
마티아스는 비운 잔을 쟁반 안쪽에 놓았다. 페트라가 더 따르려 하자 손으로 가볍게 막았다.
“저는 됐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로잘린은 남은 우유를 마셨다. 냄비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잔을 내려놓았다.
«▼»
검사가 다시 시작된 뒤 로잘린은 펜촉을 바꾸었다.
잉크병 가장자리에 굳은 잉크가 묻어 있었다. 병을 돌려 놓으려던 손이 기록 위로 지나가면서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 검은 자국이 번졌다.
급히 손을 들었지만 종이 모서리에 작은 얼룩이 남았다.
“숫자를 가렸습니까?”
마티아스가 물었다.
“아니요. 여백이에요.”
로잘린은 손등으로 닦으려다 멈췄다. 닦으면 더 번질 것 같았다. 페트라가 두고 간 천은 자루를 받치는 일꾼이 쓰고 있었다.
마티아스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손을 주십시오.”
로잘린은 왼손을 내밀었다.
마티아스는 손수건을 접어 잉크가 번진 곳에 댔다. 문지르지 않고 먼저 눌렀다. 젖은 잉크가 천에 묻자 깨끗한 면으로 접어 다시 닦았다.
“굳은 것은 남겠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마티아스는 잉크 자국 옆의 굳은살을 보았다.
“아프지는 않습니까?”
“오래됐어요.”
마티아스가 손가락 옆을 닦다가 손수건을 떼었다.
손을 돌려주려는 줄 알았는데, 손바닥 아래에 놓인 손은 그대로였다. 로잘린의 손끝이 마티아스의 손가락 안쪽에 닿았다. 자루를 붙잡던 손은 따뜻했고 손바닥은 거칠었다.
로잘린은 다음 기록을 보려 했다.
종이에는 방금 적은 무게가 있었다. 그 아래 칸은 비어 있었다. 펜촉에서 잉크가 떨어지기 전에 내려놓아야 했다.
마티아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로잘린도 손을 빼 달라고 하지 않았다.
등불 가까이에서 손수건의 검은 얼룩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잉크병에만 있던 색이었다.
창고 안에서 자루를 끌어내는 소리가 났다.
로잘린은 먼저 손을 뺐다. 깃펜을 받침에 내려놓고 일꾼이 가져온 다음 자루를 받쳤다.
“이쪽으로 조금만 옮겨 주세요.”
마티아스가 반대편을 잡았다.
둘이 자루를 저울판 가운데 놓았다. 천이 손끝에 쓸렸다. 로잘린은 자루에서 손을 떼고, 닦인 손가락을 한 번 굽혔다 폈다.
창고지기가 추를 옮길 때까지 저울만 보았다.
«▼»
창고 문밖의 어둠이 옅어질 무렵 마지막 자루가 올라왔다.
로잘린은 무게를 적은 뒤 짐 목록 끝을 확인했다. 베크의 기록에도 남은 표식이 없었다. 창고지기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 비어 있는 바닥까지 살피고 돌아왔다.
“900자루, 모두 끝났습니다.”
로잘린은 종이를 배별로 나누었다. 합친 무게를 자루 수로 나누고, 펜을 바꾸어 다시 셈했다. 베크는 다른 쪽에서 같은 기록을 더했다.
펜을 긁는 소리가 이어졌다.
베크가 먼저 손을 멈췄다.
“평균이 36.4킬로그램입니다.”
“저도 같아요.”
로잘린은 마지막 줄 아래에 자를 대고 선을 그었다.
「표시 무게 40킬로그램. 확인한 평균 무게 36.4킬로그램.」
베크는 자루에 적힌 숫자를 다시 보았다.
“무게로는 10퍼센트 가까이 덜 들어왔군요.”
“자루 수만 확인했으면 그대로 받았을 거예요.”
“늘 그렇게 받았습니다.”
베크가 짐 목록을 내려놓았다. 종이를 누르는 손끝에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밀을 받을 때에는 사람이 부족했습니다. 들어온 자루를 세고 부엌으로 보내는 것부터 했습니다.”
“다음에는 순서를 바꾸면 돼요. 창고에 넣기 전에 재면 꺼내는 일이 줄어요.”
베크는 저울 옆에 쌓인 빈 기록지를 보았다.
“한 사람이 읽고 다른 사람이 적어야겠군요.”
“읽은 사람이 적힌 숫자까지 확인해 주면 더 좋아요.”
“그 일을 맡길 사람도 정해 두겠습니다.”
로잘린은 기록을 묶었다. 베크가 짐 목록을 그 아래에 받쳐 주었다.
마티아스는 마지막 자루를 벽 쪽으로 옮기고 돌아왔다. 외투를 입기 전에 소매에 붙은 가루를 털었다.
베크가 왕을 향해 섰다.
늘 돈이 없다고 말하던 입이 잠깐 다물렸다. 베크는 저울과 기록 묶음을 차례로 보았다.
“전하, 돈이 새고 있었습니다.”
마티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알았습니다.”
“왕비 전하께서 아니었으면 이번에도 몰랐을 겁니다.”
로잘린은 묶던 끈을 잠깐 멈췄다. 베크는 짐 목록의 젖은 모서리를 펴고 있었다.
“재상께서 같이 확인해 주셨어요.”
“제가 먼저 했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다음부터 함께 해 주세요.”
베크는 로잘린이 내민 기록의 끝을 잡았다. 끈이 풀리지 않도록 묶는 동안 놓지 않았다.
«▼»
사스는 항구에 해가 비칠 때 배에서 내려왔다.
외투 앞섶을 여미며 걷다가 저울 옆에서 걸음을 늦췄다. 마티아스는 자루를 옮기던 자리에 서 있었고, 로잘린 앞에는 밤새 쓴 기록이 놓여 있었다.
“아직 여기 계셨습니까?”
로잘린은 맨 위 종이를 돌려놓았다.
“이제 끝났어요.”
사스가 종이를 들었다. 눈이 평균 무게에 멈췄다가 아래의 확인 표식으로 내려갔다.
“자루마다 다를 텐데요.”
“그래서 전부 쟀어요. 배별 기록도 있어요.”
베크가 짐 목록을 펼쳤다. 사스가 확인한 저울 기록도 그 옆에 놓였다.
사스는 종이를 내려놓지 않은 채 창고지기를 보았다. 창고지기는 확인을 마친 자루들이 쌓인 벽을 가리켰다.
“다시 보실 것은 따로 표시해 드리겠습니다.”
로잘린은 손수건 대신 마른 종이로 펜촉을 닦았다. 왼손 손가락에는 잉크가 조금 남아 있었다.
사스가 입을 열기 전에 로잘린이 기록을 짚었다.
“모자란 81자루 값은 돌려받겠습니다. 아니면 라우덴 항구 규정대로 배를 묶어요.”
(11화 끝)
「꽃달 1일, 왕과 왕비는 백성이 모은 소금 앞에서 혼례를 맺고 구리 관을 쓴다. 두 사람의 서약은 광장에 모인 이들이 듣는다.」마티아스는 문턱에 얹힌 로잘린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을 조금 옮기자 잉크 자국 위로 엄지가 닿았다.“고칠 곳이 있었군요.”“예. 내일도 있으면 말씀드릴게요.”“듣겠습니다.”마티아스는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로잘린이 문을 닫을 때까지 문 앞에 서 있었다.혼례 옷은 의자 위에 펼쳐져 있었다. 로잘린은 펜을 다시 들지 않고 등불을 낮췄다. 광장에서 마지막으로 천을 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도 곧 그쳤다.«▼»아침에 게르다가 가져온 것은 수프와 작은 접시였다.“옷부터 입으면 못 드십니다.”접시에는 꿀빵이 놓여 있었다. 표면의 소금이 아침 볕을 받아 희게 보였다. 로잘린이 의자를 당기자 페트라가 수프 그릇을 가까이 밀어 주었다.“광장에 나눌 빵은 옮겼어요. 이건 마님 몫이고요.”“먼저 먹어도 돼?”“마님이 드실 것을 먼저 빼 뒀어요.”페트라가 빵을 갈랐다. 로잘린은 수프를 먹은 뒤 빵 조각으로 접시의 꿀을 훑었다. 게르다는 빈 그릇을 확인하고서야 혼례 옷을 들었다.옷에는 금실도 보석도 없었다. 밝은 천의 소매 끝에 작은 바느질이 이어져 있었다. 로잘린이 팔을 넣자 페트라가 등 뒤를 여몄다.게르다는 어깨의 접힌 곳을 펴고 소매를 내려 주었다.“손을 뻗어 보세요.”로잘린은 책상 쪽으로 팔을 뻗었다. 소매 끝이 손등을 덮지 않았다.“펜을 잡아도 되겠어요.”“오늘도 잡으실 겁니까?”“날짜는 적어야죠.”게르다는 대답 대신 마지막 매듭을 고쳐 묶었다. 페트라가 머리를 빗어 하나로 모았다. 평소보다 천천히 빗살이 내려왔다.문밖에서 소냐가 물었다.“들어가도 돼요? 준비 다 됐어요? 관도 여기 있어요?”“들어와.”소냐는 문을 열자마자 말을 멈췄다. 로잘린의 옷을 보고, 머리를 보고, 다시 옷을 보았다.“언니가 계단을 내려오면 제가 먼저 광장에 알려도 돼요?”“뭐라고?”“우리 왕비가 나온다고요.”게
「왕비의 혼례를 앞두고 백성은 소금 한 줌씩을 광장에 모은다. 가져온 이의 이름과 소금의 양은 묻지 않는다.」복도 끝 서재 문이 열려 있었다.베크는 금고 앞에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열쇠를, 다른 손에는 금고 장부를 들고 있었다. 로잘린이 문턱에 서자 베크가 고개를 돌렸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왕비 전하, 돈이 생겼습니다.”한 번 더 말하는 목소리는 처음보다 낮았다.로잘린은 안으로 들어가 장부를 받았다. 마지막 줄에 2만 세르가 적혀 있었다. 베크의 글씨였다. 숫자 옆에 확인한 표시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베크의 손이었고 하나는 마티아스의 손이었다.“세어 보셨어요?”“세 번 셌습니다.”“세 번 다 맞았고요?”“예.”베크는 손등으로 눈가를 눌렀다.“돈이 없다고 말한 날을 셀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전하께서는 알겠다고만 하셨지요.”마티아스가 문 옆에 서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셈은 왕비가 했습니다.”“제가 적었습니다.”로잘린은 장부를 베크에게 돌려주었다.“그럼 둘이 맞춘 거네요. 적은 사람이 없으면 셈도 없어요.”베크는 장부를 받아 금고 위에 놓고, 열쇠를 돌려 문을 잠갔다. 손이 조금 느렸다. 다 잠근 뒤에야 지팡이를 찾아 들었다.“내일부터는 이 숫자로 시작하겠습니다.”“예. 내일 아침에 다시 봐요.”로잘린은 서재를 나오면서 마티아스를 보았다. 마티아스는 베크가 금고 열쇠를 품에 넣는 것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닫아 주었다.«▼»씨앗달 25일 아침, 로잘린은 금고 기록을 덮고 창가로 갔다. 그날부터 아침마다 확인한 장부 끝에는 오늘도 2만 세르가 적혀 있었다. 확인을 마친 기록은 서재로 돌려보내면 되었다.그런데 창밖에서 천을 터는 소리가 들렸다.광장 가운데에 넓은 천이 깔려 있었다. 게르다가 모서리를 잡고, 궁 하인들이 접힌 곳을 펴고 있었다. 천을 다 펼치기도 전에 한 사람이 작은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로잘린은 창을 열었다.소금이 그릇에서 쏟아졌다. 흰 알갱이가 천 위에 작은 무더기를 만들었다.
「당신 자리를 원한 적 없다. 이 말을 먼저 적어도 되는지 오래 망설였습니다.」로잘린은 두 손으로 받은 문서를 책상 위에 펼쳤다. 다리에서 묶어 온 끈을 풀자 올덴 왕실 인장이 창으로 들어온 빛을 받았다.바람달 20일이었다. 문서 끝에는 아직 다리 위에서 접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로잘린은 그 자국을 손끝으로 눌렀다. 종이가 쉽게 펴지지 않아 두꺼운 장부를 올려 두었다.페트라가 빈 문서함을 가져왔다.“어디에 둘까요, 마님?”“조약 사본 옆에.”“폐위 문서도 거기 있는데요.”“함께 두면 돼. 무엇을 바로잡았는지 알 수 있게.”페트라는 함 안의 종이를 옮겨 자리를 만들었다. 재무대신의 인장이 찍힌 문서 옆에 왕실 인장이 찍힌 문서가 놓였다. 로잘린은 두 문서의 모서리를 맞추고 뚜껑을 닫았다.책상 아래 서랍은 조금 열려 있었다. 문서함을 꺼낼 때 안쪽에 둔 편지가 걸린 탓이었다.로잘린은 서랍을 당겼다.올덴 책봉 서한 아래로 얇은 봉투가 나왔다. 봉한 자리는 뜯기지 않았고, 겉면에는 로잘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페트라가 봉투를 보고 손을 멈췄다.“그 편지도 옮겨 둘까요?”“아니. 오늘 읽을게.”로잘린은 봉투를 책상 위에 놓았다. 페트라는 창가로 가 커튼을 조금 더 걷었다. 바닷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창은 닫아 둔 채였다.편지칼이 봉투의 윗부분을 갈랐다.안에 든 종이는 얇았다. 펼치자 접힌 곳을 따라 글씨가 조금 번져 있었다. 첫 줄 아래에는 잉크를 긁어 지운 자국이 있었다.「당신 자리를 원한 적 없다. 이 말을 먼저 적어도 되는지 오래 망설였습니다.」로잘린은 편지를 내려놓지 않았다.마들렌의 글씨는 책봉 서한의 글씨와 달랐다. 줄 끝으로 갈수록 글자가 작아졌고, 종이 아래에 남겨 둔 여백은 거의 없었다.「아버지는 왕의 곁에 있는 일이 우리 집안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따랐습니다. 왕께서 손을 내미셨을 때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자리를 원하지 않았다는 말로 그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압니다.」
「삼국 협정 서문. 두 둑이 같이 젖는다. 두 나라는 서로의 백성이 먹고 살아갈 길을 함께 지킨다.」로잘린은 접어 둔 헨리크의 서한을 협정문 아래에 넣었다.바람달 15일의 강바람이 종이 모서리를 들었다. 마티아스가 탁자 끝을 눌러 주었다.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등에 찬 바람이 닿았다.“그 편지도 가져왔습니까?”“부탁받은 답을 해야 하니까요.”탁자는 하론 강 돌다리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올덴 쪽에서 오는 수레가 잠시 멈췄고, 라우덴 쪽에서는 소금 자루를 내리는 소리가 났다. 빈 수레가 지나갈 길은 가운데에 남겨 두었다.로잘린은 다리 난간의 돌을 보았다. 처음 이곳을 건넜을 때 손끝으로 더듬었던 글이 그대로 있었다.이번에는 그 글을 읽을 사람들이 돌 앞에 함께 섰다.헨리크가 외투의 여밈을 고치며 다가왔다. 흰 수염 끝이 바람에 흔들렸다. 뒤따라온 서기는 문서함을 탁자 옆에 내려놓았다.“보내 준 초안을 읽었소.”“고칠 곳이 있었나요?”“세입이 줄어드는 줄부터 다시 보았소. 통행세까지 없애면 당장은 받는 돈이 줄겠더군.”헨리크가 협정문 위에 손을 얹었다.“대신 떠났던 상인이 돌아와야 그 다음 장부가 채워지겠지.”“돌아올 이유를 오늘 적으려 해요.”“그 이유를 서로 다르게 읽지 않도록 해 주시오.”로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사스는 토렌 쪽 문서를 펼쳐 놓고 있었다. 힐데는 구리 값이 적힌 장을 확인했고, 스벤은 소금과 대구의 약정이 붙은 끝장을 잡았다. 베크가 각 문서의 순서를 맞추어 탁자에 놓았다.헨리크가 난간 쪽으로 눈을 돌렸다.“저 글의 뜻도 오늘 듣게 되는 것이오?”“예.”로잘린은 협정문을 잠시 내려놓았다.«▼»돌에 새긴 글은 가운데가 조금 닳아 있었다. 로잘린은 홈에 낀 먼지를 손수건 끝으로 걷어 냈다.헨리크가 곁에 서고 마티아스가 바람이 오는 쪽을 막았다. 힐데와 사스도 돌 앞까지 다가왔다.“리타어입니다.”로잘린이 글을 따라 손을 옮겼다.“두 둑이 같이 젖는다.”스벤이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강물이 양쪽
「올덴 귀족회의 결의문. 라이너의 왕위를 거두고 헨리크 공을 왕으로 세운다. 앞서 나라의 이름으로 맺은 조약은 새 왕이 이어 지킨다.」로잘린이 펜을 내려놓은 자리에는 작은 잉크 자국이 남았다.사스는 빈 서명란에서 손을 거두지 않았다. 마티아스가 다리에서 가져온 회담 문서를 펼쳐 탁자 가운데로 밀었다.“귀족회의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모릅니다.”“왕이 바뀌어도 이 약속이 남습니까?”“그것부터 글로 확인하겠습니다.”로잘린은 초안 위에 깨끗한 종이를 덮었다.“서명할 사람을 짐작해서 적지는 않을 거예요. 답이 오면 완성한 초안을 보내겠습니다.”사스는 그제야 펜을 놓았다.«▼»바람달 1일, 덮어 두었던 초안 위로 올덴 왕실 인장이 찍힌 서한이 놓였다.게르다가 가져온 쟁반에는 서한과 얇은 문서 묶음이 함께 있었다. 끈 끝에 길에서 묻은 마른 흙이 붙어 있었다.로잘린은 끈을 풀기 전에 인장부터 확인했다. 왕실 문양이었다. 추수달에 받았던 폐위 문서의 인장과는 달랐다.“회의실로 가져갈까요?”게르다가 물었다.“여기서 먼저 볼게요.”게르다는 문 옆에서 기다렸다. 로잘린이 봉인을 열자 접힌 종이 사이에서 결의문이 나왔다. 아래쪽에는 귀족회의의 확인을 마쳤다는 글과 서명이 이어져 있었다.왕위를 거둔다는 문장에 라이너의 이름이 있었다.로잘린은 종이 가장자리를 잡은 손을 조금 옮겼다. 파렌 성에서 왕의 이름을 적을 때는 늘 빈칸이 모자랐다. 라이너가 원한 수식어를 넣고 나면 세금과 곡물에 관한 문장은 다음 장으로 넘어가곤 했다.이 문서의 이름 앞에는 긴 말이 붙지 않았다.“왕비 전하?”“재상께 알려 주세요. 올덴에서 답이 왔어요.”“전하께도요?”“예.”게르다는 더 묻지 않고 문을 닫았다.로잘린은 다음 장을 넘겼다. 포셰의 재산 가운데 관세소 장부와 대조해 확인한 몫을 국고로 돌린다는 결정이 있었다. 아직 확인을 마치지 않은 재산은 따로 적어 두었다.해마다 2만 피른이 빠져나간 줄을 찾는 데 쓰였던 아버지의 글씨가 떠올랐다. 이제 올덴의 서
「삼국 협정 초안 1조. 올덴의 밀 1자루와 라우덴의 소금 3자루를 서로의 장부에 올려 직접 교환한다.」마티아스가 세워 주었던 외투 깃에는 접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로잘린은 회의실 문 옆에 외투를 걸고 깃을 폈다. 안주머니에서 가죽 덮개를 꺼내자 다리에서 받아 온 문서가 함께 나왔다. 바람달 15일에 다시 만나겠다는 글 아래로 두 왕의 서명이 나란히 있었다.오늘 탁자에 놓을 것은 그 약속이 아니라, 약속한 날 읽을 초안이었다.얼음달 10일 아침의 회의실에는 젖은 장화 냄새가 났다. 린드는 문 가까이에 앉았고, 스벤은 창에서 먼 자리를 골랐다. 산악 외투를 벗은 힐데는 구리 거래 장부를 펼쳤다.다시 멜리네에 온 사스는 탁자 가장자리의 잉크 자국부터 살폈다.“이번에는 저울이 없군요.”“운반 장부를 가져오셨으니까요.”로잘린이 초안을 나누어 주었다.“무게를 다시 확인할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사스가 좋은 외투의 소매를 걷었다. 장부를 내려놓는 손은 전보다 조심스러웠다.베크는 초안을 읽다가 곧 고개를 들었다.“관세를 양쪽 모두 3퍼센트로 낮추는 겁니까?”“예. 수출하는 나라와 수입하는 나라가 각각 3퍼센트를 받습니다.”“하론 강 통행세도 없애고요?”“그 조항은 그 아래에 있어요.”베크가 종이를 조금 내렸다.“전하, 돈이 없습니다.”마티아스는 로잘린 옆에 앉아 있었다. 베크가 내민 조항을 읽은 뒤 종이를 다시 탁자 가운데로 놓았다.“빠질 돈부터 적으십시오.”베크는 빈 종이를 당겼다. 로잘린이 그 옆에 항구 세입 장부를 폈다.“들어올 돈도 그 종이에 적어 주세요.”“배가 더 들어온다는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지난 장부를 가져왔어요. 토렌 배가 한 달에 6척 들어왔을 때와 11척 들어왔을 때예요.”베크는 장부의 표시된 줄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배가 늘어도 관세를 낮추면 남는 돈이 줄 수 있습니다.”“맞아요. 배마다 싣는 물건도 다르고요. 그래서 척수만 곱하지 않았습니다.”로잘린은 밀과 소금이 적힌 줄만 골라 놓았다